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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과 세상/책과 세상 - 생태, 환경

당신 집에 도둑이 들어도 GDP는 증가한다

by 이윤기 2013. 4.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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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로라이프의 달인들>은 문화인류학자이자 환경운동가인 쓰지 신이치가 엮은 책입니다. 국내에는 이미 그가 쓴 <행복의 경제학>과 <에콜로지와 평화의 교차점>이 번역되어 있고, 그는 '슬로라이프'의 주창자로 널리 알려져 있습니다.

 

이 책은 슬로라이프로 대표되는 GNH(Gross National Happiness) 연구회의 에세이집이라고 할 수 있는 책입니다. <오래된 미래>의 저자 헬레나 노르베리-호지, <경제성장이 안되면 우리는 풍요롭지 못할 것인가>의 저자 더글러스 러미스르르 비롯한 GNH연구회 회원들의 강연을 모은 책이지요.

 

10명의 저자들이 각각 슬로라이프와 GNH, 경제 성장과 행복, 시간의 풍요로움, 일상의 행복, 농촌의 삶, 생명과 출산, 여행, 노동과 풍요 등을 주제로 발표한 강연을 모은 책입니다. 대표 저자인 쓰지 신이치 교수는 21세기에 들어오면서 슬로라이프와 국민총행복(GNH)을 추구하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으며 그들의 특징을 세 가지 형용사로 표현할 수 있다고 하였습니다.

 

"즉 천천히(slow), 작은(small), 간소한(simple)이라는 세 가지 형용사로 나타냈습니다. 이 세 가지 키워드로 상징되는 가치관과 미의식을 지닌 사람이 컬처 크리에이티브가 아닐까 생각합니다." (본문 중에서)

 

새로운 문화의 창조자들인 컬처 크리에이티브들은 철저한 환경주의자들로서 건강에 관심이 많고, 자연식을 하며, 먹을거리의 생산과 공급에 참여하는 사람들이며, 직접 농사를 짓거나 손발을 사용하여 일하는 것을 좋아하는 사람들을 말합니다. 이런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기 때문에 풍요로움에 관해서도 새로운 자각이 일어나고 있다는 것이 쓰지 신이치 교수의 주장입니다.

 

새로운 환경주의자들이 늘어나고 있다

 

그는 GNP(국민총생산), GDP(국내총생산) 등의 개념과 대비되는 새로운 지표인 'GNH'에 주목할 것을 제안합니다. 부탄의 젊은 국왕이 처음으로 GNH의 중요성을 거론하였으며, 부탄의 경우 헌법에도 GNH라는 개념이 포함된다고 합니다. 다음과 같은 GNH의 네 가지 기준도 정해졌다고 합니다.

 

"첫 번째는 생태계의 풍요로움, 두 번째는 전통문화와 정신문화의 풍부함, 세 번째는 경제적인 풍요입니다. 경제는 공평 공정해야 합니다. 사회의 일부만이 부를 독점하는 심각한 빈부격차가 있어서는 안 됩니다. 공정한 경제가 있기 때문에 '평화'가 존재합니다. 그리고 네 번째 기준은 올바른 정치라고 합니다." (본문 중에서)

 

즉 국민들의 풍요로움과 삶을 측정하는데, GNP 혹은 GDP 와는 전혀 다른 개념들을 사용한다는 것입니다. 참된 풍요로움과 행복을 경험하기 위해서는 '경제 성장이라는 일종의 종교'로부터 벗어나지 않고는 어렵다는 것이지요. 참된 풍요로움을 제시하는 것은 어차피 새로운 가치관과 문화를 만드는 일이기 때문에 문화 창조자라는 관점에서 새로운 의미를 찾아야 한다는 뜻이겠지요.

 

두 번째 강연자인 오오키 아키라는 동남아시아사를 연구하는 역사학자이며 GNH연구회 회원입니다. 강연에서 그는 행복과 풍요로움이 관계에 관하여 이야기합니다. 그는 일본이 점점 더 부자나라가 되고 있고 1인당 GDP는 계속 증가하는데도 불구하고 사람들의 생활만족도는 더 이상 향상되지 않는다는 점에 주목합니다.

 

살기는 점점 팍팍해지고 자살율이 증가하였을 뿐만 아니라 우울증 등 정신질환을 앓는 사람들도 늘어나고 있다는 것입니다. 한신, 아오지 대지진에서 죽은 사람보다 6배나 많은 사람들이 매년 자살로 목숨을 끊고 있다는 것입니다.

 

저자는 이런 자살과 정신질환의 원인을 자유경쟁과 자기책임 때문이라고 진단합니다. 자유 경쟁이란 취업, 직장생활 뿐만 아니라 노후 생활이나 건강관리까지 모두 개인의 책임으로 돌리고 국가는 아무런 책임을 지지 않는 것을 말합니다. 이른바 신자유주의이지요.

 

일본의 경우 젊은이의 8% 만이 현재 행복하다고 대답하였고, 대부분이 부모님보다 수입이 증가하지 않을 것이라고 답했다고 합니다. 말하자면 일본 젊은이들은 앞으로 지금보다 더 잘 살게 될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뉴질랜드에서 대학을 졸업하자마자 취직할 수 없는 형편이었는데도 뉴질랜드 정부로부터 바로 실업수당을 받았다는 사실입니다. 그런데 뉴질랜드의 1인당 GDP를 조사해보면 일본의 1/2이고, 경우에 따라서는 1/3정도라는 것입니다." (본문 중에서)

 

즉 일본은 뉴질랜드보다 훨씬 부자나라지만 복지 수준은 뉴질랜드보다 훨씬 뒤쳐진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일본의 정부 재정의 방만한 집행으로부터 비롯된다는 것이 저자의 진단인데, 한국의 경우도 크게 다르지 않은 상황입니다.

 

GDP가 증가해도 사람들이 행복하지 않은 까닭?

 

결국 일본 사례를 통해 경제성장을 통해 행복을 경험하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라는 것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세 번째 저자인 사카타 유스케는 환경경제학자입니다. 일상에서 행복을 찾는 방법에 대하여 이야기합니다. 그는 경제학이 행복을 다루는 학문이 되어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한정된 자원 중에서 가장 부족하다고 느끼는 것이 무엇일까요? 바로 돈입니다. 음식물은 어느 정도 있으면 만족합니다. 배가 부르다거나 1년 치 식량이 비축될 경우에는 만족합니다. 그러나 돈은 가지면 가질수록 더 갖고 싶어집니다." (본문 중에서)

 

돈은 아무리 많아도 더 가지고 싶어 하기 때문에 가장부족하다고 느끼는 것도 돈이라는 것이지요. 그렇지만 행복의 기준이 될 수는 없다는 것이 저자의 생각입니다. 그렇다면 사람은 어떤 때 행복을 느끼는 것일까요? 스위스 학자들의 연구결과는 이렇습니다.

 

첫째는 소득이고 둘째는 가정생활 셋째는 직업 즉 사회적 지위로부터 영향을 받을 뿐만 아니라 민주주의 수준, 인격체로서 인정받음 등이 모두 행복을 가늠하는 척도라는 것입니다. 특별히 저자는 한 달에 한 번이라도 좋으니 제발 싼 것 대신에 좋은 것을 구입하자고 제안합니다.

 

오늘날 세상을 변화시킬 수 있는 힘은 소비자에게 있으니 옳다고 생각하는 일을 행동으로 옮기고, 앞으로 한 50년쯤 내다보면서 삶과 생활을 바꾸자고 제안합니다.

 

한편 네 번째 저자인 니시모토 시쿠코는 시간을 중심에 놓고 인간의 풍요로움과 빈곤함에 대하여 성찰하는 강의를 하였습니다. 그는 청중과 독자들에게 "왜 사회의 속도는 점점 빨라지는 것일까?"하는 질문을 던집니다.

 

저자는 사람들이 점점 더 바빠지는 것은 시간을 딱 맞춰야 한다는 생각을 하기 때문이라고 진단합니다. 또 생산에서는 시간 낭비를 없애는 도요타 방식과 같은 생산방식이 확산되었으며, 더 빠른 교통수단이 등장하고 더 빠른 뉴스를 듣고 싶어 하는 때문이라는 겁니다.

 

그러나 정작 사람들이 행복을 느끼는 것은 약간 나태한 경험을 할 때라고 합니다. 시간을 허비하는 경험을 할 때 삶의 풍요로움을 느낀다는 것입니다. 아울러 일을 열심히 하기 위한 교육은 충부니 받았어도 여가와 자유로운 시간의 사용법에 대해서는 배우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일 외에는 잘 하는 일이 없는 겨우가 많은데, 실상은 일 이외에 하고 싶은 일이 있어야 인생이 즐겁고 더 풍요로워질 수 있다고 조언합니다.

 

다섯 번째 강사인 헬레나 노르베리-호지는 행복 선진국 라다크에서 자본주의 문화가 들어와서 어떤 변화가 일어나고 있는지를 들려줍니다. 각국 정부가 막대한 예산을 쏟아 붓는 무역진흥 정책 때문에 먼 나라에서 만든 제품이 더 값싸게 팔리고 있는 기이한 현상의 본질을 들춰냅니다.

 

우울증 환자가 늘어나면 GDP는 증가한다

 

예컨대 라다크에서는 누구나 집에서 버터를 만들었지만, 지금은 인도에서 히말라야를 넘어 수입되는 버터가 1/2가격에 팔리고 있으며, 영국 역시 뉴질랜드에서 1/3가격밖에 안되는 우유와 버터를 수입한다는 것입니다. 또 그녀는 GDP와 GNP의 허구성에 대해서 아주 재미있는 사례를 들려줍니다.

 

"사람이 불행하면 불행한 만큼 항우울제의 수요가 증가하고 자신의 몸을 싫어하면 할수록 성형수술이 증가해 GDP는 올라갑니다." (본문 중에서)

 

"물이 오염되어 강의 물을 마실 수 없으면 GDP의 수치는 오르기 때문에 경제발전 차원에서는 좋은 일입니다. 또 예를 들어 다인이 귀가했더니 집에 도독이 들어 텔레비전과 스테레오, 개인용 컴퓨를 모두 도둑맞았다고 상상해보세요. 이것은 당신에게는 괴로운 일이겠지만 경제발전 차원에서는 잘 된 일입니다." (본문 중에서)

 

결국 GDP니 GNP니 하는 수치들은 인간의 행복과는 아무 상관이 없는 지표들이라는 것입니다. 따라서 지속가능성에 촛점을 맞추고 지역화를 통해 행복을 추구하는 경제시스템을 만들어야 한다고 강조합니다.

 

그녀는 세계화는 진화가 아니며, 소유욕, 탐욕이 인간의 본성도 아니라고 주장합니다. 또 특별히 광고에 주의하라고 경고합니다. "광고는 단순히 제품의 매력을 창출해내는 것만이 아니라 오히려 자신에 대한 깊은 불만이나 자기부정을 이식"한다는 것이지요.

 

여섯 번째 강사인 시마무라 나쓰는 '슬로푸드의 풍요로움'에 대하여 이야기합니다. 그는 '물건을 사는 것은 투표하는 것과 같다'는 말을 인용하면서 패스트푸드를 사 먹는 것은 함께 가해자가 되는 행위라는 것을 강조합니다.

 

또 싼 물건을 사는 것이 정말 이익인 것인지 깊이 생각해볼 것을 당부합니다. 값싼 식료품이 더 많은 의료비를 지불하게 할지도 모른다는 것이지요. 특히 다이어트와 건강식품에 속아 넘어가지 않도록 주의를 촉구합니다.

 

아울러 이탈리아와 같은 슬로푸드가 지역을 살리고 사람들을 건강하게 만드는 대안이 될 수 있다는 점을 분명히 합니다. 식량자급율을 높이고 선조들로부터 물려받은 풍부한 음식문화를 잃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는 사실을 여러 사례를 들어 깨닫게 합니다.

 

일곱 번째 강사인 유키 도미오는 민속학자입니다. 그는 도호쿠 지방의 할아버지와 할머니들의 삶에서 얻은 교훈에 대해서 이야기 합니다. 농촌에서 살아가는 삶이 결국 GNH가 더 높은 삶으로 귀결되더라는 것입니다.

 

상호부조가 살아있고, 식량을 자급할 뿐만 아니라 모자라는 많은 것은 자연에서 얻을 수 있는 것이 농촌의 삶이라는 것입니다. 수렵과 채취를 할 때는 절대로 싹쓸이하지 않으며, 오래된 텃밭과 오래된 품종, 오래된 과실수들 그리고 삶의 자취들이 행복을 만들어 내는 원천이라는 사실을 상기시킵니다.

 

더 비싼 물건을 기분좋게 사는 지혜로운 사람들

 

예컨대 오키나와 현 구니가미촌의 오쿠라는 마을에는 마을 사람들 모두가 더 비싼 값에 물건을 사는 공공매점이 있다고 합니다. 그리고 1년간 매점에서 벌어들인 수익금의 사용은 마을 사람들 모두가 의논해서 결정한다는 것입니다.

장학금도 지급하고, 의료비를 무이자로 빌려주며, 발전소를 세우고 마을버스를 구입하는 것과 같은 일들이 매점에서 벌어들인 수익금으로 이루어졌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여덟 번째 강사인 안냐 라이트는 풍요로움과 행복의 근원이 아이를 낳고 기르는 것에서 시작된다는 이야기를 합니다. 그는 집에서 아이를 낳아 기른 경험과 아이들을 기르면서 느끼는 행복에 관해서 이야기 해 줍니다. 특별히 아이들에게 자연과 교류하는 다양한 경험을 제공 할 것을 권유합니다.

 

아홉 번째 강사인 사티쉬 쿠마르는 젊은이들에게 여행을 권합니다. 자신을 사랑하고 있는 그대로의 세상을 만날 수 있는 기회를 여행에서 찾을 수 있다는 것이지요. 그는 자신이 경험했던 세계 평화 순례의 무전여행 경험을 들려줍니다.

 

아울러 평화를 실현하기 위해서는 자연이 준 은총을 나누어 간소한 삶을 살아야 한다고 강조합니다. 지금처럼 경제를 성장시켜 파이를 키우면 가난한 사람의 몫이 커진다는 주장이 거짓이라는 것을 분명히 합니다. 가난하게 살자는 것이 아니라 검소하고 간소한 삶을 살자고 호소합니다.

 

이어지는 마지막 장도 풍요로움의 신화'를 벗어버리자는 더글러스 러미스의 강연입니다. 그는경제가 더 이상 성장하지 않아도 사람은 얼마든지 더 행복해질 수 있다고 주장합니다. 그는 노동에서 즐거움을 경험할 수 있어야 하며, 서로 경쟁하지 않는 관계를 만들어나가야 한다고 주문합니다.

 

 

국가의 살인은 무죄인가?

 

특히 그는 쓰지 신이치 교수와의 대담에서 일본의 평화헌법에 대하여 이야기하면서 평화를 위해서는 전쟁에 반대해야 한다는 점을 강조합니다.

 

"사람을 죽이고 건물을 부수고 타인의 재산을 파괴하는 것이 군인이 일입니다. 전쟁 시 군인이 하는 일을 우리가 하면 범죄자로 체포되지만, 군인이 교전권하에서 하는 일은 체포는커녕 오히려 훈장을 받습니다." (본문 중에서)

 

"20세기 100년 동안 국가가 죽인 사람은 약 2억 명 정도라고 합니다....... 2억 명 가운데 과반수가 군인이 아닌 비전투원, 즉 여자 아이 노인 이었습니다.......국가가 죽인 2억 명 중 과반수는 자국민이었다는 것입니다." (본문 중에서)

 

더글러스 러미스 교수는 정의를 위한 전쟁이란 없으며 정의를 위하여 전쟁을 하게 되면 세상의 모든 전쟁을 인정할 수밖에 없다는 것을 분명히 하였습니다. 그는 특별히 일본의 평화헌법과 오키나와 미군이 주둔하는 모순을 짚고 넘어갑니다.

 

오늘날 끝없는 경제성장을 추구하다보니 꼭 필요하지 않은 것을 만들고, 사지 않아도 되는 혹은 사지 않는 편이 더 나은 물건까지 잔업을 해가며 만드는 한심한 일이 벌어지고 있다고 비판합니다. 그는 사람을 행복하게 만드는 노동을 살려야 한다고 특히 젊은이들이 그런 노동을 선택해야 한다고 강조합니다.

 

쓰지 신이치 교수를 비롯하여 이 책에 등장하는 10명의 저자들은 독자들이 오늘날 가장 힘세고 부자나라로 알려진 미국이 결코 행복한 나라가 아니라는 사실을 깨닫기를 바랍니다. 풍요와 행복은 돈을 더 많이 벌고 경제의 규모를 키우는 것으로는 결코 이룰 수 없는 가치라는 사실을 일깨워줍니다.

 

 

슬로라이프의 달인들 - 10점
쓰지 신이치 엮음, 허문경 옮김/한울(한울아카데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