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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과 세상/책과 세상 - 여행

아프리카에서 외국인으로 살아보기

by 이윤기 2010. 4. 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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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구혜경이 쓴 <아프리카 초원학교>

구혜경이 쓴 <아프리카 초원학교>는 2006년 7월부터 6개월간 아프리카 대륙의 동쪽, 인도양 연안에 있는 탄자니아에서 살았던 경험담을 기록한 책이다.

<아프리카 초원학교>를 쓴 구혜경씨는 공동육아 어린이집에서 만난 <베낭 하나 달랑 메고>의 저자 김정미씨와 마음이 맞아 아프리카 여행계획을 세웠다고 한다.

두 엄마의 관심사가 "아이들을 자연 속에서 키울 수 없을까"하는 것이었고 그러다 우연히 아프리카에서 아이를 키운 한 영국 엄마의 책을 본 후 아프리카로 떠나자고 의기투합하기에 이른다.

아프리카 대륙 탄자니아로 가는 길

<아프리카 초원학교>는 이렇게 서툰 열정으로 시작한 세원이·윤재엄마 구혜경씨와 지호·지민이 엄마 김정미씨가 함께 떠난 동아프리카 여행에서 그들이 겪은 아프리카식 삶에 관한 이야기이다.

"아프리카에 도착한 첫날부터 새로운 모험의 연속이었고, 꿈에 그리던 자연 속의 생활도 녹록치 않았다. 처음으로 어린아이 둘을 혼자서 챙겨야 하는 일이 힘들기도 했고, 그때까지 가족이 떨어져 살아본 적이 없었기에 아이들은 서울에 혼자 남은 아빠를 몹시도 보고 싶어 했다." - 본문 중에서

아프리카 여행을 위해 15시간을 비행한 뒤 케냐 나이로비에 도착하였다고 한다. 그런데 비슷한 시간이 소요되는 미국 뉴욕에 비해 한국에서 케냐는 훨씬 더 멀게 느껴지는데, 그건 여행을 떠난 그들도 책을 읽는 우리도 마찬가지 일 것이다.

그만큼 아프리카는 우리에게 멀리 있는 곳이다. 이렇게 먼 곳으로 아줌마 두 사람이 아이 4명을 데리고 떠난 것이다. 그들이 발견한 아프리카의 매력은 과연 무엇일까? 아프리카 초원을 학교 삼은 아이들은 무엇을 느끼고 배웠을까?

<아프리카 초원학교>를 읽다보면 아프리카에 대한 수많은 편견들이 깨진다. 첫 번째 편견, 많은 사람들이 습관처럼 '아프리카'를 마치 하나의 나라 이름처럼 생각하고 있지만, 아프리카 대륙에는 65개 나라가 있다는 사실. 물론 뉴욕보다 케냐가 훨씬 멀게 느껴지는 것처럼 북아프리카의 몇 나라와 남아프리카 공화국을 제외한 대부분의 나라는 매우 낯설다.

두 번째, 아프리카는 모두 덥다는 편견이다. 탄자니아로 가는 준비를 위해 머물렀던 케냐의 나이로비, 적도에서 남쪽으로 140km 떨어져있는 나이로비는 아주 더울 것 같았지만 해발 1700m에 도시가 있어 생각처럼 덥지 않았으며 오히려 추웠다고.

아프리카에 대한 편견 깨기

아프리카 곳곳엔 사자와 침팬치, 기린과 얼룩말 같은 동물들이 많을 거라는 것이 세 번째 편견이다. 구혜경씨가 쓴 <아프리카 초원학교>를 읽다보면 어린시절 TV를 통해 본 타잔 영화나 혹은 그 보다 20년 쯤 후에 본 <부시맨> 같은 영화 때문에 생긴 편견을 버릴 수 있다.

그녀가 방문한 탄자니아나 케냐의 국립공원들 중엔 그 규모가 우리나라 경상북도만큼 큰 곳도 있지만, 코뿔소를 비롯한 많은 동물들이 멸종 위험에 처해있을 뿐만 아니라 아프리카 사람들이 모두 타잔 영화에서처럼 살고 있지도 않다는 것.

뿐만 아니라 지은이가 찾아갔던 케냐의 '지라프 센터'처럼 많은 곳에서 야생동물을 관광상품으로 개발하고 관리하고 있으며, 탄자니아의 여러 국립공원 역시 야생동물을 직접 볼 수 있는 사파리를 관광 상품으로 만들어 활용하고 있다는 것이다.

네 번째, 아프리카 아이들은 대부분 굶주리고 있을 것이라는 편견이다. 한비야씨가 쓴 <지도 밖으로 행군하라> 혹은 김혜자씨가 쓴 <꽃으로도 때리지 말라> 말라위, 잠비아, 시에라리온, 라이베리아, 에디오피아와 같은 아프리카의 여러 나라들이 오랜 내전과 그로 인한 기아에 시달리고 있다.

한비야와 김혜자의 책이 아니라도 월드비전을 비롯한 구호단체를 통해서 소개되는 아프리카의 모습이나 혹은 외신을 통해서 만나는 아프리카의 모습은 늘 메마르고 척박한 땅에 배만 뽈록한 비쩍 마른아이들의 퀭한 눈동자다.

그러나 <아프리카 초원학교>를 쓴 지은이가 찾은 케냐와 탄자니아는 적어도 전쟁과 기아의 현장은 아닌 것 같다. 이 곳에서도 빈부 격차가 심하고 많은 사람들이 일자리가 없어 가난하게 살아가고 있지만, 천혜의 자원을 이용하여 국립공원을 만들고 사파리 관광을 통해서 관광객을 유치하는 모습이 소개되어 있다.

아울러 사회주의와 자립을 국가목표로 정하고, 협동농장을 만들고 스와힐리어를 국어로 삼는 등 아프리카식 사회주의를 꿈꾸었던 탄자니아의 초대 대통령 니에레레와 같은 존경받는 지도자도 있다.

한 번도 부패스캔들에 휘말린 적도 없고, 자신의 정책적 실패를 솔직히 인정하였을 뿐만 아니라 후계자에게 대권을 물려줌으로서 평화로운 정권교체를 이룬, 아프리카 정치사에 큰 획을 그은 인물이 있었다.

검은 언니와 흰 동생, 피부색 다른 자매

다섯 번째, 아프리카에는 모두 검은 사람만 살고 있을 것이라는 편견이다. 흔히 아프리카를 검은 대륙이라고 부른다. 검은 대륙이라는 말은 아프리카에 사는 사람들의 피부색을 상징하는 것이다. 그렇지만, 아프리카에는 피부가 검은 사람들만 살고 있지 않다.

남아프리카 공화국을 비롯한 유럽열강의 식민 지배를 받은 많은 나라에선 여전히 백인들이 대부분의 생산수단과 토지를 소유하고 있다. 다수 사람들이 흑인일 뿐이다. 이 책에는 지은이 구혜경의 딸 세원이의 초등학교 친구에 관한 이야기가 나온다. 우리가 가진 피부색에 대한 편견을 깨뜨릴 만한 사례가 소개되어 있다.

"로라의 언니는 세원이와 같은 학교에 다닌다고 한다. 그런데, 자매의 피부색이 다르다. 언니는 피부색이 검고, 동생 로라는 희다. 아빠는 백인이고, 엄마는 케냐계 흑인이라고 한다. 자녀의 피부색이 다른 것을 보고 내가 당혹스러웠다. 이렇듯 한 부모에게서도 난 자매와 형제도 피부색이 다를 수 있는데, 우리는 얼마나 그 피부색에 연연하며 살아왔던가!" - 본문 중에서

사람들은 대부분 한 부모에게서 난 형제와 자매도 피부색이 다를 수 있다는 것을 잘 알지 못한다. 우리가 피부색이 검든 희든 가무잡잡하든, 피부색이 달라도, 국적이 달라도, 같은 신을 섬기지 않아도 그냥 친구이며 자신과 같은 귀한 존재임을 깨달을 수 있으면 좋겠다.

여섯 번째 편견이 말라리아는 한 번 걸리면 치사율이 굉장히 높은 위험한 병이라는 것. 오지를 여행하는 TV프로그램에 출연했던 한 탤런트가 말라리아로 죽은 것도 이유이기는 하지만 대체로 말라리아는 굉장히 위험한 병이라는 편견을 가지고 있다. 그래서 모기가 많은 더운 나라로 여행을 떠나는 사람들은 으레 '말라리아 예방주사'를 맞아야 하는 줄 알고 있다.

그런데, 실제로 아프리카에서 말라리아는 우리네 감기처럼 흔한 병이다. 우리가 병원에 가지 않아도 감기에 걸린 것을 알 수 있듯이 그들 역시 병원에 가지 않아도 말라리아에 걸렸다는 것을 알 수 있단다. 구토와 설사, 고열이 났다가 가라앉았다가 하거나 온몸이 얻어맞은 듯 아프면 말라리아에 걸린 거란다. 대부분 1년에 한 번쯤은 걸릴 만큼 흔한 병이란다.

말라리아와 같은 풍토병에 걸렸을 때, 현지에서 치료하는 것이 더 낫다고 한다. 우리나라에는 말라리아에 걸리는 사람도 잘 없고 의사의 임상경험 역시 부족하기 때문에 병에 대한 정보와 치료방법, 노하우가 많은 현지에서 치료하는 것이 더 낫다는 것이 지은이 생각이다.

또 말라리아 예방약은 보통 예방약과 달리 한 번 먹는다고 해서 확실하게 예방되는 것도 아니고, 말라리아에 걸리기 한 달 전부터 또 걸린 후 한 달 동안 먹어야하며 부작용도 심해서 설사나 구토, 권태감, 피부발진이 일어날 수도 있다고 한다. 지은이는 안 먹으면 죽는 것도 아니기 때문에 차라리 모기에 물리지 않도록 조심하는 것이 낫다고 말한다.

빛나는 언덕 킬리만자로, 분단의 삶을 사는 마사이

한국 사람들에게 킬리만자로는 조용필의 노래 '킬리만자로의 표범'으로 익숙하다. 조용필의 이 노래는 1927년 선교사 리하르트 로이치가 5685m '레퍼드 정상'에서 찍은 표범 시체사진으로부터 비롯된 것으로 추정된다. 그리고 이 이야기에서 힌트를 얻은 헤밍웨이는 자신의 사파리 경험담을 담아 <킬리만자로의 눈>을 썼다.

킬리만자로는 현지어로 '빛나는 언덕'이라고 한다. 원래는 케냐 땅이 될 뻔했는데, 독일황제 빌헬름 2세가 킬리만자로가 아프리카 최고봉이라는 사실을 알고 영국과 협상을 해서 영국령 동아프리카 식민지(현재의 케냐)에 포함돼 있던 산을 독일령 동아프리카(현재의 탄자니아)에 편입시켰다. 지도를 보면 케냐와 탄자니아의 국경선이 킬리만자로 부분에서 휘어져 있다.

국경선에 대한 이 보다 더 어처구니없는 사실은 마사이 부족이 케냐와 탄자니아로 나누어진 사연이다. 1884년 독일 총리 '비스마르크'가 주도한 베를린회의의 결과물로 부족의 연관성이나 종족간의 유대도 고려하지 않고, 아프리카의 대표자도 참석하지 않은 채 유럽 열강에 의해서 이뤄진 협약과 국경선이 오늘날까지 이어져 그대로 남아 있다는 것이다.

세계지도를 살펴보면 유일하게 직선으로 그어진 국경선이 있는 곳이 바로 아프리카 대륙이다. 현재 마사이족은 케냐에 25만 명, 탄자니아에 10만 명 정도가 살고 있다고 한다. 같은 언어를 사용하고 같은 문화적 전통을 지닌 같은 부족이지만 각기 다른 나라에 속해 있단다.

<아프리카 초원학교>를 읽기 전에는 같은 언어와 문화적 전통을 가진 지구상의 유일한 분단국가가 우리나라라고 생각하였는데, 동아프리카에 케냐와 탄자니아로 강제로 나누어진 채 살아가는 마사이 부족이 있다는 사실을 처음 알게 되었다.

이 책을 읽으면 아프리카에 대해 우리가 가진 많은 편견을 걷어낼 수 있다. 또 피부색만 다르지 사람이 살아가는 흔한 모습을 만날 수 있다. 함께 여행을 다녀온 김정미씨 가족은 아프리카 탄자니아로 이사를 갔다고 한다.

누군가 지은이에게 역마살이 있다고 했단다. <감옥으로부터의 사색>에서 신영복 선생은 "역마살은 아직도 꿈을 버리지 않은 사람이 꿈을 찾아 나서는 방랑"이라고 풀이하였다고 한다. 아직 꿈을 버리지 않은 사람들이, 이제 꿈을 키우는 젊은이들이 아프리카를 향해 떠날 때, "잘 생각했다. 용기를 내서 떠나보라"는 '추임새' 기능을 해줄 좋은 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