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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무현58

김형오의장, 봉하마을서 성난국민들에게 쫓겨나다! "이명박 정부, 국민들 추모, 조문 방해하지 마라 !"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 이틀째, 김형오 국회의장이 조문을 위하여 봉하 마을을 방문하였으나 성난 국민들에게 쫓겨났다. 오후 1시 40분경 김형오 국회의장 일행이 분향소를 향해 걸어 들어오다 마을입구에서 노사모 회원들과 빈소를 찾은 국민들에게 저지당하여 마을 밖으로 쫓겨난 것이다. 경호원과 경찰의 호위를 받으며 김형오 국회의장이 봉하마을로 들어오자, 노사모 회원들과 국민들은 분향소를 향하는 걸음을 막아섰다. 처음 1~2분간 양측이 잠깐 몸싸움을 하면서 밀고 당겼으나, 이내 분향소를 찾는 국민들이 국회의장 일행을 마을 밖으로 몰아냈다. "김형오, 여기가 어디라고 오냐?" "살인자, 물러가라" "한 발짝도 더 못 들어간다." "김형오는 물러가라 !" 장례위.. 2009. 5. 24.
봉하마을에 조문을 다녀왔습니다. “살아계실 때 좀 도와주지, 대통령직에 계실 때 좀 도와주지, 왜 그랬습니까?” 오전 9시 40분경 라디오 속보로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 소식을 들은 후 하루 종일 라디오를 듣다가 가슴이 답답하고 먹먹하여 친구 둘과 함께 봉하 마을을 다녀왔습니다. 조문객들이 몰려들자 봉하마을 들머리부터 차량을 통제하고 있어, 자동차를 세워놓고 약 2km 정도를 걸어서 들어갔습니다. 어둠이 내리기 시작한 7시 30분쯤 봉하마을에 도착하였는데, 막 자유선진당 이회창 총재가 쫓겨나고 있더군요. ▲ 노무현 대통령 빈소가 마련된 봉화마을 가는 길 봉하마을이 이렇게 초라하고 작은 마을인지 직접 와 보기 전에는 몰랐습니다. 게다가 노무현 대통령 사저도 직접 보니 시내에 있는 웬만한 고급주택 보다 별로 나을 것이 없더군요. 얼마나 작.. 2009. 5. 24.
노무현정부, 세 번 기회 다 놓쳤다. [서평]한반도사회경제연구회가 엮은  노무현 전 대통령을 처음 본 것은 20여 년 전 대학 시절 당시 마산지방법원 재판정이었다. 당시 그는 변호사 신분이었다. 그 날은 훗날 민주노동당 대표를 지낸 통일중공업 노조위원장 문성현 사건 재판이 열리던 날이었다. 서울 상대 출신 지식인 청년(문성현)이 노동자로서의 삶을 선택하는 과정과 이 땅의 노동현실과 민주주의에 대해 격정적인 최후 변론을 하는 노무현 변호사의 모습은 지금도 잊혀지지 않는다. 그로부터 몇 년 후 87년 6월 항쟁과 7~8월 노동자 대투쟁 이후 '마산창원지역노동조합총연합(마창노련)'이 건설될 무렵 어느 가을날, 수출자유지역에서 열린 마창노동자 집회에서 노동자들을 향해 노동악법철폐를 주장하는 연설을 하던 노무현 변호사를 기억하고 있다. 노동자 입장.. 2009. 1. 20.
"수구세력에게 5년을 더 내줄 순 없다." 25일, 제가 일하는 단체에서 주최한 시민논단에 성공회대학교 한홍구 교수가 강사로 왔습니다. 한국사를 전공한 한교수는 과거 역사에서 오늘을 이해할 수 있는 여러 사례를 들면서 우리 앞에 놓인 희망과 절망을 이야기해주었습니다. 현수막에 쓰인 것 처럼, "희망이 절망의 산을 넘어"야 한다는 이야기였습니다. 시민논단, 시민대학, 시민역사학당 등 여러 이름으로 진행된 YMCA 시국강연의 역사는 20년이 넘었습니다. 1980년대 중반 암울했던 시기에 문익환, 김진균, 한완상 같은 분들이 강사로 오는 날이면, YMCA 회관은 민주주의에 목마른 시민들로 가득하였고, 회관 밖에는 경찰과 전경으로 가득하였습니다. 어제 시민논단엔, 최근 10여년 사이에 가장 많은 시민, 학생들이 참가하였습니다. 중간에 드문 드문 빈자리가.. 2008. 11. 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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