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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금'에 해당되는 글 16건

  1. 2012.10.23 40대 친구들, 갯돈 1000만원 문재인펀드 투자 (16)
  2. 2012.03.05 대학이 라면도 만들어 판다? 인제대면
  3. 2011.09.27 곗돈 500만원 털어 박원순 펀드 가입 (22)
  4. 2011.08.21 미국 비영리단체 정보 여기 다 있다, Foundation Center (3)
  5. 2011.08.15 페이스북 창업자가 만든 비영리 SNS, JUMO (4)
  6. 2011.04.27 젊은이여, 박원순을 벤치마킹 하시라 ! (1)
  7. 2011.04.04 왜 애들에게는 돈만 모으라고 하세요? (8)
  8. 2011.03.26 비영리를 지원하는 비영리단체 Network for Good (2)
  9. 2010.04.05 노근리 사건 영화 '작은 연못' 필름 사세요 (2)
  10. 2009.06.12 동네에서 1억 모금하여 세운 느티나무 도서관 (7)
  11. 2009.04.09 한국Y, 팔레스타인 구호기금 2500만원 모금 ! (2)
  12. 2008.09.10 [통일자전거7]"자전거 국토종주, 아빠가 가자고 해서요"
  13. 2008.09.10 [통일자전거6]평양까지 백두산까지 달리고 싶다.
  14. 2008.09.10 [통일자전거5]청소년 종주단 통일의 무지개를 만나다
  15. 2008.09.10 [통일자전거4]청소년 자전거 종주단 '추풍령'을 넘다.
  16. 2008.09.10 [통일자전거2]밥 먹고, 잠 자고 그리고 자전거 타고 임진각으로

40대 친구들, 갯돈 1000만원 문재인펀드 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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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질가는 곳에 마음 간다, 486 친구들 곗돈 1000만원을 쏘다

 

문재인 펀드 모금 첫 날, 펀드 가입자가 폭주하였는지 하루 종일 사이트가 제대로 열리지 않았습니다. 퇴근 시간이 지나서야 겨우 사이트가 열려 문재인 펀드에 1000만원을 약정하고 송금을 완료하였습니다.

 

지방 소도시 시민단체 실무자가 무슨 돈이 있어 문재인 펀드에 1000만원이나 배팅(?)을 하였느냐고 궁금해하시는 분들도 많으실텐데요. 사실 1000만원은 제 개인 돈이 아닙니다. 문재인 펀드에 투자한 65년, 667년 생인 제 친구들이 만든 계모임에서 모은 곗돈입니다.

 

 

지난 2011년 서울시장 보궐선거 당시에도 곗돈 500만원 털어 '박원순 펀드'에 가입하였습니다. 당시 제 개인 블로그와 오마이뉴스에 박원순 펀드에 500만원을 가입하게 된 사연을 기사로 내보냈습니다.

 

개인블로그 : 2011/09/27 - 곗돈 500만원 털어 박원순 펀드 가입

오마이뉴스 : 2011/09/27 - 곗돈 500만원, 박원순 펀드에 투자했습니다

 

당시 개인블로그와 오마이뉴스 기사를 조회한 숫자를 합치면 2만 명이 훨씬 넘었습니다. 특히 오마이뉴스에 송고된 기사는 뜻하지 않은 오해를 불러 일으키기도 하였습니다.

 

제 친구들과 함께 만든 계모임 이름이 '민우회'인데, 오마이뉴스에 기사가 나간 후에 서울에 있는 유명한 여성운동 단체 '여성민우회'에 왜 박원순 펀드에 가입하였느냐는 문의 전화가 쇄도하였다고 합니다.

 

기사에 포함된 박원순펀드 인터넷 게시판을 캡처한 사진 속에 "친구들의 허락을 받아 펀드가입하였습니다 - 민우회"라는 글이 노출되어 있었는데, 이것 때문에 여성민우회로 오해한 분들이 많았던 것입니다.

 

급기야 여성민우회 실무자와 오마이뉴스 편집국으로부터 민우회라는 계모임 이름을 모자이크처리 하면 좋겠다는 연락까지 왔더군요. 결국 여성민우회 실무자의 요청을 받아들여 기사에 나오는 사진에 '민우회'라는 계모임 명칭을 모자이크로 처리하는 해프닝이 벌어지기도 하였습니다.

 

그 당시만해도 계모임에서 운영하는 카페와 문자메시지를 주고 받으면서 3시간 만에 만장일치로 박원순 펀드 가입을 결의하였는데, 이번에는 스마트폰 카톡 단체 채팅으로 1시간도 안 되어 '문재인펀드' 투자를 확정하였습니다.

 

 

 

 

박원순 펀드 '대박' 경험... 문재인 펀드 망설이지 않고 찬성

 

한 친구가 먼저 문재인펀드 가입을 제안하자 순식간에 회원들이 동의를 표하였습니다. 2011년 박원순 펀드 가입 때도 밝혔지만, 이 계모임 멤버들은 대부분 84년, 85년 무렵에 대학에 입학하여 학생운동에 참여하였거나 대학을 다니지 않았지만 노동운동에 참여하였던 친구들입니다.

 

박원순 펀드처럼 야권의 후보단일화가 이루어지는 경우는 만장일치로 의견이 모아졌지만, 2002년 대선처럼 야권에서 후보가 2명 출마한 경우에는 의견이 나뉜 경우도 있었습니다. 실제로 2002년 대선 때는 당시 곗돈 100만원을 회원들의 지지 후보와 정당으로 나누어 노무현 후보 50만원, 민주노동당(권영길)에 50만원을 각각 나누어 후원하였습니다.

 

그래서 이번 대선의 경우 문재인 후보와 안철수 후보가 야권 후보로 출마하였고, 여론조사 결과를 보면 두 후보가 팽팽하게 맞서는 상황이라 계모임 친구들의 지지도 양분될 가능성이 높았습니다.

 

문재인 펀드에 반대하는 친구도 있을 수 있고,  안철수 후보를 후원하고 싶다는 친구도 나올 수 있는 상황이었습니다. 그런데 카톡을 통해 의견수렴이 이루어졌을 때, '문재인 펀드' 가입에 만장일치로 의견 합의가 이루어졌습니다.

 

사실 2007년 대선 때도 의견 일치가 이루어지지 않았습니다. 2007년 대선은 이명박의 승리가 예상되던 선거였기 때문에 후원금을 보내거나 하는 적극적인 참여는 하지 않았지만, 당시 문국현 후보와 정동영 후보로 저의 계모임 친구들의 지지가 양분되어 있었습니다. 지금 기억이 정확하지는 않지만 7:3 정도로 문국현후보 지지가 더 많았던 것 같습니다.

 

 

문재인 펀드 만장일치 찬성... 후보 단일화 결과로 예상할 수 있을까?

 

예상 밖의 결과였습니다. 문재인 후보와 안철수 후보에 대한 지지가 나뉘어질 줄 알았는데, 9명의 멤버가 모두 문재인 펀드 가입에 주저없이 찬성하였기 때문입니다. 계원 대부분이 이른바 486에 속하는 저희 계모임은 11명이 회원으로 출발하여 몇 년전 친구 둘이 한 달 간격으로 먼저 세상을 떠나는 바람에 지금은 9명이 남아있습니다.

 

말하자면, 문-안 후보 지지를 놓고 의견이 갈라질 줄 알았는데, 저희 계모임 친구들 9명은 문재인 후보로 단일화가 되었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매우 비과학적이고 조심스럽기는 하지만 문-안 단일화의 결과도 이렇게 될 가능성이 높다는 예상으로 이어집니다.

 

왜냐하면 물질 가는 곳에 마음이 가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안철수 후보가 낡은 정치 개혁을 상징하는 인물이지만, 문-안 두 후보 중에서 본선에서 승리하고 개혁과 복지를 실현할 수 있는 후보는 문재인이라고 판단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하자만, 어쩌면 이것도 세대 간 지지가 다르기 때문에 생긴 일인지도 모릅니다. 대체로 안철수 후보에 대한 지지는 20대 젊은 친구들이라고 하지요. 저희 계모임 친구들은 모두 40대 후반이기 때문에 문재인 펀드 가입에 쉽게 만장일치로 의견이 모아졌는지도 모릅니다.

 

사실 올 해 대학에 입학한 제 아들 녀석만 해도 <안철수 현상>이 출간되자 마자 사서 읽고, 저 더러도 읽어보라고 주고 가더군요. 불행히도 이 녀석은 대학 1학년이지만 만 19세가 안 되어 투표권이 없습니다. 제 아들 녀석보면 투표연령 더 낮춰야 하는 것 분명 맞습니다.

 

아무튼 저희 계모임은 매달 꼬박꼬박 모으는 회비로 회원들의 경조사도 챙기고  최근엔 모임이 뜸하였지만 1년에 한 두번 경치 좋고 분위기 좋은 곳을 찾아 곗돈으로 여행을 다니기도 합니다. 모두들 개인적으로 1곳 이상의 시민단체에 후원금도 내고 있습니다.

 

작년에는 계모임 친구들  자녀 중에서 처음으로 수능 시험을 치는 아이들이 있어서 곗돈으로 격려금으로 10만원씩을 보내주었습니다. 올해도 수능 치는 아이들이 있어 곗돈에서 격려금을 나눠줄 계획입니다.

 

친일인명사전 편찬 때도 후원금을 보냈고, 우토로 모금을 비롯한 이런저런 커다란 이슈와 모금 활동이 있을 때마다 의미있는 일에 곗돈을 썼습니다. 대학을 졸업하고 처음 계를 결성할 때부터 곗돈을 모아 적어도 1/3은 사회를 위하여 보람있는 일, 의미있는 일에 쓰자고 약속하였고, 그 약속을 꾸준히 지켜오고 있습니다.

 

 

 

누구나 계모임 몇 개씩은 있지요? 곗돈으로 대선 펀드 가입합시다 !

 

아마 각자 당장 100만원씩 내서 문재인 펀드에 가입하자고 누군가 제안했다면 실현되기 어려웠을 것입니다. 기왕에 모아 놓은 목돈이 있었기 때문에 1000만원이라는 거금을 문재인 펀드에 투자할 수 있었을 것입니다.

 

세상을 살다보면 누구나 이런저런 명분과 인연으로 만난 사람들과 계 혹은 모임을 만들고 곗돈 혹은 회비를 모으는 줄 알고 있습니다. 이런 모임에 모아 놓은 돈을 '문재인 펀드'처럼 보람있는 일에 투자해보시면 좋겠습니다.

 

'계' 라면 계원들과 모임이라면 회원들과 대선 후보를 놓고 토론도 벌여보시고, 모아 놓은 돈으로 정치인 펀드에 투자해서 이자까지 받을 수 있고, 지지하는 후보가 당선되면 바라던 정책이 실현될 수 있으니 일석삼조 혹은 그 이상의 효과가 생길 수 있지 않겠습니까.

 

마침 지난 2011년 서울시장 보궐선거 당시 그냥 후원금을 내는 것이 아니라 선거 후에 돌려주는 '박원순 펀드'가 생긴 덕분에 저희 계모임도 곗돈으로 모아 둔 목돈 500만원을 보람있게 사용할 수 있는 기회가 생겼던 것입니다.

 

제 친구들 계모임 '민우회'가 박원순 펀드에 투자했기 때문에 서울시장 선거에 승리한 것이 아닌 줄 잘 알면서도 "우리가 박원순 펀드에 500만원 투자해서 박원순 시장을 당선시켰다"는 논리적으로 맞지 않는 '자부심'을 잔뜩 가지고 있습니다.

 

박원순 펀드 반값 등록금으로 돌아와... 문재인 펀드도 대박 예감 !

 

그러다가 이번 대선에는 박원순 펀드 투자로 얻은 보람을 두 배로 높이기 위하여 조금도 주저하지 않고 문재인 펀드에 곗돈 1000만원을 몽땅 투자한 것입니다. 이번에도 저희 곗돈 털어 가입한 문재인 펀드가 박원순 펀드처럼 대박을터뜨렸으면 좋겠습니다.

 

2011년 박원순 펀드는 제 개인에게는 '반값 등록금'이라는 대박으로 바뀌어 돌아왔습니다. 아들이 서울시립대에 입학하여 박원순 펀드로 이자 수입만 생긴 것이 아니라 그야말로 '대박'의 혜택을 톡톡히 보고 있기 때문입니다.

 

2012년 문재인 펀드는 내년부터 줄줄이 아이들을 대학에 입학시켜야 하는 저희 계모임 멤버들에게 '반값 등록금' 실현이라는 대박으로 돌아올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문재인 후보가 대선에서 승리하면 박원순시장이 서울시립대 등록금을 반값으로 낮추었던 것처럼 전국의 공사립 대학부터 즉각 반값 등록금을 실현하고 곧장 사립대학으로까지 확대될 수 있을 것이라고 기대합니다.

 

문재인 펀드에 가입해야 할 이유를 말하라면 100가지도 넘겠지만, 낼모레 오십을 바라보는 제 계모임 친구들에게는 반값 등록금만 해도 충분히 매력적인 이유입니다. 문재인 펀드 꼭 대박 터뜨려 내년에는 대학 등록금 부담 딱 절반으로 줄었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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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rackback 1 Comment 16
  1. 노지 2012.10.23 10:52 address edit & del reply

    저도 하고 싶은데… 힘없는 휴학생이다보니 지금 수중에 돈이 없네요.
    매달 벌어 매달 먹고 살아서… 아쉽습니다.

    • 이윤기 2012.10.24 08:12 신고 address edit & del

      안타깝네요.
      의미에 주목한다면 딱 1만원도 좋지 않을까요.

  2. 잠깐멈춤 2012.10.23 11:51 address edit & del reply

    글 잘 읽고갑니다~! 아직은 어리지만, 저도 장차 직장인이되면 친구들과 이런계를 하며 사회적으로 의미있는 일하고싶네요^^무엇보다 마음을 같이할수있는 친구들이 저리 많은것도 참 부럽고 멋지네요!

  3. 깜냥이 2012.10.23 12:08 address edit & del reply

    저도 몇만원(한자리수) 펀드가입했답니다 마음은 굴뚝같은데 통장잔고가 얼마안되어 ㅎㅎ 전 문후보와 많은 부분 정책및가치관이 일치해서 지지합니다 완벽하게 다 일치하지는 않지만요~ 반값등록금이 현재 제겐 피부에 와닿는 일은 아니지만 문재인펀드가 대박으로 돌아왔으면 좋겠다는 마음만은 같을겁니다

    • 이윤기 2012.10.24 08:13 신고 address edit & del

      이런 거액(사람마다 다르겠지만)을 펀드에 넣을 수 있었던 것 곗돈이기 때문에 가능했습니다. 각자 100만원씩 모르자고 했으면 절대 불가능했을겁니다.
      깜냥이님의 한 자리수가 결코 적은 돈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마음이 담겼으리라 믿습니다.

  4. 율정 2012.10.23 12:35 address edit & del reply

    문재인후보님은 여타 다른 후보중에 가장 대통령으로써의 충분한 자격을 가진분이라 생각이들더군요. 그래서 저도 펀드와 후원.. 둘다 소액이지만 하려구요. 제가 후원하는 분이 꼭 대통령되는 감동을 맛보고 싶네요. 님글도 짱 감동~~^^

  5. 문돌 2012.10.23 13:06 address edit & del reply

    너무들하시네 다른분들을 위해서 조금씩만 하세요 ^^

  6. 힘내라 2012.10.23 14:45 address edit & del reply

    꼭 그렇게 되기를 바랍니다
    읽기만해도 기분이 좋아지네요

  7. 힘내라 2012.10.23 14:45 address edit & del reply

    꼭 그렇게 되기를 바랍니다
    읽기만해도 기분이 좋아지네요

  8. 나는야엄마 2012.10.23 15:41 address edit & del reply

    히히... 저도 어제 출근하자마자 50만원 했어요. 돈이 없어서.... 돌려받지 않아도 좋으니까, 꼭 대통령 되시길~

  9. 선비 2012.10.23 18:57 address edit & del reply

    윤기님 멋지십니당!!!

    • 이윤기 2012.10.24 08:11 신고 address edit & del

      제가 아니라 제 친구들이 멋진거죠.
      전, 바람잡이와 심부름꾼 역할....

  10. 우와 2012.10.24 17:23 address edit & del reply

    우연히 문펀드관련글이라 읽었는데 너무너무 감동입니다 ㅠㅠ
    같은 국민이라는게 자랑스럽네요 인생선배님^^
    꼭 문재인대통령이라는 보너스도 생길겁니다!!

  11. 왕주연 2012.10.24 23:13 address edit & del reply

    저도부랴부랴 이백만원 청약 걸엇습니다.
    맘같아선천만원이라도하고싶엇지만박봉의월급쟁이라ㅠ
    부모님이 이렇게좋은뜻을갖고계시니아들이부럽습니다^^

  12. 지요니 2012.10.25 00:10 address edit & del reply

    님 너무 멋지세요^^ 문재인 펀드 검색하다가 읽게된 글인데.. 읽어내려가는 내내 어찌나 흐뭇하던지요^^ 특히 전 교직에 있어서인지, 과거 박원순 펀드가 아드님의 시립대 합격과 반값 등록금으로 돌아왔다는 대목이 참 따뜻했어요~ 요즘 2013학년도 대학 수시가 진행되고 있는데, 이 반값 등록금 때문에 시립대의 점수가 과거 서너개 과의 인기과만큼 어마어마하게 올라갔어요. 엄청나죠~ 다른 대학들도 반값 등록금 실시해야할텐데요... 쨌든 글 잘 읽었습니다!!

  13. 뻘플 2012.11.09 07:30 address edit & del reply

    멋져부러
    저도 1차 가입하려다가 마감이 되서 멘붕 왔는데
    이번에 2차로 가입했습니다.

대학이 라면도 만들어 판다? 인제대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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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이 컵라면을 만들어 판다면 사람들이 어떻게 생각할까요? 등록금은 반값으로 하자고 아우성이고 대학 재정은 어렵다고 하니 라면이라도 만들어 팔아야 한다고 생각할까요?

아니면 재벌기업이 떡볶이, 고추장도 만들어 파는 것을 비난 하듯이 컵라면 장사까지 대학이 할 일은 아니라고 생각할까요?

컵라면이야 처음 이지만 사실 오래전부터 대학교 이름을 붙인 상표로 붙인 우유를 파는 유명 사립 대학들이 있었지만 이를 비난하는 여론은 없었던 것 같습니다 .


아무튼 우유 장사를 하는 대학도 있다는 선입견을 가진 탓인지, 처음 '인제대면' 1상자를 선물로 받았을 때는 인제대학이 라면 장사를 시작한 줄 알았습니다.

아 좀 더 정확하게 말씀드리자면 '라면'은 아닙니다. 컵라면 처럼 뜨거운 물을 붓고 3분 만에 먹을 수 있는 국수인데, 이렇게 먹는 용기면을 모두 컵라면이라고 부르다보니 국수를 컵라면이라고 하였네요.

아무튼 정확하게는 '우리쌀로 만든 즉석 국수' 입니다만 그냥 넙은 의미의 컵라면과에 속하기 때문에 알아 듣기 쉽게 그냥 컵라면이라고 부르겠습니다.



인제대면, '우리쌀로 만든 즉석 국수'

그런데 이 컵라면은 돈 주고 살 수 있는 라면이 아니었습니다. 인제대학이 만든 이라면은 동네 슈퍼는 물론이고 대형마트나 인터넷 쇼핑몰에서도 구할 수 없는 '희귀한 라면' 입니다. 인제대면은 인제대학교가 학교 이름을 상표로하여 OEM으로 제작한 '우리쌀로 만든 즉석 용기면 국수'입니다.

인제대면은 인제대학교가 학교 이름을 상표로하여 OEM으로 제작한 '우리쌀로 만든 즉석 용기면 국수'입니다.
라면 이름도 대학 이름을 따서 '인제대면'이구요. 천하장사 출신 방송인이자, 인제대교수인 이만기 교수가 인제대면 제 1호 홍보대사로 활동을 시작하였답니다.


시중에 판매하지 않는 이 컵라면을 맛 보려면 '인제대愛, 사랑의 사과나무 캠페인'에 참여해야 합니다. 인제대학이 우리쌀컵라면을 활용한 이색 모금 캠페인을 시작한 것입니다. 

인제대愛, 사과나무 캠페인은 대학발전과 후학 양성을 위한 기부금 모금 캠페인입니다. 인제대학교는 '인제대愛, 사과나무 캠페인'을 위하여 인제대학교 상징물 캐릭터 상품을 판매하는 '인제대愛 기프트샵', 제빵왕 김덕규 기능장과 함께 하는 '인제대愛 김덕규 제과점' 그리고 '인제대면' 사업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인제대면'은 1만원의 학교 발전기금을 내면 인제대면 1상자(컵라면 6개)를 선물로 보내주는 캠페인입니다. 발전기금 1만원을 내면, 시중 가격으로 1만 5백원하는 우리쌀로 만든 즉석 컵라면을 보내준다는 것입니다. 물론 제조원가는 1만원이 안 되겠지요.

결국 학교는 1만원 전액을 기부금으로 받는 것이 아니라 컵라면 원가를 제외한 금액을 기부금으로 받는 대신에 맛있는 라면을 선물로 주고 더 많은 기부를 끌어내겠다는 계획인 것 같습니다.

선물로 받은 '인제대면'을 직접 먹어봤는데 결코 캠페인을 위하여 허접한 상품이 기념품이 아닙니다. 일단 국수 맛이 즉석면 치고는 정말 맛이 좋습니다. 담백한 멸치 국물과 칼칼한 양념맛이 살아있고 면발도 쫄깃쫄깃합니다. 무엇보다도 원재료가 우리쌀인 것도 마음에 듭니다. 

뿐만 아니라 단 돈 1만원을 후원하여도 국세청 연말정산간소화 서비스를 통해서 기부금 소득공제를 받을 수 있으며, 국수 맛에 반하여 많은 금액을 후원하는 경우에도 모두 소득공제를 받을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12만원 이상 후원하는 경우에는 인제대 백병원 종합검진 10~30% 할인 혜택도 받을 수 있다고 합니다.



아직 본격적인 캠페인을 시작하기 전입니다만, 백병원을 비롯한 인제대학교 관련 기관, 그리고 김해 시민들이 아름아름 캠페인에 참여하기 시작한 모양입니다. 벌써 6백여만원의 모금이 이루어졌고, 입소문을 타고, 라면맛이 알려지면 적지 않은 모금이 이루어질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인제대愛 인제대면' 사과나무 모금에 참여하시면 지역 대학에 후원금도 내고, 맛있는 쌀국수도 선물로 받고, 우리쌀로 만든 국수 소비가 늘어나면, 우리쌀 소비도 늘어나고, 쌀농사를 짓는 농민들에게도 이익이 돌아가는 '선순환 구조'가 만들어지게 될 것 같습니다. 

등산, 낚시를 비롯한 야외활동, 바쁜 시간에 간단하게 식사를 해결 해야할 때 화학첨가물이 잔뜩 들어간 일반 컵라면 대신에 '즉석 컵 국수'인 인제대면을 활용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늦게까지 사무실에 남아 일하던 날, 김밥 한 줄과 인제대면으로 간단하게 저녁을 해결하였지요.

아래 사진은 제가 선물로 받은 인제대면입니다. 인제대학교 로고가 선명하네요. 포장 상자 안에는 쌀국수 용기면(컵라면) 6개가 들어있습니다. 후원금을 모금하는 인제대愛 사과나무 캠페인 홈페이지에는 7개 포장 상자가 나와 있었는데 제가 선물 받은 포장상자도 좀 다른 것 같습니다. 

국수 용기에 표시선까지 끓는 물을 붓고 3분만 기다리면 맛있는 즉석 국수가 됩니다. 물온도가 낮으면 국수가 잘 퍼지지 않습니다. 경험해 본 바로는 팔팔 끓는 물을 붓는 것이 쌀국수를 맛있게 먹는 비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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곗돈 500만원 털어 박원순 펀드 가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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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포스팅에 나오는 '민우회'는 여성민우회가 아니라 제가 속해있는 친구들의 계모임 이름입니다. 여성민우회로 오해하지 마세요.

오백만원 곗돈을 털어 박원순 펀드에 가입하였습니다. 저 한테 오백만 원이나 되는 큰 돈이 여윳돈으로 있지도 않고, 곗돈을 털었다고 하였으니 제 돈이 아니라는 이야기입니다.


저와 제 친구들이 이른바 486세대입니다. 1980년대 중반 대학시절 학생운동을 함께 하던 친구들이 중심이 되어 만든 친목 모임이 있습니다.

일 년에 한 두번씩 만나 살아가는 이야기도 나누고, 크고 작은 경조사도 챙기고, 서로 아이들 키우는 '자랑질'도 하고 그러는 모임입니다. 대학을 졸업 하자마자 만든 모임이라 벌써 20년이 다 되었습니다.

대학 시절에 만난 11명의 친구들이 모여서 만든 모임인데, 몇 해전 친구 두 녀석이 먼저 세상을 떠나는 바람에 지금은 9명이 멤버입니다.

<관련 포스팅>
2009/09/13 - [숨 고르기] - 혁명가를 꿈꾸던 마흔 다섯 아쉬운 삶
2009/09/23 - [숨 고르기] - 혁명을 꿈꾸던 또 한 친구가 떠났습니다.




1990년대 초반 처음 모임을 만들었을 때부터 적은 금액이지만 회비의 50%는 먹고 노는데 사용하더라도, 나머지 50%는 꼭 세상을 바꾸는 운동에 쓰기로 하였습니다. 대부분 생활인으로 살아가야 하지만 그래도 세상을 바꾸는 일에 작은 보탬이라도 꾸준히 지속적으로 하자는 취지로 시작하였습니다.

처음 모임을 만들고부터 약 10년 동안은 창원지역에서 활동하는 노동운동 조직에 후원금을 냈습니다. 시민단체나 공개적인 민중운동단체처럼 회원을 모으고 회비를 걷고 할 수 없는 단체를 후원하였습니다. 이 시절에는 후원금을 잘못 내면 나중에 줄줄이 잡혀가는 일도 있었던 때입니다.

세월이 흘러 세상도 변하고 그 단체도 해산되어 버린 후에는 '노동자 교육'을 전문으로 하는 단체를 3~4년 정도 후원하였습니다. 꾸준히 회비로 모으는 돈의 50% 의미있는 단체를 후원하는데 사용하였지만 그래도 회비가 조금씩 쌓여갔습니다. 2002년 대선 때는 노무현 후보와 민주노동당에 50만원씩 후원금을 냈습니다. 

멤버들 중에 당시 노무현후보를 지지하지 않고 진보정당을 지지하는 사람들이 있어 똑같이 후원금을 나눴지요. 그뒤 친일인명사전편찬에도 공동으로 후원금을 냈고, 우토로 모금에도 마음을 내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이 모임에 속해 있는 친구들은 개별적으로도 이런저런 의미있는 곳에 후원도 하고, 제가 속해있는 단체를 위해서도 매년 후원금을 내고 있습니다.



박원순 펀드 가입, 문자로 카페 댓글로 3시간 만에 만장일치 결정

사실 사는 일이 바빠서 자주 만나지도 못합니다. 고작해야 1년에 한 두번 만나게 되는데, 최근에는 그마저도 좀 뜸해졌습니다. 그렇지만 누군가 곗돈돈을 털어 의미있는 일에 쓰자고 제안을 하면 어렵지 않게 의견을 모아 신속하게 결정하고 참여합니다. 

이번에도 그랬습니다. 어제(26일) 낮부터 '박원순 펀드' 모금이 시작된 것을 보고 멤버 전원에게 '펀드 참여'를 문자로 제안하였습니다. 오후 늦게쯤 멤버 중에서 한 명만 빼고 모두 '찬성한다'는 회신을 보내왔습니다. 

회비를 모아놓은 곗돈돈 통장에서 500만 원을 박원순 펀드에 투자(?)하기로 결정하고 곧바로 국민은행 계좌로 입금해버렸습니다. 사실 생활이 빠듯한 40대 직장인들이 오백만원을 만드는 일은 쉬운 일이 아니고, 아무리 의미있는 일이지만 서울시장 선거를 위한 '박원순 펀드'에 묶어두는 것도 역시 쉽지 않은 일입니다.   

아마 각자 주머니를 털어 오백 만원을 만들려고 하였다면 이렇게 빨리 모금을 할 수도 없었을 것이고, 어쩌면 모금이 안되었을지도 모릅니다. 그런데 겨우 몇 시간만에 이렇게 일사천리로 의견을 모을 수 있었던 것은 그 돈이 바로 곗돈돈이었기 때문입니다.


돈, 내가 낸 돈이지만 내 돈 아닌 돈...좋은 일에 써야지

분명히 그동안 매달 3만원씩 내가 회비를 낸 돈이기 때문에 그 돈을 어떻게 쓸지 결정하는데는 1/N의 권리가 있습니다만, 어차피 곗돈돈은 내 주머니를 떠난 돈입니다. 내가 낸 돈이기는 하지만 어떤 의미에서는 내 돈이 아닌셈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의미있는 일에 곗돈돈을 쓰자는 결정은 비교적 쉽게 의견이 모아집니다. 

이유는 또 있군요. 이 돈은 꼭 돌려받을 수 있다는 확신도 중요한 이유가 되었겠네요. 혹시 박원순 후보가 15% 득표도 못할 것이라고 예상하였다면, 오백 만원이라는 거금(?)을 박원순 펀드에 투자하자는데 반대하는 회원이 있었을지도 모릅니다. 그런데 회원들 모두 여론조사 결과와 언론보도를 통해 박원순 펀드는 100% 회수가 가능하다는 확신을 갖고 있더군요.

뿐만 아니라 새로운 서울을 만드는 선거에, 2012년 정권교체를 향해가는 중요한 선거에 서울에 사는 유권자는 아니지만 뭔가 꼭 보탬이 되고 싶다는 마음도 있었던 것 같습니다. 9명의 친구들 중에 딱 1명만 서울에 살고 있는 유권자이고 나머지는 전국 각지에 흩어져서 살고 있습니다.

물론 좀 더 본질적인 이유도 있습니다. 국민의 정부와 참여정부 10년이 거꾸로 가고 역사와 민주주의가 후퇴하는 것을 그냥 두고 볼 수 없었는데, 현재의 야당만으로는 뭔가 미심쩍고 불안하였는데, 야권과 시민사회가 연대하여 힘을 모았으면 좋겠다는 기대를 가지고 있었는데, 가장 믿을 만한 시민운동지도자가 깃발을 세웠으니 우리라도 힘을 보태야한다는 '이심전심'이 작용하였던 것입니다.

아침 뉴스를 보니 박원순 펀드가 9시간 만에 15억을 모금하는 대박을 터뜨렸다고 하더군요. 주식시장이 곤두박질치고, 펀드도 반토막나게 생겼는데, 박원순 펀드 보다 더 확실한 투자가 어디 있을까요? 이게 바로 국민들의 마음이라고 생각됩니다. 안철수와 박원순이 치켜든 깃발로 인하여 국민들이 희망을 품고 꿈을 꿀 수 있게 되었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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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rackback 3 Comment 22
  1. 여강여호 2011.09.27 08:38 address edit & del reply

    정치혐오증은 참여하지 않는 데서 오는 것 같습니다.
    정치를 생물이라고들 하는데 참여하면 기필코 바뀔 수 있다는 이유가 아닐까도 합니다.

  2. 탐진강 2011.09.27 09:31 address edit & del reply

    와우, 대단하시네요.
    좋은 친구분들입니다. 500만원 적은 돈이 아닌데요. 모두 함께 의견일치 보셨군요.

    그런데 갯돈이 아니라 곗돈 아닌가요. ^^;

    • 이윤기 2011.09.27 10:07 신고 address edit & del

      그렇군요. 곗돈이군요. 고쳤습니다.

      자랑질 하려는 것은 아니구요. 다들 계모임 몇 개씩은 있으니...곗돈으로 희망을 만드는 펀드 가입들 하시라고 공개하였습니다.

  3. 희망feel하모닉 2011.09.27 10:09 address edit & del reply

    좋은 정보 감사합니다. ^^
    잘보고 갑니다.

  4. 규연승희맘 2011.09.27 10:50 address edit & del reply

    저도 어제 30만원...마이너스에서...좀 빼서..ㅋ
    희망을 위해 지금은 좀 마이너스 되지만 내아이를 위해서는 곧 + 되겠죠...

  5. 머글 2011.09.27 11:21 address edit & del reply

    이만큼 확실한 투자처가 또 어디 있을까요? ㅎㅎㅎ

    잘 하셨습니다!

  6. 앙골모아대왕 2011.09.27 11:33 address edit & del reply

    대단한분들이네요 +.+

  7. 박씨아저씨 2011.09.27 12:24 address edit & del reply

    ㅎㅎㅎ 한사람의 이름으로 펀드를 만들고 가입하고 수익을 창줄한다는것이 참 의미 심장하네요~
    새로운 바람이 불고 있는듯합니다~

    • 이윤기 2011.10.03 21:54 신고 address edit & del

      새로운 바람이...일단 성공하는 것 같습니다.

      오늘 야권 단일후보가 되었습니다.

  8. latte 2011.09.27 12:36 address edit & del reply

    정치관련에는 댓글을 달지 않습니다만. 노동자 위하신다는 분이 아름다운가게 노조 설립을 불허하던 사람을 지지하신다니 연유가 궁금하네요 이쪽으로는 잘 몰라서 말입니다. 누구처럼 아무것도 모르면서 무작정 의견만 내놓지는 않는주의라서 말입니다.

    • latte 2011.09.27 12:43 address edit & del

      서울 옮기자던 사람이 서울을 위한다는 코미디야 '대구의 아들 경기도지사후보 유시민씨'만 봐도 저 치들이 그거까지 생각하고 사는거 같지는 않고요 개인적으로 예전에 박원순씨가 노조설립을 타박하는거 보고 적잖이 충격을 받았거든요.

  9. 박원순씨는 정치인이 아니라 사업가 2011.09.27 12:37 address edit & del reply

    대기업 후원 받고, 한나라당 후보 지지하는 건 정치인이 아니라 사업가이기 때문에 가능합니다.
    정치인은 신념과 정도를 가는 것이 필요합니다.
    서울을 변화시킬 생각 말고, 정치인으로서 신념을 말해야 할겁니다.
    그래야 대기업과 한나라당을 막을수 있을겁니다.
    전 박영선씨가 정치인으로 적합하다고 봅니다.
    한명숙씨를 점 찍었는데 후보를 사퇴하신다니 박영선씨를 정치인으로 뽑겠습니다.

  10. stubborn 2011.09.27 14:08 address edit & del reply

    좀 오버스런 분이시네요.

  11. 모르겐 2011.09.27 15:03 address edit & del reply

    아... 이번에도 한나라당이 서울을 장악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박원순 변호사가 정말 서울시장이 되고 싶다면 최대한 빨리 검증이 필요해 보입니다. 저도 첨에는 기성정치인에 대한 반감으로 박원순 열풍에 동참할까 했는데, 250만원 월세 내면서 강남 61푱 아파트 산다는 것도 이해가 잘 안되고, 보증금이 고작 1억원이란 부분도 납득이 잘 안되더라구요. 무엇보다 하버드에서 공부할 때 구입한 책을 보관하기 위해 61평 아파트로 이사를 갔다는 해명이 굉장히 궁색해보였습니다.

    한강르네상스에 대한 입장도 오해의 소지가 다분했고, 신발도 과거 미국 대선에서 애들레이 스티븐슨 구두 사진을 벤치마킹 한 거 아닌가란 생각도 들도.... 월세를 너무 많이 내다보니 신발살 돈이 없었나 싶기도 하구요.

    • 자료모으기가취미 2011.09.27 20:20 address edit & del

      그게 말이죠.. 원순씨는 시민운동에 보탬이 되기 위해서 하버드와 영국유학시절 밥먹는 돈까지 아껴서 자료 복사해가지고 가져온 사람입니다.

      엄청난 자료들을 모으고 있고, 그걸 보관하려면 보통 크기의 집으로는 어림없지요..

      저런 종류의 활동을 하시는 분들, 책 정말 많아요
      거의 개인 도서관이라고 생각하시면 될 것 같습니다.
      저 이제 20대 중반인데도 방 하나 가득찰정도로 책 모았는데.. 원순씨 집에 안가봤지만 모습이 대충 상상이 갑니다.

    • 모르겐 2011.09.27 22:47 address edit & del

      네~ 저도 예전에 300~350권 정도를 책장에 쌓아둔 적이 있는데, 05년 즈음부터 대부분 처분했어요. 웬만한 해외 논문은 웨스트로 등에서 언제든지 열람이 되고 출력도 되어서 보관의 필요성을 못느끼겠더라구요. 박원순 변호사의 자료는 제가 생각하는 것과 다른 종류의 것이겠지만, 굉장히 비효율적인 도서 보관방법으로 보여집니다.

      무엇보다 압구정 살다가 지금 반포까지 밀려난 게 경제적으로 궁핍해져서라는 걸 알아달라는 그의 말에서 완전 실망했어요. 자녀 학교 문제 때문에 이사를 가지 않았다는 것도............

  12. 송의성 2011.09.27 17:34 address edit & del reply

    대단들 하십니다. 세상이 더 나아질 수 있다는 희망을 목격하고 갑니다. ^^*

  13. 근데 2011.09.27 22:30 address edit & del reply

    꼭 강남지역에 있는 보증금1억에 61평의 아파트에서 살아야 하나요? 외곽지역에 더 좋은곳도 많은데
    굳이 강남을 고집하는 이유가 납득이 안가며 신발역시 퍼포먼스로밖에 보이지가 않네요

  14. 박정규 2011.09.28 01:50 address edit & del reply

    박원순이사가 61평 사는게 못마땅하다면~
    태어나면서부터 거부였던
    삼성의 아들 이재용이는 왜 용서가 되십니까~???
    또 일반인은 강남에 살면 안되는겁니까~?
    부자는 시민운동 하면 안되는겁니까~?
    그렇다면~
    정치는 부자만 해야되고
    강남에는 부자만 살아야 된다는 말인지요~???
    대한민국이 부자들만의 것인가요~???
    변호사하면서 돈좀 벌었겠지요
    그러다가 시민운동에 관심을 가졌던 분이고요...
    돈 있는 사람이 시민운동에 관심을 보였다는것은
    그 자체만으로도 대단한것 아닌가요~???

  15. ss눈 2011.09.28 04:02 address edit & del reply

    저는 그럴만한 능력이 없습니다.그러나 저는 박원순님을 시장으로 만들기 위해 박원순 바이러스를 전파하겠습니다.물론 나의 소중한 1표도 박원순님에게..^^

  16. 허허실실 2011.09.30 17:14 address edit & del reply

    돈이 만능인 이사회의 참모습인가요....씁쓸하네요...

  17. Christian louboutin 2013 2012.12.18 20:44 address edit & del reply

    털었다고 하였으니 제 돈이 아니라는 이야기입니다.

미국 비영리단체 정보 여기 다 있다, Foundation Cent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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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영리단체 활동가 미국 연수, 여행 24] 모금, 배분, 기부정보 다 있는 곳

비영리단체 활동가 미국 연수 마지막 기관 방문은 Foundation Center 입니다. 유니온스퀘어 근처에 있는 이 곳은 미국에서 가장 막강한 비영리단체 자료를 소장하고 있는 곳입니다. 

미국 연수에서 여러 군데 기관 방문을 하였는데, Foundation Center에서는 통역없이 설명을 들을 수 있었습니다.

미국에서도 역사와 전통을 자랑하는 비영리단체 정보센터인 이곳의 최주원 부소장님이 한국 교포이셨기 때문입니다. 

최주원 부소장님은 미국의 Foundatin Center 에서 축적한 경험과 노하우를 국내에 전파하는 역할도 열심히 하고 있는 분이었습니다.

모든 설명을 한국 말로 듣고 안내도 받고 아주 편안한 분위기였습니다. 다른 행사 준비로 바쁜 시간이었지만 안락한 회의실도 사용할 수 있었습니다. 다만, 이렇게 편안한 분위기 때문에 식사후의 피곤을 이기지 못하고 잠이 쏟아지는 것이 문제였습니다.



오전에 뉴욕현대미술관을 돌아다니느라 너무 에너지를 많이 소모한 탓도 있고, 식곤증을 이기지 못한 탓도 있었으며, 마지막 기관 방문이라는 것도 긴장을 놓치게 하였던 것 같습니다.

Foundation Center는 미국 단체들의 정보를 제공하고, 연구하고, 자료를 만드는 곳입니다. 따라서 미국에서는 단체를 만들거나, 단체에 관하여 공부하거나 혹은 단체를 대상으로 배분사업을 하는 모든 곳이 먼저 여기를 찾는다고 하였습니다.


비영리단체 정보, 재단, 사회공헌기업의 모금, 배분, 기부 정보 여기 다 있다

또한 Foundation Center 단체를 위한 교육사업도 하고 있었으며, 비영리단체에게 실제로 도움이 될 수 있는 질 좋은 자료제작을 위해 많은 연구원들이 일하고 있는 곳이기도 하였습니다.

Foundation Center 미국내에 5군데의 오프라인 도서관을 운영하여, 누구나 자료를 와서 보고 열람할 수 있도록 개방식으로 운영하고 있었습니다. 애틀란타, 클리블랜드, 뉴욕, 샌프란시스코, 워싱턴에 지부를 두고 있다고 하였습니다.



아울러 최근에는 온라인으로 자료를 많이 축적하여 더 많은 사람들이 자료를 볼 수 있도록 서비스하고 있었습니다. Foundation Center 뿐만 아니라 전국의 공공도서관, 지역 재단, 교육기관에 450개의 정보센터 네트워크를 구축하였습니다.

기본적으로 Foundation Center는 자선 기금을 효율적으로 분배하도록 돕는 단체입니다. 기금 배분사업을 하는 재단이나 사회공헌기업에 관한 정보와 데이터를 비영리단체를 위하여 제공하거나 판매하는 일, 그리고 비영리단체들이 모금 관련 정보를 얻을 수 있는 전자자료 도서관을 운영하는 일을 하고 있었습니다.

또 비영리단체의 설립과 지원을 돕는 일도 하고, 비영리단체를 위한 교육 사업을 진행하고 있었습니다. 활동가들을 위한 프로포절이나 예산서 작성법 같은 기본적인 내용뿐만 아니라 재단 실무자들과의 관계유지, 특히 심사탈락 후의 관계 지속 방법 등에 관해서도 알려준다고 하였습니다. 




Foundation Center는 미국내에서 활동하는 약 10만개의 재단이나 사회공헌기업에 대한 데이터를 파악하고 재 가공 하는 연구인력을 운용하고 있었습니다.

재단이나 기업자료 뿐만 아니라 언론보도자료를 비롯한 기금, 모금, 배분과 관련된 각종 정보를 종합적으로 수집하고 저장하여 공개하는 곳이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미국 국회를 비롯한 정책입안자들에게도 자료를 제공한다고 하였습니다. 

Foundatin Center, 1956년에 창립?

가장 놀라운 것은 Foundation Center가 1956년부터 미국에서 이 일을 시작하였다는 것입니다. 현재는 5개 지부를 운영하고 있으며 연간 운영비만 약 280억원을 지출하는데 60%는 데이터 판매 및 교육사업으로 재원을 마련하고 나머지 40%는 후원을 받고 있다고 하였습니다.

아무튼 Foundation Center를 방문하여 가장 놀랐던 것은 이 단체가 1956년부터 활동을 시작하였다는 것입니다. 1956년이면 우리나라는 아직 전쟁의 상흔이 그대로 남아있을 무렵인데, 기금, 모금, 배분과 관련한 정보를 전문으로 제공하는 기관을 만들었다는 것이 참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또 수요자들의 요구를 파악하기 위하여 연간 12회에 걸쳐 비영리단체를 대상으로 하는 설문조사를 진행하고 있으며, 배분 사업시 단체의 투명성을 판단하는 기준 데이터로 삼고 있다고 하였습니다.

얼마나 튼튼한 단체인가? 이사구성은 공공성을 담보할 수 있도록 되어 있는가?, 단체의 미션이나 장기적인 사업계획이 있는가? 기부자의 가치와 단체의 가치가 일치하는 가? 모금 관련 소스가 다양한가? 다양한 배분사업과 지원 경력이 있는가? 기부금 활용은 어떻게 하고 있는가? 같은 조사를 진행한다는 것이었습니다.

Foundation Center 방문을 마치고 저녁 시간이 되어 가까운 일본 식당에서 저녁을 먹었습니다. 저녁을 먹으며 미국내에서 활동하는 여러 비영리단체의 활동에 관한 이야기를 해주셨지만 저는 같은 테이블에 앉아있지 않아서 이야기를 더 나누지는 못하였습니다Foundation Center 방문을 끝으로 뉴욕에서의 기관 방문을 비롯한 연수 일정은 모두 마무리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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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저녁노을 2011.08.21 08:45 address edit & del reply

    잘 ㅏ보고가요. ㅎㅎ 즐거운 휴일되세요

    • 이윤기 2011.08.22 08:08 신고 address edit & del

      고맙습니다. 산뜻한 한 주 시작하시기 바랍니다.

  2. 2014.05.25 18:51 address edit & del reply

    비밀댓글입니다

페이스북 창업자가 만든 비영리 SNS, JUM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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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영리단체 활동가 미국 연수, 여행 23] 페북 창업자 크리스 휴즈 직접 봤더니...

비영리단체 활동가 미국 연수, 여행 이야기기 이어갑니다. 3월 15일부터 25일까지 미국 워싱턴과 뉴욕에 있는 비영리단체를 방분하였는데요, 3월 22일 뉴욕에서 세 번째로 방문한 단체는 JUMO입니다.

2010년 12월에 설립한 JUMO는 지난 3월 방문하였을 때만 하여도 여전히 설립 초기였지만 적지 않은 비영리다체들이 참여하고 있었고 국내에도 꽤 많이 알려져 있었습니다.

아마 페이스북 창업자인 크리스 휴즈의 유명세를 탄 덕분이 아닐까하는 생각도 듭니다. 크리스 휴즈는 하버드대학교에 재학 중이던 2004년에 마크 주커버그, 더스틴 모스코비츠와 함께 페이스북을 공동 창업하였습니다.

2007년엔 버락 오바마 대선 캠프에 참여하여 소셜웹을 활용한 선거운동으로 오바마 승리의 일등 공신 역할을 하였다고 합니다. JUMO는 국내에도 꽤 많이 알려진 편인데, 지난해 10월 크리스 휴즈가 매일경제신문과 MBN이 주최한 '세계지식포럼'에 다녀간 것이 계기가 되었던 것 같습니다.



당시 그는 "비영리사업을 위해 운영중인 전 세계 모든 기관과 단체들의 네트워크를 모색하고 있으며 이를 통해 비영리단체나 기관들이 원하는 변화를 이뤄낼 수 있도록 돕겠다"는 포부를 밝힌 바 있습니다. 

2010년 12월 1일 뉴욕타이스는 크리스 휴즈가 JUMO라고 하는 새로운 벤처기업을 설립하였다고 보도하였습니다. 휴즈는 공익적인 사회운동을 돕는 소셜네트워크 서비스인 JUMO.COM을 공개하였습니다. JUMO는 아프리카 요루바족의 언어에서 따온 말인데 '다같이 함게'라는 뜻을 가지고 있다고 합니다.

저희 일행에게 JUMO 활동을 소개해 준 사람은 Kristine라는 여성활동가였습니다. 당시 JUMO에는 8명의 상근활동가가 일하고 있다고 하더군요. 휴즈가 JUMO를 만들기로 마음 먹은 것은 2010년 1월 아이티 대지진이 계기가 되었다고 합니다.

당시 많은 사람들이 인터넷을 통해 도움을 요청하였고, 반대로 또 다른 많은 사람들은 온라인 커뮤니티를 중심으로 도움을 줄 수 있는 방법을 찾고 있는 것에 착안하였다는 것입니다. 


Kristine은 "어려움에 처한 사람들, 다른 사람을 돕고 싶어 하는 사람들, 자산이 관심있는 사회활동에 참여하고 싶어 하는 사람은 수백 만 명이지만 정작 어떻게 해야할지 모른다"고 하였습니다. 그녀는 JUMO가 하려는 일이 바로 "네트워킹 기술을 활용하여 세계가 변화할 수 있도록 개인과 단체를 연결하고 조직화하는 역할"이라고 하였습니다.   

"전 세계 비정부, 비영리 단체와 자원봉사자들이 주모닷컴을 통해 연대하고 관심있는 개인과 연결해 특정 과제를 해결할 수 있다. JUMO 가입자는 관심있는 활동을 하는 단체나 기관과 친구를 맺는 것으로 참여를 시작할 수 있고, 이슈와 관련한 최신뉴스를 실시간으로 받아 볼 수 있게 된다."



JUMO, 설립 4개월 만에 1만 5천개 단체, 10만명 기부자 참여

미국에만 150만 개의 비영리단체가 있는데 사람들이 관심있고 중요하다고 생각되는 사회운동이나 비영리단체, 기관을 쉽게 찾을 수 있도록 해주고 이들 단체 활동에 온라인으로 참여할 수 있도록 지원하겠다는 것이었습니다. 
미국에 가기 전에 조별로 방문 단체를 나누어 기본적인 조사를 하였는데, JUMO는 페이스북에 기반한 시스템을 운영하고 있었습니다. 페이스북 아이디로 이용할 수 있도로 되어 있었으며, 사이트에 가입하면 개별 페이지를 가진 각종 이슈를 선택해 관심있는 사회운동을 찾을 수 있도록 되어 있습니다. 페이스북의 장점을 가장 잘 활용하고 있다고 하겠습니다.

JUMO의 역할은 평범한 사람들을 비영리기구나 자선단체와 연결시켜주는 일을 하는 것입니다. 예컨대 사람들은 JUMO를 통해 기후변화에 대응하는 활동에 참여할 수도 있고, 에이즈 퇴치 프로그램 혹은 후쿠시마 지진 피해자를 돕는 활동에도 참여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다양한 사회운동의 주제는 이슈별, 프로젝트별로 세분화 되어 있고, 자신의 페이스북과 곧바로 연동되기 때문에 자신의 친구들과 관련 이슈들을 공유할 수 있도록 되어 있었습니다. 또 페이스북에 있는 친구 정보를 JUMO로 가져 올 수 있고, JUMO에 참여한 활동 정보를 페이스북에 쉽게 올릴 수 있도록 되어있습니다.




지난해 12월 국내 언론 보도를 보면 미국에서 3500여개의 비영리기구가 JUMO에 참여하고 있다고 보도하였습니다. 불과 4개월 남짓한 지난 3월 이 단체를 방문하였을 때, 1만 5000개 단체로 늘어나 있었으며 JUMO를 통해 후원자로 참여하는 사람들이 10만 명을 넘어섰다고 하였습니다. 

그 당시에 유튜브를 비롯한 동영상 홍보가 가능하도록 하는 시스템을 준비중이라고 하였는데, 이미 서비스가 시작되었습니다. JUMO는 소셜 네트워크를 활용하고 싶어하는 중소 규모의 비영리 조직을 지원하는 활동을 해나가게 될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작은 단체들의 참여를 확대하기 위하여 전화로 서비스를 지원할 뿐만 아니라 컨퍼런스를 개최하거나 직접 방문하는 활동도 하고 있었습니다. 다양한 검색엔진에서 서치 될 수 있도록 하는 시스템을 도입하고 있었으며, 연말까지는 단체들의 변별력을 보여줄 수 있도록 별표 시스템을 도입할 계획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아직은 영어로만 서비스하고 있기 때문에 앞으로도 당분간은 국내사용자들이나 비영리단체들에게는 그림의 떡이 될 가능성이 높지만, 페이스북을 활용하는 JUMO의 활동을 국내에서도 벤치마킹 해 볼수는 있을 것 같았습니다. 

영어를 기반으로 시작한 페이스북이 다양한 언어를 지원하는 세계적인 서비스로 성장한 경험을 가진 때문인지 JUMO 역시 앞으로 2년 안에 다양한 언어로 웹사이트를 번역하는 서비스를 준비 중이라고 하였습니다. 
 



JUMO, 2년 내에 다양한 언어로 서비스 한다

JUMO 사무실은 작았지만 젊고 활기 넘치는 직원들과 자유로운 분위기를 느낄 수 있었습니다. JUMO는 페이스북과는 직접적 관련이 없으며 지원을 받는 것도 없다고 하였습니다. 다만 크리스 휴즈가 페이스북에서 일했던 경험과 지식을 활용하는 것이 전부라고 하더군요.

"JUMO는 단체들이 더 잘 활용할 수 있도록 기부 포털을 만들어가려고 한다. 이슈별로 세분화하여 유저들이 기부한 돈의 흐름을 정확하게 보여주도록 할 것이다."

JUMO는 웹 사이트에 접근하는 살마들에 대한 다양한 정보를 파악할 수 있는 시스템을 가지고 있으며, 유저들이 캠페인 페이지를 자유롭게 만들 수 있도록 환경을 제공하고 있다고 하였습니다. 또 이슈 페이지 역시 사용자들의 요청을 받아 제작해주고 있었습니다.

지난 3월 JUMO 방문 당시에 크리스 휴즈는 사무실에서 컴퓨터로 어떤 작업을 하고 있었는데 이어폰을 끼고 머리를 좌우로 끄덕이며 심취한 듯한 모습있었습니다.  페이스북 공동창업자이기도 하고 JUMO 설립자이기도 한 그를 직접 만날 수 있다는 약간의 기대감을 가지고 있었지만, 자리에서 멀뚱멀뚱 한 두번 쳐다 본 후에는 자기 일만 하더군요.


자기 단체 활동에 관심을 가지고 찾아 온 손님이라면 대표가 직접 인사말 정도는 해 줄 법도 한데 가벼운 인사말 조차 건네지 않더군요. 전날 방문했던 Common Cents의 설립자이자 대표인 데니가 우리일행을 따뜻하게 환대해 준 것과는 대조적이었습니다.

한국에서 뉴욕까지 찾아 간 외국 손님들에게 이렇게 무관심하기도 쉽지 않을텐데, 페이스북 창업자로 유명세를 치르는 사람들이라 그런가 하는 생각이 들더군요.

과연 페이스북을 기반으로 한 JUMO를 통해 새롭게 비영리 단체 활동에 참여하는 사람들이 생겨나는 것인지, 혹은 그동안 온라인 혹은 오프라인으로 비영리단체 활동에 참여하던 사람들이 JUMO라고 하는 새롭고 편리한 서비스를 활용하게 되는 것인지는 좀 더 시간을 두고 살펴보아야 할 것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아무튼 SNS라고 하는 새로운 소통 수단이 사람들의 비영리단체 참여를 얼마나 더 활성화시킬 수 있을지, 참여를 쉽게 하는 것으로 사람들의 활발한 참여가 일어날 수 있을지 좀 더 지켜보아야 할 것 같습니다.
 



<관련 포스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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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저녁노을 2011.08.15 09:11 address edit & del reply

    잘 보고가요. 즐거운 한 주 되세요

  2. 페이스북 창업자또한 2011.08.15 13:14 address edit & del reply

    유태인이고, 그 페이스북을 키워준 것들 또한 유태인들이고...

    지들끼리 다~ 해쳐먹으면서도 이런 걸 만들어서 그나마 생색(?)은 내주니,
    이런 면에서 이 나라 기득권층보단 낫다고 해주긴 해줘야...

    • 이윤기 2011.08.17 11:27 신고 address edit & del

      유태인이라는 것만으로 성공한 것은 아니겠지요?

젊은이여, 박원순을 벤치마킹 하시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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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 젊은이와 활동가를 위한 박원순식 자기개발서 <원순씨를 빌려드립니다>

대한민국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시민운동가 박원순, 기부문화를 뿌리 내리게 하고 참여연대, 아름다운가게, 희망제작소를 만든 소셜디자이너 박원순 변호사, 그가 내놓은 행복한 세상 만들기 제안서가 바로 <원순씨를 빌려드립니다>입니다.

그는 핏발 세우는 경쟁의 대열에 서 있는 젊은이들에게 경쟁에서 비켜서서 다른 눈으로 세상을 바라보라고 제안합니다. 과감하게 다른 길에 들어서면 새로운 블루오션을 발견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혼자 잘 먹고 잘 살겠다는 생각을 버리면 세상의 어둠을 환하게 밝히는 또 하나의 인생이 눈에 들어옵니다. 남과 경쟁만 할 것이 아니라 협동을 하면 전혀 다른 세상이 펼쳐집니다." (본문 중에서)

저자 박원순은 젊은이들이 품고 있는 무한한 잠재력과 상상력 깨우기 위하여 이 책을 썼다고 합니다. 이 책에서 저자는 세상을 바꾸는 새로운 직업을 소개하고, 경계가 무너지고 착한 기업이 생겨나고 지역이 주목받고 문화와 창의성이 빛을 내는 새로운 변화에 주목하라고 강조합니다.

뿐만 아니라 그가 직접 경험으로 체득한 상상을 현실로 만드는 비영리단체 운영의 노하우를 공개하며, 소셜디자이너 박원순과 손을 맞 잡고 새로운 삶을 열어가는 사람들의 이야기도 들려줍니다. 그리고 트위터를 비롯한 박원순식 소통법도 공개하였습니다.

딱 한마디로 하자면 대한민국 젊은이들에게 '박원순'을 공개한 것입니다. 소셜 디자이너 박원순을 벤치마킹하여 젊은이들에게 닥친 어려운 현실도 변화시키고 그들이 살아가는 세상도 더 살맛나는 곳으로 바꾸어보라고 부추기고 있습니다.

박원순을 벤치마킹 하시라 !

그는 박원순을 벤치마킹 하고 싶어하는 젊은이들에게 소셜디자이너가 갖추어야 할 덕목을 제안합니다.

"첫째, 바꾸고 싶은 대상이 뚜렷해야 합니다. 둘째, 참신한 아이디어가 있어야 합니다. 셋째, 꿈을 현실로 바꾸어내는 열정과 노력이 꼭 필요합니다."

그는 우리나라 시위문화를 바꾼 참여연대의 1인 시위, 우리나라 기부문화를 바꾼 아름다운재단의 1%나눔, 그리고 필요 없는 물건을 모아 세상을 아름답게 만드는 아름다운가게와 꿈과 상상을 현실 만드는 희망제작소를 만들 수 있었던 것은 모두 세 가지 덕목의 결과물이라는 것입니다.

시민운동과 사회운동에서 남다른 성과를 만들어낸 저자는 세상을 바꾸는 힘은 일상 속의 사소한 것들을 무심코 지나치지 않는 관심과 습관에서 비롯된다고 말합니다.

그는 뉴턴이 떨어지는 사과에 주목하였듯이 세상일도 주목해서 바라보라고 합니다. 주위의 평범함 속에서 특별함을 찾아낼 수 있어야 하며, 타인의 생각에 묻어가지 않고 자신의 생각으로 세상을 볼 수 있어야 한다는 겁니다.

시민들이 제안한 아이디어를 모아 이루어낸 성과가 바로 높이가 다른 지하철 손잡이(9호선), 생리하는 여성들의 수영장 요금 탄력 적용, 호화 관용차 등급 낮추기, 식품유통기한 표기 확대, ATM 현금 인출 수수료 사전고지, 경차택시 도입 같은 사례들이라고 합니다.

사람들의 새로운 생각을 현실로 만들어가는 것, 그것이 세상을 아름답게 만드는 희망이라는 것이지요. 희망제작소 사회창안대회에 나온 아이디어도 재미있습니다. 키득키득 웃음이 나올만큼 재미있습니다.

"도시에 혼자 사는 사람들끼리 농사를 지으며 친목도 도모하고 건강도 챙겨보면 어떨까 생각했습니다. 퇴근길에 상추를 뜯고 산책길에 방울토마토를 따 먹는 그림을 그려보았습니다. 일상이 무료하고 적적할 때면 함께 맥주 한잔 걸칠 수 있게 동네 친구를 사귀고 싶은 마음도 보탰습니다." (본문 중에서)

바로 '이웃 랄랄라'라는 사회아이디어라고 합니다. 재미있지 않은가요? 이런 네트워크가 만들어지면 도시생활도 훨씬 즐겁지 않을까요?

당신에게 또 다른 길이 있다

박원순 변호사는 경계가 무너지는 곳에 새로운 길이 있다고 말합니다. 정부와 기업, 시민사회의 경계가 허물어지고 있을 뿐만 아니라 심지어 일과 놀이의 경계마저도 무너지고 있다는 것입니다. 

시민활동가로 일하면서 제 경험도 다르지 않습니다. 일을 놀이처럼 즐겁게 하고 놀이에서도 일을 발견하는 경험을 많이 해 보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곳에서 새로운 길을 발견하게 되기도 하지요.

<원순씨를 빌려드립니다>에는 경계를 무너뜨리고 새로운 길을 여는 여러 사례가 소개되어 있습니다. 학교의 경계를 허무는 대안학교, 기업의 경계를 허무는 사회적 기업, 공정무역, 공공미술 같은 사례들입니다.

발상을 바꾸고 창의적인 생각을 모으고 그것을 현실에서 실현할 수 있는 방안을 찾아내면 세상을 바꿀 수 있다는 것이지요. ADDLE(대학생 광고회사), 하자센터 노리단 같은 것들이 모두 그런 사례에 해당된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정리하다보니 이 책은 박원순식 '자기개발서'이기도 합니다. 서점에서 책이 가장 많이 팔리는 분야가 바로 '자기개발서'라고 하는데, 이 책은 시민운동가, 비영리단체 활동가, 혹은 다른 길을 찾는 젊은이들을 위한 '자기개발서'이기도 합니다.

▲박원순의 희망열차 창원대학 강연회



젊은이와 비영리 활동가를 위한 박원순식 자기개발 지침

특히, 일목요연하게 정리된 직업선택 십계명을 비롯한 여러 가지 박원순식 지침들은 그가 가진 정보와 경험 그리고 노하우를 추려놓은 '엑기스'에 해당된다고 생각됩니다. 

▲ 거창고등학교의 직업선택 십계명

▲ 원순씨의 직업선택 십계명

▲ 아름다운 나눔을 위한 열 가지 조언

▲ 아름다운 모금을 위한 10대 강령

▲ 사람을 낚는 어부를 위한 십계명

▲ 좋은 기획안을 만드는 열 가지 요령

▲ 상상을 현실화하는 개인적 노하우

▲ 인생을 아름답게 만드는 일곱 가지 미덕

시민단체 활동가로 살아가는 저는 '사람을 낚는 어부를 위한 십계명'을 새겨 읽었습니다. 이미 경험으로 알고 있던 지침들도 있었지만, 알고 있으면서도 실천하지 못하였던 것들도 많더군요. 일상에 파묻힌 활동을 돌아보고 새로운 길을 모색할 수 있도록 부추기는 것도 그의 특기인 듯합니다.

그가 후배 활동가들에게, 그리고 새로운 길을 엿보고 있는 젊은이들에게 요구하는 것은 상상력입니다. 세상을 바꾸는 창조적 소수의 길을 가 보라는 것입니다. 남 다른 성취와 기대하지 않은던 다른 성공(?)을 경험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책을 놓으며 이런 생각도 해보았습니다. 나이를 먹어가는 탓인지 한편으로는 원순씨가 말 하는 발칙하고 기발한 상상력이 힘겹게 느껴지기도 합니다. 어떤 때는 꼭 이렇게 빡세게 살아야만 좋은 세상을 만들 수 있는가하는 생각도 듭니다.

조금 게으르고 좀 열심히 살지 않아도 국민들이 모두 행복하게 살 수 있는 나라는 만들 수 없는 것일까요? 원순씨 정말 이렇게 빡세게 살아야만 우리에게 '희망'이 있는건가요?
 



원순 씨를 빌려 드립니다 - 10점
박원순 지음/21세기북스(북이십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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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따뜻한 카리스마 2011.04.27 09:21 address edit & del reply

    박원순 변호사 대단해요^^ㅎ
    오늘 저녁 서울에서 강연 있습니다.
    수도권에 계신 분들은 많이 참석해주세요^^
    http://www.linknow.kr/event/1007238

왜 애들에게는 돈만 모으라고 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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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영리단체 활동가 미국 연수, 여행 ⑨]돈을 모금하는 것 보다 나눔교육이 먼저다

비영리단체 활동가 미국연수에 참여하여 2박 3일 동안 비영리기술컨퍼런스(NTC)에도 참가하였고 그 밖의 여러 단체와 기관도 방문하였습니다.

2주간의 짧지 않은 연수였지만 개별 기관이나 단체를 방문은 한 나절에 한 단체 정도였습니다. 대부분 지하철을 타고 이동하였기 때문에 실제로 기관에 머물면서 이야기를 듣고 질문을 하는 시간은 두 시간 남짓이었지요.

미국에서 방문한 여러 기관 중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곳은 역시 Common Cents.(www.CommonCents.org) 라는 단체입니다. 이 단체는 어린이들이 동전을 모아서 이웃을 돕는 단체입니다. 이 정도로 설명하면 우리 주면에서도 비슷한 단체를 많이 볼 수 있습니다.

지금 저희 집에도 중학교에 다니는 작은 아이가 '어린이재단'에서 나눠 준 저금통에 동전을 모으고 있습니다. 이렇게 모인 돈은 아주 유익하게 쓰이겠지만, 저희 아이의 역할은 저금통을 채워 학교에 갔다 주는 것으로 끝입니다.

아이의 역할은 매우 수동적입니다. 왜 돈을 모으는지, 돈을 모아서 어디에 쓸 건지는 모두 모금을 하는 단체에서 결정하는 일입니다. 제 아이의 역할은 그냥 돈만 모아서 주는 것이 전부입니다.


 
왜 우리는 아이들에게 돈만 모으라고 했을까요?

아이들에게 저금통을 나눠주고 동전을 모아오라는 '미션'을 주는 대부분의 단체가 모두 이런식입니다. 제가 일하는 단체에서 운영하는 유치원에서도 아이들이 동전모으기를 하는데 월드비젼을 통해 후원을 하는 '아이오니'라는 아이를 돕는 다는 구체적 목적은 있지만 아이의 역할은 별로 다르지 않습니다.

그런데, 뉴욕에서 활동하는 Common Cents라는 단체는 완전히 다른 방식으로 기부와 나눔 교육을 하는 기관이었습니다. Common Cents는 1달러 미만의 동전인 penny를 모으는 캠페인을 주요 사업으로 하는 단체입니다.

동전을 모은다는 것은 여느 단체와 별로 달라보이지 않습니다만, Common Cents의 모금에 참여하는 아이들은 그냥 돈을 모아주는 역할만 하는 것이 아닙니다.  

Common Cents의 모금 프로그램인 'penny harvest'(페니 모금)에 참여하는 아이들은 '돈을 모은 후에 돈을 누구에게 줄 것인가를 스스로 결정하도록 한다'는 것입니다.

아이들은 'penny harvest'(페니 모금)를 지도하는 현장 코치와 함께 모금을 위한 여러가지 전략을 짜고 직접 모금을 진행 할 뿐만 아니라 자신들이 모금한 돈으로 누구를 어떻게 도울 것인지를 스스로 결정한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우리가 흔히 하고 있는 동전모으기와는 차원이 다른 방식이었습니다. 그야말로 모금 뿐만 아니라 아이들을 민주시민으로 키우는 시민교육의 현장이더군요. 두 마리 토끼를 잡는 일었습니다.

▲ 록펠러센터 앞 100미터를 가득체운 panny harvest field 행사, 1억개의 동전 모금


두 마리 토끼를 잡는 모금과 나눔교육

Common Cents의 실무자로 일하는 한국계 미국인 '캐서린 조'는 "스스로 결정하는 시민을 키우기 위해 아이들이 돈을 모으고 아이들이 결정하도록 한다"고 하더군요.

Common Cents에는 중, 고등학생들도 참여하고 있지만, 가장 활발하게 참여하는 아이들은 유치원부터 초등학교 4학년 아이들이라고 합니다. 뉴욕에 있는 750여개 학교가 Common Cents와 함께 'penny harvest'(페니 모금)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있답니다.( 이유은 모르지만 부자들이 사는 것으로 알려진 맨하튼이 가장 적게 참여하고 있다더군요.)

어른들이 생각하는 모금은 큰 돈을 모으는데 주목하는데, Common Cents는 아이들이 내놓은 작은 돈으로도 의미있는 일을 할 수 있다고 보고 시작한 단체라고 합니다

저희에게 Common Cents 활동을 소개해 준 캐서린 조는 뉴욕시에서 운영하는 '시빅 콜'에서 훈련을 받은 후 1년을 기한으로 하고 6개월째 일하고 있는 활동가였습니다. 우리나라 청년 인턴제 비슷한 방식이었지만, 기업이나 단체에 나가 허드렛을 일을 하는 우리나라 인턴과는 아주 달랐습니다. 

6개월 째 일하고 있는 캐서린은 현재 150개 학교와 함께 일하고 있으며 학교에 있는 현장 코치들과 협력해서 일한다고 하였습니다.

그녀는 프로그램을 학교에 어떻게 실행 할 것인가 고민하고. 아이들이 학교에서 배우는 것과 관련하여 프로그램을 고민하며, 수업에서 Common Cents 프로그램이 진행될 수 있도록 협력하는 역할을 하고 있다고 하였습니다. 그동안 150개 학교 중에서 50개 학교는 현장 방문을 하고 있으며, 학교 교사들에게 교육을 위한 커리큘럼을 제공하고 있었습니다. 

Common Cents의 'penny harvest'(페니 모금) 프로그램을 학교에서 진행하는 것은 교장이 결정하지만, 모든 학교에서 'penny harvest'(페니 모금) 프로그램을 진행 할  수 있는 것은 아니었습니다.  

학교에서 'penny harvest'(페니 모금) 프로그램을 참가 여부를 최종 결정하는 것은 교장이지만, Common Cents에서는 'penny harvest'코치가 없는 학교에서는 프로그램을 운영하지 않는다고 합니다.

대부분 학교에서 'penny harvest'코치는 교사들이 맡고 있지만 어떤 학교에서는 사서 혹은 시설관리인이 코치 역할을 하는 경우도 있다고 합니다.

중요한 것은 현장 코치가 없는 곳에서는 'penny harvest' 프로그램을 진행하지 않는다는 원칙을 세우고 있었으며, 그것은 Common Cents 모금만 하는 기관이 아니라 '나눔 교육'을 하는 곳이기 때문인듯 하였습니다.
현장에서 일할 사람이 있어야만 이 활동을 한다.

프로그램을 진행하는 2달 도안 대체로 한 학교에서 아이들이 모으는 돈은 페니로만 600달러를 정도를 모은다고 합니다. 학년마다 반 마다 모금 경쟁이 벌어지고 모금을 위한 다양한 활동이 펼쳐진다고 합니다. 노래를 부르고 춤을 추는 등 아이들의 참여를 끌어내기 위한 여러가지 아이디어를 모은다고 합니다.

그리고 이렇게 돈이 모이면 아이들은 Common Cents에 모은 돈을 보내는 것이 아니라  돈을 어디에 사용할 것인지 의논한다는 것입니다. 돈을 어디에 어떻게 사용할 것인지 결정하는 과정이 바로 Common Cents가 진행하는 나눔 교육의 핵심이었습니다.

아이들이 다양한 이슈를 나열한 다음에 그것을 교실로 가져가서 학급 친구들의 의견을 묻고 투표를 한 후 다시 투표 결과를 모아서 전체 모금한 돈을 어떻게 사용할 것인지 결정한다는 것입니다.

아이들의 직접 가서 활동을 하는 경우도 있고, 특정한 단체를 후원만 하는 경우도 있지만 대부분의 경우 모금한 돈을 후원하고 동시에 자원봉사 활동에도 참여한다고 합니다. Common Cents의 중요한 원칙 중 하나가 지역에서 모금한 돈은 지역에서 사용하는 것이라고 합니다.

결국 돈을 모으는 것 뿐만 아니라 모금을 매개로 하여 아이들이 직접 모금 된 돈을 어떻게 사용할 것인지 결정하고, 직접 활동에 참여함으로써 아이들이 직접 경험하는 것을 중요하게 생각한다는 것입니다.

캐서린은 아이들끼리 회의하는 모습을 지켜보면 깜짝 놀랄 만한 의논이 이루어진다고 하였습니다. 아이들은 큰 곳을 도울 것인지, 작은 곳을 도울 것인지, 작년에 도움을 주었던 곳을 계속 도울 것인지, 새로운 곳을 도울 것인지를 진지하게 고민하고 의논한다는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아이들이 모금한 돈을 후원하는 방버블 결정할 때는 후원하고 싶은 기관의 실무자를 직접 불러 현황에 대한 소개를 듣고 직접 질문을 한 후에 후원 여부와 자원봉사 방법에 대하여 결정한다는 것입니다.

아이들이 돈만 모아주는 단순한 역할에서 벗어나서 모금을 기획하고 실행하며 배분을 직접해보는 놀라운 교육이 진행되고 있었습니다. 20년 넘게 이 활동이 진행되고 있기 때문에 많은 학교에서는 자발성에 기초하여 프로그램이 진행된다고 하였습니다. 그러나 새로운 학교의 경우에는 프로그램이 정착될 때까지 많은 노력이 필요하다고 하더군요.

Common Cents의 'penny harvest' 프로그램은 누구나 참여할 수 있도록 할 수 있다는 철학을 가지고 있습니다.  Common Cents는 아이들을 만나지 않고 돈만 받아가는 단체는 연결해주지 않는 원칙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현재 200개가 넘는 단체들이 Common Cents와 협력하여 이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있었습니다.



현장에서 일할 코치가 있을 때만 활동한다

인터뷰 말미에 Common Cents의 설립자이자 대표인 데니와도 잠깐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그는 자신의 작은 가족이야기로부터 시작된 Common Cents 활동이 퍼져나가는 것이 기쁘다고 하였습니다. 좋은 취지로 방문해 준 것이 감사하며, 서로의 정보교환과 만남이 세상을 바꾸는 긍정적인 역할을 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는 인사를 건냈습니다.

최근 어느 고등학교를 방문하였는데 일본 출신 학부형들이 모여서 캠페인을 시작하였다는 이야기를 들었다고 합니다. Common Cents는 기본적으로 지역 이슈에 관심을 가지지만, 글로벌 이슈에도 관심을 가지려고 한다더군요. 모금액의 10%는 글로벌 이슈에 투자하고 있으며 일본 사건 후에 글로벌 이슈 캠페인을 하자는 요구가 일어나고 있다고 하였습니다.

또 데니는 고등학생 자원봉사자 한 명을 우리에게 소개해 주었습니다. 3~4학년 때부터 Common Cents와 함께 'penny harvest' 활동을 하였는데, 17살이 된 지금은 Common Cents에서 대표인 데니의 인턴으로 활동하고 있으며 초등학교 5학년 후배를 인턴으로 두고 활동을 지도하고 있다고 하였습니다.

데니는 어떤 특정한 조사를 해 본적은 없지만, 이런 사례들을 보면 Common Cents 활동이 꾸준히 확산되는 것을 알 수있다고 하였습니다. 어린 시절에 'penny harvest' 활동에 참여하였던 아이들이 어른이 되어 코치가 되는 경우도 많다고 하였습니다. 미국에서 어린이들이 주도적으로 참여하는 아주 기발하고 놀라운 '나눔 교육'의 현장을 목격하게 되었습니다.



Common Cents는 당시 4살이었던 딸 '노라'와 함께 거리를 다니면서 아빠인 '데니'에게 이런 질문을 하였다고 합니다.  "노숙자들을 집으로 데리러 갈 수 있는지..."  이 질문이 Common Cents와  'penny harvest' 의 탄생 배경이 되었다고 합니다.

미국에서 방문한 여러 기관에서 많은 돈을 모으는 방식에 관한 이야기를 들었습니다만, Common Cents에서는 많은 기부금을 모으는 것 보다 어떻게 아이들에게 '나눔'교육을 할 수 있는지, 어린이가 스스로 즐기면서 참여할 수 있도록 할 수 있는지 배울 수 있었습니다. 

Common Cents는 세상에 많은 단체들 처럼 아이들에게 좋은 일에 쓸 돈을 모아달라고 요구하는 단체가 아니었습니다. 'penny harvest' 어린이들에게 나눔과 도움의 활동들이 세상을 더 나은 곳으로 만들 수 있다는 것을 직접 체험할 수 있도록 해주고 능력을 키워주기 위해서 노력하는 재미있고 의미있는 프로그램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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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탐진강 2011.04.04 09:18 address edit & del reply

    돈 뒤에 진리가 있다 라고 말씀하신 중학교 선생님이 생각납니다.
    선생님의 가르침이 중요하고 학부모들이 어떻게 자식을 기르느냐가 중요하지요.

    • 이윤기 2011.04.05 08:08 신고 address edit & del

      네 미국의 기부문화가 조세제도 때문이라는 측면이 있지만 아이들에게 나눔교육을 제대로 하는 것은 배워야 할 것 같습니다.

  2. 제드 2011.04.04 10:18 address edit & del reply

    목표를 정해 돈을 모으게 하고, 직접 기부처를 선택할 수 있게 하기. 간단하지만 무척 중요한 교육이 되겠네요. 아직 아이가 어려 돈을 모을 나이는 되지 못했지만, 나중에 자라서 '스스로 돕는' 아이가 되도록 하기 위해 기억해두어야겠습니다. :)

    • 이윤기 2011.04.05 08:09 신고 address edit & del

      네, 유명한 단체에서 주는 저금통에 동전만 채워서 보내는 것으로는 나눔교육을 제대호 한다고 할 수 없겠더라구요

  3. chamstory 2011.04.04 18:28 address edit & del reply

    목적이 교욱인가 아닌가의 차이지요.

    • 이윤기 2011.04.05 08:10 신고 address edit & del

      그렇네요. 돈(모금)이 목적인 곳과 교육이 목적인 곳의 차이네요. 미국의 대부분 단체는 모금만 강조하였는데...이곳이 유일하게 교육을 강조하더군요.

  4. cashbank 2011.04.04 21:31 address edit & del reply

    반성되네요..
    저부터도 베푸는것 보다는 모으는 것이 더 쉽게 느껴지니 말이죠..

    • 이윤기 2011.04.05 08:14 address edit & del

      옛 어른들이 돈 버는 자랑 말고 쓰는 자랑을 하라고 했는데요. 모금하는 것 못지 않게 나눔교육이 중요하다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비영리를 지원하는 비영리단체 Network for Goo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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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영리단체 활동가 미국 연수, 여행 ⑤] 온라인 모금 성공 사례

해피빈재단이 후원하는 비영리단체활동가 해외연수, 첫 번째 기관 방문은 워싱턴에 있는 네트워크 포 굿(Network for Good)입니다. 

네트워크 포 굿은 비영리단체의 모금활동을 지원하기 위해 일하는 비영리 기관입니다.

2001년에 설립된 네트워크 포 굿은 America Online, Cisco Systems, Yahoo가 공동 설립한 온라인 비영리 모금 기관이라고 합니다.

 주로 기부자와 그들이 선호하는 자선활동을 온라인상으로 이어주고 비영리 자선단체들에게는 자원을 끌어들일 수 있게 도와주는 역할을 합니다.

온라인상에서 기부금을 내는 사람들과 기부금을 걷는 사람들을 기술적으로 돕는 일을 하는 것입니다. 그동안 이런 지원 활동을 통해 약 340만 달러 이상을 모금하였다고 합니다. 마케팅 캠페인, 기부금 모금 그리고 적절한 모금을 하는데 필요한 교육적인 역할을 한다는 것입니다. 

홈페이지 메인 화면에는 기부자, 비영리기관, 파트너기업을 위한 정보가 세분화 되어 있습니다. 아울러 다양한 배분 정보 그리고 최근의 트랜드는 어떻게 바뀌는지, 새로운 프로그램은 어떤 것이 나와 있는지를 소개하고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온라인에서 걷은 기부금을 어떻게 분배하는지와 같은 잘들도 모두 홈페이지에 나와 있다고 합니다. 즉 Network for Good은 기본적으로 다른 NPO를 지원하는 역할을 하는 기관인 것입니다.



쓰나미와 같은 긴급재난에 어떻게 대처하는가?

예컨대 쓰나미와 같은 긴급재난이 발생하는 경우 네트워크 포 굿은 자신들이 파악하고 있는  모든 구호단체에 구호활동을 촉구하는 메일을 보낸다거나 혹은 긴급재난을 돕고 싶은 사람들이 어떻게 참여할 수 있는지 알리는 활동을 한다는 것입니다.

아울러, 네트워크 포 굿에 참여하는 여러 회사들의 웹사이트에 모금에 관하여 올림으로써 보다 많은 사람들이 참여할 수 있도록 하고, 또 네트워크 포 굿에 참여하고 있는 단체를 일본에 있는 단체와 직접 연결해주는 역할도 하고 있었습니다.

네트워크 포 굿은 기본적으로 모금 진행과정에서 투명성을 확보하는 것을 중요하게 판단한다고 하였습니다. 특히 미국에서는 모금활동에 대하여 신뢰를 조사하는 기관이 있어서 사전에 여러 자선단체의 활동을 평가하여 위험을 예방한다는 것입니다.

네트워크 포 굿을 통한 모금도 규모가 큰 기관이 유리한 것 아닌가?

네트워크 포굿에는 10만 개 이상의 단체가 참여하고 있지만 미국의 경우를 보면 적십자를 비롯한 큰 규모의 단체들에 모금이 기회가 집중되는 것이 현실이라고 합니다. 결국 작은 단체들에게도 모금의 기회를 주는 것이 중요하기 때문에 네트워크 포 굿은 모금 지원을 위한 다양한 방법을 고민하고 있다고 합니다.

예컨대 큰 재난이 있는 경우 큰 단체가 먼저 구호활동에 참여하겠지만, 작은 단체들도 섬세한 활동을 펼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일본 대지진과 쓰나미 같은 갑작스런 재난이 일어나면 큰 단체가 80% 이상을 모금할 수밖에 없는 것이 현실이지만, 적어도 일상적인 활동에서는 20%의 작은단체가 80%를 모금할 수 있도록 지원한다는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작은 규모의 단체들이 정작 할 수 있도록 축적된 모금 방법을 교육하고 지원하는 활동을 하고 있다고 합니다. 아울러 웹 세미나를 매주 실시하고, 사례연구를 진행할 뿐만 아니라 케이스 스터디, 초청강연과 교육, 오프라인 세미나 등을 진행한다고 합니다. 

소속 단체의 경우 웹사이트를 만드는 기본적인 기술은 무료로 제공하며 작은 조직들의 경우 직접 요청하는 어프리케이션도 지원해준다고 합니다.

긴급재난이 발생하는 경우에도 꾸준히 소속 단체에 대한 자료를 축적하고 있기 때문에 좀 더 쉽게 모금활동을 진행할 수 있다고 합니다. 그러나 새로운 단체가 모금에 참여하겠다고 하는 경우에는 단체에 대한 평가와 판단을 먼저 한다고 합니다.

아울러 네트웍크 포 굿은 신용카드로 기부하는 기부자들이 어디에 어떻게 돈을 냈는지 모니터 할 수 있으며, 단체들이 기부자를 관리할 수 있도록 기본적인 정보를 제공해 주기도 한답니다.

네트워크 포 굿은 40여명의 직원이 일하고 있으며 워싱턴에 30명 샌프란시스코에 10명이 근무한다고 합니다. 직원들은 비영리 마케팅에 대한 교육프로그램을 진행하며, 프로그램을 판매하는 일도 한답니다. 특히 최근에는 소셜 네트워크를 활용한 모금에 직원을 배치하였다고 합니다.

▲ Network For Good (네트워크포굿) 홈페이지 http://www.networkforgood.org/


비영리단체에 맞춤형 프로그램을 팔아 수익을 거둔다?

많은 사람들이 비영리단체를 방문하면 단체의 운영비를 어떻게 조달하는지 궁금해 합니다. 네트워크 포 굿에도 같은 질문을 하였습니다. 그랬더니 가장 큰 수익은 프로그램 판매라는 답이 돌아왔습니다.

네트워크 포 굿 경우 AOL이나 Yahoo 같은 기업이나 재단의 기부금을 받기도 하지만 기본적인 재정 마련은 모금 프로그램 판매를 통해서 충당한다고 합니다. 또 특수한 프로그램을 개발하는 경우 외부 재단의 기부금을 받는 경우도 있답니다. 

네트워크 포 굿이 비영리단체들에게 프로그램 판매로 기금을 마련하는 것에 대해서 단체들이 어떻게 생각하느냐를 물었더니, 저희와 만났던
케이트 올슨(Kate Olsen)은 다음과 같이 대답해주었습니다.

“네트워크 포 굿은 처음 시작할 때부터 비영리단체들에게 무료 서비스와 프로그램을 많이 제공함으로써 비영리단체로서 기반을 먼저 닦았다. 그러나 좋은 취지만으로 살아남을 수 없기 때문에 기본 프로그램은 무료로 제공하지만 맞춤형 프로그램은 판매하는 것이다.

기본 프로그램을 무료로 사용하는 단체는 1만 개 단체, 맞춤형 유료 툴을 사용하는 단체가 1만 2천 개, 교육을 받고 관계를 맺고 있는 단체는 120만 개, 직접 계약을 맺고 프로그램을 맺은 단체는 2만 4천개 단체, 무료 프로그램을 이용하는 단체는 10만개에 이른다.

비영리 단체들이 모금을 진행해보면 맞춤형 프로그램을 이용할 때 훨씬 큰 효과를 거두고 있기 때문에 비용을 부담하는 것이다. 미국에서도 모금이 가장 활발한 달은 12월이다. 연말에 특별 기부프로그램 제공을 가장 많이 받는다. 네트웍 포 굿 프로그램을 이용한 단체들이 다른 단체들 보다 평균 9만 불을 더 모금하였다. 프로그램의 혜택을 보고 있는 것이다.“

단체들이 새로운 자료를 업데이트하는 것을 부담스러워 하지 않는가?

미국의 경우에도 작은 단체들은 새로운 자료를 업데이트 하는데 부담을 느낀다고 합니다. 대체로 교육이나 일상 활동에 대해서는 매일 업데이트하고, 단체에 관해서는 1주일에 한 번 정도 업데이트 하도록 되어 있다고 합니다.

또 작은 단체들의 경우 템프릿을 만들어 RSS, 트위터 등을 연결하면 굳이 컨텐츠를 올리지 않아도 되도록 되어있다고 합니다. 이건 직접 한 번 보고 싶었는데 말로만 들었기 때문에 사실 잘 실감이 나지는 않습니다.
아무튼 단체마다 사정이 다르기 때문에 자주 업데이트 하는 단체도 있지만, 한 달 한 번 혹은 두 달에 한 번씩 업데이트하는 경우도 있다고 합니다.

아래 정리된 자료는 녹색연합 최위환 / 해피빈재단 선지은 / 한국여성민우회 김희영님이 정리한 자료를 해피빈재단 Happy Log-人에서 가져왔습니다. 원본 자료를 보시려면 여기로 가시면 됩니다.

Q 1. 이번에 일본에서 지진이 일어났을 때 네트워크포굿이 굉장히 빠르게 회원들에게 기부처를 안내한 모습이 인상깊었습니다. 혹시 긴급하게 모금을 할 수 있는 특별한 시스템이 있나요?

네트워크포굿은 비영리단체와 후원기업에게 긴급하게 연락할 수 있는 네트워크망이 있어, 재난 시 모든 구호단체들에게 모금을 진행하는 단체를 확인하고, 후원 기업들에게는 모금사실을 알려 회사 페이지에 모금관련한 사실을 소비자들이 알릴 수 있도록 합니다. 일본 지진 긴급구호의 경우 가능한 일본 현지의 단체들과 연결을 해서 모금의 투명성을 확보할 수 있도록 직접 기부 할 수 있도록 진행 하고 있습니다.

Q 2. 네트워크포굿에서 모금을 원하는 단체는 현재 약 60,000개가 있습니다. 이 중에서 기부자들에게 대표적으로 홍보를 하고 후원기업과 연결해주는 단체를 투명하고 공정하게 선정하는 기준과 원칙이 있나요?

비영리단체의 회계 투명성을 조사 하는 기관(Guide Star)의 추천을 받아 선정합니다. 조사기관에서는 대부분의 비영리 단체에 대한 재정정보와 함께 신뢰성을 평가할 수 있는 자료가 보관되고 공개되어 있습니다. 가이드스타에서 평가한 신뢰도 있는 단체들은 재정과 규모가 큰 적십자사나 국경없는 의사회 등 대규모의 단체들이 대부분이고 이 곳으로 주로 기부가 이루어지는 경향이 있습니다.

Q 3. 그렇다면 지원이 필요한 작은 규모의 풀뿌리 단체들이 모금에 소외되는 경향에 어떻게 대응하나요?

큰 단체와 작은 단체들은 각기 고유의 역할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긴급한 상황과 재난모금의 경우는 큰 단체들을 지원하지만 작은 단체의 경우를 더욱 고려하고 지원하는 프로그램이 있어, 단체의 특성에 맞게 모금사이트를 컨설팅과 함께 제공하고, 이메일 마케팅프로그램, 작은 단체에 맞는 모금에 대한 교육과 지원 등을 진행합니다. 교육은 무료로 제공되나 기부자들이 자신의 블로그나 페이스북에 달 수 있는 모금배너와 같은 경우는 무료로 제공하며, 모금에 효과적인 커스터마이징 프로그램은 유료로 제공하고 있습니다.

Q 4. 비영리 단체에게 모금 교육 컨텐츠와 경험을 제공하는 주요한 방법?

케이스스터디 전문가들을 초청하여 그에 맞는 온/오프라인 세미나를 진행하고 모금과 관련된 특정한 주제에 대한 중점적인 문제해결방법을 공유하고 많은 소액기부자들과 비영리단체들의 모금방법과 주제들에 대해 연구하고 나누고 있습니다. 기부자들이 후원단체에 지속적으로 기부하도록 지원할 수 있도록 기부자들의 정보(이메일, 연락처, 모금액)들을 단체들에게 제공하고 지속적으로 피드백을 할 수 교육 합니다.

Q 5. 네트워크포굿의 일을 하면서 개인적인 가장 보람을 느끼는 순간은?

작은 비영리단체에서 네트워크포굿의 모금프로그램을 통해 큰 성과를 얻어 성공적으로 사업을 진행하는 모습을 볼 때 가장 보람을 느끼며 '말라리아노모어'. 홈리스를 지원하는 '인비져블피플'과 같은 단체의 경우가 대표적인 사례입니다.

※ 비영리단체 활동가 해외연수 프로그램은 해피빈재단이 후원하고 아름다운재단이 진행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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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저녁노을 2011.03.26 10:34 address edit & del reply

    좋은일 많이 하며 운영하는 비영리 단체...
    잘 보고가요.

    즐거운 주말 되세요

    • 이윤기 2011.03.31 10:14 address edit & del

      네, 저녁노을님

      격려해주셔서 고맙습니다.

노근리 사건 영화 '작은 연못' 필름 사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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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0년 6.25전쟁 발발 후 7월 충청도 산골마을 노근리에서 벌어진 양민학살 사건을 영화화한 '작은 연못'이 곧 개봉된다고 합니다. 지난 2일에는 씨너스 이수 극장에서 국내 최초로 트위터 시사회를 개최하여 화제가 되기도 하였습니다.


 

 

영화 ‘작은 연못’ 트위터에서 자연스럽게 공감대가 형성된 네티즌들이 직접 영화사에 시사회를 요청하였으며, 시사회 현장은 무선 인터넷 사용이 가능하도록 하여, 트위터 사용자들이 영화 상영 직후 노트북과 스마트폰으로 트위터를 통해 감상평을 나누었다고 합니다.

'작은 연못'은 한국 전쟁 중에 미군이 300여명의 한국 민간인을 학살한 노근리 사건을 영화로 만들려고 하였더니 한 곳도 제작사로 나서지 않아 맨주먹으로 영화 제작을 시작하였다고 합니다.

142명의 '개념'있는 배우들이 모두 노개런티로 출연하였으며, 229명의 스탭들이현물을 투자한 스텝들이 현물을 출자하여 땀과 노력으로 만들어진 영화입니다. 돈 없이 영화 만들려다보니 다 찍어놓고도 공짜로 CG작업 해주기로 한 스튜디오의 일정에 밀려 8년만에 완성된 영화라고 합니다.

그래서 결과적으로 6.25전쟁 60주년에 맞추어 개봉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노근리사건은 50년이나 묻혀있다가 1999년 AP통신에 의해 외신으로 보도되어 본격적으로 알려지기 시작하였습니다.




노근리 양민학살사건(老斤里良民虐殺事件, No Gun Ri massacre)은 한국전쟁 중 조선인민군의 침공을 막고 있던 미국 1 기병사단 7기병연대 예하 부대가 1950년 7월 26일에서 1950년 7월 29일에 충청북도 영동군 황간면 노근리의 경부선 철교에 접근하고 있던 한국인 피난민 중에 조선인민군이 섞여 있다고 의심하여, 피난민을 철교 위에 모아 공군기로 기총소사하고 달아나는 사람은 쫓아가서 사살한 사건이다. 이 때문에 300여 명의 민간인이 피살되었다.

가해자들의 은폐로 오랫동안 덮여 있었지만, 1994년에 살아남은 주민이 저서를 출판하였고, 1999년 9월 9일 AP통신이 대대적으로 보도하면서 세상에 알려지게 되었다. 같은 해 10월 29일 주한미군이 현지조사를 실시하여, 2004년에는 사건의 희생자의 명예를 회복하는 법안이 국회를 통과하였고, 이 사건은 반미 감정을 높이는 원인 중 하나가 되었다.

이 사건이 일어났던 경부선 노근리 쌍굴다리는 2003년 6월 30일, 대한민국의 등록문화재 제59호로 지정되었다.(위키 백과사전)

영화 '작은연못'은 투자자도 없고 배급사도 없이 만들어져 3월 22일 울산을 시작으로 4월 7일까지 전국 8개 지역에서 1만 명 규모의 시민사회단체 시사회를 개최함과 동시에 극장 상영용 필름(프린트 필름) 구매 캠페인을 벌이고 있다고 합니다.

전국의 시사회장에서 필름구매 캠페인과 모금활동이 벌어지고 있는데, 최소 1만원을 내면 누구든지 상영용 필름 구매을 공동으로 구매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필름 구매 캠페인에 참여하게 되면 상영용 필름을 1벌을 100명의 캠페인 참여자와 공동으로 소유하게 된다고 합니다.

상영용 필름에 새겨진 100명의 캠페인 참여자 이름은 4월 15일부터 개봉되어 영화가 상영될 때 약 10초간 노출된다고 합니다. 모든 캠페인 참가자들은 자신이 구매한 필름이 어느 극장에서 상영되고 있는지 공식 홈페이지(http://www.alittlepond2010.co.kr/ )를 통해서 확인할 수도 있답니다.

아울러 시사회에 참여하지 않은 사람들도 공식 홈페이지를 통해서 프린트 필름 구매에 참여할 수 있다고 합니다. 저도 난생 처음 영화 프린트 필름 구매에 참여해보려고 홈페이지를 방문해보았습니다.

그런데, 방문자가 한꺼번에 몰려서 그런지 '서버 접속이 원할하지 않다'는 메시지가 반복해서 나오고 있었습니다.  4월 4일 21시 현재까지 이상 2803명이 참여하였다고 합니다. 벌써 상영용 필름 28벌을 구매한 셈입니다. 약한자들이 힘을 모아 진실을 알리는 일에 당신도 함께 참여해주시길 기대해 봅니다.



"작은 정성이 모여서 한국 현대사의 아픈 상처를 알리고 보듬는 기회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작은 연못'을 관람할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투자자 배급자도 없이 만들어진 이 영화가 약한자들이 힘을 모아 진실을 알리는 계기가 되기를 기원합니다."

제가 필름 구매 캠페인에 참여하여 '남기고 싶은 말씀'에 쓴 글 입니다. 약한자들의 작은 정성이 모여서 전국 여러 개봉관에서 영화 '작은 연못'을 만날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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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모모 2010.04.08 08:10 address edit & del reply

    마산에서도 상영되기를 간절히 바라는데요. 100명을 모아서 필름 하나를 사면 마산에서도 볼 수 있을까요? 머리만 굴리고 있었는데, 오늘은 배급업체에 문의를 해봐야겠어요.

    • 이윤기 2010.04.08 08:47 신고 address edit & del

      100명 모아서 가능하다면, 쉼표에서 한 번 추진해보는 건 어떨까요?

동네에서 1억 모금하여 세운 느티나무 도서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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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래 동영상으로 나오는 CF 보신적 있나요? 

아이들의 돼지저금통도
할머니의 쌈짓돈도
아빠의 비상금도
아낌없이 모아 1억이 되었습니다.
우리마을 희망의 도서관이 되었습니다.
세상을 밝히는 희망의 돈
국민이 만듭니다.


국민은행에서 만든 광고인데, 제목이 '반송동 사람들의 돈' 입니다.

부산반송동 주민들이 세운 느티나무 도서관 이야기입니다. 40초짜리 짧은 광고이니 아래 동영상을 꼭 한 번 보시기 바랍니다.






▲ 느티나무 도서관을 세운 '반송동 사람들의 돈'이라는 제목의 광고입니다.


지난 월요일 부산 해운대구 반송동에 있는 느티나무 도서관에 다녀왔습니다. 지역 주민운동의 모범적인 사례를 함께 탐방하고 연구하는 시민단체 활동가들과 함께 해운대구 송정동의 사회적기업 '막 퍼주는 반찬가게'와 '느티나무 도서관'을 방문하였습니다.

느티나무 도서관은 부산 반송동에 있는 자그마한 도서관입니다. 지하 1층, 지상 4층, 각층 건평 35평 정도의 작은 면적인데 참 쓸모있게 지어진 건물이었습니다. 아마, 주민들의 요구를 잘 반영한 독창적인 설계 때문이 아니었을까 싶습니다. 35평이면 흔히 볼 수 있는 30평대 아파트 크기인데 직접 가서 보면 훨씬 넓은 것 같은 느낌입니다.




기적의 도서관 보다 더 기적적인 도서관

예전에 MBC 느낌표라는 프로그램에서 도서관을 지어주는 '기적의 도서관'이라는 프로젝트를 방송한 적이 있습니다. 제 기억으로는 도서관이 들어서는 해당 자치단체에서 부지를 제공하면 '책읽는사회만들기국민운동본부'와 MBC 느낌표에서 건물을 지어주는 프로젝트였습니다.


지역주민들이 간절하게 원하는 어린이 전용 도서관이 그야말로 '기적'처럼 만들어지는 꿈 같은 일이 벌어져서 깜짝놀랐던 적이 있습니다. 그런데, 부산 반송동에서는 느낌표 기적의 도서관보다 훨씬 더 놀아운 '기적'이 일어났더군요. 바로 느티나무 도서관이 그 놀라운 기적이었습니다.

2007년 1월부터 약 10개월 동안 1억원을 목표로 모금을 시작하여 1억 6천여 만원을 모금하는 '기적'이 일어났다고 합니다. 국민은행 광고처럼 정말 아이들의 돼지저금통도, 할머니의 쌈짓돈도, 아버지의 비상금도 모두 모았다고 합니다.



건축비와 토지 매입비를 포함하여 3억 6천여만원이 들었다고 합니다. 외부지원금과 각종 프로젝트, 국민은행 광고 수입 등을 제외한 절반에 가까운 돈을 마을 사람들이 모금하였다는 것입니다. 이런 일을 직접 해보지 않은 사람들은 이것이 얼마나 힘든 일인지 잘 모릅니다. 그러나, 이런 모금을 해 본 사람들은 이것이 정말 '기적' 같은 일이라는 것을 다 압니다.

처음에는 1억을 기부해 줄 독지가를 찾는 방식으로 도서관만들기 운동을 하였지만, 이내 1만원씩 1만 명을 모금하여 1억원을 모금하는 운동으로 전환하였으며, 마침내 목표를 초과하여 1억 6천여 만원을 모금하였다고 합니다.

일만 명이 일만 원씩 일억원 모금

최근에는 (아직 충분하지 않지만) 마을도서관이나 어린이 도서관에 관심을 갖는 지방자치단체가 늘어나면서 곳곳에 주민밀착형 작은도서관이 만들어지고 있습니다. 그런데, 지자체가 세운 도서관과 느티나무 도서관은 정말 차원이 다른 도서관이더군요.

지자체가 세운 도서관은 조금씩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여전히 자치단체인 시가 주인이고 시민은 그냥 적극적인 이용객일 뿐 입니다. 그런데, 느티나무 도서관은 다름니다. 모금에 참여한 마을 주민들이 모두 주인입니다. 뿐만 아니라 매월 1만원 이상 회비를 내는 400여명이 넘는 후원회원은 알짜배기 주인입니다.



느티나무 도서관은 반송지역에서 주민운동을 하는 '희망세상' 회원들이 주축이 되어 만든 마을도서관입니다. 이 단체 사무국장이 김혜정씨는 희망세상의 다음 목표는 재정 자립이라고 합니다.

"희망세상 2009년 목표는 3년간 천명의 회원을 조직하는 것이다. 희망세상과 느티나무 도서관은 대중단체이고 주민들이 함께 하지 않으면, 사람들이 찾지 않으면 희망세상의 발전은 없다. 3년안에 천명의 회원을 조직하여 재정적으로도 자립하고 활동에서도 획기적인 변화 발전을 이룩하는 것이 올해의 가장 큰 목표이다. 1년에 330명,  매달 30명씩 회원을 늘여야 한다."


저도 시민단체에서 일하고 있지만 참 '야심찬'(?) 목표, 부러운 목표가 아닐 수 없습니다. 어디서 이런 자신감이 나왔을까요? 지역에 기반한 주민운동에서 이룩한 성공사례가 있기 때문이겠지요.

지역주민 5만 8천명이 사는 동네에서 희망세상이 앞장서서 준비하는 어린이날 행사에 1만 명이 모여서 축제를 벌인다고 합니다. 2002년 지방선거부터 희망세상을 대표하여 구의원에 출마한 후보를 2회 연속으로 당선 시켰다고 합니다.

앞서 소개드린 느티나무 도서관은 불과 6개월 만에 기적 같이 세워졌습니다. 물론 행정의 뒷 받침과 외부의 적지 않은 지원과 협력이 있었지만, 그런 지원을 끌어낸 것도 모두 희망세상과 반송지역 주민들의 역량이었다고 생각됩니다.

아이들, 청소년들, 어른들이 책 읽고, 수다 떨고, 만나고, 소통하는 느티나무 도서관은 반송을 살기 좋은 동네로 만드는, 늘 새로운 희망을 일구는 터전이 되었더군요. 대한민국 곳곳에서 이런 기적이 일어났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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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흙장난 2009.06.12 10:04 address edit & del reply

    이윤기님은 김혜정님 안티.^^

    훈훈한 글 잘 읽고 갑니다.

    • 이윤기 2009.06.12 10:27 신고 address edit & del

      안티(?)라니 무슨 말씀이신가요? 말로만 듣던 반송에 직접가보니 참 대단하더군요. 글로 다 적지 못한 지역사회의 변화에 감동 많이 받고 왔습니다.

  2. 구르다보면 2009.06.12 16:13 address edit & del reply

    기사를 보고 기쁘기보다는 슬픕니다.
    주민들이 저렇게 원하는데 지자체는 뭐했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도서관은 원초적으로 공공성을 가집니다.
    단체나 개인이 하기에는 많은 한계가 있습니다.
    그래서 국가에서 감당해야 한다고 봅니다.

    단 운영을 어떻게 할 것인가?
    "지원하돼 간섭하지 않는다"는 원칙만 지킬 수 있다면 좋은데
    현실이 그렇지 않죠..

    앞으로 반송의 일이 다시 일어나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노전대통령이 다하지 못한 일이기도 하죠,..

    • 이윤기 2009.06.12 17:57 신고 address edit & del

      느티나무도서관 만들기는 도서관 건물을 짓는 것이 아니라 주민운동의 과정이 더 소중하다고 생각합니다. 지금 이 도서관은 마을 주민들이 진짜 주인이거든요. 그냥 말로만 주민이 주인인 것이 아닙니다.

      도서관 시설에 문제가 있으면 구청에 전화해서 고쳐달라고 하는 것이 아니라 마을주민들이 자발적으로 달려와서 고칩니다. '주민자치'가 이루어지고 있는 것이지요.

      도서관의 공공성에만 주목하면... 행정에 의한 '자치'만 남고...주민자치는 글쎄요?

      느티나무도서관의 반송 주민들의 '자치'와 '참여' 수준을 확~ 끌어올렸다고 생각되거든요. 저는 점점 많은 사례가 있었으면 좋겠어요.

      모든 것을 국가가 해결하고 세금을 많이 내는 방식도 있겠지만, 주민이 스스로 만들고 가꾸고 세금을 덜 내는 다른 길도 있다고 봅니다.

    • 구르다보면 2009.06.13 00:15 address edit & del

      반송신문부터 시작을 했죠
      그때 부터 알고 있던 곳입니다.

      그리고 부산에는 또 금샘이 있죠..
      근데 그 하나 뿐이라는 것입니다.

      산지님이 올린 글을 보니 구에서 도서구입비를 지원하는 것 같습니다. 주민들이 순수하게 한 것이 아니라면 행정의 간섭을 벗어 날 수 없습니다.

      행정과 운영주체의 역할과 관계에 대한 애초의 설정이 중요하고 그것을 체계화 시켜 나가는 것이 더 많은 반송을 만드는 일이라 봅니다.

      반송의 사례가 일반 사례로 되기는 힘든 부분이 많지 않을까요?

  3. 김혜정 2009.06.26 12:16 address edit & del reply

    이윤기 선생님 좋은글 감사합니다. 회원들이랑 함께 읽으면서 다시 한번 결의를 세우게 되었습니다. (사진 좀 예쁘게 찍어주시지 ㅋㅋ) 다음에 시간 나면 더 많은 이야기 해 드릴께요

    • 이윤기 2009.06.27 09:27 신고 address edit & del

      김혜정 선생님 어찌 알고 다녀 가셨군요. 소문으로 듣던 반송에 직접 가 보고 많이 배웠습니다. 일간 또 뵙겠습니다.

한국Y, 팔레스타인 구호기금 2500만원 모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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팔레스타인, 가자 지구 구호 대상자 10만명 이상 !

이스라엘의 팔레스타인 가자지구 침략으로 인한 피해윤곽이 드러남에 따라 구호대상자도 점점 늘어나고 있다고 합니다. 지난 1월에 나온 팔레스타인 보건부 자료에 따르면 사상자만 5300여명에 이르고, 가자 YMCA가 전해온 자료에 따르면, 사망자의 40%이상이 어린이라고 합니다.

 
UN난민구제사업국이 관리하는 50개 피난처에 접수된 피난민은 약 5만 1천여명이라고 한다. 또한 가자지구내 상당수 수도가 훼손돼 약 40만 명의 주민들이 수돗물을 쓰지 못하는 상황이었다고 합니다.

제가 일하는 YMCA에서는 가자YMCA를 통한 팔레스타인 구호 활동 지원을 위하여 지난 1월 중순부터 전국YMCA 회원들과 다음 아고라 모금 청원, 일반시민 등을 통하여 모금활동을 전개하였습니다. 지난 3월말까지 이루어진 1차 모금활동을 통해 25,080,160원을 모금하였다고 합니다.

가자 YMCA는 피난민이 밀집한 학교를 중심으로 구호사업을 시작하였고, 담요와 매트리스, 음식, 옷가지, 청소도구를 지원하는 활동을 하고있습니다. 3월부터는 어린이를 대상으로 하는 사회심리치료 프로그램도 시작하였다고 합니다.



한국YMCA전국연맹은 긴급구호를 지원하기 위한 1차 모금이 마무리 하고, 앞으로 2차 모금을 통해 사회심료치료와 학교 재건을 위한 지원사업, 청년평화웍캠프 에 나설 계획이라고 합니다.

블로거는 다음 위젯 뱅크에서 배너만 걸어도 모금 참여 가능 !

블로거들은 자신이 직접 팔레스타인 모금에 참여하는 방법도 있지만, 개인 블로그에 다음 위젯 뱅크만 배너로 걸어도 '다음'에서 1,000원을 팔레스타인 기금으로 적립해줍니다. 아울러 다음 위젯을 따라가면, 네티즌들이 쉽게 '팔레스타인 모금에 참여할 수도 있구요. 제 블로그에도 다음 팔레스타인 모금 위젯이 걸려있습니다.

1월 8일에 시작된 다음 위젯은 그동안 모두 1,285명이 퍼간 것으로 되어있습니다. 1명이 1,000원이면 지금까지 겨우 1,285,000원이 모금된 셈입니다. 그러나, 다음 아고라에서 이루어진 모금 청원에는 20여일 만에 모금 목표 2000,0000원을 초과하는 2000,2150 원이 달성되었더군요.

모금액은 한국 유니세프를 통해 현지에서 구호 및 물품 지원 활동을 펴고있는 국제 유니세프에 전달하며, 팔레스타인 가자지구 의료 구호물품 지원에 사용한다고 합니다. 이 밖에도 '월드비전'을 비롯한 전문 구호단체에서도 팔레스타인 모금을 지속적으로 진행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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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구르다보면 2009.04.09 20:14 address edit & del reply

    위젯 달라는 은근한 압박 맞죠^^

[통일자전거7]"자전거 국토종주, 아빠가 가자고 해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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겁없는 부자, 마산에서 임진각까지 600km를 달리다

한국YMCA가 3년 사업으로 진행하는 북한통일자전거보내기운동을 위한 캠페인으로 '청소년 통일자전거 평화종주단'을 운영하고 있다.

이미 2005년에는 부산에서 광주, 대전을 거쳐서 임진각까지, 2006년에는 목포에서 순천, 전주, 대전을 거쳐서 임진각까지 자전거를 타고 국토종주를 하면서 통일자전거 캠페인을 전개한 바 있다.

그리고 올해는 마산에서 부산, 경주, 대구, 구미, 김천, 대전을 거쳐서 임진각까지 600여km를 달리면서 통일자전거 캠페인을 하기로 계획되어 있었다.

아들과 함께 통일자전거 종주에 참가하기로 결정한 것은 지난 6월. 6월항쟁 기념사업의 하나로 기획된 '대한민국 하나로 잇기 행사'에 참여하면서 아들 녀석과 나는 김해에서 마산까지 자전거를 타고 왔다.

1km 남짓한 짧은 거리를 자전거로 출퇴근하고 있고, 중학교 2학년인 아들도 2km 정도 되는 학교까지 자전거로 통학하고 있었다.

그렇지만, 한번도 도시 밖으로 자전거를 타고 나간다는 상상해 본 적이 없었는데, 대한민국 하나로 잇기에 참가하여 김해에서 마산까지 35km 구간을 자전거로 달려보고 나서 '국토종주'도 할 수 있겠다는 자신감이 생겼다.

김해에서 마산까지 가뿐하게 자전거를 타고 돌아온 날, 아들에게 자전거 국토순례 참가를 제안하였는데 흔쾌히 승낙하였다.

"아들! 아빠가 일하는 YMCA에서 주최하는 통일자전거 행사가 올해 마지막이다. 올해가 아니면 국토종주에 참여할 기회가 별로 없을 것 같다. 이번에 아빠랑 함께 자전거 타고 임진각까지 가 보자."

"예~ 한 번 해봐요."



[국토종주 결의] 아마 중도에 포기하게 될 걸?

생각보다 아들 녀석은 흔쾌히 자전거 종주에 참가하겠다고 대답하였다. 8월 중순경 준비팀과 함께 답사하면서 코스를 살펴보니 결코 만만한 길이 아니었다. 마산에서 김해-부산-울산-경주-영천-대구-구미-김천-대전-천안-평택-용인-수원-시흥을 거쳐서 임진각에 이르는 600여km를 달려야 한다는 것이다. 전국YMCA에서 청소년 참가자를 모집하였지만, 예상보다 참가자가 많지 않아서 아들은 수월하게 참가신청을 마무리하였다.
 
그러나 나는 청소년 자전거 종주단을 지원하는 실무 인력이 부족하여, 쉽게 참가할 수가 없었다. 지원인력이 부족하고 다른 선배, 후배 실무자들이 모두 스태프로 일하는데, 자전거를 타고 가겠다는 고집을 세우기가 쉽지 않았다. 그러나 우여곡절 끝에 낮에는 자전거를 타고, 밤에는 홍보자료와 종주단 로드 상황을 글과 사진으로 홈페이지에 올리는 홍보팀을 맡기로 하고 종주에 참가하였다.

물론, 많은 사람들의 우려와 기대도 받고 있었다. 아마 중도에 포기하게 될 거라는….마산에서 임진각까지 자전거로 국토종주에 참가하겠다는 이야기를 주변사람들에게 했더니 한결같이 걱정해주었다. "아이들은 하루하루 지날수록 자전거 타기에 익숙해지고, 피로 회복도 빨리 되지만, 어른은 피로회복이 늦어서 갈수록 지치고 힘들 거라"는 것이 공통된 염려였다.

[도로주행 연습] 아들을 따라잡을 수 없다!

한 달 정도를 앞두고 조금씩 자전거 연습을 하였다. 마산 신세계백화점 옆에 있는 집에서 출발하여 해안도로를 따라서 가포, 덕동을 지나서 쌀재 터널을 지나서 중리, 회성동을 돌아오는 코스에서 첫 번째 연습을 하였다. 대략 35km 정도 되는 거리였는데, 엉덩이가 아파서 힘들기는 했지만 생각만큼 다리가 많이 아프거나 근육이 뭉치지는 않았다. 아들 녀석은 초반에 가파른 가포 고개와 새재 고개에서 자전거를 끌고 넘어왔다. 반대로 나는 한 번도 자전거에서 내리지 않고 모든 오르막을 자전거를 타고 넘었다.

그런데 중리에서 마산으로 나오는 마재 고개를 지날 무렵 아들이 나를 추월하였다. 높지 않은 고갯길인데도 아무리 힘차게 페달을 밟아도 아들을 따라잡을 수가 없었다. '아이들이 회복이 빠르기 때문인가?' 하는 생각을 떨칠 수 없었다. 그 다음 주에는 신세계백화점에서 출발하여, 봉암로를 따라서 두산중공업이 있는 바닷길을 따라서 귀산 끝까지 다녀오는 코스에서 연습하였다. 두 번째 연습이었고 평지가 많은 시원한 바닷길을 가뿐하게 다녀왔다.

세 번째 연습은 날씨가 덥다고 안 가겠다는 아들 녀석을 두고 혼자서 첫 번째 연습코스를 거꾸로 돌았다. 이 날은 km수를 늘려 보겠다는 욕심으로 다시 해안로를 2차례 왕복하면서 모두 60km를 달렸다.그리고 마지막 네 번째 연습은 아들 녀석이 마지막으로 연습 한 번 하자고 해서 세 번째 연습코스를 따라서 달렸다.

세 번째 연습에는 아비만 혼자 보내더니 국토종주를 1주일쯤 앞두고 조금 걱정이 되었는지 지가 먼저 연습을 하자고 했다. 몇 차례 연습을 거듭한 때문인지 중리 삼계에서 마재고개 꼭대기에 이르는 오르막길을 나는 가뿐하게 올랐고, 아들은 마지막 500m를 남겨두고 자전거에서 내려 끌고 올라왔다.


[사전워크숍] "참가동기요? 아빠가 가자고 해서 가는데요"

600km 종주를 앞두고 걱정이 되어 이것저것 장비도 구입하였다. 아들도 나도 가장 힘든 것이 엉덩이가 무지하게 아프다는 것. 아들은 쿠션 기능이 좋은 안장을 하나 사고, 나는 실리콘젤이 들어있는 안장 패드를 구입하였다. 그리고 장갑, 마스크, 물통 등 필요한 소품들을 구입하였으며, 거리와 속도 측정을 위하여 자전거용 '속도계'도 구입하였다.

그러나 막상 자전거 종주에 참가하자 안장을 비롯한 다른 물건들은 모두 쓸모가 없었거나, 혹은 다른 참가자들이 모두 그냥 자전거를 타는데, 우리만 별나게 준비해온 장비를 사용할 수 없어 일주일 동안 짐만 되었고, 장갑과 속도계만 요긴하게 사용하였다.

8월 6일 통일자전거 종주 시작을 앞두고 아들은 평택에서 열리는 사전 워크숍에 다녀왔다. 함께 자전거를 타게 될 친구들도 만나고, 1박 2일 동안 전체 종주일정에 대한 오리엔테이션을 받고 자전거 타는 법을 이론과 실습으로 배웠다고 한다. 사전 워크숍을 다녀온 아들에게 "어땠니?"하고 물었더니, "별거 없었어요" 하고 대답한다. 연습용 자전거가 너무 고물이어서 연습다운 연습도 못했다고 투덜거리기만 한다.

8월 6일 출발을 앞두고, 일요일인 5일 날 오후에 마산창신대학 기숙사에 전국에서 참가하는 통일자전거 종주단원들이 모였다. 저녁식사 후에 세미나실에 모여서 작년도 종주단 활동 영상을 보고 아이들은 팀워크를 다지는 인간관계 훈련을 진행하였다. 프로그램이 끝난 후에 1주일 동안 임진각까지 타고 갈 자전거를 지급받아서 점검하였다. 브레이크와 핸들 그리고 안장 높이를 자신의 몸에 맞게 조절하고 명찰을 달고 하는 동안 어느새 자정 가까운 시간이 되었다.

부자가 함께 자전거 종주에 참여하였지만, 아들은 함께 참가한 청소년들과 조별 생활을 하고, 나는 다른 지원 실무자들과 함께 생활하였기 때문에 우리는 하루에 몇 번씩 스치듯 만나는 것이 고작이었다. 그렇지만, 발대식이 열리는 날 아침에 여러 지인들이 아들과 함께 임진각까지 종주에 나서는 나를 특별히 격려해주었다. 우리 부자는 출발 직전에 지역신문기자들에게 둘러싸여 잠깐 카메라 세례를 받고 짧은 인터뷰도 하였다. 아들은 참가 동기를 묻는 기자들의 물음에 정말 솔직하게 "아빠가 가자고 해서 가는데요"하고 대답하였다.

[국토종단 6박 7일] 먼발치서 떨어져 달린 부자드디어,

8월 6일 아침 10시 마산역 광장에서 발대식을 하고 김해로 출발하였다. 아들은 종주단 1조에 속해있어서 맨 앞에 출발하였고, 나는 종주대열의 맨 끝에 출발하였다. 마산에서 출발하여 부산에 도착할 때까지 나는 한 번도 아들 녀석을 못 봤다.

아들은 나름대로 연습한 효과가 있었는지 오르막길을 만나도 한 번도 대열 후미로 처지지 않았고, 나는 나대로 낮에는 종주 일지를 기록하느라 바쁘게 시간을 보냈고, 밤에는 보도자료 쓰고 하루 일정을 정리하고 회의하느라 바쁘게 시간을 보낸 탓이다.

종주하면서 아들을 처음 본 것은 둘째 날 울산에서 점심을 먹은 뒤 휴식시간이었다. 아들은 어느새 같은 조에서 사귄 단짝 친구와 어울려서 나를 봐도 별로 반갑지 않은지 잠깐 눈만 맞추고 고개만 까딱 인사를 하더니 이내 본체만체한다.

좀 서운한 마음이 들기도 하였지만, 다른 참가자가 많은데 아버지와 함께 왔다는 티를 내고 싶지 않은 것이라고 이해하였다. 잔디밭에 앉아서 쉬고 있는 아들 녀석을 불러서 껌 한 통을 주었더니, 씩 웃으며 고맙다고 하고는 이내 친구들에게로 걸어간다.

집에는 아직 어려서 함께 참가하지 못한 초등학교 4학년 작은아들이 남아있는데, 혼자 남아있는 것이 서운한지 전화통화를 하면 울먹거리기도 하고, "아빠 사랑해, 형아 사랑해" 하는 문자메시지를 보내오기도 한다. 동생이 형을 그리워하는 데 비하여 형은 친구들과 어울리느라고 무덤덤해 보인다. 동생에게 전화를 하라고 해도 "나중에 할게요" 하고는 횅하니 가 버린다. 마산에서 임진각까지 가는 동안 우리 부자는 서로 먼발치에서 지켜보며 달렸다.
 

아들이 속한 조가 대열 맨 후미에 왔을 때는 10여m 앞에서 달리기도 했고, 휴식 시간에 친구들과 쉬고 있는 아들의 모습을 발견하기도 하였다. 그러나 둘이 앉아서 이런저런 감동을 나눌 수 있는 시간은 없었다. 그렇지만 돌아와서 이야기해보니 아들은 아들대로 내가 어떻게 지내는지 관심을 갖고 살피고 있었고, 나는 나대로 아들을 염려하며 지켜보며 지냈었다.

종주를 마치고 돌아와서 아들은 "아빠, 대전에서 우리 다 목욕탕 갈 때 안 왔죠? 일하고 있었어요?" 하고 묻는다. 무심한 것 같았는데, 내가 목욕탕에 없었다는 것을 녀석은 알고 있었다.아버지의 마음은 어쩔 수 없는지 나는 종주 내내 가파른 언덕길을 만날 때마다 아들 녀석이 뒤로 처지지는 않는지 염려하면서 앞을 살폈다. 다행히 몇 번 도로주행 연습을 했기 때문인지 아들은 임진각에 도착할 때까지 한 번도 자기가 속해 있는 조에서 뒤로 처지는 일이 없었다.

[후일담] "뒤로 처지지 않는 우리도 힘들었어요"

나중에 아들 녀석이 하는 말, "아빠, 선생님들은 뒤로 처지는 아이들만 챙기데요. 안 처지고 달리는 우리도 굉장히 힘들었는데, 우리는 별로 신경도 안 쓰던데요. 담에는 그러지 마세요"하고 충고한다. 하긴 맞는 말이다. 나만 해도 자꾸 뒤로 처지는 아이들은 격려도 하고 휴식 시간에 이야기도 건넸지만, 전체 페이스에 맞추어서 잘 달리는 아이들은 별로 관심을 두지 못했었다.

아들은 임진각까지 통일자전거 종주를 하였지만, '통일'에 대한 별다른 느낌이 없단다. 다만, 임진각까지 가보니 우리나라가 정말 분단된 나라라는 것이 실감이 났을 뿐이란다. 그렇지만, 왜 꼭 통일이 되어야 하는지는 아직 잘 모르겠단다.

임진각에 도착한 날, "아들 드디어 해냈다. 같이 사진 한 장 찍자!"하고 들떠 있는 나에게 "사진 찍기 싫은데…"하며 아들 녀석은 시큰둥한 반응을 보였다. 선크림을 잃어버렸다면서 나보다 훨씬 많이 타서 새까맣게 변해버렸다. 이런 아들 녀석의 태도가 섭섭하더라는 이야기를 했더니, 한 선배는 "지금은 그렇게 말하지만, 그 아이에게 아버지와 함께 임진각까지 자전거를 타고 갔었다는 기억은 평생 든든한 추억이 될 것"이라며 나를 위로해 주었다.

아들은 다른 장기간 여행에서 돌아왔을 때보다 확실히 나은 모습을 보인다. 동생을 대하는 태도도 다정하고 용돈을 쪼개서 동생에게 먹을 것도 사주고 장난감도 사주는 등 살갑게 대한다. 나한테는 여전히 별로 말이 없지만, 쟤 엄마한테는 자전거 종주 기간에 있었던 일을 제법 미주알고주알 이야기하는 모양이다.

집에 돌아온 아들 녀석이 자전거 종주를 다녀오기 전에 비하여 훨씬 좋아진 것 같다는 것이 아내의 평가다. 아들과 내가 세상을 살면서 같은 무언가를 간절히 염원하면서 힘든 길을 함께 가 본 좋은 추억을 남길 수 있어서 참 기뻤다.

내가 20대 후반에 통일의 신심을 안고 살았던 그 열정을 통일된 세상을 살아갈 통일 세대인 아들 녀석에게 얼마나 물려줄 수 있을까? 먼 훗날 아들에게 6박 7일간 이번 여정이 삶의 든든한 밑천이 될 수 있으리라 기대해 본다.

 

*** 이 글은 2007년 8월 6일부터 12일까지 6박7일 일정으로 진행한 YMCA 통일자전거 종주 참가기로 당시 오마이뉴스에 기사로 연재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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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일자전거6]평양까지 백두산까지 달리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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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디어 임진각입니다. “이제 다 왔다”, “이제 다 왔다”는 소리를 몇 번이나 들었는지 모릅니다. 정말 다 왔습니다. 시원하게 쫙 뻗어 있던 통일로에 철책과 장애물이 가로막고 있는 곳, 멀리 “통일의 관문”이라는 입간판이 서 있는 곳, 허가 받은 차량만이 지나갈 수 있는 곳 여기가 바로 임진각입니다.

마산에서부터 쉼 없이 600여km를 달려온 아이들이 탄 자전거가 더 이상 달릴 수 없는 곳 여기가 바로 임진각 입니다. 작년에도 재작년에도 선배들이 그랬던 것처럼, “더 이상 달릴 수 없는 이곳에 왔을 때, 역시 아이들은 왜 여기까지 패달을 밟으며 달려왔는지 깨닫게 됩니다.”

자신들이 살고 있는 땅 한반도는 지금 상태로는 사실은 반도가 아니라는 것, 철책선으로 가로막힌 반도의 남쪽 땅은 사실은 섬이나 다름없이 고립되어 있다는 것, 우리는 비행기나 배를 타지 않으면, 다른 나라로 갈 수 없는 땅에 살고 있다는 것. 이런 것들을 실감하게 되는 것 같습니다.

힘겹게, 힘겹게 패달을 밟으며 가파른 오르막을 넘었던 아이들도, 가뿐하게 지치지 않고 패달을 밟아 임진각까지 달려온 아이들도, 이 곳에서면 모두 하나 같이 “백두산까지, 평양까지 내친김에 달리고 싶다”는 마음이 드는 모양입니다. 그리고 아이들은 우리가 타고 온 자전거로 강 건너 저쪽 땅을 달릴 수 없다는 것을 몸과 마음으로 느끼며 함께 아파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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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에게 마산에서 임진각까지 달려온 것의 의미는 무엇일까요? 각자가 모두 다른 이유로 임진각까지 패달을 밟고 달려왔습니다. 어떤 친구는 통일자전거 종주에 참가 신청했던 동생이 사정이 생겨서 대신 온 친구도 있고, 또 다른 어떤 친구는 엄마한테 용돈 5만원을 받아서 놀러가기 위하여 왔다는 친구도 있었습니다.

그렇지만, 이 곳 임진각에서 아이들은 “아 ! 내가 통일을 위해 달려왔구나, 언젠가 더 이상 달릴 수 없는 이곳을 지나 달려가는 날이 하루 빨리 올 수 있도록 하기 위하여 달렸구나”하고 깨닫게 됩니다.

청소년 종주단, 마침내 임진각에 서다

오후 1시 30분, 마침내 임진각에 도착하였습니다. 8월 6일 마산역 광장에서 출정식을 마치고 출발하여 꼭 6박 7일 만에 마침내 임진각 도착하였습니다. 한국YMCA 관계자들과 여러 부모님들이 마중 나와서 종주단원들을 뜨겁게 환영해주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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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YMCA연맹 이학영 사무총장이 격려사와 소태영 단장의 인사에 이어 청소년대표들이 4돌아가며 소감나누기를 하였습니다. 아이들이 돌아가며 소감을 나누는 시간에 그 동안 장난기가 다분했던 아이들이 진지해지기 시작했고, 심지어 훌쩍 훌쩍 소리를 내어 울면서 아쉬움을 표하는 아이들도 있었습니다. 조원들과 손을 맞대고 구호를 외치며 아쉬움을 달래는 팀들도 있었습니다.

“처음에는 너무 힘들었어요. 그렇지만 할 만했어요. 저희를 도와준 로드가이드 형들이 참 고마워요.”
“평양까지 백두산까지 자전거를 타고 가 보고 싶습니다.”
“내년에도 통일자전거 행사를 하면 또 오겠습니다. 힘들지만, 재미있고 즐거웠습니다.”

결국 우리는 임진각에 도착해서 우리가 이곳까지 달려 온 공동의 이유를 함께 그리고 새롭게 발견합니다.

“우리는, 우리가 아무리 패달을 밟아도 더 이상 갈 수 없다는 것을 깨닫기 위하여 폭우를 뚫고, 뙤약볕 아래를 달려서 이곳 까지 온 것입니다.”

임진각에 도착하는 그 순간 아이들은 힘들었던 로드도, 불편했던 잠자리도, 복잡하고 비좁았던 샤워시설도 모두 잊어버린 듯 합니다. 아이들 마음속에는 자신이 세운 목표를 해냈다는 기쁨이 가득 차서 다른 것들은 모두 자리를 비킨 모양입니다.

마지막, 순서는 함께 윤회 악수를 하면서 아쉬움을 달랩니다. 아이들은 한 명, 한 명 손을 잡고, 어깨를 맞대며 헤어짐의 아쉬움을 나누었습니다. 새삼 아이들 한 명 한 명과 손을 잡으며 눈을 맞추고 보니 일주일을 함께 보냈음에도 낯선 얼굴이 있다는 것이 미안한 마음이 들었습니다. 자전거를 타는 동안 힘들어하며 자주 뒤로 쳐졌던 아이들은 많이 익숙한데, 꾸준히 전체 페이스에 맞추어서 종주를 잘 한 친구들이 오히려 익숙하지 않았던 것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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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주 마지막 날인 오늘은 아침 무지개를 보며 산뜻하게 출발하였습니다. 날씨가 잔뜩 찌푸리긴 하였지만, 흔치 않은 아침무지개를 만나니, 무사히 임진각까지 갈 수 있겠다하는 확신이 생겼습니다. 아침 6시에 일어나기로 하였지만, 많은 아이들이 기상시간 보다 일찍 일어났습니다. 종주 일정의 마지막 날이라는 기대와 설레임이 아이들을 일찍 깨운 모양입니다.

통일의 여명을 여는 새벽 무지개

새벽에는 구름사이로 햇살이 비췄지만, 6시에 일어나서 출발준비를 하는 동안 날씨는 다시 흐려지기 시작하더니, 이내 비방울이 떨어지기 시작하였습니다. 단체 사진을 찍는 동안 빗방울이 떨어졌지만, 다행이 빗줄기는 굵어지지 않아 흐린 하늘이지만, 시원한 바람을 가르며 아침 ‘로드’를 할 수 있었습니다.

오전 7시 15분에 출발하여 시흥에서 부천으로 넘어가는 첫 번째 고갯길이 가파른 탓에 출발부터 애를 좀 먹었습니다. 시흥청소년 수련관에서 부천YMCA까지는 10km를 달렸습니다.

선생님 한 분이 화장실에서 용변을 보다가 본의 아니게 엿듣게 된 아이들의 대화입니다.

“야 니는 뭐가 제일 힘드노? 오르막길 힘들제?”
“나는 오르막 길 힘드는 건 참을 수 있는데, 혼자만 뒤로 처지는기 제일 힘든다.”

체력이 달려 오르막길을 만 날 때마다 힘들어하는 아이들이 있습니다. 오르막길이 다리가 아프고 오르기 어려워 힘들 거라고 생각했는데, 정작 아이들이 오르막을 싫어하는 이유는 따로 있었습니다. “혼자만 뒤처지는 것이 싫었던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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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식사를 마치고 9시에 부천을 출발하였습니다. 부천에서 임진각까지 이르는 길은 비교적 급한 경사가 없고 대부분 평지가 많았습니다. 시흥 청소년수련관을 출발하여 34.86KM 지점에 있는 일산지역난방공사 앞에서 오전 10시 30분에 휴식을 취하였습니다. 오이와 쵸코파이 그리고 음료수를 간식으로 나누어 먹었습니다. 체력이 많이 소진되었을 테지만, 어제까지 힘들어했던 아이들도 대부분 임진각에 도착하는 마지막 일정을 놓치지 않으려고 애를 썼습니다.

20여 분간 휴식을 마치고 10시 50분에 다시 종주를 시작하여, 12시 10분에 파주 통일공원에 도착하여 두 번째 휴식 시간을 가졌습니다. 임진각까지 약 7km가 남았다고 표지판에 씌어있었습니다. 아침에 시흥을 출발하여 4시간 동안에 60.11km를 달렸습니다. 아이들이 자전거에 많이 익숙해졌고, 높은 언덕길이 없으며 일요일이라 교통사정이 좋아서 자전거가 속도를 많이 낼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김밥 한 줄로 요기를 하고 임진각으로 다시 출발하였습니다.

두 번째 휴식하고 12시 40분에 임진각을 향하여 출발하여, 50분 만에 마침내 임진각 입구 ‘통일의 문’에 도착하였습니다. 청소년 종주단이 계획한 종주 거리는 611km 였습니다만, 중간에 폭우 때문에 60여km를 점프(자동차 탑승)한 탓에 실제 주행거리는 총 569.62km를 달린 것으로 자전거 속도계에 표시되어 있었습니다.

이번 종주에는 이북이 고향인 4명의 새터민 친구들이 함께 달렸습니다. 아이들은 이북에서 살다가 남한으로 와서 살고 있는 새터민 친구들을 만나서 조금도 서로를 다르게 ‘의식’하지 않고 자연스럽게 지냈던 새로운 경험을 하였습니다. 그들이 특별하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된 것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의미있는 일주일간의 만남이었다고 여겨집니다. 정말 필요한 통일을 위한 산교육이었다고 생각합니다.

한 바퀴 두 바퀴 스스로 패달을 밟고 바퀴를 굴려 임진각까지 달려 온 이 아이들에게 통일의 의미는 일주일전과는 많이 달라졌을 것입니다. 아니 어쩌면 달라지지 않았을지도 모릅니다. 그렇지만, 아이들은 자신들이 잘 모르는 새 어른들이 자주 말하는 ‘남북의 화해와 협력’이라는 거창한 그 일에 작은 힘을 보탰습니다. 이렇게 통일 세대가 자라나서 가까운 장래에 ‘통일의 그날’이 꼭 오리라 믿습니다.

*** 이 글은 2007년 8월 6일부터 12일까지 6박7일 일정으로 진행한 YMCA 통일자전거 종주 참가기로 당시 오마이뉴스에 기사로 연재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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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일자전거5]청소년 종주단 통일의 무지개를 만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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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주 5일째, 대전을 출발해 천안을 거쳐 평택까지 92km를 달리는 날입니다. 오전 7시 기상. 다른 날 보다 일어나는 시간이 한 시간 늦어져 여유 있게 하루를 시작했습니다. 아이들은 대부분 7시가 되기 전에 일어나서 출발 준비를 서둘렀습니다. 일어나면 세수하고 종주단 복장으로 갈아입은 후에 짐 싸서 트럭에 싣고 출발준비를 마치는데 익숙해졌습니다. 8시에 아침밥을 먹고 40분에 대전YMCA 마당에 모두 모였습니다.

다함께 '경의선 타고' 율동을 하면서 몸풀기 체조를 대신한 후에 9시 5분에 대전YMCA를 출발해 조치원, 천안 그리고 평택까지 이어지는 92km 구간 종주를 시작했습니다. 아침부터 여름 뙤약볕이 내리쬐기 시작했습니다. 출발하기 전에 아이들은 썬크림으로 햇빛에 대한 대비를 단단히 했습니다.

10시 15분 첫 번째 휴식을 하였는데, 대전에서 출발하지 1시간 10분 만에 21.4km를 달려왔습니다. 아이들이 자전거타기에 많이 익숙해져서 평균 시속 20km로 달려온 것 입니다. '본토공인중계사' 앞 마당에서 휴식을 하는 동안 아이스크림을 간식으로 먹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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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식시간에 아이들 몇 명을 만나서 물어보았습니다. 종주하면서 가장 힘들거나 싫은 것이 무엇이냐구요. 그랬더니 아이들의 대답이 이랬습니다. 가장 싫은 것은 "첫 번째 오르막 길, 두 번째 뙤약볕, 그리고 세 번째가 비"라고 하더군요. "비는 많이 안 오면 시원해서 좋고, 많이 오면 종주를 못하고 차를 타고 가야 되니 더 좋다"고 답했습니다.

25분간 휴식하면서 간식을 먹고 10시 40분에 조치원을 향하여 출발하였습니다. 다시 1시간을 달려서 11시 35분에 점심식사가 준비된 맛촌 식당에 도착했습니다. 오전에만 37.9km를 달렸습니다. 2시간 30분 만에 38km를 달렸는데도, 대체로 아이들은 종주 일정을 무난히 소화해냈습니다. 그러나 일부 아이들은 더위 때문에 많이 힘들어하였습니다. 무릎과 다리가 아프다면서 힘들게 전체 속도에 맞추어 쫒아오는 아이들도 있었습니다.

점심을 먹고 오후 1시에 출발하여 오후 3시에 천안삼거리에서 휴식을 하였습니다. 천안 삼거리까지는 65.9km를 달렸습니다. 오전 내내 뙤약볕이 내리쬐더니 점심을 먹고 나서부터 구름이 몰려들어 마침내 비를 뿌렸습니다. 기상청에서 사용하는 전문용어로는 국지성 집중호우이고, 우리말로는 소나기입니다. 대부분 소나기가 훨씬 정겹게 느껴질 것이라고 생각됩니다. 아무튼 1시간 정도 자전거를 타는 동안 20여분 간격으로 두 차례 소나기가 지나갔습니다. 겉옷은 물론이고 신발과 양말까지 모두 흠뻑 젖어버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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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후 4시경(78.5km) 원조할매보쌈 앞에서 다시 한 번 휴식을 취한 후에 4시 30분에 평택을 향하여 다시 출발했습니다. 약 10여분을 더 달려 행정구역상 천안을 벗어나는 예산과적차량검문소 앞에 도착했을 때 갑자기 폭우가 쏟아졌습니다.

과적차량 검문소에 자전거를 새우고 처마 밑으로 모두 비를 피했지만, 비를 피하는 것이 아무 소용이 없을 만큼 장대비가 쏟아졌습니다. 황순원의 소설 <소나기>에 나오는 그런 비가 쏟아졌습니다. 이내 아스팔트 곳곳에는 황토물이 고이기 시작하더군요. 안경을 쓰고 있는 사람들은 시야 확보가 안될 만큼 많은 비가 쏟아졌습니다. 썬크림이 빗물에 씻겨 내려가고 땀과 빗물이 흘러들어 눈도 따가웠습니다.

비가 많이 와도 계속 자전거 종주를 할 것인가를 두고 실무지원팀에서 의논을 하였는데, 평택까지 거리가 얼마 안남았으니 1줄로 서서 자전거를 끌고 가자고 의논을 마쳤습니다. 자전거를 끌고 걸어서라도 가기로 하고 다시 출발 준비를 하는데 다행이 빗줄기가 조금씩 약해지기 시작했습니다.

평택시내로 들어오는 약5km 구간을 달리는 동안 또 다시 여러번 소나기가 쏟아졌습니다. 오후가 되면서 해가 서쪽으로 기울어지는 시간에 소나기가 몰려 지나가더니 어느새 종주단원들의 오른쪽에 무지개가 걸렸습니다. 약 2km를 달려오는 내내 오른쪽 하늘을 바라보면 땅에서 시작되어 땅으로 이어지는 무지개가 선명하게 걸려있었습니다. 하늘에 걸린 무지개가 마산에서 출발하여 평택까지 470여 km를 달려온 종주단원들을 특별하게 환영해주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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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를 맞으며 투덜대던 아이들이 어느새 예쁜 무지개를 보면서 즐거워 했습니다. 자전거를 달리면서 오른쪽으로 시선을 돌려 선명하게 새겨진 무지개를 보며 달렸습니다. 남북정상회담 소식에 이어서, 통일자전거 종주단을 격려하는 통일무지개가 섰습니다. 폭우를 뚫고 파란 하늘을 다시 열며 새겨진 아름다운 무지개 처럼 아이들 마음속에도 통일의 희망이 함께 새겨졌으리라 생각됩니다.

오후 5시 평택을 향하여 출발하여 30분 만에 평택 시내에 있는 저녁 식사 장소에 도착하였습니다. '안일옥'이라는 설렁탕 집에서 밥을 먹었는데, 이 집은 특히 김치와 깍두기 맛이 일품이었습니다. 이 곳 저 곳 테이블 마다 "아줌마 깍두기 더 주세요", "아줌마 김치 더 주세요", 그리고 "아줌마 공기 밥 더 주세요"하는 소리가 들렸습니다.

저녁 식사를 마치고 오후 6시 35분에 식당을 출발해 7시쯤 평태YMCA에서 위탁 운영하는 '원평청소년문화의집''에 도착했습니다. 오늘은 그동안 종주 구간 중에서 가장 많은 거리를 달린 날입니다. 숙소인 청소년문화의집까지 총 92km를 달렸습니다. 평택YMCA 실무자들과 임원들 그리고 와이즈멘 지도자들이 종주단을 환영해주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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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일자전거 기금 전달식에는 평택시, (주)엘코리아, 평택와이즈멘 클럽이 참여하였으며, YMCA회원들과 평택시민들이 함께 모금한 통일자전거 50대를 모금하여 청소년종주단에 전달해 주었습니다.

숙소배정이 끝난 후에 아이들은 샤워를 하고 저녁 교육일정을 진행하였습니다. 오늘 오후가 되면서 아이들은 자전거 타기가 완전히 몸에 밴 듯 하였습니다. 오후 구간부터 오르막길을 만나도 뒤로 쳐지는 아이들이 없었습니다. 어제까지만 하여도 웬만한 오르막길을 만나면 4~5명씩 뒤로 처지는 것이 보통이었고, 추풍령 고개를 넘을 때는 1/3이상이 종주단의 페이스를 쫒아오지 못하였고, 아예 자전거에서 내려서 끌고 올라오는 아이들도 있었습니다.

그런데, 오늘 오전만하여도 힘겹게 언덕길을 넘던 아이들이 오후가 되면서 갑자기 실력이 일취월장했습니다. 그리 높지 않은 언덕길을 통과할 때는 시속 25km이상의 속력으로 가뿐하게 언덕길을 통과하기도 하였습니다.

세상을 사는 동안 아이들이 자라는 모습을 지켜보며, 아이들은 서서히 자라는 것이 아니라 계단 모양으로 어느 순간에 쑤욱~쑥 성장한다는 한다고 믿고 있었는데, 자전거 타는 실력도 꼭 그렇게 성장한다는 것을 알게 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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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글은 2007년 8월 6일부터 12일까지 6박7일 일정으로 진행한 YMCA 통일자전거 종주 참가기로 당시 오마이뉴스에 기사로 연재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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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일자전거4]청소년 자전거 종주단 '추풍령'을 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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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주 4일째, 마산에서 임진각까지 전체 종주구간의 절반을 넘어서는 날입니다. 일기예보에는 여전히 비소식이 있었지만, 아침 날씨는 높은 하늘에 하얀 뭉게구름이 있었지만, 구름사이로 파란하늘이 보이고 따가운 햇살이 내리쬐는 맑은 날이었습니다.

오늘은 구미에서 출발해서 김천 - 영동 - 옥천을 거쳐서 대전에 도착하였습니다.그리고 종주구간에서 가장 힘든 코스인 추풍령고개를 넘었습니다. 경사가 만만치 않은 추풍령 고개 길을 올라가면서 아이들은 그동안 자전거 타기에 많이 익숙해졌음에도 불구하고 종주구간 중에서 가장 힘들어 하였습니다.

어느 노래가사에는 추풍령을 일컬어 "구름도 자고 가는 바람도 쉬어가는" 고개라고 하였습니다. 옛날에는 정말 넘기 힘든 고개였는데, 지금은 도로를 새로 만들면서 산을 깎아 고개를 많이 낮추었다고 합니다.그래도 여전히 추풍령은 구름도 자고 가고, 바람도 쉬어갈 만한 고개였습니다. 가파른 언덕길을 지나고 나서도 또 다시 얕은 오르막길이 이어지고, 얕은 오르막길을 오르다보면 내리막길 대신에 또 다시 가파른 오르막길이 나타납니다.

다른 고갯길은 대부분 제법 가파르다 하여도 힘차게 페달을 밟다보면, 이내 내리막길을 만나서 시원하게 바람을 가르며 내려갈 수 있었는데, 추풍령 길은 달랐습니다. 결국 이어지는 오르막길에서 1/3이 넘는 아이들이 자전거에서 내려서 끌고 고갯길을 올라야했습니다. 추풍령 고개를 넘는 것도 힘들었지만, 종주를 시작하고 나서 처음 만난 뜨거운 뙤약볕 때문에 더 많이 힘들었습니다.

아침 6시에 일어나서 세수하고 옷 갈아입고 짐 싸는 것이 첫 일과입니다. 매일 매일 짐을 풀었다가 다시 싸는 일이 번거롭게 느껴지지만 오히려 조금씩 익숙해지는 느낌입니다. 자고 일어나면 곧장 자전거 종주를 할 수 있는 복장으로 갈아입고, 가방을 챙겨서 트럭에 싣는 아이들 모습이 자연스럽게 느껴집니다.구미YMCA 회관 근처에서 아침 식사를 하고 7시 50분에 모여서 준비체조를 하였습니다.

그동안 스트레칭으로 몸을 풀었지만, 오늘 아침부터는 구미 금오공대 대학Y 회원들이 환영행사에서 추었던 '경의선 타고' 몸짓을 배워서 체조를 대신하였습니다. YMCA 마당에서 앰프로 음악을 크게 틀어놓고, 저녁에 배운 '경의선 타고' 율동을 하면서 몸 풀기를 마치고 8시에 김천으로 출발하였습니다.

김천시내에 막 진입하였을 때 국토종주에 나선 100여명이 넘어 보이는 대학생들을 만났습니다. '동병상련'일까요? 자전거를 타는 아이들과 구미를 향해서 걷는 대학생들은 서로 길 건너에서 걷고, 자전거 타는 사람들을 향하여, 박수를 치고 '화이팅'을 외치면서 격려해주었습니다. 한 번도 만난 적이 없는 사람들이지만, 서로 너무 반갑게 환호하면서 스쳐지나갈 수 있었습니다.

청소년 종주단 친구들도 왼손은 핸들을 잡고, 오른손을 높이 들어 흔들면서 대학생 국토순례단에 답례를 하였습니다.종주를 시작하고 나서 처음으로 맑은 하늘과 뜨거운 태양을 보면서 '로드'를 하였습니다. 1시간 10분 만에 16km를 달려서 아포휴게소에서 휴식을 취한 후에 곧바로 1시간을 달려서 10시 5분에 김천역에 도착하였습니다.

구미YMCA에서 김천역까지는 29.2km 인데, 2시간 만에 도착하였습니다. 아이들이 자전거타기에 익숙해지면서 속도도 조금씩 빨라지고 있습니다. 김천 시내 구간에 크고 작은 오르막이 많기도 하였고, 어제까지 내리던 비가 멈추고 뜨거운 태양이 내리쬐는 길을 달리느라 아이들이 많이 헉~ 헉~ 거렸습니다. 옆에서 말을 붙이면 짜증을 내는 아이들도 있더군요.

김천역 광장에 종주단이 도착하자, 30여명의 김천 한일여중 고적대가 신나는 음악을 연주하며 환영해주었습니다. 빨간색 고적대 제복과 하얀 구두를 신은 여중생들의 경쾌하고 신나는 연주가 조금 전까지 힘들었던 것을 싹~~ 잊어버리게 만들었습니다. 고적대가 나와 있고 역광장에 '종주단 환영행사'를 알리는 현수막을 보더니 전날까지의 행사와는 규모가 달라 보이는지 아이들도 조금 놀라는 눈치였습니다.

김천 환영 행사는 약 1시간 정도 진행되었는데, 고적대 연주에 이어서 부채춤 공연(조문희 외 3명), 어린이 풍물패 공연, 이신호 이사장 환영인사, 소태영 종주단장 인사, 박보생 김천시장 축사 순으로 진행되었습니다. 박보생 김천시장이 방문 기념으로 종주단원들에게 링타이를 선물로 전해주었고, '한 걸음 어린이집' 친구들의 모금행사가 있었습니다.

김천YMCA 모금액은 이신호 이사장, 박보생 시장, 김성순 장로가 소태영 종주단장과 청소년 대표에게 전달하였습니다. 김천YMCA와 김천시민들이 모금한 통일자전거는 20대(2,000,000원)를 청소년종주단에 전해주었습니다.

김천YMCA에서 종주단 환영행사를 하면서, 시원한 생수, 박카스와 피로회복제 그리고 김천 특산물인 포도(한국포도회 김천지부)와 자두(김천자두발전연합회)를 간식으로 준비해주었습니다. 여러 가지 첨가물이 포함된 공장과자 대신에 지역특산품인 과일을 먹게 되어 좋았습니다.

김천역 광장, 땡볕 아래에서 진행된 환영행사였지만, YMCA 임원들과 내빈들이 누구 할 것 없이 "통일을 위해서 중요한 일을 하고 있다"며 아이들을 칭찬하고 격려한 때문인지 아이들은 뙤약볕 아래에서도 행사에 적극적으로 참여하였습니다. 행사가 끝난 귀에 물었더니 아이들은 "처음엔 잘 몰랐는데, 우리가 대단한 일을 하고 있는 것이 맞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한다고 하더군요.

환영행사를 마치고 11시 5분에 김천역을 출발하여 대전으로 향하였습니다. 추풍령 고개를 넘어가는 구간에는 김천YMCA 이사장께서 연대종주를 함께 해주었습니다. 날렵한 사이클 자전거를 타고 가뿐하게 청소년들과 함께 구간 종주에 참여하였습니다.피부가 탈까봐 얼굴과 팔 다리가 허옇게 되도록 선크림을 바른 아이들이 여럿 눈에 띄었습니다. 세 번의 가파른 고개를 넘어서서 내리막길이 시작되는 곳에 있는 '고향 가든 갈비'에서 점심식사를 하였습니다. 점심시간인 12시 10분까지 46.4km를 달렸습니다.@IMG5@

점심식사를 끝내고 나서 오후 1시 24분에 대전으로 향하는 약 35km 구간을 점프(차량이동) 하였습니다. 10여km 넘는 편도 1차선 도로를 자전거종주단이 지나가게 되면 운전자들에게 심각한 불편을 주게 되고 종주단의 안전문제를 생각하여 자동차를 이용하여 옥천까지 단숨에 이동하였습니다. 옥천에서 대전으로 이동하는 구간에도 길고 높은 언덕길을 만났습니다. 고갯마루에는 1차선 터널 구간도 있었고, 갑자기 쏟아진 소나기로 인한 '수막현상'으로 길이 미끄러워 어렵게 종주를 진행하였습니다.

내리막길에서 한 명이 넘어지자 연쇄적으로 넘어져서 타박상을 입은 부상자가 생기기도 하였지만, 다행히 가벼운 상처여서 종주를 계속할 수 있었습니다. 고개 마루 터널을 넘어서서 조심스럽게 내리막길을 내려가자 오른쪽 편에 '가양공원'이 나왔습니다. 이곳에서 오후 휴식과 간식시간을 가졌습니다. 아이들과 진행 실무자들은 순식간에 커다란 수박 4통을 잘라서 깨끗이 먹어치웠습니다. 수박을 자르는 속도보다도 둘러선 아이들이 수박을 집어가는 속도가 훨씬 빨랐습니다. @IMG6@

대전에 도착한 환영식에서는 YMCA 임원들과 지역 내빈들이 청소년 종주팀을 반갑게 환영해주었고, 충남여고 댄스팀의 공연, 통일 염원쪽지달기 퍼포먼스 순으로 진행되었으며. 대전YMCA와 시민들이 모금한 통일자전거 50대를 전달받았습니다. 대전지역에서는 앞으로 남은 기간 동안 50대를 더 모금하여 북한에 통일자전거 100를 꼭 보내겠다고 약속해주었습니다.통일자전거 종주단은 4일째 되는 오늘 구미에서 대전까지 70km를 달렸습니다. 마산(100대), 김해(30대), 부산(150대), 경주(15대), 구미(50대), 대전(50대)에 이르기까지 청소년 종주단은 통일자전거 395대를 모금하였습니다.

*** 이 글은 2007년 8월 6일부터 12일까지 6박7일 일정으로 진행한 YMCA 통일자전거 종주 참가기로 당시 오마이뉴스에 기사로 연재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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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일자전거2]밥 먹고, 잠 자고 그리고 자전거 타고 임진각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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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일로! 가자! 가자! 가자!"

힘찬 구호를 외친 후에 마산역 광장을 출발하여, 620㎞ 대장정을 시작하였습니다. 출정식을 진행하는 동안 적잖게 지루해하던 아이들이었지만, 막상 출발은 앞둔 아이들의 모습에는 약간의 긴장이 흐르고 있었습니다. 안전한 종주를 위하여 큰소리로 "대열 정비" "브레이크" "출발"하고 로드가이드들이 외치는 소리를 반복해서 외쳤습니다.

8월 6일 오전 9시 40분, YMCA 회원들과 시민들의 박수와 환호를 받으며, 임진각까지 6박7일의 자전거 종주를 위한 첫 페달을 힘차게 밟았습니다. 마산역 광장을 출발하는 내리막길을 따라 경쾌하게 60여대의 자전거가 긴 줄을 만들며 달리기 시작하였습니다.

첫번째 오르막, '로드 가이드'는 바쁘다 바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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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쯤 지났을 때, 첫 번째 큰 오르막길을 만났습니다. 창원에서 동읍 방향으로 넘어가는 동전검문소가 있는 고갯길에서 아직 자전거 기어 사용이 익숙하지 않은 아이들이 하나둘씩 처지기 시작하였습니다.

얼마 못 가서 10여명이 아이들이 자전거에서 내려 걷기 시작했고, 처지는 아이들을 챙겨야 하는 '로드 가이드'들은 대열의 앞뒤를 오가면서 바빠지기 시작했습니다.

힘겹게 포기하지 않고 페달을 밟는 아이들을 격려하는 "화이팅" "다 왔다" "조금만 힘내라" 외치는 소리, "삐비비 빅빅~ 삐비삐 삑삑~" 하며 호각과 휘슬 부는 소리. 자전거 타기를 포기한 아이들의 자전거를 트럭에 싣고 구급차에 아이들을 태우는 지도자들. 오르막길을 만날 때마다 긴장과 분주함이 가득하였습니다.

로드 가이드 선생님들이 여러 번 자전거 사용법을 설명하였지만, 기어가 달린 자전거에 익숙하지 않은 오르막길을 만나도 다리에 힘만 주면서 달리거나, 페달 밟는 다리에 힘을 조금이라도 더 보태려고 일어서서 달려보는 아이들도 있습니다.

오르막길을 만날 때마다 옆에서 로드 가이드 선생님들이 외치는 소리가 들립니다.

"기어 바꿔, 기어 바꿔", "오른쪽 기어를 몸 쪽으로 당겨, 몸 쪽으로 당기면 쉽게 올라갈 수 있다."

바로 옆에서 선생님들이 큰소리로 기어 변속을 독려하지만, 아이들은 익숙하지 않은 지 기어를 앞으로 밀었다 당겼다 해보지만 자전거가 마음먹은 대로 잘 움직여주지 않습니다.

왜 이 길을 달리는지 아이들은 언제 알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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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산에서 진영을 지나 김해까지 40여㎞를 달리면서 서너 차례 언덕길을 만날 때마다 아이들은 많이 힘들어하였습니다. 이마에 가득 맺힌 땀방울들처럼 아이들은 비로소 내가 무슨 일을 시작하였는지에 대한 고민도 함께 시작하는 듯이 보였습니다.

2006년 평화종주단 활동을 기록한 영상에는 이런 글귀가 있었습니다. "종주가 끝날 때 쯤 되어서야 내가 왜 달리는지 그 이유를 알게 되었다구요." 아이들이 달리는 이유를 알 때쯤이면 종주가 끝난다는 것이지요.

"선생님! 얼마나 더 가야 되죠?"
"아까 저 고개만 넘으면 된다고 했잖아요?"
"아, 힘들어(~~ 헉 ~ 헉)."

아직 자전거 타기에 익숙하지 않은 아이들의 불만섞인 질문들이 이어집니다.

김해 시내 진입을 앞둔 마지막 언덕길을 넘어서 연지공원으로 향하는 내리막길을 달릴 때는 로드가이드 선생님들의 목소리에 힘이 실립니다.

"자 ~ 다 왔다. 여기 내리막길만 내려가면 점심 먹고 쉬었다 간다."

내리막길도 반가운데, 목적지에 다 왔다는 이야기는 아이들의 표정을 금세 밝게 만들어줍니다.

김해의 명소인 연지공원에 도착한 시간은 낮 12시 45분! 첫날 오전의 첫 번째 구간이라 예상시간을 조금 넘어 도착하였습니다.

연지공원 건너편에 있는 식당에서 설렁탕으로 맛있는 점심식사를 하였습니다. 시장이 반찬이었는지 점심식사를 하는 동안 음식 맛을 탓하는 사람은 한 사람도 없었습니다. 운동량이 많기 때문인지 아이들은 대부분 밥을 잘 먹었습니다.

김해 연지공원에는 회원들과 시민들 그리고 100여명의 김해YMCA 어린이 회원들이 나와서 '청소년 평화종주단'을 환영해주었습니다. 김해에서 개최된 평화종주단 환영식에서는 김해시·김해시의회에서 각각 통일자전거 성금을 전해주었으며, 김해YMCA는 8월 5일 현재까지 모금한 자전거 50대(500만원)를 평화종주단에 전해주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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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해 환영식 때는 어린이들이 북한 친구들에게 보내는 편지를 적어서 평화종주단에 전해주었습니다. 아이들이 쓴 편지에는 "우리가 보내주는 자전거 타고 재미있게 놀아라, 나중에 만나서 즐겁게 함께 놀자"라는 이야기들이 씌어 있었습니다.

아이들이 직접 쓴 평화종주단에 전달할 때 많은 카메라가 동시에 셔터를 눌렀습니다. 북한친구들을 생각하는 아이들의 따뜻한 마음이 담긴 기발한 선물에 많은 어른들이 감동하였습니다.

"북한 친구들아, 나중에 함께 자전거 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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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후 2시, 김해 연지공원을 출발한 평화종주단은 오후 3시 경기장주유소, 오후 4시 부산정보대학 앞에서 휴식을 취하고, 오후 6시 해운대 반송복지관에 도착하였습니다.

김해를 거쳐 부산으로 오는 길은 시내 구간이라 매연이 심하고, 함께 달리는 자동차들이 많아 복잡하기는 하였지만, 가파른 오르막길은 없어서 오전에 비하여 여유 있는 '라이딩'을 할 수 있었습니다.

여유 있는 모습을 보여주게 된 것은 아침나절에 비하여 아이들의 기어 조작도 능숙해지고, 자전거를 타는 요령에 익숙해진 탓이었을 것입니다. 함께 자전거를 타는 친구들, 선생님들과도 조금씩 익숙해지는지 휴식시간에는 이야기도 나누고 장난도 치는 여유도 더러 눈에 띄었습니다.

부산YMCA 환영식은 "사막에서 만난 오아시스와 같은" 시원하고 달고 맛있는 자두와 음료수를 먹으며 시작되었습니다.

배고프고 목마른 아이들과 선생님들은 선 채로 자두를 서너 개씩을 먹어치웠습니다. 세 소쿠리에 수북하게 쌓여있던 자두가 게눈 감추듯 없어졌습니다. 적당히 배고픈 시간에 시원하게 냉장고에 보관되었던 자두를 먹게 되자, 하루 종일 밥만 먹고 지냈던 아이들은 너무나 반가워하였습니다.

사실, 평화종주단의 일정은 비교적 단순합니다. 밥 먹고, 잠자는 시간을 빼면 대부분 시간은 자전거를 타거나 휴식시간입니다. 그리고 방문 도시마다 간략한 환영식과 통일자전거 모금액을 전달받는 행사를 갖게 됩니다.

종주 첫날에만 출정식과 두 번의 환영식을 거쳤기 때문에 아이들은 금세 행사에 익숙해졌습니다. 아직은 자신들이 자전거로 전국을 종주하면서 모으는 '통일자전거'의 의미를 잘 이해하지 못하는 아이들이 대부분인 듯 합니다.

*** 이 글은 2007년 8월 6일부터 12일까지 6박7일 일정으로 진행한 YMCA 통일자전거 종주 참가기로 당시 오마이뉴스에 기사로 연재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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