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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과 세상/책과 세상 - 시사, 사회

어른들이 먼저 봐야 할 인권교과서

by 이윤기 2010. 3. 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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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 차병직 변호사가 쓴 <사람답게 아름답게>


<사람답게 아름답게>를 소개하며 '인권교과서'라는 제목을 붙여놓고 보니 걱정이 앞선다. 아이들이 꼭 읽었으면 좋겠다는 나의 바람과는 달리 '교과서'라는 제목 때문에 더 싫어하면 어쩌나하는 걱정이다. 아마 책을 만드는 사람들도 이 고민을 했을지도 모른다.

동화로 풀어보는 인권이야기 <사람답게 아름답게>는 차병직 변호사가 인권운동가 서준식씨와 독일행 비행기를 함께 타고 가며 시작한 구상을 엮은 책이다. 7년 동안의 우여곡절을 거치면서 세상에 나왔다고 한다.

참여연대에서 주관한 '참여사회 아카데미' 강좌로 월간 말지의 연재기사로 그리고 마침내 출판기획자를 통해서 <사람답게 아름답게>라는 한 권의 책으로 정리됐다.

<사람답게 아름답게>는 어린이들을 위해 쓴 인권이야기 12꼭지가 실려 있다. 인간의 존엄성, 생명의 권리, 평등권, 행복추구권, 신체의 자유, 재판권, 양심의 자유, 표현의 자유, 사생활의 비밀과 자유, 사회권, 아동권, 동물권에 관한 이야기가 바로 그것이다.

인권 이야기꾼을 자처한 차병직 변호사는 어린이들에게 쉽게 인권이야기를 들려주기 위하여, 모두 48편의 동화를 인용하고 있다. <사람답게 아름답게>의 말미에는 책에서 인용한 동화들을 모두 소개하고 있는데, 일삼아 세어보았더니 모두 48편이었다. 그 중에서 책을 읽었거나 영화를 보았거나 내용이 기억나는 동화를 세어보았더니 모두 24편이었다. 책에서 인용한 이야기 중에 절반은 내가 읽었던 동화였고, 나머지 절반은 읽은 적이 없는 동화였다.

아마 <사람답게 아름답게>를 읽는 많은 독자들이 48편의 동화를 다 읽지 않았을 가능성이 크다. 그렇지만, 책에 나오는 동화 48편을 하나도 읽지 않았어도 이 책을 읽는 데는 아무런 지장이 없다. 인용된 동화만으로도 충분히 인권에 관한 지은이의 설명을 어렵지 않게 이해할 수 있기 때문이다. 물론 48편의 동화를 읽은 사람들은 더 잘 이해할 수 있기는 하겠지만.

인권 이야기 12꼭지 - 인간 존엄성과 생명의 권리

인간의 존엄성은 무엇이고 생명의 존엄성은 무엇일까? 지은이는 그동안 우리가 배운 인간은 존엄하다는 말 속에는 헤아릴 수 없을 만큼 많은 생명 중에서 인간은 다른 생명들보다 존귀하다는 믿음과 그렇게 믿는 인간은 서로가 태어나면서부터 모두 똑같은 존귀함을 지니고 있다고 생각이 담겨있다고 한다.

인간이 다른 생명들보다 존귀하다는 믿음에는 동의할 수 없지만, 어쨌든 인간의 존엄성은 어디로 비롯되는 것일까? 지은이는 인간이든 다른 동물이든, 모두 각자가 가진 차이점 때문에 스스로 존귀한 가치를 지닌다고 본다. 인간이 다른 동물들과 다른 차이점, 인간이 다른 인간과 다른 많은 차이로부터 인간의 존엄성과 생명의 존엄성이 시작된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인간의 존엄성은 생명이 없으면 아무 소용이 없으며, 인간이 가진 존엄성은 곧 생명의 존엄성과 같다.

"어느 누구도 다른 사람의 생명을 해칠 수 없다. 뿐만 아니라 자기 자신의 생명을 스스로 해치는 것도 허용되지 않는다. 생명의 가치가 짓밟히는 것을 보고만 있는 것도 인간의 도리가 아니다."(본문 중에서)

결국, 인간의 존엄성은 생명으로부터 비롯되고, 흔히 사람들이 생명이 영원하지 못한 것을 아쉬워하지만, 달리 생각하면 생명은 영원하지 않기 때문에 더욱 소중하고 아름다운 것이다. 지은이는 <이솝우화>에 나오는 영원히 시들지도 지지도 않는 전설 속의 꽃인 에머랜스와 장미의 이야기를 인용하여 영원하지 않은 생명이 더 소중하고 아름답다는 것을 알려준다. 지은이는 인간의 존엄성, 생명의 존엄성에 관하여 다음과 같이 정리하고 있다.

"내 생명을 소중히 여기듯이 다른 사람의(뭇) 생명을 존중하고, 새로 태어나는 생명을 고귀하게 여기듯이 죽음에 가까이 다가선 노인들을 공경하고, 하늘이 내려 준 자연스러운 생명을 이야기하고 누릴 때 인간의 아름다움은 가장 빛난다."(본문 중에서)

생명의 권리문제 역시 마찬가지다. 생명은 사람을 살아있게 할 뿐만 아니라, 우리가 살아 있다는 것을 느끼게 해준다. 어차피 사람을 사람답게 하는 것도 생명이 있기에 가능한 일이기 대문이다. 따라서 사람은 누구나 다 태어난 이유가 딸로 있으며 자신의 생명이 귀한 만큼 남의 생명도 귀하게 여겨야 한다.

“다른 사람의 생명을 존중해주는 것은 나의 의무이고, 따라서 다른 사람이 나의 생명을 존중해 주는 것은 나의 권리이다."(본문 중에서)

즉 생명의 권리는 생명에 대한 의무를 다하는 것과 분리하여 생각할 수 없는 문제인 것이다. 생명의 권리문제에는 좀 더 예민하고 복잡한 문제들이 있다. 예컨대 합법적인 살인행위인 사형제도나 인간복제와 같은 것들이다. 아울러 힘으로 목숨을 빼앗는 행위뿐만 아니라 안전하게 살아갈 수 없게 하는 삼풍백화점 붕괴, 성수대교 붕괴와 같은 일들도 생명의 권리문제에 해당된다.

신체, 양심 그리고 표현의 자유

<몽테크리스토 백작>에서 인용한 파리아 신부의 한 마디는 '생명의 권리'를 깨닫게 해주는 구절이다. 그는 악명 높은 이프 섬의 감옥에 갇혀 4년 동안 감옥에 굴을 파고 탈출을 준비하였지만, 보초를 죽이고 도망가자고 하는 당테스에게 다음과 같이 말한다.

"난 몇 년 걸려서 참을성 있게 벽에 구멍을 뚫었어. 하지만 사람의 가슴에 구멍을 뚫고 생명을 빼앗는 일은 반대하네."

평등권은 사람들이 인종, 피부색, 성별, 종교, 사상, 신분, 국적, 언어, 재산 등이 다르다는 이유로 사회에서 차별 받지 않아야 한다는 것이다.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에는 여러 곳에 도사리고 있는 차별과 편견을 고치는 것은 살 만한 세상을 만들기 위해 꼭 필요한 일이다.

행복추구권은 사람은 누구나 행복할 권리가 있다는 것이다. 국가나 다른 사람으로부터 행복을 누릴 권리를 방해받지 않아야 한다는 의미이며, 나 역시 다른 사람의 행복을 깨뜨려서는 안 될 의무가 있다.

고층건물을 가진 사람은 무조건 종합화재보험에 들어야 한다는 법을 거부하고 계약을 체결하지 않음으로서 자신의 행복을 추구한 사람의 손을 들어준 헌법재판소의 결정이나 결혼식장에 온 손님에게 음식대접을 할 수 없도록 한 법을 거부한 사람을 옳다고 판단한 결정과 같은 것이 여기에 해당된다.

신체의 자유를 설명하는 데는 스웨덴 소녀 말괄량이 삐삐에서 인용한 대목이 가장 적합하다. 삐삐가 거꾸로 걸어가는 것을 보고 궁금해 한 토미와 아니카의 질문에 대한 답이다.

"왜 뒤로 걷느냐고? 여긴 자유로운 나라잖아. 자기가 걷고 싶은 대로 걸으면 안 된다는 법 있어."

이 말은 무엇이든지 금지되지 않은 것은 자유롭게 할 수 있는 것이 원칙이라는 뜻이다. 법으로 금지하기 전에는 각자가 스스로 무엇을 할 것인지 또는 하지 않을 것인지를 결정할 수 있다는 뜻이다.

그러나 세상에는 생각과 사상이 다르다는 이유 때문에 오랫동안 감옥에 생활을 해야 했던 사람들이 많으며, 사상이 다르다는 이유로 43년 10개월 동안 감옥생활은 김선명씨는 바로 우리나라에서 그런 일을 당했다는 것이다.

국가도 침해할 수 없는 권리 '인권'

양심이란 무엇인가? 양심은 사물의 옳고 그름을 구별하여 나쁜 짓을 하지 않고 바른 행동을 하려는 마음의 움직임을 말한다. 한마디로 옳고 그른 것을 추구하려는 도덕적인 마음가짐을 양심이라고 한다. 또한 양심은 스스로 자유롭게 생각해서 얻어지는 것이지 누군가가 강제로 강요할 수도 없다. 아울러 한 사람의 마음속에 단단하게 자리 잡은 소신이어서 쉽게 변하지도 않는다.

따라서 누구에게나 양심을 지킬 자유, 양심을 강요당하지 않을 자유, 밖으로 나타내지 않을 자유, 양심을 바꾸도록 강요당하지 않을 자유, 양심에 어긋나는 행동을 하지 않을 자유가 있는 것이다.

설사 양심은 나쁜 양심이라고 지켜져야 하며, 다수결의 원칙으로 정하거나 재판에 의해서 판단할 수 있는 일도 아니라는 것이다. 세상에는 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양심에 따라 행동한 것 때문에 감옥에서 지내고 있는데, 이들을 '양심수'라고 부른다.

<사람답게 아름답게>에서 지은이는 <80일간의 세계일주> <이상한 나라의 엘리스> <피노키오>를 인용하며 아이들이 쉽게 알아들을 수 있도록 양심의 자유를 설명하고 있다.

아울러 이 책에는 표현의 자유를 침해당함으로써 일어나는 자기검열의 문제, 사생활의 비밀과 자유에 관한 문제, 그리고 사회권에 관하여 소개하고 있다. 아울러 '아이는 작은 어른이 아니라는 것'을 일깨워 주는 '아동권'과 다소 생소하지만 '동물권'에 대해서도 소개하고 있다.

동화로 풀어가는 차병직 변호사의 인권이야기는 나의 인권과 다른 사람의 인권, 사람의 권리와 다른 생명의 권리가 만나는 지점에 관하여 특별히 주의를 기울인 노력이 돋보인다. 또한 국가에 의하여 침해당하는 개인들의 양심, 신체, 표현의 자유에 관하여도 아이들에게 쉽게 설명하기 위하여 애쓴 흔적이 역력하다.

솔직히 아이들을 위하여 쓴 책이라고 하지만, 우리나라에는 인권이야기를 쉽게 풀어 쓴 어른들을 위한 책도 변변찮기 때문에 어른이 읽어도 참 좋은 책이라 여겨진다. 책을 쓴 차병직 변호사는 참여연대 상임집행위원장과 협동사무처장, 인권운동연구소 운영위원을 거쳐서 현재는 정책위원장을 맡고 있다.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 모임 활동과 시민단체 활동에 열심히 참여하는 것으로 소개되어 있다. 지은이는 NGO 활동에 관한 책과 사법개혁에 관한 여러 책에 글을 써왔다고 한다.

<사람답게 아름답게>는 초등학교 고학년부터 중고등학생 그리고 성인에 이르기까지 인권을 주제로 토론을 하기에 참 적합한 책이라고 생각된다. 왜냐하면 책이 참 쉽게 씌어졌기 때문이다. 그리고 또 재미있는 토론 거리가 풍부하기 때문이다.

'이 책을 나의 모든 어린 친구들에게 바치고 싶다'는 필자의 바람처럼, 찰스 램의 수필에 나오는 미처 태어나지 못한 아이들과 유이히로 사사키의 카메라에 잡힌 1948년 히로시마 역전에서 구두를 닦던 두 소년처럼 지은이도 나도 만나보지도 못한 어린 친구들에게도 널리 읽혔으면 좋겠다.

지은이가 글을 쓰는 7년 동안 이 책을 꼭 읽었으면 하였던 아이들이 어느새 훌쩍 커버려 대학생이 되었다고 한다. 책을 권하고 싶은 어린친구들이 곁에 있다면 그들이 <사람답게 아름답게>를 읽어야 할 때를 놓치지 않도록 권해주어야 아쉬움이 남지 않을 것 같다.


사람답게 아름답게 - 10점
차병직 지음/바다출판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