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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과 세상/책과 세상 - 여행

마을, 사람, 이야기가 있는 지리산길

by 이윤기 2009. 8.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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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이혜영이 쓴 <지리산 둘레길 걷기여행>


지리산 둘레길 800리.
전체 300km 구간 중 지금까지는 남원 주천에서 산청 수철까지 70여km가 개통되었다. 지리산길 조성은 사업은 2007년부터 '사단법인 숲길'이 산림청의 지원을 받아 본격적으로 진행되었다.
 
(사)숲길은 지리산생명연대가 지리산길 사업을 위해 설립한 부설법인이고, 지리산생명연대는 도법스님을 비롯한 생명운동가들이 참여하여 지리산권을 중심으로 환경운동과 생명평화운동을 펼쳐온 단체이다.


(사) 숲길은 산림청이 복권사업으로 조성한 녹색자금의 지원을 받고, 지리산을 둘러싼 5개 시군의 협력을 받아 지금까지 70여 km 구간을 개통하였다. 당초 계획대로라면 매년 조금씩 개통되어 2011년 즈음에 순환형의 지리산 둘레 길이 완성될 예정이었다.

그러나, 지난해 말 산림청의 일방적인 약속파기로 우여곡절 끝에 5월까지 70km만 간신히 개통되고 나머지 구간은 지방자치단체로 이관되어 버렸다고 한다.


늘림과 성찰의 길, 지리산길

(사)숲길은 느림과 성찰의 길, 그리고 책임여행을 제안해왔다. 지리산길을 걷는 여행자뿐만이 아니라 그 길위에서 살아온 주민 역시 똑같은 주체로 바라보아야 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떠들썩한 관광상품이 되는 방식을 지양해 왔다고 한다.

그러나, 나머지 구간 개통이 여러 지방자치 단체로 이관됨으로써 이 길의 '초심'이 지켜질 수 있을지 하는 염려가 많이 있다. 지자체들의 막개발식 예산 따먹기 혹은 전시행정으로 흐르지 않고 자신을 돌아보는 '느림과 성찰의 길'이라는 초심을 지킬 수 있을지하는 걱정 말이다.

지난 8월 1일부터 2박 3일 일정으로 남원 운봉에서 함양 마천 벽송사에 이르는 30여 km를 구간을 지리산길 안내센터 홈페이지와 이혜영이 쓴 <지리산 둘레길 걷기 여행>을 길잡이 삼아 다녀왔다.

지리산길 안내센터는 걷기 여행자를 위한 단순 정보 제공이 전부였던 반면에 이혜영이 쓴 <지리산 둘레길 걷기 여행>은
마을과 사람 그리고 이야기가 담겨있는 온기 넘치는 길잡이 역할을 해주었다.

4차선 도로 반대운동이 탄생시킨 지리산 둘레 길

2004년 무렵, 익산지방국통관리청과 남원시는, 남원 인월에서 함양 마천으로 이어지는 60번 지방도로를 4차선으로 확장하는 공사를 추진하였다. 2차선 도로가 4차선 도로로 확장되려면, 산을 더 깍고, 터널 2개를 뚫고, 교량 3개를 세워야 대공사가 벌어져야 했었다. 거대한 공사판이 벌어질 상황에서 인월과 산내면 주민들이 확장공사를 막아냈다고 한다.

주민들은 터널과 4차선 도로가 아니라 걷고 싶은 아름다운 길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뚜렷하였고, 확장 공사 저지를 기념하여 '강 따라 길 따라 60번 지방도변 마을지도'를 만들었다고 한다.

"만들어놓은 지도를 보니까 첨엔 남의 동네를 보는 것처럼 신기하더라고. 새삼 우리 마을이 이렇게 이뻤던가 싶고. 사람 사는 것이 그래야 해. 차만 쌩하니 가버리면 뭐 해!"(본문 중에서)

이렇게 만들어진 지도속 마을 을 연결하는 길이 지리산길의 모태과 되었다는 것이다. 도로 확장 저지운동은 지역주민들에게 '길'이라는 새로운 화두를 던져주었고, 주민들과 실상사, 시민단체의 아이디어가 모여 '지리산길'이 태어났다는 것이다. 

이처럼, 이혜영이 쓴 <지리산 둘레길 걷기여행>은 그냥 단순한 여행 안내 책자가 아니다. 그가 쓴 책에는 처음 지리산 둘레 길을 연 사람들의 '초심'이 담겨있고, 여러 문학 작품 속에 나오는 길과 숲, 역사와 마을에 관한 이야기가 풍성하게 뒷받침하고 있다.

다음은 이혜영이 소설가 김훈의 작품에서 찾아낸 '숲'이라는 글자에 대한 표현이다.

"숲이라는 글자는 모양 마저도 숲을 닮아서 글자만 들여다봐도 숲에 온 것 같다고. 발음으로 분리해서 봐도 마찬가지다. 'ㅅ'의 날카로움, 'ㅍ'의 서늘함은 모두 바람의 잠재태라는 것이다. 그 잠재태가 모음 'ㅜ'에 함께 실리면, 나무숲에 이는 부드러운 바람난다. 숲. 길게 발음하면 '수-우우우ㅍ'. 그럴 때면 바람이 일어 풀을 스치고. 작은 나무가 머리를 살랑이고, 큰 나무는 온몸을 휘청거리는 것 같다." (본문 중에서)

이 책을 쓴 이혜영은 직접 걸어서 어떤 때는 차를 타고 지리산 둘레 길을 직접 답사하였을 뿐만 아니라 40여권에 달하는 많은 참고자료를 뒤져 '숲'이라는 글자에 대한 표현과 같은 보석 같은 문장들을 찾아내어 독자들에게 들여주고 있다. 

소설이나 문학작품만 섭렵한 것이 아니라 역사책, 여러 사람들이 쓴 문화유산 답사기에서 지리산 둘레길에 얽힌  자료를 찾아내 <지리산 둘레길 걷기 여행>에 모두 담았다. 그래서, 이 책에는 걷는 이야기 뿐만 아니라 마을 이야기, 마을에서 나고 자란 사람이야기, 지역 역사와 문화이야기 그리고 지금도 지리산길 마을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고스란히 들어있다.

책을 읽어보면, 그녀가 지리산길을 걷는 동안 참 많은 길 위의 사람들과 그에 걸쳐있는 동네 사람들과 참 많은 이야기를 주고 받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를테면 그녀가 쓴 책에는 사람들이 지리산길을 걸으면서 만나는 장항마을 당산소나무 이야기만 담겨있는 것이 아니다.

그녀는 윗당산, 아랫당산, 중간당산이 흩어져 있다는 것과 옛날에는 세 군데서 모두 당산제를 지냈지만 지금은 윗당산에서만 제를 지낸다는 것도 다 알고 있다.
마을 주민 이영자씨의 입을 빌어 장항마을 당산제를 지내는 광경을 마치 사진으로 보는 것 처럼 생생하게 전해준다.

"당산제 지내는 사람은 사흘을 깨끗한 찬물로 목욕재계해야 돼. 당산에다 금줄 치고 바람골에서 물 길어 와서 밥 짓고. 제사 지내고 나서 윗당산 돌담 아래다가 돼지머리를 묻어. 나중에 파봐서 그게 없으면 산신이 잡순거라고 했지. 동네에서 일 터지면 당산제를 잘못 지내서 그런 거라고 했어. 아주 중요한 행사였지." (본문 중에서)

그래서, 이혜영이 쓴 <지리산 둘레길 걷기여행>은 그냥 한 번 읽고 마는 책이 아니다. 800리 지리산길을 걷는 길잡이 일뿐만 아니라 지리산길을 함께 걷는 길동무이기도 하다. 지리산길을 걷다가 다리쉼을 하는 당산나무 아래서나 마을 입구 정자나무 그늘아래서 이 책을 꺼내 읽으면 딱 제격이기 때문이다.



길잡이 책, 그리고 길동무 책

지리산길을 걷기 위해 오는 기차나 버스안에서, 하루하루 걷기를 마치고 민박집 방바닥에 배를 깔고 엎드려서 지나온 길, 그리고 걸어갈 길에 담긴 이야기를 읽는 재미가 솔솔하기 이를데가 없다. 

수 백장이 넘는 아름다운 풍경 사진은 독자들 마음을 지리산길로 확 잡아 끌고, 마을과 구간별로 구분해놓은 상세한 구간지도와 마을민박, 숙박, 식당과 음식에 대한 정보는 분명 덤이다.

아울러, 이 책에는 앞으로 개통될 전남 구례, 경남 하동 그리고 개통된 길에서 더 나아간 산청과 남원의 일부구간에 관한 이야기도 담겨 있다. 책에서 앞서 소개하는 구례와 하동구간 지리산길의 윤곽은 다음과 같다.

"구례길은 구한말  지조 높았던 선비 매천 황현의 사당, 운조루, 섬진강변의 석주관 칠의사묘 등 역사의 굵직한 흔적들을 더듬어간다. 섬진강을 낀 시원한 들마을을 이어 마지막엔 지리산 피아골 깊숙이 들어간다. 하동길은 화개 차밭 사이를 걷다가 형제봉을 넘어 악양 들판을 배려다보는 경관이 멋지다. 악양에서 회남재를 넘어가면 오지 아닌 오지 청학동 초입. 지리산길응 여기서 방향을 달리하여 인적 드문 갈치재를 구불구불 넘어 산청으로 간다." (본문 중에서)

이렇게 이어지면 지리산 둘레길 800리가 모두 열리는 것이다. 미리 가보는 지리산길 역시 이 책에 담긴 보너스가 틀림없다.

'인간에 대한 예의'를 아는 개념있는 여행 책

이혜영이 쓴 <지리산 둘레길 걷기 여행>은 지은이 스스로 강조 하였듯이 인간에 대한 예의를 아는 개념있는 여행 책이다. 그냥 단순한 볼거리, 먹을거리, 교통편, 그리고 전설따라 삼천리 같은 이야기만 전하는 것으로 끝내지 않는다.

지은이는 금계-동강 그리고 동강-수철 구간을 소개하면서 분단과 한국전쟁이 빚어낸 가슴 아픈 상처인 빨치산 활동과 민간인 학살 문제를 끄집어낸다. 여행 책의 분위기로는 다소 무거운 느낌을 줄지도 모르지만, 지리산과 그 길이 담은 회한의 역사를 전하기 위해 노력한 흔적이 역력하다.

벽송사 뒷편 산길에 세워 놓은'공비'(?) 마네킹과 빨치산토벌전시관 자료에 따르면, "빨치산은 민족사에 오점을 남긴 씻을 수 없는 범죄 집단이고 집단 최면에 걸린 시대의 분운아"라는 것이다.

"북한에선 최고 혁명가로 추앙받은 남부군 사령관 이현상이 이 땅에선 헛된 꿈으로 인명 피해를 야기한 공비의 우두머리가 된다." (본문 중에서)

지은이는 학계를 중심으로 빨치산을 비롯한 해방정국 사회주의 세력에 대한 역사적 평가가 이루어지고 있지만, 일반인들이 만나는 역사기념관의 자료는 '인간에 대한 예의'조차 지키지 않는 천박한 수준임을 안타까워하고 있다.

빨치산에 얽힌 회한의 역사 이야기를 전하면서 지은이는 독자들에게 아니타 레인이라는 호주 가수가 부른 노래 '벨라  차오(Bella Ciao)라는 노래를 소개하고 있다. 애인을 두고 떠나는 이탈리아 빨치산의 마음을 담은 유명한 노래라고 하는데, 이 책을 통해 처음 알게 되었다. 인터넷 검색을 통해 애잔하고 아름다운 이 노래를 찾아냈지만, 망할놈의 저작권법 때문에 함께 들려줄 수 없어 여간 아쉽지 않다.

지리산길 위에 새겨진 상처를 보듬어 독자들에게 전하는 것도 지은이의 몫이었던가 보다. 700여기의 억울한 죽음이 묻힌 방곡리 민간인 학살 추모공원을 그냥 지나치지 않을 뿐만 아니라, 아주 최근 과거사진상규명위원회를 중심으로 진행되고 있는 산청 외공리, 원리 민간인학살 터 발굴 현장도 놓치지 않는다.

지리산길과 이어지는 길, 제주 올레길

한편, 이 책에는 지리산길 뿐만 아니라 제주 올레길에 관한 소개도 60여쪽이 넘는 적지 않은 분량으로 소개되고 있다. 지리산 둘레길을 걷고서는 제주올레길로 지은이의 호기심이 뻗쳐갔다는 것이다. 이혜영은 두 길을 걸으며 생각해보니 지리산과 제주섬은 이란성 쌍둥이더라고 한다. 

"제주도에도 한라'산'이 있고, 지리산에도 구름 '바다'가 남실거린다. 제주의 돌담을 닮은 석축이 지리산의 다랭이 논을 떠받치고 있다. 지리산은 유배받은 산이었고, 제주도는 유배의 사람이었다. 제주 4.3은 지리산의 '산사람'들을 잉태하고 낳았다. 적어도 내게 지리산과 제주는 같은 이야기를 품은 다른 형식이었다. 나는 어느새 두 애인에게 양다리를 걸치고 있었다." (프롤로그 중에서)

그래서, 지은이는 독자들에게 두 애인을 한꺼번에 소개하고 있다. 책 전체로 보면 지리산길이 주연,  제주올레길이 조연 역할을 하고 있는 것은 대중적인 접근 차원에서 지리산이 제주보다 수월하다는 작위적이고 무의미한 판단에 따른 나눔이었다고 밝히고 있다.

책을 읽는 독자들도, 직접 길을 걷는 여행자들도 지리산길의 관심이 제주올레로 이어지고, 제주 올레길을 걷고 나면 지리산길을 걷게 될 것이 분명하다. 따라서 이 책이 지리산길과 제주 올레길을 주연과 조연으로 삼은 것은 탁월한 케스팅이다.

다만, 한 가지 이혜영이 쓴 <지리산 둘레길 걷기 여행>을 길동무 삼아 지리산길을 걸으며 느낀 아쉬움이 있다면, 지리산길과 제주 올레길을 한꺼번에 길동무로 삼기에 책이 너무 두껍고 무겁다는 것이 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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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리산 둘레길 걷기여행 - 10점
이혜영 지음/한국방송출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