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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시콜콜

어~ 결혼식, 주례가 없잖아~

by 이윤기 2010. 1. 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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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11월, 후배 결혼식에서 여자 선생님이 주례 서는 이야기를 포스팅한 적이 있습니다. 저는 태어나서 여자 주례선생님이 결혼식을 집례하는 것을 이날 처음보았습니다. 마산 가곡 전수관 조순자 선생님이 결혼식 집례하시는 모습을 보면서 결혼식 주례는 꼭 남자가 해야한다는 편견을 말끔히 해소 할 수 있었지요.

관련기사 2009/11/25 - [시시콜콜] - 어~ 결혼식 주례가 여자야 !

새해 들어 지난 10일 함께 모임을 하는 또 다른 후배 결혼식이 있었는데, 이번에는 아예 주례가 없는 결혼식을 하더군요. '이분에게 꼭 주례 말씀을 듣고 싶다' 할 만한 분도 마땅히 없고, 그렇다고 결혼식장에서 권해주는 판에 박힌 주례사를 하시는 분을 모시기도 싫어 신랑, 신부가 머리를 싸매고 결혼식을 준비했다고 하더군요.



오늘은, 여느 결혼식과 사뭇 다른 분위기의 '주례' 없는 결혼식을 한 번 소개해 봅니다. 길혼식은 사물놀이 패의 신명나는 연주로 시작되었습니다. 보통 이런 공연은 결혼식 끝부분 축가나 축하공연 순서로 진행되는데, 이날은 결혼식 시작을 알리는 공연이었습니다. 결혼식 시간이 다가오자 식장 밖에서부터 꽹가리, 장구, 북, 징소리가 들리더니 결혼식장을 한바퀴 돌아 하늘과 땅에 울리는 경쾌한 연주로 혼례 시작을 알려주었습니다.

신랑이 대학시절부터 풍물 동아리 활동을 하였고, 직장생활을 하면서도 틈틈히 풍물 모임에 참여하는 신랑과 인연을 쌓은 분들이 흥겨운 사물놀이 가락으로 혼례를 축하해주었습니다. 부부가 된 두 사람은 몇 년전부터 1년에 한 번씩 사물놀이 공연에 함께 참여하고 있답니다.



위의 사진은 신랑, 신부가 혼인서약을 하고 있는 모습니다. 결혼식에서 혼인 서약은 주례 선생님이 "OOO 군, OOO 양은 기쁠 때나 슬플 때나 서로 믿고 의지하며 검은 머리가 파뿌리가 되도록 사랑하고 존경하며 함께 할 것을 맹세합니까?" 라고 물을 때 큰소리로 "예'라고 대답하는 것이 보통입니다.

그런데, 이날 결혼식의 주인공 두 사람은 자신들이 직접 작성한 혼인 서약을 가족, 친지, 친구들 앞에서 함께 읽으며 공개 약속을 하였습니다. "내조의 여왕'이 되겠다고 하는 신부의 서약이 결혼식 하객들의 웃음을 자아내기도 하였습니다.

혼 인 서 약 서

나 신랑 김OO은 장OO를 아내로 맞아 이웃과 사회 공동체에 본이 되고 사랑받고 존경받는 구성원으로서 부족함이 없도록 최선을 다하는 멋진 가장이 되겠습니다.

나 신부 장OO는 김OO을 남편으로 맞이하여 가정의 화목과 부모님에 대한 효도와 형제간의 우애를 이끄는 내조의 여왕이 되겠습니다.

나 신랑 김OO과, 나 신부 장OO는 매사에 자연과 환경을 조금 더 생각하며 행동하겠습니다.

자녀를 키움에 있어‘내 주변이 행복해야 내가 행복할 수 있음을 알고, 자신의 인생을 스스로 그릴 수 있는 아이로 키우겠습니다.

사랑과 존중으로써 서로를 대하고, 기쁠 때나 슬플 때나 늘 가정을 중심으로 생각할 것이며 언제나 웃음꽃이 피는 화목한 가정을 만들겠습니다.

우리 부부는 위의 약속들을 지키며 아름답게 살아갈 것을 여러분들 앞에 엄숙히 맹세합니다.

2010년 1월 10일
신랑 김OO, 신부 장OO



주례사 못지 않은 신부 아버지의 편지

주례사 대신에 신부 아버지께서 결혼하는 딸과 새로 맞이 하는 사위에게 보내는 편지를 읽어주셨습니다. 편지의 내용을 보나 차근차근 당부 말씀 막힘없이 해내는 능력으로 보나 주례를 맡으시기에도 손색이 없어셨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지켜보는 자리였지만, 혼례에 참석해준 하객들에 대한 인사, 딸을 며느리로 맞이하는 신랑댁 가족들에 대한 당부, 결혼하는 딸과 사위에 대한 당부 말씀 어느 하나도 놓치지 않으셨더군요.


결혼식이 끝난 후에 주변 사람들과 "신부 아버님이 주례를 맡았어도 손색이 없었겠다"는 이야기를 나누며 서로 많이 공감하였습니다. 아마 몇 년 전에 신랑 아버님이 먼저 세상을 떠나지 않으셨다면, 두 분이 나란이 주례 말씀을 아들과 며느리, 딸과 사위에게 전할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고 하더군요.

저는 이 결혼식을 보면서 결혼식 주례는 양가 부모님들이 나누어 맡으시는 것도 좋겠다는 생각을 해 보았습니다. 결혼하는 두 사람을 가장 잘 아는 양가 부모님들이 신랑, 신부에게 전하는 당부의 말씀도 하시고, 결혼식을 축하해주는 손님들에게 인사를 전하는 것도 좋을 것 같습니다. 판에 박힌 주례사 보다는 훨씬 감동적인 주례사를 전할 수 있으리라는 생각을 해 보았습니다ㅏ.

사진에서 보시는 것 처럼, 신부 아버님께서는 결혼하는 딸과 사위에게 전하는 장문의 편지를 손 글씨로 직접 써오셨더군요. 사진으로 봐도 정갈한 글씨체와 진심이 담긴 편지글에서 따뜻한 아버지의 마음을 느낄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저 편지의 원본은 신랑, 신부가 평생을 살아가는 지침이 될 수 있겠지요. 1년에 한 번씩 결혼 기념일 마다 저 편지를 꺼내 다시 읽어보는 것도 좋은 기념 행사가 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아래, 사진은 함께 모임을 하는 후배가 두 사람의 결혼을 축하하는 축가로 김동률의 '감사'를 부르는 장면입니다.  이 후배는 지난번 여자 주례선생님이 결혼을 집례하신 바로 그 결혼식에서도 축가를 불렀습니다. 두어달 사이에 축가를 전문으로 하는 가수(?)가 되었습니다.

이 후배가 축가를 부르는 동안 결혼식장에 있는 신랑, 신부의 친구들 중에서는 "진짜 가수를 데리고 왔나봐"하는 소리도 들리고, 노래가 끝나갈 즈음에는 감동이 담긴 박수와 환호가 쏟아지기도 하였습니다.  


아래 사진은 결혼식의 마지막 장면입니다. 신랑이 직접 결혼식에 참석한 분들에게 인사를 하는 순서였습니다. 자신을 낳아 주시고 길러주신 부모님, 아내를 낳고 길러 주신 부모님, 그리고 형제 자매 친척들에 대한 감사 인사, 결혼을 축하러 온 친구와 동료들에 대한 인사를 빠뜨리지 않았습니다.

그 중에서도 가장 뭉클했던 순간은 신랑이 몇 년 전에 세상을 떠나신 아버님을 추억하면서 "하늘에서 지켜보시면 축하해 주실 거라고 믿는다"며 잠깐 울먹일 때였습니다. 아버지의 빈자리를 채워 준 형님에 대한 인사도 빠뜨리지 않더군요. 저 보다 젊은 후배이지만 결혼식을 마무리 인사 하는 모습을 보며 참 듬직한 신랑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신혼여행 전에 결혼식 참석 우인 모두에게 감사 전화 하는 정성...

사진에는 없습니다만, 제가 그동안 가 본 결혼식 중에서 신랑, 신부의 친구와 우인이 가장 많은 결혼식이 이날 결혼식이었습니다. 처음에 신랑 친구와 신부 친구가 함께 사진 촬영을 하려다가 사람이 너무 많아서, 신랑 친구와 신부 친구를 2번으로 나누어서 사진촬영을 하더군요.

신랑 친구와 신부 친구로 나누어서 사진촬영을 하였지만 그 숫자도 보통 사람들의 결혼식 우인촬영보다 사람이 훨씬 많았습니다. 2번의 촬영 모두 결혼식 단상을 가득채워서 사진을 찍었답니다. 결혼식에 참석한 젊은 우인들에 비하여 늙은 저는 낄 자리가 없더군요. 아무튼 평소 신랑 신부의 교우관계와 인간관계의 단면을 엿볼 수 있었답니다.

두 사람은 캄보디아로 신혼여행을 다녀왔습니다. 인천공항에서 월요일에 여행을 떠났기 때문에 서울에서 하룻밤을 보냈는데, 결혼식 다음날 출국에 앞서서 결혼식에 참석했던 지인들에게 모두 '고맙다'는 안부 전화를 하였더군요. 아는 사람들끼리 만나면 서로 "OOO에게 전화 받았냐?", "와~ 대단하다" 하는 이야기를 주고 받았답니다.

마음이 따뜻한 두 사람이 만났습니다.  두 사람이 만나 자신들이 속해 있는 공동체의 본이 되고, 함께 세상을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사랑받는 구성원으로 자연과 환경을 생각하며 살겠다는 혼인서약이 꼭 지켜지기를 바라는 마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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