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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도'에 해당되는 글 12건

  1. 2018.02.21 물에 빠진 생쥐꼴...생애 가장 춥고 배 고팠던 하루
  2. 2018.02.19 제주도 일주...자전거 타고 가면 다 맛집?
  3. 2018.02.05 제주도 자전거 일주...초등 4학년도 '거뜬'
  4. 2013.02.28 자연에서 오르가슴을 느낀 남자, 김영갑
  5. 2013.01.21 자연을 영혼에 인화한 사진작가 김영갑 (3)
  6. 2010.02.05 신형원, 안치환도 함께 탔던 프라이드 (4)
  7. 2009.12.19 겨울 한라산에선 바람도 풍경이다 (8)
  8. 2009.12.03 무학산 둘레길만으로 아쉬운 이유? (4)
  9. 2009.11.09 블로그 1년, 시민운동가 파워블로거 되기까지... (16)
  10. 2008.09.18 성산일출봉에서 달인을 만나다. (4)
  11. 2008.09.10 [제주 자전거 일주5] 눈 덮힌 한라산에서 컵라면 먹어 보셨나요?
  12. 2008.09.10 [제주 자전거 일주1] 자전거 타고 240km 제주 일주

물에 빠진 생쥐꼴...생애 가장 춥고 배 고팠던 하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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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MCA 제주 자전거 국토순례③ 성산에서 제주항까지 62.2km


전날 오후부터 내리던 비가 아침이 되어도 멈추지 않았습니다. 아침 7시...아직 어둠이 남아있는 새벽 길을 떠났습니다. 모두 비옷을 겹쳐 입고 비에 몸이 젖지 않도록 단단히 채비를 하고 나섰습니다만 가장 큰 기대는 1~2시간 후에 비가 그쳐주었으면 좋겠다는 바람이었습니다. 


자전거를 타고 숙소에서 약 2~3km를 달려 제주에 올 때마다 빠지지 않고 들러는 시흥리 해녀의집에서 조개죽으로 아침을 먹었습니다. 바다내음 가득한 따끈한 조개죽으로 가볍지 않은 식사를 마치고 길을 나서는데, 아침 출발 때보다 바람이 훨씬 새게 불기 시작하였습니다. 노끈과 테잎으로 비옷이 바람에 펄럭이지 않도록 단단히 묶어야 했습니다. 


모두 자전거를 타고 빗속으로 출발하는 것이 내키지 않았지만, 오후 4시까지 제주항에 도착해야 육지로 되돌아가는 배를 탈 수 있었기 때문에 무작정 비가 그치기를 기다릴 수 없는 노릇이었습니다.  제주시를 향해 가는 해안 길은 오르막 구간이 없는 평안한 길이었습니다만, 비와 바람이 문제였습니다. 



비와 바람...자전거 타기 가장 힘든 조건과 마주치다


해안도로를 따라 자전거를 타고 달리면 서쪽, 북쪽, 남쪽으로 끊임없이 방향을 바꾸면서 달리게 되는데, 특히 서쪽을 향해 달릴 때 강하게 부는 동풍 때문에 제대로 달릴 수가 없었습니다. 순간순간 아주 강한 바람이 불어 올 때는 페달링을 해도 자전거가 제자리에 붙어 있는 것 같은 느낌이었습니다. 


몸에 딱 맞는 비옷을 입은 친구들은 그나마 바람을 덜 받았지만, 헐렁하고 풍덩한 판초우의를 입은 사람들은 마치 돛을 단 배처럼 바람을 맞았기 때문에 어떨 때는 오르막 구간을 올라가는 것 보다 더 힘들었습니다. 저도 판초우의를 입은 사람중에 한 명이었는데 바람이 순간적으로 쎄게 불때 판초우의가 뒤집어 순간적으로 앞을 볼 수 없는 위험한 상황두 두어번 겪었답니다. 


아침을 먹고 제주 해안 절경이 가장 빼어난 성산 ~ 김녕 성세기해변 구간을 달렸습니다만, 아름다운 경치를 바라 볼 만한 여유가 생기지 않았습니다. 아침을 먹고 비옷을 꽁꽁 싸매고 나왔지만, 시간이 지날 수록 작은 틈 사이로 빗물이 스며들기 시작하였고, 어느새 장갑을 낀 손도 젖고 양말도 젖고 엉덩이까지 젖었습니다. 


김녕 성세기해변과 함덕 서우봉 해변 사이 적당한 곳에서 휴식을 취하기로 하였는데 비 바람 부는 날 월정리 해수욕장까지 21km는 왜 그리 멀던지요. 평소라면 1시간 30분이면 갈 수 있는 거리인데 2시간도 넘게 걸렸습니다. 해녀박물관에서 휴식을 하지 않고 지나친 것을 1시간 넘게 후회하며 달렸습니다. 



기진맥진 할 때야 휴식지 도착...추워서 오래 쉴 수도 없었다


거센 비 바람에 지쳐 더 이상 못가겠다 싶을 무렵 월정리 해수욕장이 나왔습니다. 앉아 쉬 곳과 비를 피할 수 있는 파고라와 화장실이 있는 평소라면 나무랄데 없는 휴식지였습니다만, 바람을 피할 곳이 없어 추위에 떨어야 했습니다. 따뜻한 물로 끊인 차를 마셨지만 비에 젖은 몸을 녹여주기엔 역부족이었습니다. 


오래 쉬라고 해도 추워서 더 쉴수가 없었지만 초등 5학년 참가자가 화장실을 다녀오느라 모두가 바닷 바람을 맞으며 기다렸습니다. 추위를 막기 위해 껴입은 옷만 해도 움직임이 둔 하였는데, 비옷까지 꽁꽁 싸매고 입은 탓에 화장실 한 번 다녀오는 일도 여간 번거롭지 않더군요. 


비 바람을 온 몸으로 맞으며 자전거 타고 오는 동안은 충분히 쉬고 싶었지만, 비에 젖은 몸으로 바람부는 바닷가에 서 있는 것이 더 추워 오래 쉴 수 조차 없었습니다. 핫쵸코로 추위를 조금 달래고 바나나와 쵸코바 같은 간식으로 에너지를 보충하고 다시 길을 나섰습니다. 


잠깐 소강 상태를 보이던 비는 이내 점점 더 굵어졌습니다. 장갑이 흠뻑 젖은 참가자들에게는 위생장갑을 사서 나눠주었습니다만 추위를 막는데 크게 도움이 되지 않았습니다. 방수 장갑을  준비한 사람들도 있었지만 몇 시간 동안 계속 비를 맞고 달렸더니 더 이상 방수 기능을 발휘하지 못하더군요. 




온 몸에 땀나도록 달려도...손 발끝은 시리다


겨울 라이딩은 손과 발이 시린 것이 제일 힘듭니다. 자전거를 타면 온 몸에 열이 나지만 바람과 마주하는 사지의 끝인 손가락, 발가락까지 열이 나기는 어렵기 때문입니다. 날씨가 좋았던 이틀은 두꺼운 장갑과 양말로 바람과 추위를 잘 견딜 수 있었는데, 장갑과 양말이 비에 젖고나니 그 추위를 견디기가 너무 힘들었습니다. 


핸들을 잡고 달리면서도 손가락을 폈다 오므렸다하면서 감각을 잃지 않기 위해 계속 꿈틀거렸습니다만, 시간이 지나니 결국 발가락은 감각을 잃더군요. 견디기 힘든 추위를 견뎌내면서 2시간 넘게 약 24km를 달려 삼양해수욕장 인근 '찰스'(식당)에 도착하였습니다.  


식당에 들어가 식사를 하기 위해 비옷을 벗어야 했는데, 비옷을 벗는 것도 힘들었지만 밥을 먹고 젖은 비옷을 다시 입어야 하는 것이 더 찝찝하였습니다. 찰스 사장님은 여러 번 확인 전화를 하셨더군요. 그 때마다 "이렇게 비가 많이 오는데 계속 자전거 타고 오시냐?"고 물었습니다. 


스물 다섯 명이 식사 예약을 해놨으니 다른 손님을 받을 수도 없고, 만약 비 때문에 못가겠다고 하면 사장님만 낭패를 보게 되니 여러 번 확인하는 할 수 밖에 없었을 것입니다. 저희 일행이 찰스에 도착하자 일 하는 분들이 모두 나와 젓은 비옷을 벗고 식사를 편하게 할 수 있도록 도와주었습니다. 


모두들 얼마나 춥고 배가 고팠던지 짬뽕과 공기밥, 돈가스와 공기밥을 먹고도 모자라 전날 밥에 남겨두었던 컵라면까지 모두 꺼내 먹었습니다. 해물 짬뽕과 돈가스 중에 선택해서 먹을 수 있도록 예약을 하였는데, 따로 결제를 하고 돈가스와 해물짬뽕을 둘 다 시켜 먹는 참가자도 있었다고 하더군요. 


돈까스, 짬뽕 맛집 '찰스'에서 겨우 기력을 회복하였다


아무튼 비에 젖어 추위에 떨며 들이닥친 성가신 손님들을 찰스 사장님과 식구들이 각별히 챙겨주었습니다. 찰스를 출발하여 제주항까지 가는 길은 마지막 구간입니다. 점심을 먹고 충분히 쉬면서 기력을 많이 회복하였습니다만, 제주시내로 들어가려면 오르막 구간을 지나야만 했습니다. 


제주항으로 가는 자전거길은 시내로 들어갈 때 '사라봉'을 지나도록 되어 있습니다. 평소라면 가볍게 넘을 수 있는 오르막 구간이었지만 하루 종일 추위와 배고픔에 지친 탓인지 힘들어 하는 사람들이 많았습니다. 

오르막 구간에서 라이딩 속도가 급격히 떨어지는 사람들이 있었지만, 예정 시간보다 1시간 이상 빨리 도착하였기 때문에 서두를 까닭이 없어 천천히 속도를 맞춰 사라봉 구간을 지났습니다. 사라봉을 지나자 탁트인 바다와 제주항이 한 눈에 들어오더군요. 


아침부터 서둘렀던 덕분에 비와 바람을 맞으면서 달리고도 예상 시간을 1시간 가까이 단축하여 오후 2시 10분에 제주항 여객선터미널에 도착하였습니다. 터미널에 도착하자마자 렌터카를 반납하고 각자 배낭과 짐을 챙기고 젖은 옷을 벗고 마른 옷으로 갈아 입느라 금새 시간이 지나가 버렸습니다. 


제주항에서 여객선에 자전거를 싣고 고흥 녹동항까지 4시간, 언제나 에너지가 넘치는 아이들이지만 하루 종일 비와 바람에 지친 탓인지 배 안에서는 차분한 시간을 보냈습니다. 기대에 부풀어 제주로 가던 날과는 전혀 다른 모습이었지요. 녹동항에서 버스를 타고 다시 마산까지 2시간 30분. 밤 11시가 다 되어서야 3박 4일의 제주 환상 자전거길 종주 일정이 끝났습니다. 


셋째 날 하루 종일 비를 맞고 자전거를 타느라 고생스러웠지만, 오랫 동안 두고두고 나눌 수 있는 제주 자전거 라이딩 무용담이 생긴 것은 분명합니다. 혼자라면 해낼 수 없는 일, 해내기 힘든 일을 여럿이 함께 하였기 때문에 거뜬히 해낼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제주에서 돌아 온 진행팀 평가 결과 "봄, 가을에 갈 수 없다면 제주 일주 라이딩은 차라리 겨울 방학이 좋다"로 의견이 모아졌습니다. 눈과 비만 만나지 않으면 한 여름의 더위 보다는 겨울 추위가 자전거를 타기에 좋다는 것이지요. 겨울 막바지 봄방학...딱 좋은 타이밍입니다. 자전거 타시는 분이라면 따뜻한 제주로 한 번 떠나보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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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도 일주...자전거 타고 가면 다 맛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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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MCA 제주도 자전거 국토순례 중문-성산일출봉까지 74.1km 라이딩


아직 해가 올라오기 전 이른 아침 7시에 숙소를 출발하였습니다. 대략 75km 정도만 달리면 되는 날이라 조금 천천히 출발할 수도 있었습니다만, 일기예보에 오후 늦게부터 다음 날까지 비 소식이 있어 서둘렀습니다. 비가 내리기 전에 성산 일출봉 숙소에 도착하기 위하여 오후 4시까지 라이딩을 마칠 수 있도록 시간 계획을 세웠습니다. 


둘째 날이 되자 국토순례에 참가한 청소년들은 훨씬 안정감이 생기고 여유로웠습니다. 따뜻한 서귀포 날씨 덕분에 첫날 보다 자전거 타기에 좋은 여건이었습니다. 10년 전 제주도 자전거 일주 때는 일주도로를 따라 성산일출봉으로 갔었는데, 그 때는 서귀포 근처를 지나갈 때 오르막 구간이 많아서 힘들었던 기억이 남아 있었습니다. 


하지만, 새로 생긴 제주환상 자전거길은 해안도로를 따라 가는 길이라 걱정했던 반복되는 오르막 구간은 없었습니다. 멀리 일본 열도를 지나 태평양으로 연결되는 서귀포 바다를 보며 달리는 길은 바람이 불어도 춥지 않고 상쾌하였습니다. 



숙소를 출발하여 7km 남짓 달려 '법환바탕 인증센터'에서 인증 도장을 찍고, 6km를 이동하여 미풍해장국으로 아침밥을 먹으러 갔습니다. 아침식사를 하러 서귀포 시내로 들어가는 길에 제가 길 안내를 잘못하여 잠깐 딴 길로 빠졌다가 되돌아오는 작은 사고가 있었습니다만, 다행히 먼 길을 돌아가지는 않았습니다. 


서귀포 시내에 있는 미풍 해장국에 아침 밥을 예약해 놓아 25명이 자전거를 타고 시내로 진입하였습니다만, 마침 일요일 아침이라 차량 통행이 뜸하여 큰 어려움은 없었습니다. 미풍해장국은 체인점이었습니다만 아침 추위를 녹이기에 해장국이 딱 괜찮았습니다. 


식당 한 켠에 계란 프라이를 해 먹을 수 있는 셀프 코너가 있었는데, 해장국이 나오는 동안 보급팀 김봉수 선생과 둘이 계란 프라이 스물 다섯개를 구워냈습니다. 태어나서 한꺼 번에 계란 프라이를 가장 많이 구웠던 날로 기억될 것 같습니다. 



겨울에도 자전거 타기 딱 좋은 따뜻한 서귀포 바닷길


아침 식사를 마치고 다시 제주 일주 해안도로로 빠져나가 바닷가 길을 달렸습니다. 쇠소깍까지 약 8km를 달렸습니다. 오전에 짧게 달리고 자주 쉬는 편안한 라이딩이 이어졌습니다. 쇠소깍에 도착하니 해도 올라오고 날씨도 더 따뜻해져서 겉옷을 하나 벗고 자전거를 탔습니다. 


표선 해안 도로는 차량 통행이 많지 않았습니다만, 제주 올레길과 겹치는 구간이 자주 나와 올레길 걷는 분들과 자주 마주쳤습니다. 자전거가 걷는 사람들에게 위협이 되지 않도록 주의하였습니다만, 걷는 분들은 불편하셨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서귀포를 출발하여 보목동 - 하효동 - 남원리 - 태흥리 - 세화리를 지나 표선면에서 점심을 먹었습니다. 둘째 날 점심은 '고기 국수'를 먹었습니다. "제주도에 왔으니 한끼는 고기 국수를 먹어줘야 한다"는 후배의 제안으로 국수를 먹었습니다. "국수 먹고 (허기져서)자전거 어떻게 타겠냐?"는 반대 의견도 있었지만, 오후 라이딩거리가 짧아 제주 별미인 고기국수를 먹기로 하였습니다. 


제주도에서 여러 번 고기 국수를 먹었는데, 그동안 먹은 고기 국수는 뼈다귀 육수에 수육을 올려주는 국수였습니다. 그런데 이번에 먹은 고기 국수는 감자탕에 들어가는 뼈다귀를 통째로 올려주는 색다른 고기국수였습니다. 



'표선 카라반 국수'는 인터넷 맛집으로 알려진 곳이라 손님들이 많이 찾아왔습니다만, 점심을 먹고 30분 넘게 쉬어갈 수 있도록 배려해주었습니다. 식당 좌석 일부와 의자와 그네가 설치된 뒷마당에서 겨울 햇빛을 쬐며 한가로운 시간을 보냈습니다. 


오후라이딩은 사흘 동안 제주 라이딩 구간 중에서 가장 평지가 많은 구간이었습니다. 표선리 - 신천리 - 신산리 - 온평리 - 신양리 - 고산리 - 오조리를 지나 성산일출봉이 있는 성산리 입구에 도착하였습니다. 오후 3시간 지나면서 간간히 빗방울이 떨어지기 시작하였는데, 오후 4시쯤 성산리 해와 바다 게스트 하우스에 도착하니 본격적으로 비가 쏟아지기 시작하였습니다. 


짧은 거리, 오르막 없는 평지 구간...오후 4시 숙소 도착


게스트 하우스 전체를 사용하기로 했더니 사장님께서 홀 전체에 자전거를 세울 수 있도록 해주셔서 다행히 비를 피해서 자전거를 보관할 수 있었습니다. 숙소에 도착해서 뜨거운 물로 샤워를 하고 여유롭게 근처 식당으로 가서 저녁 식사를 마쳤습니다. 


점심과 마찬가지로 "제주도까지 왔으니 생선구이도 한 번 먹어줘야 한다"는 제안을 받아 생선구이와 오분자기 뚝배기로 예약하였습니다. 예약시간에 맞춰 스타렉스를 두 번으로 나눠타고 식당에 도착했는데 황당한(?)일이 생겼습니다. 




스물 다섯 명 예약을 받은 식당에서 밥이 부족하다는겁니다. 먼저 도착한 열 두명은 겨우 밥을 먹었는데, 두 번째 일행이 도착하였는데 생선구이와 오분자기 뚝배기 그리고 밑반찬이 놓인 식탁에 정작 중요한 밥이 없었습니다. 


막 밥을 시작한 전기 밭솥은 아직 남은 시간 표시도 나오지 않은 채 바쁘게(!) 돌아가고 있었고, 사장님은 냉동실에 있던 묵은 밥을 전자레인지에 돌리고 있었습니다. 정말 황당하더군요. 보통 식당에서는 갑자기 밥이 떨어지면 새로 밥을 하는 동안 근처 다른 식당에서 공기밥을 빌려오더군요. 옆집에서 밥을 빌려오는 일은 더러 본 일이 있어 그렇게 하겠지 하면서 기다렸습니다. 


점심에 국수 한 그릇 먹고 자전거를 타고 와서 씻고 쉬웠다 나왔더니 배가 고파서 밥이 나올 때까지 기다릴 수 없어 한 개, 두 개 젓가락으로 집어 먹다보니 밥도 없이 반찬을 모두 비웠습니다. 그래도 전기 밥솥은 밥이 다 되려면 10분은 더 기다려야하겠더군요. 



다른 테이블에 앉은 아이들은 밥 더 먹어야겠다고 궁시렁궁시렁하고 있고, 실무자들이 앉은 테이블엔 냉동실에 있던 밥을 전자레인지에 데워서 가져왔는데 해동이 덜 되어 먹을 수가 없었습니다. 결국 10분을 더 기다려 새밥이 나온 후에 생선구이와 뚝배기까지 새로 상을 봐서 늦은 저녁을 맛있게 먹었습니다. 


갑자기 예약하지 않은 손님들이 들이 닥쳐 밥을 팔았더니 밥이 모자라더라는 궁색한 변명에 더 화가 났지만, 생선구이와 뚝배기를 두 번씩 차려주면서 "미안하다"는 분에게 더 이상 화를 낼 수도 없었습니다. 


자전거 타는 사람들 사이에 "자전거 타고 가면 다 맛집"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자전거를 함께 타고 밥을 먹으러 가면 배가 고프기 때문에 "뭘 먹어도 다 맛이 좋다"는 말인데요. 둘째 날 저녁 식사 예약이 어긋나기는 하였지만 이틀 동안 먹은 밥이 모두 맛 있었습니다. 


저녁 식사로 부족했던 아이들은 숙소로 돌아와 보드게임을 하며 놀다가 저녁 간식으로 컵라면을 하나씩 먹어치우고 잠자리에 들었습니다. 밤이 늦어도 비는 그칠 줄을 모르고 다음 날 라이딩을 걱정하면서 둘째 날 일정을 마무리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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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도 자전거 일주...초등 4학년도 '거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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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산YMCA 제주도 자전거 국토순례① 제주항에서 중문단지까지 97km 라이딩



자전거로 제주 해안도로 238km를 일주하였습니다. 딱 10년 만입니다. 2007년 여름 당시 중학교 2학년이었던 아들과 처음으로 YMCA 청소년 통일 자전거 국토순례를 마산에서 임진각까지 완주하고 온 그 자신감과 열정으로,  2008년 1월 한 겨울에 대학Y 회원들을 모아 자전거 제주 일주를 하고 왔습니다.


10년 넘게 자전거 국토순례를 진행해 온 지금 뒤돌아 생각해보면, 상당히 무모한 도전이었고 고생도 많이 하였습니다만, 평생 기억되는 추억이 되어 있습니다. 10년 만에 다시 제주도 라이딩 프로그램을 만든 것은 지난 여름(2017년) 자전거 국토순례에 참가했던 청소년들과 헤어질 때 "겨울에 제주도에 자전거 타러 한 번 가자"고 했던 말이 씨가 되었습니다. 


지난 1월 5일 오후4시 25명의 참가자와 실무자들이 부산에서 배를 타고 제주로 떠났습니다. 저녁 7시에 부산에서 출항하는 배를 타고 12시간 걸려 아침 7시 제주항에 도착하였습니다. 제주항에 내려 지원차량(스타렉스)에 짐을 모두 싣고 근처 해장국집으로 이동, 아침을 먹고 본격적인 제주 일주 라이딩을 시작하였습니다. 


10년 전에 비하여 모든 일정은 순조로웠습니다. 10년 전에는 대학Y 회원들과 예비 대학생이었던 고3 수험생들 17명과 함께 제주도 일주를 했었는데, 워낙 훈련과 준비가 안 된 오합지졸들이라 정말 힘들었던 기억이 있습니다. 


올해 라이딩은 10년 전 만큼 힘들지 않았습니다. 참가자 대부분은 이미 여러 차례 YMCA 청소년 자전거 국토순례를 다녀온 친구들이라 자전거를 타는데 어려움이 없었고, 장거리 라이딩에도 익숙해 있었습니다. 


제주 자전거 일주...초등 4학년도 거뜬


YMCA 자전거 국토순례에 처음 참가하는 초등 4학년 여자친구(서영이)가 있어서 걱정을 좀 했습니다만, 막상 라이딩을 해보니 너무 자전거를 잘 타서 모두가 깜짝 놀랐습니다. 실무자들 역시 자전거 국토순례를 함께 했던 경험자들이라서 호흡이 척척 맞았습니다. 


작년 여름에 처음 자전거 국토순례에 참가하여 고생을 좀 했던 승주도 6개월 사이에 몸과 마음이 많이 자랐더군요. 여름보다 훨씬 씩씩하게 잘 해냈습니다. 올해 대학에 입학하는 성현이와 아직 고등학교를 다녀야 하는 동갑내기인 건모는 형들과 함께 로드 가이드 역할을 잘 해주었습니다. 아직 사춘기의 끝자락 느낌이 조금 남아 있었지만, 의젓한 모습을 보일 때도 많았습니다.


제주 일주 환상 자전거길을 따라 달렸기 때문에 길 찾기의 어려움은 별로 없었습니다. 휴식지도 따로 고민할 필요 없이 국토종주 인증센터가 있는 곳을 휴식지로 삼았습니다. 한 구간이 긴 경우에는 중간에 식사를 하면서 쉬어갔기 때문에 대체로 20km 내외로 달리고 휴식할 수 있었답니다. 



첫 날은 제주항을 출발하여 복희 해장국에서 아침을 먹고 용두담 - 다락쉼터 - 해거름 마을공원을 거쳐 한경면 고산로에 있는 칠천냥 뷔페에서 점심을 먹고 송악산을 거쳐 중문단지 입구 맛집에서 저녁 식사를 하고 담앤루리조트까지 97km를 달렸습니다. 


첫날 주행거리로 좀 길다 싶었습니다만, 마지막 날 여유있게 제주항에 도착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하여 첫날 주행거리를 좀 길게 잡았습니다. 오후에 산방산까지 가는 길은 오르막 구간이라 많이들 힘들어 하였지만 국토순례 경험이 많은 참가자들이라 그리 어렵지는 않았습니다. 


산방산 인증센터 - 중문단지, 마의구간


오후들어 체력이 떨어지면서 자꾸 뒤러 쳐지는 참가자들이 생겼지만, 오르막을 오를 때마다 꼭대기에서 잠깐씩 발을 내리고 쉬었다가 맨 후미까지 올라오면 다같이 출발하였기 때문에 라이딩 시간은 조금씩 길어지더군요. 


산방산 인증센터를 지나자마자  제주에서 가장 힘든(?) 오르막 구간을 만났습니다. 중문단지까지 가는 동안 크고 작은 오르막이 반복해서 나타나는데, 맞바람까지 불어 올 때는 여간 힘들지 않았습니다. 중문 단지가 가까울수록 체력은 점점 떨어지는데 얕은 오르막 구간이 반복되었습니다.


많이 지치고 해가 지면서 추워지고 어둑어둑 할 무렵 중문단지 입구 맛집 식당에 도착하였습니다. 숙소인 담앤루 리조트로 가지 전에 저녁 식사를 먼저 하였습니다. 상호가 <맛집>인 돼지 주물럭을 파는 식당이었는데, 가성비가 아주 좋은 곳이었습니다. 



제주에서 1만원으로 식사하기가 쉽지 않은데 첫날 아침, 점심, 저녁은 모두 1만원 이하로 맛있고 배부르게 먹었습니다. 저녁을 먹고 숙소에 도착 하였을 땐 완전히 어두워졌습니다만, 안락한 리조트에서 따뜻한 물로 씻고 맛있는 간식을 먹으며 즐겁게 휴식을 취할 수 있었습니다. 


보급팀 김봉수 간사가 부산에서 제주로 오는 배편에서 전기보온 물통에 끊여 온 뜨거운 물과 맛있는  간식이 있어 중간중간 휴식 시간를 더 잘 보낼 수 있었습니다. 차가운 바닷 바람을 맞으며 자전거를 탔지만 자전거를 탈 때는 땀이 나는데, 휴식지에 도착하면 땀이 식어 한기가 몰려들더군요. 


그때 혼자 스타렉스를 타고 보급을 맡은 김봉수 간사가 핫쵸코를 뜨거운 먹을 수 있도록 뜨거운 물이 담긴 보온통을  준비해주니 얼마나 더 반갑고 고맙던지요. 추운 몸을 녹이고 갈 수 있도록 도와 준 복희해장국과 칠천냥 뷔페(포털 지도 검색은 육천냥 뷔페) 사장님들의 배려도 고마웠습니다. 


일부러 식당에 손님이 많은 시간을 피해 가기도 하였습니다만, 헬멧, 장갑, 바람막이를 비롯한 장비들을 들고 식당에 들어가서 밥과 반찬도 다른 손님들 보다 더 많이 먹고 식사 후에도 한 참 동안 쉬었다가 가는데도 기분 좋게 격려해주었답니다. 제주 분들의 이런 배려 덕분에 첫날 97km 라이딩을 무사히 마쳤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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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에서 오르가슴을 느낀 남자, 김영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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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월 제주로 연수를 다녀오면서 김영갑 갤러리에 처음 들렀습니다. 연수나 여행으로 제주에 갈 때마다 여러 사람에게 김영갑 갤러리를 추천받았건만, 그때마다 일정이 맞지 않아 미루었다가 올해엔 벌써 두 번이나 김영갑 갤러리 '두모악'에 다녀왔습니다.

 

김영갑 갤러리 두모악을 처음 갔을 때, 그가 찍은 사진을 보고 머리를 얻어맞은 것 같은 충격을 경험하였습니다. 바람을 사진으로 찍을 수 있다는 놀라운 사실을 눈으로 직접 보았기 때문입니다. 김영갑은 '바람을 사진에 담는 작가'입니다.

 

그의 사진을 처음 보고 가장 강렬했던 느낌은 사진에 '바람'이 담겨있다는 것이었습니다. 제주를 삼다도라 부르는 것은 바람과 돌과 여인이 많기 때문이라고 하는데, 돌과 여인을 사진에 담는 것이야 누구나 할 수 있는데, 작가 김영갑은 제주의 바람을 사진에 담았더군요.

 

1시간 남짓 갤러리 '두모악'을 둘러보다 김영갑의 삶과 사진에 매료되어 그가 유작으로 남긴 책 <그 섬에 내가 있었네>(휴먼앤북스 펴냄)를 샀습니다. 1월 처음 두모악을 다녀와 홀린 듯이 그가 남긴 책을 읽고 2월에 두 번째로 '두모악'을 다녀왔습니다.

 

이번엔 함께 연수에 참여한 일행들을 모두 이끌고 가면서 제주여행에서 빠뜨리면 안 되는 장소라고 강력하게 추천하였지요. 2월에는 김영갑 갤러리 두모악을 가기 전날, 작가가 오랜 시간과 열정을 쏟았던 '용눈이오름'을 다녀왔습니다. '두모악'의 사진을 처음 본 일행들 대부분은 그의 사진에서, 특히 용눈이오름을 찍은 사진들에서 '시리도록 아름다운' 자연을 보고 큰 감동을 받았다고 하더군요.

 

제주의 자연을 영혼에 새긴 작가

 

<그 섬에 내가 있었네>는 제주의 자연을 영혼에 새긴 사진작가 김영갑의 작품일지와 같은 책이며, 루게릭병을 앓으면서도 갤러리 두모악을 만드는 데 혼신의 힘을 쏟으며 고통을 견딘 작가가 세상에 남긴 회고록 혹은 자서전과 같은 책입니다.

 

자기가 원하는 사진만을 찍으며 살았던 김영갑은 한쪽 어께에는 20kg이 넘는 사진장비를 메고 다녔고, 또 다른 어께에는 늘 가난과 궁핍한 생활을 메고 다녔다고 합니다. 끼니를 때우지 못하는 괴로움을 견디며 작업하고 버스비를 아껴가며 촬영을 다녔다고 합니다.

 

"우유 한 잔 마실 여유는 없지만 필름과 인화지만큼은 늘 여유가 있어야 한다. 양식이 떨어지는 것은 덤덤하게 넘길 수 있어도 필름과 인화지가 떨어지면 두렵다. 끼니를 때우지 못하는 괴로움은 작업하며 견딜 수 있지만, 필름이 없어 작업을 못하는 서글픔만은 참지 못한다." (본문 중에서)

 

돈이 되는 사진 대신에 자신이 찍고 싶은 사진을 찍으며 살았기 때문에 늘 궁핍한 생활을 벗어날 수 없었던 것이지요. 없으면 굶고 라면마저 여의치 않으면 냉수 한 사발로 끼니를 대신하였다는 것입니다.

 

거처를 구하는 것조차도 늘 쉽지 않았다고 합니다. '신원이 확실치 않은' 외지 사람이었으니 방을 빌리는 것이 쉽지 않았고, 새벽 일찍부터 밤늦게까지 촬영을 다닌 탓에 간첩으로 몰린 일도 있고 경찰서 대공과 형사들에게 가택 수색을 당하기도 하였다는 것입니다. 카메라를 들고 오지 마을을 어슬렁거리다가 지서로 끌려가는 일도 더러 있었다더군요.

 

작가 김영갑은 의식주가 모두 힘들었지만 참 모질게도 사진에 몰두하였다고 합니다. 뭍에서 찾아오는 가족과 친구도 마다하고 주인집 전화번호 조차 알려주지 않았다고 합니다.

 

"견딜 수 없을 만큼 처절하게 내 자신을 몰아갔고, 철저하게 외부와 단절시켰다…… 생활리듬이 깨지면 사진 작업에 지장이 생긴다. 소중한 시간을 불필요하게 낭비하고 싶지는 않았다…… 한 여자에게 행복한 삶을 보장할 수 없는 한 결혼하지 않으리라 마음을 다잡았다." (본문 중에서)

 

그 뿐만이 아닙니다. 한적한 중산간 마을에서 사는 것으로도 모자라 한라산 중턱 표고버섯 재배막사에서 사계절을 보낸 일도 있다고 합니다. "비라도 뿌리는 날이면 호젓하다 못해 암울한 고독감이 밀려드는" 무인도와 다를 바 없는 산중이었다고 하지요.

 

외부와의 접촉을 끊고 오직 사진 작업에만 몰두하며 평범한 삶을 거부하고 남들이 보기에 '미친놈' 혹은 '정신 빠진 놈'처럼 살았다는 것입니다. 중산간 외딴 마을에서 10년을 지내면서 인간이 자연의 일부임을 깨달았으며, 바로 그 깨달음을 사진에 담았던 것이지요.

 

 

자연의 일부가 되어서 자연을 사진에 담았던 작가

 

예컨대 그의 사진에는 억새가 담겨 있습니다. 그는 새싹이 나오는 5월부터 키가 2미터나 자라고 꽃대가 굵어지고, 꽃들이 바람에 나리고 앙상한 줄기만 남는 변화의 과정을 아주 잘 알고 있습니다. 그 뿐만 아닙니다.

 

"사철 억새와 함께 생활하는 나는 억새의 변화에 따라 기분도 변한다. 내 기분에 따라 정원의 분위기도 쉼 없이 변한다. 내 감정은 고여 있지 않고 주변 분위기에 따라 흐른다. 중산간 초원 억새의 아름다움은 시시각각 변한다…… 어떤 빛에서 사물을 보느냐에 따라서도 달라진다." (본문 중에서)

 

자연과 교감하는 예술가의 모습을 확인시켜주는 대목입니다. 작가 김영갑이 자연과 교감하는 삶을 살았던 한 장면을 더 소개해 드릴까요?

 

"장마철이면 안개 짙은 날 치자꽃 향기에 취해 마시는 커피 맛은 유별나다. 눈이 소복하게 쌓인 날 보름달을 보며 마시는 차 맛은 누구도 이해할 수 없는 나만의 즐거움이다." (본문 중에서)

 

바로 이런 대목들입니다. 그의 사진에 제주 토박이들도 처음 보는 제주의 아름다운 산과 들과 나무와 풀, 바람과 구름을 담을 수 있었던 것은 자연과 교감하는 능력이 남들과 달랐기 때문인지도 모릅니다. 그는 마침내 오름에서 오르가슴을 경험하였노라고 고백합니다.

 

"도시보다는 자연에서, 낮보다는 밤에, 나의 성감은 자극을 받는다. 건조한 곳보다는 습한 곳에서, 햇빛 쨍한 날보다는 안개 짙고 가랑비 내리는 날이면 발동이 걸린다. 여름이면 여름대로, 겨울이면 겨울대로 느낄 수 있는 오르가슴. 소나기 지나고 무지개 뜰 때면, 바람 심한 억새꽃 춤추는 한낮에도, 하늘과 땅이 사라지는 눈보라 속에서도 오르가슴은 찾아온다." (본문 중에서)

 

꿈 속에서 몽정을 경험하듯이 자연에서 오르가슴을 경험하였다는 것입니다. 김영갑은 자연에서 절정의 오르가슴을 경험하고 난 후 자연을 떠날 수 없었노라고 고백합니다. "자연을 통해 풍요로운 영혼과 빛나는 영감"을 얻었을 뿐만 아니라 훌륭한 사진을 찍어야 한다는 간절한 바람마저도 사라지는 어떤 '경지'에 다다르곤 하였다는 것이지요.

 

 

김영갑 갤러리 '두모악'에 전시된 그의 모습이 담긴 사진을 보면 '영적인 수도자'의 느낌이 전해옵니다. 자연과의 교감뿐만 아니라 일상생활에서도 '명상' 혹은 '수련'이라 불러도 좋을 만한 삶을 살았더군요. 예컨대 마음이 울적한 날은 바느질에 매달렸다고 합니다.

 

"마음이 혼란스러울 때는 그 가슴 설렘을 기대하며 밤을 새워 바느질을 한다. 잠자리에 누워도 정신이 말똥말똥하면 일어나 불을 켜고 바느질을 한다…… 그러면 온갖 시름이 사라진다." (본문 중에서)

 

헝겊 조각을 모아 조각보를 만들고 조각보를 재단해서 커튼도 만들고, 정성들여 바느질 하여 옷도 만들어 입었다고 합니다. 초조하고 불안한 마음을 달랠 때, 울적한 마음을 달랠 때 바느질을 하였다더군요. 정말이지 수행자, 구도자의 모습과 다르지 않았었지요.

 

삽시간의 황홀을 찍는 사진가

 

책의 사진작가 김영갑의 제주 생활에 관한 이야기가 대부분이지만 후반부는 그의 사진 철학을 엿볼 수 있는 내용들입니다. 자연을 사진에 많이 담았던 김영갑은 '자연을 의지해 살아가는 이들은 자연의 변화에 민감'해야 한다고 강조합니다. 자연을 담으려면 자연의 순환법칙이나 우주의 운동 원리를 이해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이지요.

 

"사람들은 대개 노을 사진을 찍을 때 해가 수평선 너머로 잠기면 카메라를 챙겨 돌아온다. 그러나 십오 분쯤 후의 노을은 더욱 장관이라는 것을 그들은 모른다. 그 황홀한 아름다움은 단 이삼 분 안에 사라진다. 해가 솟기 이삼십 분 전의 청자빛 하늘은 한겨울이 으뜸이다." (본문 중에서)

 

"농부나 어부처럼 사진가도 기후의 변화를 읽을 줄 알아야 한다. 바람과 구름, 바다를 보고 일이십분 뒤의 기후 변화를 예측할 수 있어야 한다. 그 예측이 정확하다면 원하는 사진을 얻을 수 있다." (본문 중에서)

 

그는 자연에 대한 경외심과 그 감동까지 함께 나누고 싶어 사진을 찍었다고 하였더군요. 바로 그런 이유 때문에 그는 사진에 제목을 붙인 일이 없다고 합니다. 글로 표현할 수 없어 사진으로 찍었기 때문에 보는 이의 상상력을 제한하고 싶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그의 사진작품들이 얼마나 긴 시간과 지난한 기다림 끝에 촬영되었는지 그의 작업을 지켜보지 않는 사람들은 쉽게 알 수 없는 노릇입니다. 그에게 사진은 긴 호흡으로 이루어내는 '구도'이거나 혹은 어떤 인내심 같은 것의 결정체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사시사철 똑같은 장소에서 동일한 카메라, 동일한 방법, 동일한 목적으로 촬영해도 사진가마다 사진이 다르다. 어떤 순간이나 이미지를 상상하고 원하는 순간이 오기까지 인내심을 가지고 기다려야 한다. 쉽게 기다림에 대한 보상을 받을 수도 있고 기다림이 영원히 계속될 수도 있다." (본문 중에서)

 

그렇지만 좋은 사진이 기다림에 대한 보상이라고 하여 결코 우연의 산물은 아니라는 것이 작가의 주장입니다. 사진에는 작가의 생각이 개입될 뿐만 아니라 철저한 준비를 거쳐야 감동을 담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태양의 위치나 그날의 날씨 변화는 사진가가 개입할 수 없지만 원하는 순간을 기다릴 수는 있다. 셔터 누를 순간을 포착하는 것은 사진가의 의지다…… 운이 좋아야 좋은 사진을 찍을 수 있는 것이 아니다. 행운은 사진가 스스로 준비해서 맞이하는 것이다." (본문 중에서)

 

"사진은 일초도 안 되는 시간 안에 승부를 거는 처절한 싸움이다. 한 번 실수하면 그 순간은 영원히 오지 않는다. 특히 삽시간의 황홀은 그렇다. 그 순간을 한 번 놓치고 나면 다시 일년을 기다려야 한다. 일 년을 기다려서 되는 거라면 그나마 다행이지만, 기다려도 되돌아오지 않는 황홀한 순간들도 있다." (본문 중에서)

 

그의 작품에 영혼이 담겼다고 하는 것은 운이 좋아 찍은 사진이 아니라 오랜 기다림과 철저한 준비 끝에 얻은 행운의 결과물이기 때문입니다. 행운은 우연히 얻는 것이 아니라 '준비와 기회가 만나는 것'이라는 겁니다.

 

그가 평생을 바쳐 그렇게 찍은 사진들은 지금도 김영갑 갤러리 두모악에 전시되어 있습니다. "누가 시골 갤러리를 찾겠느냐고, 관람객이 없어도 실망하지 말라"고 걱정했던 그곳에 사람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고 있습니다.

 

그는 자기 삶의 전부인 사진들이 함부로 나뒹굴지 않도록 하기 위하여 루게릭병을 앓으면서도 갤러리를 만드는 데, 혼신의 노력을 쏟아 부었다고 합니다. 죽음이 다가오는 동안에도 그는 행복하고 평화로운 시간을 보냈다고 고백합니다. 사진에만 매달려 사는 동안 경험하지 못했던 세상과 삶을 경험하면서 행복하였다는 것입니다.

 

오직 사진 하나에만 매달려 미친 듯이 살다간 이 남자가 궁금하시면, 제주에 가는 길에 꼭 김영갑 갤러리 두모악을 가시기 바랍니다. 그의 사진을 보고 도대체 어떻게 저런 황홀경을 찍을 수 있었을까 궁금하다면 이 책 <그 섬에 내가 있었네>를 읽어보시기 바랍니다. 제주 사람들도 모르는 제주의 아름다운 풍경이 영혼을 담아 찍은 그의 사진 속에 있습니다.

 

 

 

그 섬에 내가 있었네 (반양장) - 10점
김영갑 지음/휴먼앤북스(Human&Book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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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을 영혼에 인화한 사진작가 김영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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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 연수 사흘째는 가장 바쁘게 움직인 날이었습니다.

새벽에 성산 일출봉에 일출을 보러 갔다가 실패하고

아침 밥으로 조개죽을 먹고 우도를 다녀왔습니다.

우도를 다녀와서 늦은 점심으로 '춘자싸롱'에서 점심으로 국수를 먹고

김영갑 갤러리를 찾아갔습니다.

 

제주에 오기 전, 유홍준의 <나의 문화유산답사기-제주편>을 읽으면서

꼭 가고 싶은 장소로 세 곳을 마음에 두었습니다.

한라산 영실 코스, 다랑쉬 오름과 김영갑 갤러리 그리고 추사관과 추사유적지입니다.

여럿이 떠넌 연수라 가고 싶은 곳을 모두 갈 수는 없었습니다.

 

한라산은 영실 대신 성판악 코스로 백록담까지 다녀왔습니다.

일행 중 한라산을 처음 오르는 후배들이 대부분이라 백록담이 있는 정상을 밟으러 갔습니다.

 

다랑쉬오름은 우도를 다녀오느라 시간이 모자라 빼먹고 김영갑 갤러리로 갔습니다.

추사관이 있는 대정쪽은 아예 가보지도 못했습니다.

 

다랑쉬오름과 용눈이오름은 다음 제주 여행을 위해 남겨둘 수 밖에 없었습니다.

한라산 영실 코스와 추사관과 추사유적지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래도 이번에 김영갑 갤러리를 다녀온 것만으로도 충분히 만족스러웠습니다.

 

 

오래 전부터 김영갑 갤러리의 명성(?)을 들어왔습니다만,

몇 차례 제주 여행을 갔어도 인영이 닿지 않았습니다.

지난 여름 제주에 갔을 때도 단체 일정을 맞추다보니

짧은 시간도 따로 내기가 어려웠습니다.

 

오후 4시쯤, 해가 뉘엿뉘엿 지기 시작할 때 김영갑 갤러리에 도착하였습니다.

이제는 제주 여행의 명소가 되었는지 주차장에 차가 가득하였고,

매표소에도 사람들이 많았습니다.

 

김영갑 갤러리는 2002년 폐교를 개조하여 개관하였습니다.

 

 

1957년 충남부여에서 태어난 작가는

홍산중학교와 한양공고를 졸업하였으며

1982년부터 제주에서사진 작업을 시작하였고,

1995년에 제주로 이주하여 본격적으로 제주 사진을 찍기시작하였습니다.

 

2002년 여름 김영갑 갤러리 두모악을 개관하였으나

2005년 5월 29일 '루게릭 병'으로 길지 않은 생을 마감하였습니다.

 

 

바닷가와 중산간, 한라산과 마라도 등 섬 곳곳 그의 발길이 미치지 않은 곳이 없다고 합니다.

또 노인과 해녀, 오름과 바다, 일출과 석양, 들판과 구름, 억새와 풀, 나무 등

그가 사진으로 찍지 않은 것은 제주도에 없다고 해도 틀리지 않은 이야기라고 합니다.

 

 

밥 먹을 돈을 아껴 필름을 사고 배가 고프면

몰래 들판의 당근이나 고구마로 허기를 달랬다고 합니다.

제주의 자연을 사진에 담는 그의 작업은 수행이라 할 만큼

혼신 모두 바친 노력이었다는 것입니다.

 

 

어느 날부턴가 사직을 찍을 때면 셔터를 눌러야 할 손이 떨리기 시작하였고,

2001년 겨울무렵 오십견인줄 알았던 통증이 '루게릭 병'으로 확인되었다고 합니다.

3년을 더 살 면 잘사는 거라는 시한부 선고를 받았다고 합니다.

굳어가는 몸을 이끌고 손수 김영갑 갤러리 두모악을 만들었다고 합니다.

 

 

김영갑 갤러리 두모악 전시실에는

그의 생명과 맞바꾼 작품들이 전시되어 있습니다.

그의 인생과 맞바꾼 황홀하고 아름다운 제주의 자연이 전시되어 있습니다.

 

김영갑 갤러리의 작품은 1년에 두 번 정도 교체된다고 합니다.

이번에 갔을 때는 제주의 바람을 담은 사진이 주로 전시되어 있었습니다.

바람에 흔들리는 억새와 풀들이 사진 가득 담겨 있었습니다.

 

김수영의 시에 나오는 그런 풀들이

김수영의 시에 나오는 그런 바람이

김영갑이 찍은사진에 고스란히 담겨 있었습니다.

 

 

바람을 담은 그의 사진은

사진이 아니라 그림처럼 보였습니다.

사진인줄 알고 보는데도 자꾸만 그림처럼 보입니다.

바람에 흔들리는,

세찬 바람에 흔들리는 억새와 들판의 풀들이

마치 붓으로 그린 그림처럼 보이기 때문입니다.

 

 

김영갑 갤러리는 원래 '삼달국민학교'가 있던 폐교터에 만들어졌습니다.

루게릭병 선고를 받은 작가는 세계적인 수준의 갤러리를 직접 만들었다고 합니다.

 

제주의 상징인 바람과 돌과 사람을 주제로 만든 정원은 모두

그의 손길로 만들어졌다고 합니다.

그가 세상을 떠난 후 그는 육신을 태워 이 정원의 일부가 되었다고 합니다.

 

 

갤러리 뒤편에는 차를 마실 수 있는 찻집이 있습니다.

전시실을 오래 둘러 보느라 시간이 늦어 찾집에는 들어가보지 못하였습니다.

갤러리와 마당에 가꾼 정원에 잘 어울리는 찻집이었습니다.

갤러리와 마당에 가꾼 정원으로부터 비켜 난 건물 뒤쪽 구석자리에 물러나 있습니다.

 

 

아름다운 정원으로 나오면 계절의 변화가 한 눈에 들어옵니다.

많은 사람들이 정원 구석구석을 다니면서 사진을 찍고 있더군요.

많은 사람들은 정원을 꾸미고 있는 아기자기한 장식품들

제주 자연을 축소판 처럼 옮겨놓은 정원에서 자기 모습을 카메라에 담았습니다.

 

 

그리고 아주 소수의 사람들은 갤러리 마당에 있는 자연을 카메라에 담았습니다.

막, 제주의 자연을 사진 속에 옮겨놓은 작가의 작품을 보고 나온 여운 때문일까요?

갤러리에 전시된 작품을 보고 나면

김영갑 갤러리 두모악 마당 정원을 꾸민 돌과 나무와 풀들이

다르게 보이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아니, 어쩌면 다르게 보려고 하기 때문일 수도 있겠습니다.

 

 

흑백 사진처럼 흐린 하늘이

살아 있던 그때, 늘 허전하고 외롭게 지냈던 작가를 떠올리게 합니다.

필름과 인화지를 마련하기 위해

배고픔을 마다하지 않았다는 그는 늘 혼자이길 원했다고 합니다.

그는 일(사진)에 중독되어 살았다고 합니다.

20년 동안 사진에만 몰입하면서

'명상'과 같은 삶을 살았던 것입니다.

 

 

그에게 불행은 궁핍할 때 찾아온 것이 아니라고 합니다.

끼니 걱정은 면하고 필름값과 인화지를 걱정하지 않아도 될 때,

그에게 병이 찾아왔다고 합니다.

 

그는 병이 깊어지면서 사진을 찍지 못할 때가 되어

끼니 걱정 필름 걱정에 우울에 하던 그 때가 행복한 때였다는 것을 깨달았다고 합니다.

온종일 들녘을 헤매 다니고

새벽까지 필름을 현상하고 인화하던 춥고 배고팠던 그때가

간절히 그리워지더라는 것입니다.

 

 

파랑새를 품에 안고 파랑새를 찾아다녔었다는 것이지요.

몸이 아파 셔터를 누를 수 없을 때가 되어 가장 행복했던 시절이

일에 중독되어 아무 것도 살피지 않고 사진을 찍으며 살았던 시절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내가 처음 이곳을 찾은 날 전시실에는

유홍준이 <나의 문화유산답사기-제주편>에서 극찬을 아끼지 않은

다랑쉬오름, 용눈이오름을 찍은 사진을 전시되어 있지 않습니다.

 

1년에 두 번 전시작품이 바뀐다고 하니,

제주에 갈 때마다 들러도 그의 작품을 모두 보기는 어려울 것 같습니다.

 

 

이번 제주 여행에서 가장 마음에 남는 장소입니다.

한라산과 성산일출봉, 우도는 모두 처음이 아니었는데,

김영갑 갤러리 두모악은 첫 만남이기 때문이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김영갑 갤러리 두모악은 다시 가고 싶은 장소가 되었습니다.

김영갑 작가가 자서전처럼 쓴 책<그 섬에 내가 있었네>를 사 왔습니다.

책을 읽고 책에 담긴 사진을 보노라면

또 다시 '김영갑 갤러리 두모악'을 찾고 싶을 것이 분명합니다.

 

 

고집불통의 사진 작가 김영갑은 '순교자'입니다.

그는 스스로 '사진을 찍다가 순교하겠다.

여한 없이 사진을 찍다가  웃으며 죽고 싶다'고 하였답니다.

20만장의 사진 원고를 남긴 그는 여한 없이 사진을 찍었을까요?

 

 

김영갑 갤러리는 두모악,

2013년 전시는,

하날오름관에서는 5월까지 <유작展>

 

두모악관에서는 

 <상설展 - 구름이 내게 가져다 준 행복>

전시회가 1년 내내 열립니다.

 

똑딱이 카메라로부터 DSLR까지, 하다못해 스마트폰이라도

카메라를 들고 제주로 여행을 떠나시는 모든 분들께

꼭 추천하고 싶은 곳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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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김재현 2013.02.05 17:34 address edit & del reply

    잘 봤습니다. 덕분에 제주의 자연에 대해.. 김영갑이란 인물에 대해.. 사진에 대해 많은 것을 느끼고 배울 수 있었습니다.

    • 이윤기 2013.02.05 22:08 신고 address edit & del

      선생님의 남다른 감수성과 호기심을 저도 배우고 싶었습니다. 함께 여행할 수 있어 정말 기뻤습니다.

  2. 옥가실 2013.02.08 17:45 address edit & del reply

    오호.. 윤기님의 사전 답사기가 여기에 있군요.
    좋은 곳을 소개해 주어 고맙기 그지 없습니다. ^^

신형원, 안치환도 함께 탔던 프라이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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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연말에 16년 동안 타고 다니던 프라이드 승용차를 폐차한 이야기를 몇 차례로 나누어 포스팅하였습니다. 16년 정든 차를 20년 못 채운 이유 그리고 16년을 무사히 타고 다닌 나만의 비법을 소개하였지요. 오늘은 16년 동안 생사고락(? 자동차는 좀 그런면이 있지요), 동고동락(?)타고 다녔던 프라이드에 얽힌 가지 추억을 기록으로 남겨보려고 합니다.

2010/01/18 - [시시콜콜] - 자동차 오래 탄 나만의 비법
2010/01/15 - [시시콜콜] - 16년 정든 차, 20년 못 채운 이유
2010/01/14 - [시시콜콜] - 사연 많은 16년 지기와 헤어지다



프라이드에 태웠던 유명(?)인


제가 처음 프라이드를 구입하였을 때만 하여도 당당하게 타고 다닐 수 있는 차종이었습니다. 그러나 세월이 흐르고 중형차와 준중형차 보급이 급격하게 늘어나면서 조금씩 구닥다리 취급을 받기 시작했습니다. 얼마간 더 세월이 지난 후에는 전혀 '프라이드'(?)를 세워주지 못하였지요.

10년을 훌쩍 넘기고 나서부터는 완전히 폐물 취급을 받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경비원이나 주차요원이 안내를 해주는 주차장에서는 구석자리나 지하로 밀려나기 일쑤였습니다. 행사가 있어서 호텔 같은 곳을 갔을 때도 별로 환영받지 못하였구요.

그래도 '프라이드' 구입 초기에는 저희 단체의 의전(?) 차량으로 널리 사용되었습니다. 시민논단과 같은 행사가 있을 때 서울에서 오는 강사를 마중하거나 배웅 할 때도 제 프라이드를 이용하였습니다.
 
지금은 유명 뮤지션이 된 안치환씨나 당시 이미 유명세를 탔던 신형원씨가 저희 단체가 주최한 청소년 축제에 초대가수로 왔을 때도 모두 제 프라이드로 마중과 배웅을 하였습니다. 두 사람 모두 서울로 돌아갈 때, 빠듯한 비행기 시간에 맞춰 김해에 있는 부산 공항까지 도착하느라 애를 먹었던 기억이 있습니다.

안치환씨는 대중적 인기를 얻었던 곡 '내가 만일'이 발표되기 전이기 때문에 청소년들이 많이 참여하지 않아 서로 난감하고 미안하였던 기억이 있습니다. 아무튼 제 프라이드를 직접 탔던 사람들 중에는 가장 대중적으로 알려진 분들인 것 같습니다.

그 뒤에도 음악회 등의 행사로 이름이 잘 알려진 분들을 초청한 적이 있지만 대부분 매니저가 운전하는 차를 타고 오시더군요. 그래서 제 프라이드를 함께 타는 일은 없었습니다.

프라이드에는 최고 몇 명까지 탈 수 있을까?

프라이드 승용차에는 최고 몇 명이 탈 수 있을까요? 기네스북 기록을 찾아보니 2000년에 폭스바겐 승용차에 25명이 탔다고 하는군요. 제 프라이드에는 몇 명이나 탔을까요? 기네스북 기록이기는 하지만 폭스바겐에는 25명이 타고 차를 운행하지는 않았지 싶습니다.

제 차에는 기네스북 도전처럼 차에 사람을 억지로 우겨넣은 적은 없습니다. 그러나 10여 년 전, 프라이드 전성기에는 함께 일하는 부서 실무자들이 제 차에 모두 끼어타고 다니는 일이 많았습니다. 회식을 위하여 이동할 때, 영화를 보러 갈 때, 회의를 위하여 다른 사무실을 갈 때 따로 버스나 택시에 나누어타지 않고 한 차에 뭉쳐다녔지요.

가장 많이 타고 다녔을 때는 뒷자리에 5명, 조수석에 2명, 운전석 1명 모두 8명이 한꺼번에 타고 다녔습니다. 요즘 차들은 자동차 실내 공간이 넓어져서 어려운 일이 아니지만, 프라이드 시절에는 정말 꽉 채워서 다닌겁니다.

시내를 주행하다 교통 경찰이 보이면 "수구리(숙여)" 하고 큰 소리를 지릅니다. 그러면 사전에 약속된 사람들이 의자 아랫쪽으로 몸을 숙이고 들어갑니다. 왜 그랬을까요? 요즘은 교통 경찰이 자동차 정원 초과 단속을 하는 경우가 잘 없는데, 그 시절에는 정원 초과도 단속 대상이었기 때문입니다.

사실, 안전벨트를 맬 수 없기 때문에 여덟 명이 타고 주행하거나 장거리 이동을 하는 것은 위험하기 짝이 없는 일이었지요. 지금 보다 훨씬 젊은 시절이라 재미로 여기며 이런 일을 하였지 싶습니다.

캠프, 캠페인 척척 해내는 '키트' 부럽지 않았던 차

제 차는 사람이 타는 승용으로만 사용되지 않았습니다. 자동차가 귀한 시절이었기 때문에 단체 활동을 위하여 징발(?) 당하는 일이 다반사였습니다. 가장 많이 이용된 것은 집회와 시위 그리고 캠페인 용품을 운반하는 일이었습니다.

프라이드 베타는 트렁크가 있기 때문에 뒷 트렁크에 앰프 셋트가 들어가면 딱 맞습니다. 앞좌석 의자를 뒤로 젓히면 접이식 테이블도 그뜬히 실을 수 있습니다. 그외에 피켓을 비롯한 자잘한 도구들은 뒷자석이 싣고도 운전석 뒤에 한 명이 탈 수 있었지요.

완전히 짐차로 변신하는 것은 캠프를 떠날 때입니다. 요즘은 캠프장에 가면 콘크리트 건물이지만 그 시절에는 텐트와 천막을 들고 가서 캠핑을 하였습니다. 프라이드 뒷자석 바닥부터 천정까지 차곡차곡 텐트와 캠핑 장비를 싣고, 트렁크에 부식을 가득 채우면 일주일 캠핑정도는 문제 없었습니다.



북으로 강화도, 남으로 제주도 여행도 함께...

프라이드를 타고 가장 멀리 육지 여행을 간 장소는 강화도입니다. 2002년 겨울에 성공회대학교에서 열린 간사학교에 한 달 동안 지낼때 프라이드를 타고 강화도 여행을 다녀왔습니다. 강화도에서 배에 차를 싣고 석모도인가 하는 더 작은 섬으로 여행을 다녀왔습니다.

16년간 승용차를 운전하였지만, 장거리 운전을 싫어하기 때문에 1시간 이상 걸리는 거리는 여럿이 함께가 아니면 대중교통을 이용합니다. 따라서 제 차는 경상도 권역을 벗어난 일이 별로 없습니다.

승용차를 직접 운전해서 서울까지 간 것은 모두 3번인데, 그 때마다 프라이드와 함께 갔습니다. 2000년 서울에서 열린 시상식에 부모님 모시고 갈 때, 2002년 간사학교 갈 때, 2004년에 한 달 동안 가족들과 해외여행을 갈 때 서울까지 직접 차를 운전해서 갔던 적이 있습니다.

서쪽으로는 해남 땅끝마을까지 여행을 다녀왔습니다. 유홍준 교수가 쓴 나의 문화유산 답사기가 베스트셀러였을 때, 책에 나오는 남도답사1번지를 프라이드 타고 다녀왔습니다.
 
가장 남쪽으로는 제주도 여행을 프라이드와 함께 갔습니다. 통영에서 카페리에 차를 싣고 제주에 가서 2박 3일 제주 여행을 함께 하고 왔습니다. 자동차에 필요한 짐을 몽땅 싣고 떠났기 때문에 여행 경비도 줄일 수 있었고, 전에 못가 본 제주 곳곳을 둘러보고 왔습니다.

짧은 기간이지만 자동차에 필요한 등산 장비도 모두 챙겨가서 한라산 등반도 다녀왔습니다.  아주 나중에야 카페리 자동차 요금보다 차라리 제주에서 렌터하는 것이 더 저렴하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가장 높은 곳은 지리산 성삼재까지 올라갔었고, 가장 험난한 오프로드를 다녀 본 것은 프라이드를 타고 지리산 왕시루봉 근처에 있는 임도를 따라 여행을 하였을 때입니다. 차는 물론이고 등산객도 없는 가을 단풍이 절경이었던 지리산 임도를 달려 본 기억을 잊을 수가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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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골목대장허은미 2010.02.05 15:35 address edit & del reply

    재미나게 읽었습니다. 차와 함께한 시간이 많은 만큼 추억도 많으시네요
    주인이 이만큼 사랑해주니 차도 그 마음 알았겠어요~
    정말 부러운 차네요^^ 떠나보낸 차...괜스레 저까지 마음이 찡해지네요

    • 이윤기 2010.02.07 08:11 신고 address edit & del

      샘과 함께 한 잊지 못할 추억도 많지요. ^^*

  2. 노동우 2010.02.06 09:24 address edit & del reply

    저는 총 5번 정도 탄 기억이 있어요.
    역사의 일부분(?)이 된 걸 영광으로 생각합니다.ㅎㅎ

    • 이윤기 2010.02.07 08:13 신고 address edit & del

      고마워요 ^^*

      태지, 모모와 함께 블로그 만들기 중급과정 한 번 더 해야할까봐요 ~

겨울 한라산에선 바람도 풍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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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 오희삼이 쓴 <한라산 편지>


남한에서 가장 높은 산 한라산, 여름과 겨울에 각각 한 번씩 한라산을 다녀온 적이 있습니다. 정상에 오르기 위해 걸음을 재촉하며 다녀온 산행이기에 “마음의 고향이자 지친 영혼의 안식처”라는 것을 미처 깨닫지 못하고 다녀왔습니다.

대신 오희삼이 찍은 사진과 그가 쓴 글을 통해 한라산을 새롭게 만나게 되었습니다. 아마 다시 한라산을 찾아간다면 전혀 다른 마음으로 산과 산이 품고 있는 자연을 만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가 쓴 <한라산 편지>는 한라산의 사계절을 고루 담고 있습니다. 저자는 한라산자락 서귀포 토평에서 태어났고 대학 입학 후 산악부 활동을 시작하면서 암벽과 빙벽을 배우며 전국의 산을 쏘다녔다고 합니다.

산악전문월간지 <사람과 산> 편집부 기자로 전국의 산과 암벽을 주유하며 글을 쓰고 사진을 찍었으며, 고향인 제주도로 내려가 여행안내 월간지 <투어 투데이>편집장을 지냈다고 합니다. 아름다운 사진과 마음을 적시는 글을 쓰는 연습을 충분히 하였던 셈이지요.

한라산국립공원에서 일하기 시작한 지난 15년 동안 한라산 구석구석을 누비며 아름다운 풍경과 생태를 글과 사진으로 담는 일을 하고 있으며, 이 책 <한라산 편지>는 그 결과물 중 일부인 것입니다.

제주도와 한라산은 하나라고 말합니다. 한라산은 백록담에서 뻗어내려 해안선에 이르면서 제주도라는 섬을 이룬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한라산은 제주도라는 나무의 뿌리이면서 줄기라는 것이지요. 결국 한라산이 곧 제주도이며, 제주도가 또한 한라산이라는 것입니다. 저자는 한라산을 일컬어 국토의 파수꾼으로 비유 합니다.

“백두산이 북녘 땅 만주벌판에서 불어오는 바람을 막아내는 곳이라면, 한라산은 망망대해 태평양에서 불어오는 태풍을 온몸으로 껴안는 우리 국토의 파수꾼인셈이지요.”

신들의 정원,  한라산에서 만난 자연

지난 15년 동안 신들의 정원과도 같은 한라산에 살면서 만난 자연은 신비로운 보석과 다름이 없었다고 합니다. 그가 쓴 <한라산 편지>는 바로 한라산 너른 들판과 숲이 품고 있는 자연의 숨결과 그 속에서 살아가는 작은 생명들의 이야기를 편지 형식으로 기록한 것 입니다.

세상 어떤 연애편지보다 아름다운 여리고 고운 문장으로 기록된 이 편지는 눈으로 읽기에는 아쉬움이 많이 남았습니다. 책을 절반쯤 읽고 나서부터는 시를 낭송하듯이 일부러 소리 내어 책을 읽었습니다. 책 읽는 소리를 듣는 가족들도 모두 애잔하고 슬픈 느낌이 든다고 하더군요.

그가 쓴 글을 읽노라면 마치 한 편의 파노라마 필름을 보고 있는듯 한 느낌을 지울 수 없습니다. 눈앞에 아름다운 한라산 숲과 이슬이 머금은 아침햇살을, 유순한 노루의 눈망울을, 청초한 꽃을 피우는 돌매화를, 들판을 핏빛으로 물들이는 노을을 마주 보는 것 같은 그런 착각에 빠져들게 됩니다. 그가 묘사한 봄을 맞는 한라산의 모습을 몇 구절 소개해 봅니다.

“콘트라베이스의 낮고 긴 음색으로 산들바람이 불어오면 한라산 깊은 계곡에서는 겨울잠에서 깨어난 물소리, 바위를 적시며 솟아납니다. 현을 튕기는 듯 가늘고 청명한 소리는 메마른 대지를 적시며 깊디 깊은 겨울잠에 취한 숲속의 생명들을 깨워 댑니다.”

“트럼펫처럼 맑고 우렁찬 햇살이 나목의 덤불숲을 헤집고 얼어붙은 대지에 닿으면 파릇한 새싹들이 여기저기서 부스스 얼굴을 드러냅니다. 햇살보다 향기로운 빛깔로 샛노란 복수초가 선봉에 서면, 노루귀도 이에 뒤질세라 잎새마저 제쳐두고 순백의 자태를 드러내지요.”

분명 산문으로 쓴 <한라산 편지>를 읽어 면서 내내 고운 운율이 흐르는 시를 읽고 있는 듯한 착각에 빠지곤 하였습니다. 제가 소리 내어 읽는 소리를 듣던 사람들도 모두 비슷한 느낌이 들었다고 합니다.



시를 읽는 듯....... 자연이 담긴 편지

인간의 탐욕 때문에 수난을 당하는 자연의 아픔을 묘사한 대목은 더욱 마음을 아리게 합니다.

“연둣빛 두릅나무의 새순은 꽃을 피워내기도 전에 수난을 당하기 일쑤입니다. 막 피워낸 새순을 살짝 데쳐 먹으면 그 맛이 일품이라 피워내자마자 누군가의 손길에 꺽이기 때문이지요....... 새순이 잘려나간 자리엔 투명하고 하얀 점액질이 흘러나옵니다. 잘려나간 상처부위를 치료하기 위해 두릅나무는 또 다시 새순을 피워냅니다.”

한 때 한라산 명품으로 유명했던 오미자나무 열매도 지금은 눈을 씻고 찾아봐도 볼 수가 없다고 합니다. 다른 나무의 등걸을 타고 높은 곳에 올라가 열매를 맺는 오미자의 특성 때문에 다른 나무도 오미자와 함께 무참히 잘려나가는 죽임을 당하였다는 것입니다.

봄 날 한라산을 걸을 때는 어떻게 걸어야 할 까요? 정상의 백록담을 향해 걷는 등산객이었을 때 저는 가쁜 숨을 몰아쉬며 이마에 맺힌 땀방울을 훔쳐내며 성큼성큼 걸었습니다. 저자는 봄 날 한라산을 걷는 속도를 꽃의 속도에 맞추어 걸으라고 합니다. 가만히 땅에 뿌리박힌 꽃에게 무슨 속도가 있냐고 물으시는 분도 계시겠지요.

“걸을 때는 꽃들이 북상하는 속도로만 걸으시기 바랍니다. 바람의 속도에 맞추어서 봄바람에 흩날리는 꽃향기 허공에 스미듯 느릿느릿 걸으시기 바랍니다. 흐르는 구름으로 나그네 되어 오시기 바랍니다. 천상 화원에서 이 계절 들꽃만이 연주할 수 있는 봄날의 향연에 그대를 초대합니다. 어지러운 꽃바다에의 들판에서 꽃날의 몽환에 한줌 영혼을 잠식당해 보지 않고서는 뜨거운 여름을 맞이할 수 없음입니다.”

인용문을 읽어보시면 마치 시를 읽는 듯한 느낌에 공감하실 수 있을 것 입니다. 소리 내어 한 번 읽어보시면 그 느낌을 더욱 잘 느낄 수 있을 것입니다.

3억년을 이어온 잠자리의 윤회

여름 편지에서는 3억년을 이어온 잠자리의 윤회와 같은 삶을 묘사하고 있습니다. 한 해 살이 잠자리가 물속에서 태어나 벌레로 봄을 보낸 후에 여름이 되어 날개를 펼치고 날아다닐 때까지의 과정을 섬세한 글을 통해 자세히 보여주고 있습니다.

여름 내내 저장한 에너지로 잠자리는 허공에서의 교접에 모든 것을 바친다고 합니다. 수정이 끝나면 곧바로 산란을 하고 한 잠자리의 생애는 짧은 삶을 마감하지만, 산란을 통해 새로운 생을 잇는 것으로 잠자리의 삶이 완성되다는 것입니다.

개별적 삶의 생과 사가 이어지고 포개어지면서 잠자리의 생은 영위되어 왔고, 그렇게 3억년의 시간이 흘렀답니다. 인간과 같은 여생이 없는 삶이지만 생이 고달파서 자살을 굼꾸는 일도 없는 것이 야생의 삶이라고 합니다.

한라산의 자연에는 꽃과 곤충만 있는 것이 아니라 한라산 자체가 아름다운 자연이기도 합니다. 여름 편지 중에는 ‘영실’을 주제로 쓴 편지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영주심경의 하나인 영실은 제주도의 아름다운 경치를 대표할 뿐만 아니라 오랜 옛날부터 신들의 고향으로 그려졌다고 합니다.

제주 사람들에게 영실은 신성불멸의 터, 신들의 거처로 기억되었다고 합니다. 그곳에는 아름다운 경치만큼이나 슬픈 전설이 깃들어 있다고 합니다. 어미를 삶은 죽을 먹은 아들들이 대성통곡을 하며 울다 그 자리에서 바위로 굳었다는 것이지요.

가슴 아픈 사랑의 추억, 시린 가슴으로 글썽이는 눈물

저자는 늦은 가을 날 마른 조릿대의 갈색낙엽을 보며 치유하지 못하는 사람의 상처를 떠 올린다고 합니다.

“일생에 가슴 아픈 사랑의 추억하나 없다면 그것이 사람의 인생이겠습니까. 일생에 시린 가슴으로 눈물 한 번 글썽이지 못한 가슴이 어디 사람의 가슴이겠습니까. 등산로를 걷다가 무성한 조릿대를 보거든 너무 미워하지는 말아 주십시오....... 바람에 댓잎 부딪치는 소리가 아름다운 선율로 가슴에 스며듭니다.”

한라산 야생화들을 집어 삼킬 듯이 번식하는 조릿대를 모두 뽑아 버리고 싶은 마음이 들었던 적도 있었다고 합니다. 그러나 조릿대가 한라산 지표면을 든든하게 덮어주고 폭우에 흙을 지켜주고 새들이 둥지를 트는 보금자리가 되어준다는 것은 나중에야 알았다고 합니다.

그가 조릿대를 보며 사랑의 상처를 이야기 한 연유는 땅속의 줄기로 번식하는 조릿대가 생애 단 한 번 꽃을 피우고 나면 고스란히 말라죽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일생을 땅속으로만 뻗으며 살다가 꽃 한번 피워본 사랑의 대가가 죽음으로 이어진다는 것 입니다.

마지막으로 겨울편지 한 대목을 더 소개해드립니다. 겨울편지는 어리목 코스로 등산로를 따라 오르면 만나는 ‘만세동산’이야기 입니다. 만세동산은 어리목에서 윗세오름 대피소에 이르는 길목에 있는 오름입니다. 그는 만세동산의 겨울이 찾아오는 풍경을 이렇게 묘사하고 있습니다.

“그 아득한 광야에 저녁 이내가 몽환처럼 흘러가고 어디선가 짝을 찾는 휘파람새들의 애달픈 세레나데가 바람에 묻어오는 소리를 그려볼 수 있겠는지요. 기척에 놀란 노루들이 귀를 쫑긋 세우고 컹컹 짖어대는 애틋한 야생의 소리를 그대 눈앞에 그려볼 수 있겠는지요.”

바람이 풍경이라는 상상을 해보신적이 있나요? 그는, 겨울 한라산에서는 바람도 풍경이라고 합니다. 바람은 형체를 볼 수 없는 추상이지만, 소리 속에서 바람의 생을 만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소리의 음역에서 바람의 삶은 파란을 헤치고 만장을 넘는데 바람이 죽으면서 결코 그 소리를 남기지 않습니다. 다만 바람은 죽음 끝에서 울음의 무늬를 새길 뿐이지요. 바람은 산에게 길을 묻지 않으며 제 스스로 길이 되어 길 없는 길속으로 사라져갑니다.”

바람의 동산 만세동산을 거슬러 한사람을 오를 때는 누구나 바람이 되기를 바란다고 합니다. 한라산 풍경 속으로 소리 없이 스미는 바람처럼 오라고 합니다.

한라산에선 바람도 풍경이다

지난 가을 제주도 출장을 다녀왔습니다. 한라산은 두 번이나 올랐으니 그동안 다녀오지 못한 우도를 다녀왔습니다. 아마 오희삼이 쓴 <한라산 편지>를 읽었더라면 우도행을 미루고 또 한라산으로 갔을지도 모르겠습니다.

<한라산 편지>는 한라산 이루고 있는 물과 바람과 꽃과 나무와 풀, 눈과 비와 봄, 여름, 가을, 겨울 그리고 옛이야기와 바위와 돌과 숲에 이르기까지 한라산을 가만가만 자세히 들여다 본 기록입니다. 한라산을 담은 수십 여장의 사진은 아름답다는 말로 다 표현할 수 없을  만큼 빼어납니다.

시류에 굴하지 않는 삶을 사는 구상나무 이야기처럼 한라산을 묵묵히 지키는 저자의 삶이 이 책 곳곳에 녹아있습니다. 거듭 말씀드리지만 꼭 소리 내어 한 번 읽어보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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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라산 편지 - 10점
오희삼 지음/터치아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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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林馬 2009.12.19 10:34 address edit & del reply

    귀한글 잘 보고갑니다^^*
    지금 한라산에는 눈이 무지 많이 왔다네요.
    직접 보면 참 좋을것 같은데...

    • 이윤기 2009.12.20 07:53 신고 address edit & del

      네, 몇 전 아이들과 겨울 한라산을 다녀온적이 있습니다. 눈이 워낙 많이 쌓여서 내려오는 길에는 비닐 썰매를 타면서 왔던 기억있네요. 이 책 보고나면 한라산 또 가고 싶어집니다.

  2. 파르르 2009.12.19 17:51 address edit & del reply

    2년전 에베레스트를 등정하다 눈사태로 세상을 떠난 세계적인 산악인 故 오희준의 형이죠..
    금쪽같은 아들을 산에 묻어야 했던 부모님께 이 책이 조그마한 위안이 되었으면 한다고 했죠..
    한라산지킴이십니다..

    • 이윤기 2009.12.20 07:55 신고 address edit & del

      저자 서문에 이런 내용이 언급되어 있더군요. 그러나 "그냥 금쪽같은 아들을 산에 묻어야 했던"이라고만 되어 있어서 누구인지 몰랐습니다.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3. 달그리메 2009.12.19 18:48 address edit & del reply

    대상~축하드립니다.
    "블로그 이윤기만큼한면 된다" 조만간 뭐 그런 책도 나올 것 같습니다.
    엠블렘을 걸어놓으니 블로그가 아주 간지가 납니다^^

    • 이윤기 2009.12.20 07:57 신고 address edit & del

      고맙습니다.

      블로그 덕분에 연말에 상도 다 받아 보게 되었네요. ~ㅋㅋ

      저의 활동에 비하면 경남도민일보에서 완전 폼나는 엠블렘을 만들어준 것이지요.

  4. 김용택 2009.12.20 08:30 address edit & del reply

    아는만큼 보인다고 했던가요?
    산도 그렇군요.
    글도 좋지만 제목이 너무 멋집니다.
    덕분에 한라산 구경 잘했습니다.

    • 이윤기 2009.12.21 12:27 신고 address edit & del

      선생님 ~ 다녀가셨군요.

      고맙습니다.

      1월에 솟대에서 선생님 뵈러가기로 했습니다.

무학산 둘레길만으로 아쉬운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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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스팔트와 콘크리트에 둘러싸인 채 자연으로부터 멀어져 살아가는 도시인들에게 숲과 나무가 있는 숲길을 걷는 것은 심신의 휴식을 위하여 더 없이 좋은 일입니다.

제주올레길, 지리산 둘레길이 잇따라 성공하면서 강화올레길, 변산둘레길 각 지방자치단체마다 잇따라 자기 지역에 있는 아름다운 길을 사람들이 걷기에 좋은 길로 정비하여 소개하고 있습니다. 람사르 총회로 더 유명해진 창녕 우포늪에도 늪 둘레를 걸어서 둘러 볼 수 있는 우포 둘레길 조성하는 계획을 세우는 중이라고 합니다.



마산에도 최근 시민들이 편안하게 휴식하면서 자연을 즐길 수 있는 둘레길 두 군데가 개통되었습니다. 한 곳은 지난 8월 만들어진 팔용산 수원지 둘레길이고 다른 한 곳은 최근 완공된 무학산 둘레길입니다. 팔용산 둘레길은 깊은 산속에 자리한 산중호수 둘레를 걸을 수 있도록 절벽과 바위로 막힌 구간을 정비하여 시민들의 큰 호응을 얻고 있습니다.

최근 개통한 무학산 둘레길도 시민들의 사랑을 받고 있습니다. 무학산 둘레길은 월영동 밤밭 고개에서 석전동 봉화산에 이르는 12.5km의 구간인데, 무학산 2 ~4부 능선을 따라 바다와 시가지를 한눈에 조망하면서 걸을 수 있도록 만들어진 산책로 입니다. 

무학산 둘레길은 수평으로 완만하게 조성된 길이기 때문에 어르신들이나 아이들도 힘들지 않게 바람소리, 새소리, 물소리를 들으며 자연을 만끽할 수 있는 길입니다.




마산시는 내년에 무학산 임도를 활용하여 총 33.5km에 이르는 무학산 둘레길을 만들 예정이며, 봉암 해안로에서 신마산 옛 한국철강 터에 이르는 해안길 8.4km 구간에도 자전거도로와 해안 보행로를 조성할 계획이라고 합니다.

도심에 녹지 축을 만들어 나가려는 마산시의 이 같은 계획은 기본적으로 미래지향적인 바람직한 계획이라고 생각됩니다. 그러나, 몇 가지 아쉬운 점이 없지는 않습니다.


우선, 마산시가 조성하는 무학산 둘레길이나 해안 보행길은 모두 각각 따로따로 입니다. 도심지에 곳곳에서 무학산과 해안 보행길을 연결하는 녹색 보행로가 그물처럼 연결되는 계획이 추진되어야 합니다. 아울러, 마산시가 조성하는 아름다운 산책로를 걷기 위해서는 모두 특별히 시간을 내어 자동차를 타고 가야 합니다.

마산시에서는 "제주도 올레길과 같이 마산 앞바다와 시가지를 조망하면 산림욕까지 겸한 경남 유일의 친환경 웰빙 산책로"라고 홍보하고 있습니다만, 산책은 일부러 자동차를 타고 가서 몇 시간씩 걷는 것을 산책이라고 하지 않습니다.

전문가들은 살기 좋은 도시는 걷는 사람이 편한 도시가 되어야 한다고 말 합니다. 마산시는 매년 11월 11일 두발로데이라는 행사를 하고 있지만, 이날은 걷기 힘든 도심 길을 1년에 딱 하루만 어깨 띠를 두르고 현수막을 들고 공무원과 관변단체 회원들만 걷는 전시성 행사날일 뿐입니다.

걷기에 편한 도시는 자동차를 타고 가서 특별한 길을 걷는 도시가 아니라 집을 나와서 직장으로 가는 길, 집을 나와서 시장으로 가는 길, 그리고 아이들이 학교에 가는 길, 저녁을 먹고 나와 가족과 함께 산책하는 동네 길처럼 매일매일 걷는 길이 걷기에 좋은 길이 되어야 합니다.

마산시의 도시정책이 산길, 숲길 등 특별한 길을 아름답게 만드는 일에만 편중되지 않고, 도심지를 안전하고 편안하게 걸을 수 있도록 걷고 싶은 그리고 걷기 좋은 보행로를 만드는 일도 균형 있게 추진되었으면 좋겠습니다.

※ 12월 1일 KBS 창원 라디오 생방송 경남 청취자 칼럼 원고를 조금 고쳤습니다.

KBS 창원 라디오 생방송 경남 청취자 칼럼 12월 1일 방송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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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태지 2009.12.03 22:31 address edit & del reply

    박소영 아나 시간때 인터뷰 하셨군요. 글 잘 읽었습니다.

    • 이윤기 2009.12.04 09:16 신고 address edit & del

      매주 화요일 오전에 5분간 청취자 칼럼을 진행합니다. 쉽지 않네요.

  2. 林馬 2009.12.07 16:02 address edit & del reply

    정말 맞는 말인것 같네여~
    차타고 역부러 가는길이 아닌 생활속의 둘레길...

    • 이윤기 2009.12.08 09:18 신고 address edit & del

      네, 사람들이 일상적으로 다니는 길을 좀 더 걷기 좋은 길로 만드는 노력이 함께 이루어졌으면 좋겠다는 생각입니다.

블로그 1년, 시민운동가 파워블로거 되기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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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9월 8일에 블로그를 시작하여 1년이 조금 더 지났습니다. 블로그 활동 딱 1년째 되는 날,  지난 1년간의  블로그 활용을 돌아보는 기록을 남겨두기 위하여 필요한 메모를 해 두었습니다.

저의 블로그 시작은 사실 아주 우연하게 이루어졌습니다. 2008년 9월 다음세대재단이 주최한 <시민운동가 인터넷 리더십 교육>에 참가하지 않았다면 아직 블로그를 시작하지 않았을지도 모릅니다. 솔직히 말씀드리자면, <시민운동가 인터넷 리더십 교육>도 꼭 블로그를 한다거나 인터넷 리더십을 키워야 한다는 생각으로 참가한 것이 아닙니다.




아마, 교육장소가 제주도가 아니었다면 참가하지 않았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여름 휴가도 제대로 못 갔으니 휴가 삼아 제주도에 갔다 왔으면 좋겠다는 생각으로 참가하였기 때문입니다. 

사실, 2008년 봄 쯤에 어떤 자리에서 파워 블로거 김주완기자가 저에게 "블로그 한 번 해보라"고 권유한 적이 있습니다만, 그 때도 블로그가 뭔지 몰랐기 때문에 귀담아 듣지 않았습니다.  다음, 네이버에 이미 블로그 있는데 무슨 블로그를 또 하라는 것인가하고 생각했습니다.

다음세대재단이 제주도에서 진행한 <시민운동가 인터넷 리더십 교육> 이전에 지역에서 경남도민일보가 주최한 블로그 컨퍼런스가 있었는데, 그 때도 별관심이 없어서 참가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제주도에서 실시된 2박 3일간의 집체교육에서 많은 영향을 받았습니다.  RSS, 트랙백, 위키 등의 용어를 처음 들었으며, 웹 2.0이라고 하는 새로운 인터넷 환경을 처음으로 이해하게 되었습니다.  처음 PC통신 천리안을 시작 할 때, 혹은 처음으로 인터넷을 시작할 때와 같은 새로운 세계를 경험할 수 있었습니다.

내가 블로그를 시작하게 된 계기

제주에서의 2박 3일 교육과정에서 블로그를 통한 새로운 소통, 대안적인 소통의 가능성을 확인하였고 새로운 매체의 탄생, 1인 미디어의 가능성 등에 공감하여 2008년 9월 6일 티스토리에 <이윤기의 세상읽기, 책 읽기, 사람살이> 블로그를 개설하였습니다.

사실, 2002년 개인 도메인을 서비스를 처음 시작 할 때 개인 홈페이지를 만들기 위해 구입해 놓고 매년 관리비용만 내고 있던
www.ymca.pe.kr 개인 도메인을 티스토리 블로그를 만들 때 활용할 수 있는 것도 매력적인 일이었습니다.
 
블로그를 제목을 '이윤기의 세상읽기, 책읽기 사람살이'라고 정한 것은 블로그를 통해 제가 잘 쓸 수 있는 글이 어떤 것인가를 생각해보고 정한 것 입니다. 저는 이미 오마이뉴스를 통해 시민운동 관련 기사, 서평기사 그리고 사는 이야기를 주로 써 왔기 때문입니다.  

처음 블로그 개설하고 나서는 홈페이지나 카페에 글을 올리듯이 무조건 많이 포스팅하면 좋은 줄 알고 일주일 동안 전에 써 둔 40여건의 해외여행과 연수 글을 하루에 6~8편씩 한꺼번에 포스팅하였습니다. 

한참 후에 경남도민일보 '블로그 경남's'이 주최하는 블로그 강좌에(10월 13일)에 가서 이런식으로 한꺼번에 포스팅하면 오히려 사람들이 글을 읽지 않는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2008년 9월 8일부터 2009년 9월 7일까지 저의 블로그 활동 1년 성적은 아래와 같습니다. 


  1) 누적 방문자 127만 명
  2) 블로그 포스팅 - 424개 (다음 뷰 기준, 1/4은 베스트 기사)
  3) 블로그 댓글 - 2064개, 트랙백 - 193개, 방명록 - 47개, 일일평균 방문자 3400
  4) 2009년 1월 5일, 누적 방문자  50만 명 기록, 6월 19일, 100만 명
  5) 한RSS - 47명/ 다음뷰 구독 - 54명
  6) 2009년 1월 2주 다음뷰 베스트 뷰 블로거 선정



비교적 괜찮은 성적이지요. 어떤 분들은 저를 '파워블로거'라고 불러주시더군요. 그런데 블로그 세상을 좀 돌아다녀보니 아직 파워블로거 축에 끼기는 어렵겠더라구요. 제 생각엔 '로컬 파워블로그' 정도는 되는 것 같습니다.

보도자료 쓰기, 시민기자 활동 그리고 블로그

제가 블로그를 시작한 계기가 된 것은 앞서 설명드린 것 처럼, 2008년 다음세대재단에서 주최한 시민운동가 인터넷리더십 교육이 직접적인 계기가되었습니다. 그리고, 꾸준히 블로그에 관심을 갖고 정착하게 된 것은 파워 블로그 김주완 기자의 후원과 경남도민일보 블로그 강좌의 도움이 컸습니다.

그러나, 블로그를 꾸준히 진행할 수 있었던 것은 2001년 4월부터 시작한 오마이뉴스 시민기자 활동이 주요한 동력이었습니다. 왜냐하면, 제가 오마이뉴스 시민기자 활동을 꾸준히 해온 것과 블로그 활동을 꾸준히 해 오는 것은 같은 이유가 있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시민단체 활동가로서 제가 하는 일, 그리고 제가 속한 단체가 하는 일, 그리고 시민단체와 제가 관계 맺고 있는 여러 NGO가 하는 일이 시민들에게 좀 제대로 알려졌으면 좋겠다는 문제의식으로부터 비롯됩니다.

물론, 시민운동에 대한 일부 평가 중에는 언론보도에 너무 목을 맨다는 지적도 있지만, 저희 단체가 하는 일, 시민운동 진영이 하는 일이 시민들에게 제대로 전달되는 것은 여전히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제가 낸 보도자료가 엉터리로 해석되거나 왜곡되어 보도되는 경험을 적지않게 하였습니다. 어떤 때는 적지 않은 시간을 들여 기자를 만나 인터뷰를 하였지만, 제가 전하는 주장과 정보가 잘못 전해지는 경우도 있었구요.

이런 일이 드물지 않게 일어나는 것은 기자나 방송 PD 혹은 작가분들과 시민단체 활동가로서 제가 가지고 있는 생각과 관점이 달라서 일어나는 문제도 있었습니다.

저는 기획취재나 집중 보도가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일들이 언론에서는 단신으로 처리될 때도 있었고, 저는 별로 중요하다고 생각하지 않는 사건을 보도하기 위하여 언론에서 온갖 자료를 요청하는 경우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못지 않게 시민단체 활동을 제대로 알릴 수 있을 만큼 기자나 방송관계자들이 전문성을 가지지 못한 측면도 있었습니다. 일정기간이 지나면 출입처와 담당부서를 바꾸는 기자들이나 프로그램 개편이 이루어지면 방송내용이 바뀌는 PD 혹은 작가분들이 지역문제 혹은 시민운동 영역에서 일어나는 모든 문제에 대하여 전문성을 가질 수 없는 것은 어찌보면 당연합니다.

보도자료, "만약 내가 기자라면..."

그래서, 오마이뉴스 시민기자가 되기 전에 제가 처음 시도한 일은 보도자료를 잘 작성하는 일이었습니다. "기자들에게 현장에 취재도 안 나오고 보도자료만 베껴서 기사 쓴다고 욕하지 말고 보도자료를 잘 쓰자." 하는 목표를 세웠습니다.

나중에 알고 보니 일부 엉터리 기자들을 제외하고는 기자들이 정말 일일이 현장에 나와서 취재할 수 없을 만큼 바쁘더군요. 그 때부터 "기자는 진짜로 바빠서 현장에 못 나오는 경우도 많다."하는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결국, 바쁜 기자들에게 제가 하는 일, 저희 단체가 하는 일, 시민단체가 하는 일을 제대로 알리려면 보도자료를 정확히 그리고 기사로 반영하기 좋게 잘 작성해서 건네는 것이 중요하더군요. 그래서, 기자들이 쓴 기사를 눈여겨 보면서 보도자료를 작성하기 시작하였습니다.

이 대목에서 제가 쓴 보도자료를 받은 기자분들이 다른 사람이 쓴 것과 별로 다르지 않았다고 하신다면 별로 할 말 없습니다. 하지만, 나름대로는 "기자들이 좋아하는 보도자료 쓰기"라는 원칙을 정해놓고 작성하였습니다. 함께 일하는 후배들에게도 보도자료 작성하는 훈련(?)을 시킨적도 있습니다.

아무튼, 이런 경험을 쌓아오던 차에 2001년 오마이뉴스와 만나게 되었습니다. 기존 언론이 단신으로 처리하거나 취재, 보도를 해주지 않는 일들도 제가 직접 기사를 작성하여 올리면 적지 않은 전국의 독자들을 만날 수 있었습니다.

시민기자와 시민단체 활동가로서 영역이 통합되는 경험을 오마이뉴스를 통해서 할 수 있었습니다. 사실, YMCA가 하고 있는 'TV 안 보기 운동', '공장과자 안 먹기운동' 그리고 일정한 성과를 내고 마무리 된  '마라톤 참가비 환불 운동' 같은 경우는 모두 오마이뉴스를 통해 전국적 이슈로 부각되었습니다.

지역 언론이 관심을 가져주지 않았던 활동이 오마이뉴스를 통해 서울 지역 언론과 방송 그리고 잡지를 비롯한 기타 매체를 통해서 증폭되었고, 그 운동이 전국으로 확산되거나 혹은 어떤 문제를 해결하는데 큰 압력으로 작용하는 일이 일어났습니다.

아울러, 2008년 9월 블로그 시작은 오마이뉴스 시민기자 활동을 통해 축적된 경험을 새로운 블로그 공간에서 펼칠 수 있는 더 없이 좋은 기회가 되었습니다. 


※ 이 글은 다음세대재단이 주최한 <풀뿌리운동가를 위한 인터넷리더십교육>과 <경남도민일보 블로그 강좌>에서 발표한 내용을 수정 보완하였습니다.



저의 블로그 1년 경험을 모두 세 번으로 나누어 포스팅 할 예정입니다.

①블로그 1년, 시민운동가 파워블로거 되기까지...
②블로그하면 과연 세상을 바꿀 수 있을까?
③블로그 1년, 블로그 하면 돈 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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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달그리메 2009.11.09 09:39 address edit & del reply

    그러고 보니 김주완기자님이 지역 블로거들의 대부같은 존재네요~
    파비님도 김주완기자님이 처음 권유를 하게 되어서 블로그를 시작했다고 하던데.
    블로그 1년 만에 이윤기님처럼 그리 되기가 결코 쉽지는 않을 것 같아요.
    그런 면에서 아주 특별한 분이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 이윤기 2009.11.10 08:39 신고 address edit & del

      네, 김주완 기자님께서 저 한테 가르쳐준건 없는데... 저는 그 분에게 어깨 너머로 많이 배웠습니다. 블로그 하는 뒷모습을 보면서 배웠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2. 삼식 2009.11.09 09:42 address edit & del reply

    1년밖에 않되었군요!
    대단하십니다.

  3. 동피랑 2009.11.09 15:55 address edit & del reply

    '민주시민사회'란게 자기 자리에서 최선을 다해 열심히 사는 것만 해도 이미 한 역할 하는건데 윤기씨나 김주완 기자는 이미 세상을 변화 시키는 일에 한몫 이상의 역할을 하고 계신듯 합니다.
    보는 제가 다 즐겁고 뿌듯하네요...^*^

    • 이윤기 2009.11.10 08:46 신고 address edit & del

      고맙습니다. 제 경험담을 장황하게 쓴 것은 시민운동가들이 대체로 저 처럼 블로그를 성공시킬 수 있는 가능성이 높다는 것을 말하고 싶어서였습니다.

  4. 김천령 2009.11.09 16:40 address edit & del reply

    왕성한 활동 계속 기대하겠습니다.
    잘 보고 갑니다.

    • 이윤기 2009.11.10 12:49 address edit & del

      고맙습니다. 짧은 발표시간에 다 말하지 못한 내용을 정리해보려고 글을 쓰고 있습니다.

  5. 크리스탈 2009.11.09 17:12 address edit & del reply

    이윤기님의 기록하는 습관이 블러그 성향과도 잘 맞는거 같아요.
    2주년, 3주년마다의 포스팅도 기대됩니다. ㅎㅎㅎ

    • 이윤기 2009.11.10 12:50 address edit & del

      기록으로 남겨두고... 글을 써야겠다 싶은 내용은 많은데...막상 다 쓸 수 있는 시간이 없어서... 아쉬움이 큽니다.

  6. sktmzk 2009.11.09 19:10 address edit & del reply

    티스토리는 아쉬운 것이 광고가 참 많아요. 그런데 광고없는 네이버 같은 것을 쓰자니 기능이 너무 불편하고;;;

    • 이윤기 2009.11.10 12:51 address edit & del

      티스토리도 광고없이 사용할 수 있습니다. 티스토리 광고는 블로거 개인의 수익을 위한 광고이기 때문에 광고를 달지 않으면... 네이버처럼 사용할 수도 있습니다.

      대신 아기자기한 기능들은 좀 부족합니다.

  7. 하아암 2009.11.09 22:28 address edit & del reply

    블로그 시작의 목적. 저와 비슷하셨던 것 같네요.
    그나저나. 기획연재까지 하시고... ^-^ 파워블로그 맞으신걸요? ㅎㅎ

    • 이윤기 2009.11.10 12:52 address edit & del

      반갑습니다. 그리고 공감해주시니 반갑습니다. 하아암님도 멋진 블로그로 발전시키시기 바랍니다.

  8. 돌마님 2015.10.16 14:34 address edit & del reply

    오늘 강의 잘 듣고, 감사합니다.
    블로그보니 어마무시하고
    대단하십니다.~~
    짱짱!!
    블로그로 세상을 바꿀 수 있다는게 신기할 따름입니다.
    좋은일 많이 해 주셔요!!
    응원합니다!!!
    아자아자!!

    • 이윤기 2015.10.18 18:28 신고 address edit & del

      네 고맙습니다 ^^
      멋질 블로깅 하시기를 응원합니다.

성산일출봉에서 달인을 만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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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9월 5일 새벽, 시민운동가 인터넷 리더십 연수에서 만난 활동가 몇 사람과 성산일출봉에 해맞이를 하러갔다. 맑은 날씨였지만, 바다 위 구름이 완전히 걷히지 않아 바다에서 솟아오르는 해는 구경을 못했지만, 구름 사이로 빨갛게 오르는 일출 구경을 잘 하였다.

새벽부터 옹기 종기 모여 앉아서 해맞이를 하던 사람들은 DSLR, 똑딱이 디카, 휴대폰카메라까지 모두 꺼내서 구름사이로 떠오르는 해를 카메라에 담고 있었다. 잠시 후 해가 구름위로 완전히 솟아오르자 이번에는 함께 성산 일출봉에 오른 가족, 친구들과 함께 여기 저기서 기념사진을 찍었다.

서로 번갈아가며 사진을 찍던 사람들은, 같이 온 가족, 친구와 다같이 사진을 찍으려고 낯선 주변사람에게 촬영을 부탁하는 사람도 더러 있었다. 그런데, 이때 '새마을' 조끼를 입은 할머니 한 분이 자진해서 사람들에게 사진을 찍어주겠다고 나선다.

글쎄 외모로 짐작되는 연세로 보다 디지털 카메라를 잘 다룰 수 있을까하는 염려가 되었지만, 어라 그게 아니었다. 카메라를 잡은 할머니는 아주 단호하게 '피사체'들을 이리 저리 옮기라고 명령한다.  40년간 성산일출봉을 지켜온 그 권위(?)에 누구도 명령을 거절하지 못하고, 할머니가 가서 서라고 한 자리에 가서 서서 사진 찍힌다.

보통 한 팀에게 성산일출봉을 배경으로 보통 3~4장의 사진을 찍어주는데, 그 때마다 피사체들에게 자리를 옮기라고 하고, 당신께서도 가장 좋은 각도에서 촬영할 수 있는 위치로 옮겨다닌다.

바위위에도 올라서고, 계단에도 올라서고.....

이렇게 할머니가 사진 찍는 모습을 본 사람들 중 여럿이 할머니께 사진촬영을 부탁한다. 할머니는 어떤 카메라도 '그침'이 없다. 주인에게 셔터가 어느 그냐, 줌은 어느 그냐하고 물어보는 일도 없다. 관광객들이 들이미는 어떤 카메라도 주저 없이 받아서, 여기가서 서라고, 저기 가서 서라고 명령(?)을 한다.

나중에 해맞이를 왔던 사람들이 대부분 내려가고 난 후 할머니에게 커피와 음료를 주문했다. 차 한 잔을 마시며 물었더니, 매일 아침 성산 일출봉에 올라와서 차와 음료 간단한 간식을 팔면서 사람들에게 사진을 찍어주었다고 한다.

언제부터하셨냐고 물었더니, 1967년부터 시작했으니 40년이 넘었다고 한다.  비가 오지 않는 날이면, 매일 아침 40년을  찍었으니 어찌 달인(?)이 안될 수 있었을까?  개그콘서트 나오는 김병만은 대충 16년씩 한 가지 일만하고 나와서 달인이라고 하는데.... 성산 일출봉에서 사진찍는 이 할머니는 진짜 달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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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김주완 2008.09.18 14:58 address edit & del reply

    드뎌 블로고스피어에 진출하셨네요. 축하합니다.
    블로그는 한꺼번에 많은 글을 올리는 것보다 하루에 두어 개씩 꾸준히 올리는 게 좋습니다. 약간 시차를 두고요...
    보는 쪽쪽 추천 날리겠습니다. 파워블로거의 출현 기대됩니다.

    • 이윤기 2008.09.18 23:07 신고 address edit & del

      격려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앞선 경험 많이 전수해주시기 바랍니다

  2. 이종은 2008.09.18 21:40 address edit & del reply

    제 글하고는 또다른 감칠맛..
    할머니 67년부터 올랐다고 하셨어요..

  3. 이필구 2008.09.25 16:20 address edit & del reply

    재미있게 잘 읽었습니다.
    그날의 기억이 새록새록하네요...
    저도 블러그를 언제 만들까 고민하다
    9월을 넘기면 안될 것 같아 간단하게 만들었네요...
    심심하면 놀러오세요..
    http://ymca289.tistory.com

[제주 자전거 일주5] 눈 덮힌 한라산에서 컵라면 먹어 보셨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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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번째로 소개하는 산방식당은, 앞 기사에서 소개한 3대 맛집에 비하여 결코 부족함이 없는 곳이다. 이미 제주를 찾는 많은 사람들에게 널리 알려진 식당이다. 아마 여름에 자전거 일주를 했더라면, 이 집이 첫 손가락에 꼽혔을지도 모른다.

이어서 소개하는 음식은 이른바 맛집에서 먹은 음식은 아니다. 여행을 하며 재래시장과 정육점에서 사먹은 생선회와 흑돼지 바비큐도 기사로 소개할 만큼 맛있었다. 음식 맛뿐만 아니라 곳곳에서 만난 사람 냄새 물씬 풍기는 '정'과 이야기가 담겨 있어 함께 소개한다.

쫄깃한 면발 '밀면'과 구수한 국물이 일품인 '고기우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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돼지고기 수육, 밀면, 고기우동. 딱 세 가지만 하는 집. 세상 모든 맛집이 가진 공통점은 여러 가지 메뉴가 없다는 것. 이 집도 마찬가지다. 문도 열기 전인 오전 11시에 도착했다. 이미 제주 여행객들에게 널리 알려진 맛집이다. 수육 맛이 일품이라고 하는데, 채식주의자인 나는 먹어보지 않아 그 맛을 전할 수 없다.

문 열기 전에 식당에 들어가 30분 넘게 기다리자 밀면과 고기 우동이 나왔다. 밀면은 시원한 맛, 고기 우동은 담백한 국물 맛이 일품이다. 밀면에는 돼지고기 수육 몇 점이 올려져 나오는데, 옆자리 일행에게 먹으라고 덜어주었다. 밀면 육수는 멸치로 우려낸 듯했는데 겨울이라 조금 춥게 느껴졌다. 대신 고기 우동은 국물이 뜨끈뜨끈해 겨울에 먹기 딱이었다.

밀면과 고기우동을 나눠서 시켜놓고 옆자리 동료와 함께 나누어 먹은 우리팀은 어느 것이 더 맛있다는 딱 부러진 결론을 짓지 못했다. 하지만, 자전거를 타고 겨울바람을 맞으며 추위에 떨었기 때문인지 따뜻한 국물이 좋았다는 쪽이 약간 우세했다. 돼지고기 수육 좋아하시는 분들, 밀면 좋아하시는 분들에게 딱 좋은 집이다.

우리가 밀면과 우동을 먹는 동안 홀에 손님들이 가득 찼다. 과연 이미 소문난 맛집이라는 것을 단박에 확인할 수 있었다. 오래된 맛집답지 않게 언제 지었는지 깨끗한 새 건물이다. 대정 초등학교를 찾은 뒤 지나가는 사람에게 물어보면 쉽게 찾을 수 있다.

매일시장 싱싱한 활어회, 인심 후한 야채 노점 할머니

지금부터 소개하는 곳은 '맛집' 반열에는 들 수 없지만, 나름대로 야박하지 않은 제주 인심을 잊을 수 없어 소개한다. 그래도 자전거 일주 여행을 하는 이들에게는 나름대로 도움이 될지도 모르기 때문에.

자전거로 제주 일주를 한다고 소문을 냈더니 몇 년 전에 다녀왔다는 후배가 서귀포 월드컵 경기장 옆에 있는 OO마트에서 회를 사먹으면 싸고 푸짐하게 먹을 수 있다고 소개해주었다. 그 말만 믿고 찾아갔는데, 그동안 회 값이 많이 올랐는지 가격에 비하여 전혀 푸짐하지 않았다.

급히 작전을 변경하였다. 쌀과 부식만 바구니에 담으면서 진열대 근처에서 일하는 분에게 물어보았다. "여기 마트는 회 값이 비싼데 어디 가면 회를 살 수 있나요?"라고 물어보았다. 그랬더니 서귀포 매일시장으로 가 보란다. 차를 타고 네비게이션에 매일시장을 찍어 회집 골목을 찾아갔다. 수족관에서 펄펄 살아 뛰는 놈들 중에서 돔, 히라스, 오징어 그리고 전복을 사와서 민박집에서 실컷 먹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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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 자전거 일주 두 번째 기사에서 이미 소개한 것처럼 숙소에 돌아와 회를 먹고 나선, 횟집에서 회를 뜨고 남은 생선머리와 뼈로 지리를 끊였다. 횟집 아저씨가 생선뼈와 머리를 담아 주길래 양념이 하나도 없어서 끓일 수가 없다고 했더니 "'지리'를 끓이면 된다"고 귀띔해 줬다. 그리곤 건너편 야채 파는 할머니에게 지리에 들어가는 재료를 사가서 소금으로 간만 맞추면 될거라고 일러준다.

할머니에게 횟집에서 생선머리와 뼈를 주더라고 지리를 끓일 거라고 했더니 비닐봉지를 꺼내 무 하나, 청양 고추 다섯 개, 깻잎 한 줌, 미나리 한 줌, 마늘 열 쪽을 고루고루 담아 주었다. 가격은 모두 합하여 2000원만 달라고 하였다. 숙소로 돌아와 생선뼈와 머리를 솥에 넣고 한소끔 끓인 후 할머니가 챙겨준 야채를 다듬어 넣고 간을 맞추었다.

그런데, 우리팀 모두로부터 예상치 못한 칭찬을 들었다. 시원하고 맛있단다. 이건 아무리 생각해도 단 돈 2000원에 생선뼈와 머리를 넣고 지리를 끓일 수 있는 재료를 챙겨준 야채 노점 할머니 마음이 담겼기 때문이다. 아무튼 매일시장 횟집에서는 OO마트보다 훨씬 푸짐하게 회를 살 수 있다. 그리고 횟집에서 챙겨주는 생선뼈와 머리는 건너편 야채 파는 할머니에게 재료를 사오면 맛있는 '지리'를 끓일 수 있다.

저녁에는 회를 먹고 나서 밥과 함께 찌개를 먹을 수 있고, 소주 한 잔하기에도 그만이다. 먹다 남은 지리는 아침해장으로도 그만이다. 저녁에 지리 두 냄비를 끓여서 한 냄비는 다음날 아침에 찌개 삼아 김치와 김을 반찬으로 밥을 먹었는데, 모두 맛있었다고 한다.

성산 일출봉 흑돼지 바비큐, 함덕 해수욕장 정식

성산일출봉 아래 펜션에서는 바비큐 도구를 빌려준다. 성산 농협 건너편에 있는 정육점에서 흑돼지를 사고, 농협에서 각종 야채와 쌈장을 사와서 돼지고기 바비큐를 해 먹었다. 숯불에 흑돼지 10kg과 고구마를 구워먹고도 모자라 통닭도 몇 마리 더 시켜서 숯불에 얹어 놓고 먹었다고 한다(참고로 채식주의자다). 나는 안 먹어 보았으나 다른 일행들에 의하면 분명히 보통 돼지고기보다 맛있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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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 날 비를 쫄딱 맞고 자전거를 타다가 함덕 해수욕장에 있는 '현우식당'에서 점심을 먹었다. 원래 점심 식사 예정지가 아니었기 때문에 자동차로 뒤따르던 진행팀이 급하게 찾아낸 곳이다. 그냥 가정식 백반(정식)을 먹을 수 있는 곳이다. 종주 내내 이름 있는 음식만 먹었기 때문에 그냥 밥과 국, 그리고 반찬이 나오는 식사가 그리웠다. 이 곳에선 메뉴를 정하기 위해서 고민하지 않아도 되었으며 가격도 저렴했다.

솔직히 음식 맛이 뛰어난 집은 아니었지만, 무엇보다 사장님 내외분 인심이 좋았다. 비를 쫄딱 맞은 우리팀을 기쁘게 환영해주었고, 밥 먹는 동안 난로에서 장갑과 양말을 말릴 수 있도록, 그리고 식사 후에 출발 때까지 쉬었다 갈 수 있도록 배려해주었다. 다른 손님을 맞이하는데, 방해가 될 수도 있었는데 끝까지 싫은 내색하지 않고 배웅해주었다.

제주 시내에 있는 '한국관'은 곱창전골과 불고기 전골을 전문으로 하는 식당이다. 이 집 역시 채식주의자인 나는 먹어보지 않아서 맛은 모르겠다. 고급스러운 식당인데도 초라한 대학생 단체 여행객들을 위하여 이것저것 자상하게 챙겨주시는 여사장님이 기억에 남는다.

우리가 제주에서 밥 먹으러 갔던 식당 중에서 제일 비싼 집이다. 비싼 식당에서 보장되는 가격에 비례하는 기본적인 맛은 보장되는 집인 것 같다. '싸고 맛있는'이라는 우리 기준보다는 조금 예산을 넘어섰지만, 젊은 친구들과 유쾌하게 말을 섞으며 다음 날 한라산 등반을 격려해주시던 사장님 때문에 소개에서 빠뜨릴 수 없는 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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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밖에 우리 팀이 들렀던 곳으로는 둘째 날 아침을 먹었던 한림읍 입구에 있는 몸국을 하는 해장국집이 있었는데, 이집은 정말 평가가 딱 반으로 나뉘었다. 선지와 해초가 들어간 몸국을 국물도 남기지 않고 깨끗이 비우는 쪽과 서너 숟갈만 뜨고 고스란히 남긴 쪽이 맛에 대해서 서로 너무 다르게 평가했다.

첫 날 점심은 자전거 대여점 건너에 있는 국밥집에서 설렁탕을 먹었는데, 음식 맛은 특별할 것이 없었지만 자전거 일주 출발을 위한 여러 가지 준비(옷 갈아입기, 화장실 다녀오기 등)로 번거롭게 해도 싫은 내색을 하지 않는다. 아마 자전거 빌리는 사람들이 이 집에서 밥 먹고 출발하는 일이 많기 때문이지 싶다.

그 외 사전 답사팀이 미리 확인해두지 않아 그냥 아무 식당이나 찾아들어갔던 첫 날 저녁 해물뚝배기 맛은 시장을 반찬 삼아 맛있게 먹었지만 기사로 소개할 만한 집은 못 된다.

'컵라면', 이보다 더 맛있을 순 없다!

한라산 컵라면은 맛이 다르다. 물론 육지에서 파는 컵라면이나 제주 시내에서 파는 컵라면이나 모두 똑같은 재료를 사용한다. 그렇지만, 온 사방이 하얀 눈으로 뒤덮인 한라산 진달래 대피소에서 김밥과 함께 먹는 컵라면 맛은 특별하다. 영화 <식객>에는 군대시절에 먹었던 라면 맛을 재현하기 위해 각고의 노력을 하는 장면이 나온다. 결국 라면 맛의 비밀은 '춥고 배고픔'에 있다는 것이 영화의 마지막 장면이다.

새벽부터 아이젠을 착용하고 시작한 한라산 등반길, 7km 이상을 걸어 올라간 진달래 대피소에서 먹는 1500원짜리 컵라면이 어이 맛있지 않을 수 있을 것인가? 가히 군대에서 먹던 봉지라면을 넘어서는 맛이다. 아직 군대도 다녀오지 않은 우리 참가자들에게는 아마 그동안 먹어본 라면 중에 최고의 맛이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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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록담 등반 시간에 쫓겨 후루룩~ 후루룩~ 소리를 내며 국물까지 남김없이 먹어치우고, 컵라면 용기는 모두 비닐봉지에 담아서 배낭에 매달고 정상까지 다녀왔다. 등산가서 남들이 모두 김밥 먹을 때 산에서 먹는 라면 맛은 모두가 부러워할 만하다. 밖에서 먹는 라면 맛은 추우면 추울수록 더 맛있어진다. 하물며 눈 내리는 한라산 중턱에서 먹는 컵라면 맛이야 어디에 비할소냐 ! 이건 경험해 본 사람만 공감할 수 있는 맛이다.

4박 5일 동안 자전거로 제주를 한 바퀴 돌면서 우리가 들렀던 식당, 먹었던 음식에서 공통적으로 발견할 수 있었던 것은 '따뜻한 배려'와 '넉넉한 인심'이었다. 보통 관광지에서 느껴지는 어느 집이나 똑같은 음식 맛도 아니었고, 먹을 것도 없는데 밥값만 비싼 그런 집도 잘 피해 다녔다. 마치 내가 사는 도시에 오래된 맛집을 찾아다녔던 것처럼, 열여섯 명이 우루루 몰려다니는 주머니가 가벼운 여행자들을 살갑게 맞아주는 곳만 골라 다닐 수 있었다.

힘에 겨운 240km 제주 자전거 일주와 한라산 겨울 등반을 해냈지만, 맛있는 음식을 찾아 먹는 재미 덕분에 참가자 모두에게 훨씬 더 즐거운 여행으로 기억될 수 있을 것 같다.

*** 이 글은 2008년1월 25~29일까지 4박5일 일정으로 진행한 '예비대학생과 함께 하는 자전거 제주 일주'  참가기로 당시 오마이뉴스에 기사로 연재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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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 자전거 일주1] 자전거 타고 240km 제주 일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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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0081월 25~29일까지 '예비대학생과 함께 하는 자전거 제주 일주'를 다녀온 기록입니다. 4박 5일 동안의 자전거 일주와 한라산 산행 기록을 2회로 나누어서 연재하고, 자전거 일주를 하면서 깊어지는 젊은이들의 우정과 ‘결국은 혼자가 아니라 함께 목적지에 도착해야 한다’는 것을 깨닫고 변화하는 과정에서 형성되는 공동체적 체험 기록 1회, 그리고 여행지에서 만난 인심 좋고 맛있는 집 소개 1회, 모두 4회로 나누어 올릴 예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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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 해안도로 240km는 자전거를 타고, 한라산 성판악코스 왕복 19.2km는 걸어서, 대학생과 예비대학생들이 함께 4박 5일 동안 제주도를 여행하고 돌아왔다. 겨울 한복판인 지난 1월 25일부터 나흘 동안 자전거로 제주도 해안도로를 일주하고, 닷새째 날에는 눈 덮인 한라산을 올랐다.

이번 여행은 처음부터 YMCA 대학생 회원들이 기획하고 준비한 행사였는데, 고3 예비대학생 후배들과 함께하는 ‘제주도 자전거 일주’와 ‘한라산’을 등반하는 다소 무리한 등반을 하는 계획을 세웠다. 기자는 대학YMCA 회원들이 준비한 이번 행사를 지원하는 실무자로 함께 참여하였다.

대학-Y 회원들이 세운 애초 계획과 달리 고3 예비대학생 참가 신청자는 3명밖에 없었고, 오히려 대학생들이 더 많이 참가하게 되었다. 16명이 참가한 이번 제주도 자전거 일주에는 초등학생 1명, 예비대학생 3명, 대학생 2명, 대학Y 회원 7명, 실무자 3명이 참가하였다.

자전거 일주 이틀 전인 1월 23일 부산항에서 배를 타고 먼저 제주도에 도착한 2명의 실무자가 렌터카로 전체 코스를 답사하면서 시간 계획을 작성하고, 숙박 장소와 식당을 예약하였다. 1월 25일 자전거 일주단은 마산에서 출발하여, 부산 공항에서 비행기를 타고 오전 11시에 제주공항에 도착하였다. 마중 나온 선발대와 만나서 곧장 자전거 대여점으로 이동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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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항 근처에 있는 자전거 대여점에서 15대의 자전거를 빌리고 근처 식당에서 간단한 점심 식사를 한 후에 인사를 나누고 ‘출발식’을 하였다. 이번 행사에서 처음 만나는 얼굴들도 있어 서먹하였는데, 출발식을 하면서 다 같이 인사를 나누고 도로주행에 대한 주의사항을 나눈 후에 가볍게 스트레칭을 하고 기록을 위하여 출발 기념촬영을 하였다.

참가자 대부분이 평소 자전거를 일상적으로 타는 것이 아니라 처음부터 무리한 일정을 잡는 것보다 첫날은 가벼운 워밍업으로 짧은 구간을 달리기로 하였다. 전체 일정과 숙박 장소를 고려하여 첫날은 협재해수욕장이 있는 한림까지 해안도로와 일주도로를 번갈아 대략 40km를 달렸다.

아름다운 바닷길, 제주 해안로

기운차게 페달을 밟으며 제주항 근처 대여점을 출발하였지만, 평소에 자전거를 타지 않았던 참가자들은 용연과 용두암을 향해가는 언덕길을 만나면서 곧바로 주춤거리기 시작하였다. 자전거 일주에 대한 긴장감 때문인지 바다로 이어지는 ‘용연’에 도착하였지만, 다리를 건너서 경치를 구경하거나 사진을 찍는 사람이 하나도 없었다. 잠깐의 휴식 후에 용두암에 도착하여 바닷가로 내려가 사진을 찍고 오는 동안 긴장도 풀리고 몸도 풀리는 듯하였다.

용두암을 출발하여 이호해수욕장-천연 돌염전-애월-한림으로 이어지는 일주도로를 달리는 동안 빼어난 제주 해안 경관을 보며 즐겁게 달릴 수 있었다. 첫날 제주시에서 한림으로 이어지는 구간은 경사가 급한 오르막이 없어 초등학교 4학년 참가자도 무난하게 달릴 수 있었다. 해안도로를 따라서 왼쪽에는 낮은 돌담으로 구획이 지어진 농사짓는 밭들이 이어지고 오른쪽으로는 멀리 수평선이 바라보이는 제주바다를 보며 달렸다.

오후 1시 20분에 제주시를 출발하여, 오후 5시 20분에 협제 해수욕장에 있는 민박집까지 4시간 만에 도착하였다. 대략 40여km 구간을 4시간 만에 달렸으니 평균 10km 속도로 달린 셈이다. 자전거 일주 참가자들에게는 첫날 평균 속도 10km는 무난한 성적이었지만, 승합차에 배낭과 짐을 싣고 함께 따라온 지원팀 실무자는 느린 속도 때문에 많이 지겨웠다고 한다.

참가자는 모두 힘도 빠지고, 배도 고프고, 추위에도 지칠 무렵 도착한 협재해수욕장 앞바다는 이국적인 비취색 빛깔로 맞이해 주었다. 멀리서 협재해수욕장 앞바다를 바라보며 참가자들은 한결같이 ‘와 ~ 멋지다’, ‘야~ 바다 색깔 봐라’ 하고 감탄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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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침 우리가 묵게 된 민박집 이층 창가에서는 해수욕장은 물론이고 석양이 내리는 ‘비양도’까지 한눈에 바라볼 수 있었다. 해안가를 바라보면, “자전거 세워두고 사진 찍으러 가야지”하고 다짐을 하던 아이들은 막상 숙소에 도착하고, 해가 지면서 기온이 점점 떨어지자 아무도 사진 찍으러 바깥으로 나가지 않았다. 밥 먹고 씻고 쉬고 싶다는 것이 유일한 바람이었다.

첫날 묵었던 우리 숙소는 멋진 별장 건물 2층이었는데, 바닷가를 바라보는 경관은 빼어났지만 오랫동안 비워둔 집이라 보일러를 틀어놓아도 방이 쉽게 따뜻해지지 않아 밤이 늦어서야 따뜻해졌다. 하루하루 지날 때마다 숙소가 점점 좋아진다는 진행팀 이야기를 위안으로 삼으며 제주에서 첫 밤을 보냈다.

용수리 풍력단지, 마라도가 보이는 송악산

둘째 날, 토요일 아침 6시에 일어나서 짐을 꾸리고, 오전 7시에 제주에서만 먹을 수 있는 해초로 끊인 해장국으로 식사를 하고 일정을 시작하였다. 한림을 출발하여 금능-고산-대정-중문으로 이어지는 둘째 날 일주코스는 하루 종일 60여km를 달리는 비교적 여유 있는 일정이었다.

용수리 풍력단지에 들러서 바람으로 전기를 만드는 대형 풍력발전기들을 구경하였다. 멀리서 바라볼 때는 자전거를 타고 지나가며 마치 머리 바로 위로 발전기 날개가 돌아갈 것 같은 느낌이었지만, 가까이 다가갔을 때는 거대한 날개가 서서히 회전하면 쉭~ 쉭~ 하는 소리를 내며 돌아가고 있었다. 커다란 날개가 돌아가는 발전기를 배경으로 사진도 찍고, 잠시 동안이지만 화석연료를 사용하지 않는 대체에너지로서 풍력발전기에 관하여 이야기도 나누었다.

대정읍 산방식당에서 밀면과 고기우동으로 점심식사를 하고 가파도와 마라도를 조망할 수 있는 송악산으로 향하였다. 송악산 아래 자전거를 주차하고 지원팀 승합차를 두 번으로 나누어 타고 송악산에 올라서 국토 최남단 마라도와 가파도, 깎아 지른 절벽과 탁 트인 바다를 구경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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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악산을 지나 중문으로 가는 길은 언덕길이 많고 자동차가 많아서 짧은 거리이지만, 시간이 많이 걸렸다. 특히 산방산 오르는 언덕길은 경사가 심하여 대부분 참가자들이 자전거를 끌고 올라갔고, 자전거 도로가 제대로 되어 있지 않고 관광객이 탄 자동차가 많이 다녀서 위험하기도 했다.

오후 4시쯤 천제연 폭포 입구에 있는 민박집에 도착하여, 승합차로 정방폭포와 천지연 폭포, 쇠소깍을 비롯한 서귀포 일대를 구경하였다. 제주 올레에 소개된 외돌개 붕어빵도 맛보고 돌아왔다. 저녁에는 서귀포 매일 시장에 나가 생선회를 사다 식사를 하고 생선뼈를 얻어 와서 지리를 끓여 밥을 먹었다.

푸짐한 생선회와 '지리'를 먹어본 참가자들은 기자 더러 솜씨가 좋다고 칭찬을 해주었다. 그런데, 가만히 생각해보면 내가 한 것은 매일 시장 횟집 아저씨가 준 생선뼈와 머리 내장에 채소 노점 할머니가 챙겨준 재료를 넣고 푹 끊이고 간을 맞춘 것밖에는 없다.

매일 시장 채소 할머니는 횟집에서 얻은 생선머리와 뼈로 지리를 끓인다고 했더니, 무 하나, 청양 고추 다섯 개, 깻잎 한 줌, 미나리 한 줌, 마늘 열 쪽을 모두 합하여 2000원에 주셨다. 아무리 생각해도 ‘지리’가 맛있었던 건 인심 좋은 채소 할머니 마음이 담겼기 때문이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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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글은 2008년1월 25~29일까지 4박5일 일정으로 진행한 '예비대학생과 함께 하는 자전거 제주 일주'  참가기로 당시 오마이뉴스에 기사로 연재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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