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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에 해당되는 글 22건

  1. 2013.08.06 폭우로 길 사라지고...폭우로 속도 느려지고...
  2. 2012.08.09 기어조작도 미숙하더니... 평속 25km로 임진각 향해 달려
  3. 2011.06.24 전남 강진-임진각, 480km 자전거 국토순례갑니다. (8)
  4. 2011.04.07 한반도 주변 원전, 60년마다 폭발한다면? (15)
  5. 2010.04.25 마당에 자목련이 피었습니다. (6)
  6. 2010.04.13 지금 남도에는 꽃눈이 흩날립니다. (8)
  7. 2010.04.03 마중 나가지 않았는데 마당까지 찾아 온 봄 (6)
  8. 2010.03.10 마산 폭설(?) 3월에 학교, 유치원 휴교 (2)
  9. 2010.03.07 여름 장마같은 봄비가 싫다 (1)
  10. 2010.02.06 프라이드(?) 세워주던, 16년 지기의 추억 (5)
  11. 2010.01.18 자동차 오래 탄 나만의 비법 (19)
  12. 2010.01.15 16년 정든 차, 20년 못 채운 이유 (46)
  13. 2009.06.02 노대통령 참배, 봉하 '올레' 시즌 2 (12)
  14. 2009.06.01 김해시, 행안부 참 야박한 인심 ! (4)
  15. 2009.05.31 한겨레 만평, 노대통령 죽음을 예감했을까?
  16. 2009.05.30 노무현 전 대통령을 추억하며... (9)
  17. 2009.05.29 노무현 대통령과 노동계의 첫 만남은? (5)
  18. 2009.05.28 1985년, 노무현 변호사 첫 번째 노동사건 변론 (1)
  19. 2009.05.27 내가 간직한 빛 바랜 신문 속 노무현 대통령 (3)
  20. 2009.05.26 서거 사흘째, 날마다 봉하마을로 !

폭우로 길 사라지고...폭우로 속도 느려지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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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전거 국토순례 둘째 날, 구례 - 전주까지

 

자전거 국토순례 셋째 날, 예상하지 못했던 기가막힌 일이 벌어졌습니다. 결국 셋째 날 숙박지인 전주 동암고등학교에는 예상 시간보다 2시간 이상 늦게 도착하였습니다. 첫째는 지리산 자락인 구례에 아침부터 추적추적 비가내려 우의를 입히고 출발하였는데, 출발 후 20~30분만에 비는 그쳤지만 출발부터 시간이 지체되었습니다.

 

째는 폭우가 내려 원래 국토순례 코스로 잡았던 길로 갈 수 없게 된 것입니다. 섬진강 강변 자전거 도로를 따라 덕치초등학교까지 이동하려던 계획이 무산된 것입니다. 경찰의 안내에 따라서 비교적 거리가 멀지 않은 우회도로를 이용하였지만, 해발 250미터가 넘는 용골산 자락의 긴 언덕길 구간을 통과해야 했습니다.

 

뿐만 아니라 이날은 아침 출발부터 해발 340미터의 지리산자락의 밤재터널을 지나야 했기 때문에 예상보다 시간이 많이 걸렸습니다. 아직 오르막길 주행 요령이 부족하고 기어변속에 익숙하지 않은 아이들이 많아 언덕길을 오르는데 시간이 많이 걸렸지요.

 

다행히 걱정했던 남원시내 구간 통과는 오히려 순조로웠습니다. 마침 일요일 아침이라 차량이 많지 않았기 때문에 첫 번째 휴식지였던 남원 시청에서 휴식을 하고 비교적 수월하게 남원시내 구간을 빠져나갈 수 있었습니다. 섬진강변에 있는 덕치초등학교에서 낮 12시 30분에  점심을 먹을 계획이었지만, 폭우로 인한  경로 변경으로 오후 3시가 다 되어서야 점심을 먹었습니다.

 

하루 종일 일정이 흐트러질 수 밖에 없었습니다. 시간에 쫓기다보니 섬진강 강변 자전거길을 따라 달리다 만난 '김용택시인 생가'도 표지판만 보고 지나칠 수 밖에 없었습니다. 아름다운 섬진강길을 눈에 담을 수 있는 여유가 없었네요.

 

폭우로 막힌 섬진강 자전거길

 

덕치 초등학교에서 점심을 먹고 전주로 가는 길도 수월하지는 않았습니다. 옥정호 주변을 지날 때는 해발 276미터가 넘는 율치재를 넘어야 했습니다. 다행히 율치재를 넘고나서부터는 전주시내까지 비교적 내리막 구간이 많은 길을 달렸지만 속도를 내기는 어려웠습니다.

 

단체 주행은 내리막길 사고에 더 주의해야 하기 때문에 내기막길에서도 속도를 낼 수 없기 때문입니다. 이날은 국도와 지방도를 많이 이용하였는데, 국토순례 대열을 추월하는 차량들 때문에 여러가지로 힘든 주행을 하였습니다.

 

팀별로 자동차의 추월 공간을 만들어주면서 이동하였지만, 왕복 2차로의 지방도의 경우 반대편 차량의 흐름을 보면서 선두와 후미가 무전기로 교신하면서 차량을 추월시켜야 했기 때문입니다. 게다가 전주 시내로 들어갈 때도 도심 구간을 피하기 위하여 27번 국도 대신에 지방도를 이용하였기 때문에 국토순례단의 이동 시간은 점점 더 길어질 수 밖에 없었습니다.

 

엎친데 덮친격으로 전주시내에 진입하자 폭우가 쏟아지기 시작하였습니다. 숙박지인 전주 동암고등학교를 10여km남겼두었을 때부터 빗방울이 떨어지기 시작하더니 이내 폭우가 되어 쏟아지기 시작하였습니다.

 

 

해는 떨어져서 어두워지고 비까지 내리니 안전을 위하여 자연스럽게 속도를 늦출 수 밖에 없었지요. 비를 맞으며 들어섰지만 전주동암고등학교 교직원들과 인근 도시에서 응원나온 학부모들의 열렬한(?) 환영으로 힘든 라이딩의 피로를 날릴 수 있었습니다.

 

폭우를 뚫고 숙박지에 도착하자마자 학교 식당에서 저녁을 먹고, 자기 전에는 전주YMCA에서 준비해준 옥수수를 간식으로 나누어 먹는 행복(?)을 누렸습니다. 전주YMCA 사무총장께서 그날 직접 밭에서 따온 싱싱한 옥수수를 전문(?) 기술을 발휘하여 삶아낸 아주 맛있는 옥수수였다고 합니다.

 

전주시내 도착...국지성 폭우가 또 발목을 잡아

 

숙소에 들어와도 실무자들은 끝없이 바쁜 일정을 소화해야 합니다. 참가 청소년들 식사와 샤워를 챙겨야 하고, 밤에도 대부분 프로그램이 진행되기 때문입니다. 또 보급팀의 경우는 그날 먹은 간식과 물, 음료수 캔 등의 쓰레기를 분리해서 버리고, 다음날 보급을 물, 음료, 간식을 모두 준비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숙박지마다 나눠서 사전에 주문해놓은 생수와 빵과 과자를 비롯한 간식 그리고 음료수를 수령해야 하는데, 이날은 전주YMCA 사무실로 배달단 생수를 받으러 가겠다고 자원하여 나섰습니다.

 

310명의 참가자와 진행자들에게 식사시간을 제외하고도 하루 5~6병 정도의 생수가 공급되는데, 대략 하루 2000 정도의 500ml 생수를 마시게 됩니다. 대략 20개들이 100상자 정도를 하루에 마시는데, 이날 저녁 전주YMCA 회관에 갔더니 하루치 생수와 다음날 간식(쵸코바, 쵸코케잌)이 쌓여있더군요.

 

세 사람의 후배, 동료 실무자와 함께 1톤 트럭과 탑차에 물과 간식을 나눠 싣고 숙소로 돌아왔는데, 하루 종일 자전거를 탈 때보다 더 많은 땀을 쏟았습니다. 자전거 국토순례는 참가자들이 모두 자전거를 타기 때문에 차를 타고 이동하는 지원팀이 얼마나 힘든 일정을 소화하는지 잘 모릅니다. 막상 지원팀을 돕는 일을 해보니 정말 폼나지 않은 일, 쉽지 않은 일을 묵묵히 하고 있다는 것을 알겠더군요.

 

국토순례 둘째 날은 구례를 출발하여 남원 - 순창 - 임실 - 완주를 거쳐서 전주까지 이동하는 101km 라이딩을 하는데, 무려 7시간 12분이나 걸렸습니다. 국토순례 전 기간 동안 1일 라이딩 시간이 이렇게 많이 걸린 날은 구례-전주 구간이 유일합니다.

 

휴식시간과 식사 시간을 제외한 순순한 자전거 라이딩 시간은 대체로 5~6시간을 넘기지 않도록 계획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이날은 폭우로 인한 경로 변경 그리고 전주 시내 도심 구간을 피하기 위한 경로 변경 때문에 다른 날보다 1시간 이상 긴 라이딩을 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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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어조작도 미숙하더니... 평속 25km로 임진각 향해 달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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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전거 국토순례 6일 차, 경기도 성남시에 있는 성남YMCA를 출발하여 임진각까지 가는 100여 km 마지막 구간입니다.

 

경남 창원에서 출발하여 임진각까지 가는 550km 국토 종주의 마지막 구간을 달리는 날입니다. 오후 5시에 임진각에 도착하여 해단식을 하는 계획을 세웠기 때문에 이른 아침부터 바쁘게 서두르지 않을 수 없습니다.

 

가급적 출퇴근 시간을 피하여 서울 도심을 빠져나가기 위하여 아침 5시 30분에 일어나 두유와 빵으로 간단히 배를 채우고 성남을 출발하여 탄천 자전거 전용도로를 따라 서울로 이동하였습니다.

 

자전거 국토순례 전 구간 답사를 다녀 와서 성남에서 서울로 이어지는 자전거 도로에 출퇴근 하는 자전거도 많고, 운동하는 시민들도 많아 매우 복잡할 것이라고 걱정을 하였습니다. 그러나 다행히 본격적인 휴가기간과 일정이 딱 겹쳐 출퇴근 하는 자전거가 많지는 않았습니다.

 

자전거 200대가 한꺼번에 떼지어 다니는 것을 보고, 자전거 도로 통행에 방해가 된다면서 욕을 하고 가는 분들도 있었지만, 이른 아침 탄천과 한강에 나온 많은 시민들은 박수를 치고 화이팅을 외치면서 임진각까지 가는 국토순례 청소년들을 격려해주었습니다.

 

 

성남YMCA를 출발하여 탄천에서 한강까지 평균 속도 22~25km로 달리면서 빠르게 이동하였습니다. 잠실운동장 근처에서 도시락으로 아침식사를 하고 한강 자전거 도로를 거쳐 영동대교를 건넜습니다.

 

국토순례 참가 청소년들의 평균 라이딩 속도가 25km를 넘어서기 시작하자 체인이 빠지거나 펑크가 나는 등 자전거에 이상이 생겨 대열에서 잠시만 벗어나도 뒤쫓아가기가 정말 힘들었습니다.

 

한강을 건넌 후에 중량천 자전거 길을 따라서 따라 의정부까지 이동하였는데 자전거 도로를 이동하는 평균속도는 22~25km의 빠른 속도를 유지하였습니다. 탄천-한강-중량천으로 이어지는 자전거 도로는 대부분 평지로 되어있었기 때문에 큰 어려움 없이 빠른 속도를 유지하면서 달릴 수 있었습니다.

 

한강 건널 무렵 소나기를 만나다

 

일주일내내 소나기도 한 번 맞지 않고 폭염이 계속되는 가운데 창원에서 서울까지 자전거로 달려왔는데, 마지막 날 기어이 소나기를 만났습니다. 영동대교를 건널 때부터 빗방울이 날리기 시작하더니 금새 하늘이 컴컴해지고 빗줄기가 굵어지기 시작하여 월릉교까지 가는 30여분 동안 온몸이 흠뻑 젖을 만큼 소나기를 맞았습니다.

 

처음 소나기가 내릴 때는 더위를 식혀주는 시원한 빗줄기가 반가웠지만, 체온이 떨어지면서 몸에 한기가 몰려왔으며 땀띠가 생기고 짓무르기 시작한 엉덩이가 더 불편해졌습니다. 다행히 소나기는 30여분 만에 그치기 시작하였지만, 의정부에 도착할 때까지 바지와 신발이 마르지 않아 찜찜하였습니다.

 

그날 저녁 자전거 국토순례 마치고 마산으로 오는 버스에서 확인해보니 비에 젖고 땀에 젖은 양말과 신발을 신고 하루 종일 자전거를 타고 다닌 탓에 발등에도 땀띠가 잔뜩생겼더군요. 발등에 생긴 땀띠는 일주일쯤 지난 후에야 사그라들었습니다.

 

의정부에서 점심을 먹고 경기도 양주와 파주를 거쳐서 임진각까지 약 35km 정도 오후 라이딩을 하였습니다. 양주시를 거쳐 문산읍으로 가는 구간은 크고 작은 언덕길이 많았습니다. 그래도 국토순례를 마무리하는 마지막 날 이라 그런지 포기하고 차를 타겠다는 참가자는 많지 않았습니다.

 

평소에 가파른 오르막길이 나오면 일찌감치 포기하던 아이들도 임진각을 향해 가는 이날은 포기하지 않고 힘을 내서 달리는 모습이 보기 좋았습니다. 1차선 밖에 없는 국도 구간도 꽤 길었지만, 이 길을 지나는 운전자들이 자전거 타는 청소년들을 잘 배려해주었습니다.

 

 

감격적인 임진각 도착 환영 행사

 

오후 5시쯤 드디어 창원에서 출발하여 550km를 달려 온 목적지 임진각에 도착하였습니다. 임진각 망배단을 향하는 길가에는 100여명이 넘는 국토순례 청소년들의 가족과 친척들이 나와서 뜨겁게 환영해주었습니다. 박수를 치고 완호성을 지르고 국토종주를 격려하는 현수막을 준비해 온 가족들도 많았습니다. 

 

창원을 출발하여 임진각까지 완주를 마친 청소년들은 벅찬 감격과 흥분된 마음으로 분단을 상징하는 철조망에 평화와 통일을 기원하는 마음을 담은 리본을 달고, 한반도 모양으로 만들어진 연못으로 내려가 통일 기원하는 행사에 참여하였습니다.

 

 

 

창원에서 임진각까지 달려왔지만, 임진각에서 멈출 수 밖에 없는 분단의 아픈 현실을 이야기 하고, 멀지 않은 장래에 평양까지, 백두산까지 자전거를 타고 달려보자는 다짐도 함께 하였습니다. 자전거를 타고 평양까지 신의주까지 갈 수 있는 길이 열리면 한반도 남쪽에서 자전거를 타고 유럽까지 가보자는 희망의 이야기도 함께 나누었습니다.

 

평양까지, 신의주까지 자전거 타고 가는 날을 기약하며...

 

곧이어 망배단 앞 넓은 주차장에서 해단식이 개최되었습니다. 참가 청소년들이 성남 공연에 이어 두 번째로 플래시몹 공연을 하였습니다. 몇몇 부모님들이 아이들과 함께 플래시몹을 해보자고 제안하셔서 앵콜 공연으로 부모님과 함께 하는 플래시몹 즉석 공연도 진행하였습니다.

 

 

 

환영 나온 가족들과 함께 창원에서 성남까지 국토순례 여정을 담은 동영상 두 편을 시청하고, 2012 제 8회 YMCA 자전거 국토순례 대회장인 남부원 사무총장이 참가 청소년들에게 국토순례 완주증을 수여하였습니다. 남부원 대회장의 인사말, 국토순례 참가 실무자들의 작별인사와 전성환 국토순례 단장의 고별사를 끝으로 6박 7일의 국토순례 일정을 마무리하였습니다.

 

임진각에 도착하는 순간, 국토순례를 시작한 후 쫓아다니던 통증들은 사라지지 시작합니다. 더 이상 다리가 아프지도 않고, 쥐가나는 일도 없으며 그렇게 괴롭히던 어깨 통증, 엉덩이 통증도 거짓말처럼 사그라듭니다. 긴장이 풀어지고 피곤이 몰려오지만, 자전거를 타는 동안 몸을 자극하던 통증은 봄눈 녹듯이 사라집니다.

 

참 신기한 것은 첫 날, 둘째 날 힘겹게 자전거를 타면서 "내년에는 절대 안 온다", "다시는 안 온다"고 했던 아이들이 임진각에 도착하여 해단식을 마치고 친구들과 헤어지기 전에 어느새 내 년 참가를 약속한답니다. 힘들고 어려운 일을 이겨 낸 아이들은 내년에 또 도전할 수 있는 힘과 에너지를 얻어가게 되는 모양입니다.

 

 

"함께 달리자, 함께 달리자, 내 힘으로 달리자, 내 힘으로 달리자, YMCA 화이팅 !"

 

 

 

<관련 포스팅>

2012/08/06 - [여행 연수/두 바퀴 여행] - 자전거 국토순례 500km, 이제 엉덩이가 문제다

2012/08/03 - [여행 연수/두 바퀴 여행] - 국토순례, 자전거 200대가 길을 잃다

2012/08/01 - [여행 연수/두 바퀴 여행] - 자전거 200대가 몰려다니면 불법인가?

2012/07/29 - [여행 연수/두 바퀴 여행] - 자전거 국토순례 임진각까지 백두대간을 넘다

2012/07/28 - [여행 연수/두 바퀴 여행] - 국토순례 청소년들, 자전거타고 고당산을 넘다

2012/07/27 - [여행 연수/두 바퀴 여행] - 끝났다고 하더니 언덕길 왜 또 나와요

2012/07/25 - [여행 연수/두 바퀴 여행] - 창원에서 임진각까지, 550km 국토순례 출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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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남 강진-임진각, 480km 자전거 국토순례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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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YMCA 전국연맹에서는 매년 자전거 국토순례를 진행하고 있습니다. 4년 전인 2007년에 지금 고등학교 3학년이된 큰 아들과 함께 마산에서 출발하여 임진각까지 가는 제 3회 자전거 국토종주에 참가하였습니다.

제 3회 자건거 국토종주는 북한에 통일자전거를 보내는 캠페인과 함께 진행되었는데, 마산을 출발하여 김해, 부산, 경주, 대구, 구미, 김천, 대전, 천안, 평택, 용인을 거쳐서 임진각까지 670km를 달렸습니다.

어려서부터 자전거를 많이 타기는 하였지만 장거리 자전거 여행에 나서 본 것은 처음이었습니다. 참가자 대부분이 자전거 국토순례에 처음 참가하였지만 무사히 임진각까지 종주에 성공하였습니다.

한 여름 뙤약볕이 내리쬐는 아스팔트를 달리는 것이 힘들기도 하였고, 가파른 언덕 길이 나타나면 자전거를 끌고 고갯길을 넘어야 하는 육체적 한계를 경험하기도 하였습니다만 그때문에 완주의 기쁨은 더 컸던것 같습니다.




지금도 가끔 아들과 그때 이야기를 합니다. 당시에는 사춘기를 보내는 중이라 별로 말이 없었는데 지금은 그때 힘들었던 기억과 스스로 느낀 뿌듯함에 대하여 자주 이야기 합니다. 함께 자전거 종주를 다녀온 아들의 가장 큰 자부심은 한 번도 자전거를 끌고 가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자전거 국토 순례를 떠나기 전에 가파를 언덕 길에서 몇 번 연습을 했던 덕분인지 정말 아들녀석은 한 번도 자전거에서 내리지 않고 전 구간을 완주하였습니다. 올 여름에 자전거 국토순례에 참가하는 중학교 2학년 동생에게 "와 ~씨, 힘들어 죽는 줄 알았다. 그래도 재미있고 뿌듯하다. 꼭 가봐라." 하고 말하더군요.

큰아들 녀석이 제 동생에게 말은 이렇게 하지만 자전거 국토순례를 다녀온 자부심(?)이 숨겨져 있습니다. 주변사람들에게 자랑하는 것도 여러번 목격하였고, 자기소개서 쓸 때마다 자전거 국토순례 이야기를 쓰더군요.


▲ 2007년 당시 경남도민일보 기사



자전거 국토순례 4년만에 다시 갑니다.

마산을 출발하여 670km를 달려서 임진각에 도착하는 순간 아들도 저도 왜 그리 감격스럽던지요. 통일을 염원하는 자전거 종주였기 때문이기도 하겠지만, 임진각까지 자전거로 달려 온 스스로에 대한 감격이 더 컸을지도 모릅니다. 아무튼 2007년 '자전거 국토 순례' 참가는 큰아들과 함께 경험한 소중한 인생의 추억입니다.

2011년 7월, 중학교 2학년이된 작은 아들과 함께 자전거 국토순례에 다시 한 번 참가합니다. 이번에는 전남 강진에서 출발하여 임진각까지 가는 480km 국토순례입니다. 한국YMCA에서는 매년 1회 자전거 국토순례를 진행하고 있고, 이번이 7번째입니다. 

저는 3회 국토순례에 당시 중학교 2학년이었던 큰 아들과 참가하였고, 이번 7회 국토순례에는 중학교 2학년이된 둘째 아들과 다시 한 번 참가합니다. 출발지가 전남 강진이라 좀 번거롭기는 합니다만, 다산 정약용 선생의 유배길을 따라 강진에서 서울까지 자전거로 달린 후에 통일 염원의 마음을 담아 임진각까지 가는 의미있는 코스입니다.

한국 YMCA 는 지난 7년 동안 해남, 목포, 마산을 출발지로 하여 임진각까지 가는 북한통일자전거 보내기 국토순례, 속초에서 광주까지 국토를 횡단하는 청소년 자전거 국토순례, DMZ 자전거 국토 순례 등을 매년 진행해오고 있었습니다. 올 해는 '다산 유배길'을 따라 달리면서 친환경 에너지, 대안 에너지를 체험하는 국토순례를 진행할 계획입니다.

                           ▲ 사서한 고생이 아이들에게 평생 있지 못할 소중한 추억이 되었습니다.



사실 많은 사람들이 걷기 국토 순례 혹은 자전거 국토순례에 대한 꿈을 꾸지만 막상 혼자서 길을 떠나는 것은 쉽지 않습니다. 특히, 자전거의 국토순례의 경우 도로 주행에 따른 안전상의 문제가 있고, 숙박 및 취사 등의 번거로움 때문에 혼자서 혹은 몇몇 사람이 국토 순례를 나서기가 여간 어렵지 않습니다.

YMCA 자전거 국토순례는 세대를 초월하는 만남이 이루어지는 곳이기도 합니다. 초등학교 고학년부터 오십대 장년층까지, 다양한 연령의 참가자들이 육체의 한계를 함께 경험합니다. 부자가 함께 참여하기도 하고, 형제가 함께 참여하기도 하며, 가족이 함께 참여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전남 강진에서 임진각까지 가는 이번 자전거 국토순례는 전국 10개 지역 YMCA가 각각 10명씩 총 100명의 참가자들과 20여명의 스텝이 함께 진행합니다. 마산YMCA 배정된 인원은 10명인데, 현재 초등 5학년부터 50대주부까지  8명이 참가 신청을 하였습니다. 혹시 관심있는 분들은 6월 30일까지 신청하시면 함께 참여하실 수 있습니다. 선착순 2명입니다. 

자전거 국토순례는 청소년뿐만 아니라 어른에게도 자신의 의지로 세상과 맞서는 도전의식과 어려운 환경을 함께 극복해 나가는 공동체 의식을 느낄 수 있는 특별한 기회입니다. 아름다운 우리 국토를 자전거의 속도로 다시 보는 놀라운 경험을 할 수 있습니다. 또 우리가 살아가는 자연과 사회를 자전거의 시선으로 바라보며 도전과 진취적 사고로 삶의 변화를 경험하는 계기가 될 수 있을 것입니다.



아래는 2007년 8월 6일부터 12일까지 지금 고 3이된 큰 아이와 함께 6박7일 일정으로 진행한 YMCA 통일자전거 종주 참가기입니다. 당시 오마이뉴스 연재하였던 기사입니다.

<관련포스팅>
2008/09/10 - [여행 연수/두 바퀴 여행] - [통일자전거1]마산에서 임진각까지 620km를 자전거로 달린다
2008/09/10 - [여행 연수/두 바퀴 여행] - [통일자전거2]밥 먹고, 잠 자고 그리고 자전거 타고 임진각으로
2008/09/10 - [여행 연수/두 바퀴 여행] - [통일자전거3] 폭우를 뚫고 통일을 향해 달리다
2008/09/10 - [여행 연수/두 바퀴 여행] - [통일자전거4]청소년 자전거 종주단 '추풍령'을 넘다.
2008/09/10 - [여행 연수/두 바퀴 여행] - [통일자전거5]청소년 종주단 통일의 무지개를 만나다
2008/09/10 - [여행 연수/두 바퀴 여행] - [통일자전거6] 한반도는 하나일 때 아름답습니다.
2008/09/10 - [여행 연수/두 바퀴 여행] - [통일자전거6]평양까지 백두산까지 달리고 싶다.
2008/09/10 - [여행 연수/두 바퀴 여행] - [통일자전거7]"자전거 국토종주, 아빠가 가자고 해서요"

2008년1월 25~29일까지 '예비대학생과 함께 하는 자전거 제주 일주'를 다녀온 기록입니다.  3박 4일 동안 자전거로 제주를 일주하고 한라산 겨울 등반을 다녀왔습니다. 또 사적으로는 당시 초등학교 5학년이었던 둘째 아이와 함께 참여하였 소중한 추억이기도 합니다. 아래는 당시 오마이뉴스에 연재하였던 기사입니다.

2008/09/10 - [여행 연수/두 바퀴 여행] - [제주 자전거 일주1] 자전거 타고 240km 제주 일주
2008/09/10 - [여행 연수/두 바퀴 여행] - [제주 자전거 일주2] 3박 4일, 제주 자전거 일주에 성공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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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09/10 - [여행 연수/두 바퀴 여행] - [제주 자전거 일주4] 자전거로 찾아 간 제주도 맛집 - 춘자싸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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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탐진강 2011.06.24 09:37 address edit & del reply

    멋진 자전거 국토순례가 되겠네요.
    다 함께 가면 장관이겠어요

    • 이윤기 2011.06.26 07:38 address edit & del

      네 100명이 함께 달리는 모습은 정말 장관입니다.

  2. 국토지킴이 2011.06.24 11:06 address edit & del reply

    자전거 국토순례라니 재밌겠어요. 중학교 때 도보로 하는 국토순례는 해봤는데~
    자전거는 한 번도 못해봤네요.
    저도 해보고 싶어요..

    • 이윤기 2011.06.26 07:39 address edit & del

      시간 내서 신청하시면 함께 하실 수 있습니다.

  3. 2011.06.24 12:06 address edit & del reply

    비밀댓글입니다

  4. 김천령 2011.06.24 13:59 address edit & del reply

    역시나 멋진 일입니다.
    우리 땅의 아름다움을....
    건투를 빕니다.

    • 이윤기 2011.06.26 07:41 address edit & del

      네 격려해 주셔서 고맙습니다.

      이번 종주는 다산 선생의 유배길을 따라가기 때문에 더 의미가 있을 것 같습니다.

      나중에 블로그에 종주기를 올릴계획입니다.

  5. Chaussure louboutin hommes 2012.12.18 19:39 address edit & del reply

    내리쬐는 아스팔트를 달리는 것이 힘들기도 하였고, 가파른 언덕 길이 나

한반도 주변 원전, 60년마다 폭발한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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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아침 드디어 비가 내립니다. 환경단체를 중심으로는 이번에 내리는 비가 방사는에 오염되었을지도 모르기 때문에 특별한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고 합니다.

그런데, 정부와 기상청에서는 방사능 오염 가능성이 별로 없기 때문에 여느 봄비와 다름없다는 듯이 말하고 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그럼 방사능비에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지 의아해 합니다.

어제만 하여도 여러 곳에서부터 방사능 오염에 주의하라는 메시지를 받았습니다. 제 블로그에는 어제 엑스노트 P-210 사용기를 포스팅하였다가, 오후부터 방사능 오염비 주의 메시지를 함께 포스팅하였지요. 그리고 페이스북을 통해서도 전달 받은 메시지를 나누었습니다.  바로 아래 내용입니다.

방사능 비, 시민행동 지침

일본 후쿠시마 원전사고의 영향으로 인한 한반도 대기 중 방사능오염이 확인되기 시작했습니다.
후쿠시마 원전사태로 방사능 누출이 계속되는 상황이어서 방사능노출에 대비한 시민행동지침이 필요합니다.

● 우선 이번 주 목요일과 금요일 전국적으로 비가 올 것으로 예보되고 있는데, 내리는 비에 방사능이 오염될 가능성이 있습니다. 방사능오염 비에 맞지 말 것을 권고합니다. 기상청 등 당국은 방사능 물질의 농도가 미미하고 강수량이 적어 문제되지 않는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방사능과 같은 발암물질은 건강피해를 일으키는 최소노출농도(역치 閾値, threshold)가 없어 적은 량에 노출되어도 문제를 일으킬 수 있습니다. 따라서 가능한 노출되지 않도록 하는 것이 최선의 예방대책입니다(사전예방원칙, pre-cautionary principle).

● 강수량이 적다고 문제가 되지 않는 것도 아닙니다. 대기 중에 떠돌아다니는 방사성 물질들이 빗물에 달라붙어 내리게 되므로 적은 량의 비라도 안심할 수 없습니다. 비의 량이 많고 적음보다도 비가 내리기 시작하는 초기에 방사능 낙진이 빗물에 흡착되어 오염될 가능성이 높으므로 비가 예보되는 때에는 외출을 자제하고 불가피한 경우에는 우산을 휴대하고 다니다 비가 내리면 초우에 맞지 않도록 해야 합니다. 비를 맞았을 경우에는 바로 귀가하여 샤워를 하여 방사능오염을 최소화해야 합니다. 비에 젖은 옷은 세탁하여 외부에 말리고 우산과 비옷도 깨끗한 물로 씻어 가능한 실내에 두지 않도록 하기 바랍니다.

● 어린이와 청소년들이 다니는 교육시설의 경우 방사능비를 피하도록 충분한 교육과 우천시 대비책을 마련해야 합니다. 어린이와 청소년 그리고 임산부의 경우 특별한 주의가 필요한 이유는 생물학적으로 방사성 물질에 취약하기 때문입니다. 체르노빌 사고의 건강피해가 어린이들에게 집중적으로 나타나고 있다는 내용의 의학적 조사연구가 다수의 국제학술지에 보고되어 있습니다. 사고 당시 방사능에 노출된 어린이나 청소년들에게서 나중에 갑상샘암이나 백혈병이 많이 발병되고 있고, 임신 초기 3개월 이내에 방사능에 피폭된 경우 사산이나 조산 가능성이 높다는 연구도 있습니다.

“방사능문제는 노출을 피하는 것이 가장 최선의 대책입니다.”



방사능 위험 어떻게 대처해야 옳은가? 

오후에는 페이스북을 본 사람들로부터 여러 차례 쪽지와 전화를 받았습니다. 그중에는 아기스포츠단, 어린이집, 유치원 등을 하고 있는 YMCA 실무자들의 연락이 가장 많았습니다.


그렇다면, 아이들의 야외활동도 당장 중단해야 하는 건지, 만약 그렇게 하면 너무 호들갑을 떠는 것이 되는 것은 아니지 하는 질문들이었습니다.

사실 저도 명확하게 답을 해 줄 수는 없었습니다. 중앙정부 발표가 다르고 지방정부의 대응이 서로 다른 것이 현실이기 때문입니다.

아침 신문을 보니 이른바 진보 교육감이 있는 경기도에서는 휴교와 단축수업도 가능한 것으로 이야기되고 있지만, 일본과 가까운 부산, 경남에서는 별다른 대응이 없는 것이 현실입니다.

신뢰할만한 정보가 없을 때는 가장 높은 위험 수준을 기준으로 대비하는 것이 바람직하지 않겠냐는 답을 해주는 것이 고작이었습니다. 아울러 환경단체에서 내놓은 안전행동요령을 지키라고 아이들에게 교육하고 부모님들에게도 안내를 하기로 하였지요.


한반도 주변 원전 300여기, 100년 마다 한 번 폭발 위험 있다면?

어제 페이스북에서 본 아래 지도 사진을 보니 정말 기가막히더군요. 바로 한반도를 중심으로 한 원자력 발전소 지도입니다. 원본 출처를 따라가보니 동아일보가 보도한 기사(
中-日 원전 20년뒤 297기… 한반도 ‘핵의 고리’에 포위된다)에 포함된 지도더군요.

이미 운영중인 원자력 발전소(13개) 그리고 건설중인 원자력 발전소(27개) 그리고 계획 중인 원자력 발전소(188기)를 모두 한 눈에 볼 수 있는 지도입니다.

우리나라 원자력 발전소만 안전하게 관리한다고 해서 우리 국민들이 원자력의 위험으로부터 안전하게 지낼 수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한 눈에 보여주는 지도였습니다. 정말 동북아시아에서 한 중 일이 하나의 운명(?) 공동체라는 생각이 확 드는 그런 지도였습니다.

 


오늘 저녁에는 뉴스에는 오늘 내린 비에 방사능이 포함되었는지, 아닌지 알 수 있는 보도가 나오겠지요. 그렇지만 바람의 방향만 믿고 위험하지 않다는 하는 것은 좀 무책임해 보입니다.


그래도 원자력 발전 = 친환경 청정에너지라는 주장이 많이 주춤해진 것은 사실은 것 같습니다. 전에는 원자력 발전소가 친환경적인 에너지원이 아니라는 글을 포스팅하면 반대 의견을 가진 사람들이 댓글로 저의 무지(?)를 깨우치려는 노력을 많이 하였는데 최근에는 그런 댓글이 없더군요. 

<관련기사> 
2011/04/05 - [세상읽기 - 교통] - 후쿠시마 원전과 창원 도시철도
2008/12/11 - [세상읽기 - 교통] - 도시철도, 친환경 교통수단 아니다
2009/06/15 - [책과 세상/책과 세상 - 생태, 환경] - 원자력, 결코 값싼 청정에너지가 아니다 !
2009/06/14 - [책과 세상/책과 세상 - 생태, 환경] - 원자력발전소, 10년마다 폭발한다면?

전에 블로그에 쓴 글을 찾아보니 원자력 발전과 관련된 글을 몇 번 쓴 일이 있더군요. 특히 원자력 발전소의 폭발 사고 위험에 대한 히로세 다카시의 지적은 매우 섬뜩합니다. 그는 <체르노빌의 아이들>을 쓴 작가입니다.

히로세 다카시는 원자력 발전소의 폭발사고 가능성에 대하여 이렇게 경고하고 있습니다.

"앞으로 세계에 건설될 원자력 발전소는 수천 기로, 1기당 사고의 위험성은 2만년에 한 번이라고 나와 있다. 얼핏 읽어보면 2만년에 한 번이 극히 적은 것 같지만, 만약 2천기의 원자력 발전소가 있다고 계산한다면 10년에 한 번 사고가 일어나도 전혀 이상할 것이 없다는 의미가 된다."(작가의 말 중에서) 

원자력 발전소 1기가 폭발 사고를 일으킬 위험은 2만 년에 한 번이지만, 만약 2천 기의 원자력 발전소가 있으면 10년에 한 번 사고가 날 수도 있다는 주장이지요. 위의 한 중 일 원자력 발전소 지도를 보면 앞으로 300에 가까운 원자력 발전소가 세워진다고 합니다.

히로세 다카시의 계산법에 따르면 한, 중, 일의 원자력 발전소가 밀집해 있는 동아시아는 66년에 한 번 씩 원자력 발전소가 폭발할 수 있는 위험지대가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어떻게 생각하세요. 100년에 한 번 정도 폭발하는 위험이라면 충분히 감수 할 수 있으신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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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무터킨더 2011.04.07 09:44 address edit & del reply

    체르노빌 사고가 나고 몇년만인가요?
    백년까지 가지 못하는 것 같습니다.
    너무 무서운 결과인데 대책이 전혀 없는 것 같은...
    독일은 아마도 2022년 정도에는
    거의 폐지되지 않을까싶습니다.
    지금까지 지은 건 어쩔 수 없지만
    더이상 무작위로 건설하지는 말았으면...

    • 이윤기 2011.04.08 14:18 address edit & del

      한반도를 중심으로 주변 한중일에 300개 가까운 원자력 발전소가 들어서면 폭발사고가 일어날 확률이 66년마다 한 번으로 줄어들게 됩니다.

      이번 기회에 원자력 발전소가 안전하다는 거짓 신화가 깨져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2. my2030 2011.04.07 10:43 address edit & del reply

    좋은글 잘보고 갑니다

    • 이윤기 2011.04.08 14:16 address edit & del

      격려해주셔서 고맙습니다.

  3. cashbank 2011.04.07 12:54 address edit & del reply

    매년 봄이면 황사걱정이 이만저만 아닌데요..
    중국에서 방사능 날아오면 한국 직격탄 맞을 텐데..
    걱정됩니다.

    • 이윤기 2011.04.08 14:16 address edit & del

      올 봄엔 황사는 아무것도 아닌 것 같습니다.
      방사능 땜에 황사는 걱정도 못하는 것이지요.

  4. 구름산책 2011.04.08 12:24 address edit & del reply

    저 역시 <체르노빌의 아이들>을 읽지 않았다면 거짓뉴스를 읽었을 겁니다.

    • 이윤기 2011.04.08 14:15 address edit & del

      원자력 발전소에 대한 경각심이 커졌을 때, 원전 추진 계획을 중단시켜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5. ggg 2011.04.09 22:16 address edit & del reply

    저도 더이상 짓는건 절대 반대합니다...촛불켜고 살더라도... 그 불편함보다 언제 터질지 모르는 핵폭탄을 껴안고 사는게 더 싫습니다...사고한번 일어나면 대책도 없고 암덩엉리같은 공기를 마시고 살아야하다니...후손에게도 최악의 쓰레기를 넘겨주는겁니다.

    • 이윤기 2011.04.12 08:12 신고 address edit & del

      네 원전반대운동이 확산되었으면 좋겠습니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후쿠시마 원전을 처리하는데...앞으로 10년 이상 걸린다는군요.

      좋은 본보기로 삼아야겠지요.

  6. sk 2011.04.11 16:11 address edit & del reply

    저역시 요즘 어디가서 불이 켜있으면 꼭 끕니다...누구탓도 할수 없는게,,,다 우리가쓰는 전기때문이니깐요....집안의 전기도 코드도 다 뽑아놓고,,,아주 최소한만 씁니다..
    근데 아직도 일본산업폐기물 수입하나봅니다.
    http://news.knn.co.kr/news/todaynews_read.asp?ctime=20110405144610&stime=20110406155419&etime=20110405144340&userid=jskil
    우리가 일본 산업폐기물 처리장소인가요...

    • 이윤기 2011.04.12 08:11 신고 address edit & del

      일본산업폐기물을 수입하는 환경후진국이었군요.

      참 어이없습니다.

  7. - 2011.04.15 18:23 address edit & del reply

    방사능 걱정할 시간에 다른거 하시죠. 참내... 스포츠 신문 수준의 기사에 뷰가 이렇게 달리니 수준을 알만합니다. 방사능 얼마나 포함되어 있는지 수치는 보셨는지?
    앉은자리에서 빗물 수십톤 받아 드시면 갑상선암 발병 확률이 약간 올라가겠죠.
    CT 찍어보셨어요? 이거보다 몇천배는 방사능이 많은데 어떻게 찍을까요.

    페이스북... 아....
    누가 배포한 거고 그걸 어떻게 믿어요? 기자라는 양반이 페이스북에 돌아다니는 거 받고 기사를 씁니까?

  8. - 2011.04.15 18:32 address edit & del reply

    답이 안나오네 진짜.... 기자로서 기본이 안되있네요 도대체.....

  9. latte 2011.04.15 23:41 address edit & del reply

    2만년에 한번 = 2000개 있으면 10년에 한번 이라는 걸 보니 중학교를 제대로 못나오신거 같습니다.

마당에 자목련이 피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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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얀목련과 벚꽃이 활짝 피었다가 지고나니...이번에 자목련이 피었습니다.
같은 목련인데도...백목련보다 자목련이 늦게 피는 모양입니다.

제가 올 해부터 새로 일을 시작한 일터에는 여러가지 나무들이 자라고 있습니다. 지난주에는 벚꽃이 활짝 피어서 오고가는 이들을 즐겁게 하였고, 여러 날 동안 꽃눈이 날리는 아름다운 정원에서 지내는 '호사'를 누렸습니다.
벚꽃이 지고나니 마당 한 켠에 있는 자목련이 꽃을 피우기 시작합니다. 꽃이 피었다 질 때쯤 되면, 자목련으로도 목련차를 한 번 우려볼 생각입니다.

저는 흰색 보다 자주색을 더 좋아합니다. 그래서 흔한 백목련보다 자주색 꽃잎을 피우는 이 저녁에게 더 마음이 갑니다.  

흐드러지게 피었다 허무하게 지는 백목련보다 다소 곳이 피었다가 청초하게 버티는 것 같은 매무새도 싫지 않네요.



오늘은 제 일터 마당에 핀 자목련을 소개합니다. 앞서 이 곳에서 일하신 분들이 잘 가꾸어놓은 덕분에 멀리 나가지 않고도 계절의 변화에 민감하게 바뀌는 자연의 모습을 볼 수 있어 큰 기쁨을 누리고 있습니다.






자목련을 따다가 차를 우려보았습니다만 향기가 목련만 못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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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임종만 2010.04.25 16:56 address edit & del reply

    마산 대산에 한번도 가보지 않았다고요?
    저 블로그 사진에 나오는 장소는 정확히 윗 바람배입니다.
    대산의 줄기 능선이어서 편하게 여기도 대산(大山)으로 불리어 지기도 합니다.
    쌀재고개(내서감천~현동을 잇는 구길, 현재의 쌀재터널이 있는 산고개)에서 감천임도를 따라 약 1km 들어가면 정자가 서있는 바람재가 나옵니다.
    물론 바람재를지나 임도는 심감리 신라고찰 광산사까지 약 9km정도 연결되어있지요.
    이 임도길의 비경은 대산에서 조망되는 풍경과는 또 색다른 자연의 한 가운데 서있는 자신을 발견하고 놀랄지경이지요.
    이 임도의 비경, 가을단풍보다 아름다운 봄단풍을 포스팅 하겠습니다.
    바람재에서 한숨쉬고 등산로를 따라 윗바람재로 올라가면 약 20여분지나 이곳에 도착됩니다.
    정말 멋진곳이죠.
    사방이 탁 트여 너무너무 기분이 좋습니다.^^

    • 이윤기 2010.04.26 15:09 신고 address edit & del

      네, 한 번도 못가봤습니다. ^^*

      5월에 한 번 가봐야겠습니다.

      그럼 만날재로 해서 출발하면 되는지요?

    • 임종만 2010.04.29 14:08 address edit & del

      예, 만날재에서 감천쪽으로 길을 따라 올라가면 쌀재고개이지요.
      여기 쌀재고개 사거리에서 좌측길로 올라서서 쭉 가면 됩니다^^
      참, 5월15일(토요일) 경남블로그공동체 야유회를 쌀재고개에서 하기로 했는데 그때 이 길을 걸어봐도 되겠네요 하하~

  2. 푸디 2010.04.28 09:33 address edit & del reply

    와, 너무 근사하게 폈네요! 흰 목련은 정말 잠깐 이쁘고 지기 시작하면 흐드러지고 갈변되는 모습이 좀 아쉽긴 하지요. 그나저나 목련차라니, 너무 궁금해지는걸요?

    • 이윤기 2010.04.28 09:55 신고 address edit & del

      앞서, 목련차 마시는 이야기를 포스팅한 적이 있습니다.

      녹차 마시듯이 목련을 깨끗히 씻어 뜨거운 물에 우려내면 됩니다.

  3. Playstation Home 2011.09.08 14:15 address edit & del reply

    흰색 꽃과 꽃 벚꽃, 그리고 드워프는 모든 이야기가 ... 동화는 jamokryeonyi 있습니다.

    늦은 개화 Magnolias indedo Jamokryeonyi 이상 ... baekmokryeon 양식.

지금 남도에는 꽃눈이 흩날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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흐리고 바람이 많이 부는 오늘 아침 남도에는 꽃비가 내리고 있습니다. 지난 주말 활짝 피었던 벚꽃이 일요일 밤에 내린 비를 맞고 꽃비가 되어 땅으로 많이 내려왔습니다.

오늘 아침에는 바람이 불때마다 벚꽃나무 근처에는 하얀 꽃비가 하늘로 비상하였다가 아래로 떨어져내립니다. 마치 눈꽃이 날리는 것같은 처연하게 아름다운 모습입니다.

▲ 어제 담벼락에 공개하여 지인들에게 부러움을 샀던 사진입니다.
오늘은 블로그를 통해 함께 나눕니다.


3월 내내 장마처럼 봄비가 내려 참 짜증스러웠습니다. 일조량이 부족하여 비닐하우스 농사가 제대로 안 되었다는 보도가 있었지만, 자연의 봄은 어김없이 찾아오는 모양입니다.

새로 경험하는 일 때문에 바깥나들이 할 시간이 없어 일터에 갇혀지내고 있지만, 계절의 변화를 충분히 느낄 수 있는 있습니다.
지난 주말 벚꽃이 활짝피었던 마산, 창원 진해는 바람이 많이 부는 오늘 아침 어느 곳을 가나 꽃비가 날리는 광경을 볼 수 있을 겁니다.


어제 아침 제가 일하는 일터 모습입니다. 출근해서 입구를 들어서는 순간 아~ 하는 감탄사가 저절로 터져나왔습니다. 가방에 있던 카메라를 꺼내 사진으로 찍어두었습니다. 비가 내려 촉촉히 젖은 마당에 쌓인 꽃잎은 하루 종일 바람이 불어도 좀 처럼 날려가지 않았습니다. 어제 아침부터 오늘 아침까지 꽃잎이 흩뿌려진 모습 그대로입니다.




초록빛 새순이 올라오는 잔디 위에 분홍 꽃잎이 사뿐히 내려앉았습니다. 오늘 아침에는 강한 바람이 불어 나무에 붙어있던 벚꽃이 하늘 높이 비상하였다가 다시 내려오고 있습니다. 어제는 꽃비가 내리더니 오늘은 꽃눈이 흩날리고 있습니다.




벚꽃나무 아래에 있는 물이 고인 오래된 돌절구에도 꽃잎이 가득 떠 있습니다.

마당 한 켠에는 자목련이 꽃을 피우려고 준비하고 있습니다. 어제, 오늘 흐린 날씨가 이어지고 있어 더 이상 꽃을 피우지 못하고 있습니다. 봄 햇살이 조금만 더 비춰주면 이내 꽃을 활짝 피우게 될 것입니다.




자목련이 피었다가 질 때면 이번에는 '자목련 꽃잎차'를 한 번 마셔보려고 합니다. 자목련을 따뜻한 물에 우려내면 어떤 빛깔로 '꽃잎차'가 우러날지 기대가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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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성심원 2010.04.13 09:44 address edit & del reply

    봄은 멀리 있지 않고 우리 주위에 있겠지요. 등잔밑이 어둡다는 것을 새삼 느끼게 하는군요. 창너머 선홍빛 벚나무를 구경하며 커피 한 잔 마시고 있습니다...
    멋진 까페 저리가라입니다. 자연이 창너머 바로 이웃에 있네요.
    바람이 찹니다. 늘 건강한 웃음 가득하시길,,,

    • 이윤기 2010.04.14 09:59 신고 address edit & del

      고맙습니다.

      저 보다 더 좋은 자연 환경을 늘 곁에 두고 계시겠군요.

  2. 김천령 2010.04.13 09:50 address edit & del reply

    오, 정말 아름다운 광경입니다.
    꽃은 필 때도 예쁘지만
    떨어져서 흩날릴 때도 예쁘더군요.

    • 이윤기 2010.04.14 10:00 신고 address edit & del

      어제 오늘 바람이 많이 불어 연신 꽃잎이 휘날립니다.

      벚꽃잎이 다 떨어지고나면... 연초록 잎사귀들이 고개를 내밀겁니다.

      저는 연초록 잎사귀들에서 더 강한 생명력이 느껴지더군요.

  3. 함께 평화 2010.04.13 13:45 address edit & del reply

    따사롭고 평화로움이 절로 느껴지네요. 사진을 보는것만으로도 행복해지네요^^

    • 이윤기 2010.04.14 10:01 신고 address edit & del

      고맙습니다. ^^*

      어제 캠프 출발하려고 준비하는데, 아이들이 마당에 나가 꽃잎을 모아 날리면서 놀더군요.

  4. 푸른청춘 2010.04.16 11:42 신고 address edit & del reply

    서울로 교육 왔는데 청주에 내려가면 벚꽃이 다 떨어졌을 것 같은 불길한 예감이 드는데... ㅋ 사진으로라도 맘껏 구경하고 갑니다.

    • 이윤기 2010.04.18 09:24 신고 address edit & del

      청주 벚꽃 충분히 남아있을 걸요?

      주말에 벚꽃 구경 많이 하셔요 ^^*

마중 나가지 않았는데 마당까지 찾아 온 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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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흘이 멀다하고 비가 오는 봄입니다.
비만 온 것이 아니라 어느 날은 눈이 펑펑 쏟아지기도 하였습니다.
삼월에 눈이 와서 학교가 휴교를 하였지요.

지난주 금요일 춘천으로 출장을 가는데 강원도에는 눈이 오더군요.
마산에 사는 제가 보기에는 폭설(?)에 가까운 눈이 내렸습니다. 치악산 부근을 지나는 동안에는 앞을 식별할 수 없을 만큼 많은 눈이 쏟아지고 안개가 자욱하더군요.

잦은 봄 비가 계획하였던 많은 일을 어긋나게 하였습니다만, 그래도 어김없이 봄은 오는가 봅니다.

봄을 찾아 나설 만한 여유가 없는 저 같은 이에게도 어김없이 봄이 찾아 왔네요.
조금은 마음이 느긋한 토요일 아침 가까이 찾아온 봄을 만났습니다.




저희 아파트 마당에 핀 목련입니다. 양지 바른 쪽에는 꽃잎이 활짝 열려 이젠 곧 시들어 떨어질 날이 멀지 않았다 싶은데, 볕이 잘 들지 않는 한 쪽에는 아직 꽃망울이 터지지 않았습니다. 몇 일 전, 다른 분의 블로그에 올라 온 글을 보니 목련은 이 때가 가장 아름답다고 하더군요.

다음주에는 목련이 지기전에 꽃을 따다가 차 한 잔 마셔볼 수 있는 여유를 누릴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제 일터에 찾아 온 봄입니다.
엊그제까지 꽃망울만 맺혀있더니, 어제 아침부터 꽃잎이 열리기 시작하였습니다.
아마 다음주에는 벚꽃이 활짝 필것 같습니다.
그리고, 주말이면 꽃눈이 날리는 모습을 창밖으로 구경할 수 있겠지요.



마찬가지로 저의 일터에 찾아 온 봄 입니다.
햇볕이 적게 드는 쪽이라 이제 겨우 몇 송이만 꽃을 피웠습니다.
제 눈에는 매화처럼 보이는데... 매화가 맞는지 자신은 없습니다.


이 꽃은 더 활짝 피었습니다.
이름을 모릅니다. 이름을 알면 더 친할 수 있을텐데... 말 입니다.
이글이 포스팅 되면 누군가 이름을 알려주시리라 생각해봅니다.



요즘 제가 근무하는 일터입니다.
마당에는 초록색 잔디가 올라오고 있고...크고 작은 풀꽃들도 자라고 있습니다. 길 건너에는 임항선 철길이 지나가고 있습니다. 일에서 조금만 여유를 찾을 수 있으면 이 아름다운 자연들과 더 가까이 지낼 수 있으리라 기대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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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김석 2010.04.03 11:34 address edit & del reply

    부장님...순천은 목련이 흐트러지고 난리가 아닙니다.
    요즘 날씨 정말 왜 이러는지...
    스쳐지나가는 사람에게도 향기가 나는 4월입니다.
    건강하세요! 꽃풍년 꽃잔치 그렇게 사람들의 마음도 열렸으면 하는 바램입니다.

    • 이윤기 2010.04.04 17:34 신고 address edit & del

      저희 아파트에도 목련이 흐드러지게 피었습니다.

      목련차를 마시려고 마음먹고 있는데... 이삿짐을 다 옮겨오지 못해서... 차 마실 주전자가 없네요.

      새로 이사 온 유치원 마당에는 벚꽃이 피기 시작했습니다.

  2. 달그리메 2010.04.03 19:10 address edit & del reply

    이제는 정말 봄이 왔으면 좋겠습니다.

    • 이윤기 2010.04.04 17:33 신고 address edit & del

      네 정말 올 해 만큼 자연의 봄이 그리웠던 적도 없는 것 같습니다.

      월요일에 또 비가 온다고하네요.

      비 소식 들으니 또 우울합니다.

  3. 크리스탈 2010.04.06 16:32 address edit & del reply

    매화는 좀 땡겨봐야 확실하겠지만 매화(매실나무)가 맞아보이구요
    모르신다는 나무는 꽃사과 같은데 벌써 피었군요~~
    나중에 조그만한 열매가 주렁주렁 매달리는지 확인해보세요~~ ㅎㅎㅎ

    자세하게 말씀드리면 목련은 백목련이구요
    벚나무는 왕벚나무이지만 뭐 이런들 어떻고 저런들 어때요~~ ㅎㅎㅎㅎ

    • 이윤기 2010.04.06 22:29 신고 address edit & del

      고맙습니다. 꽃사과로군요.

      오늘 마당에 나가보니 자목련이 꽃을 피우려고 준비를하고 있더군요.

마산 폭설(?) 3월에 학교, 유치원 휴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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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겨울에도 안 오던 눈이 왔습니다.
마산에 이렇게 눈이 내리는 것은 지난 몇 년 사이에 처음인 것 같습니다. 어젯밤 늦게 퇴근하여 집으로 가면서 "밤새 눈이 내리면 큰일인데...."하며 걱정을 하였는데...아침에 정말 눈이 내리고 있어 걱정이 앞서더군요.

6년 전 지금 사는 아파트로 이사 온 후에 딱 한 번 눈이 많이 온 적이 있지만 낮에 해가 떠서 오후에는 모두 녹았던 것으로 기억이 됩니다.
아침에 일어나보니 창문 밖 건너편 건물에 눈이 하얗게 쌓여 있더군요. 겨울에도 눈 오는 일이 없는 마산의 운전자들은 조금만 눈이 많이 와도 꼼짝을 못합니다.

대부분의 자동차를은 월동 장비를 갖추지 않고 있어 도로에서 오도가도 못하고 멈추는 일이 적지 않습니다. 월동장비 없이 길에서 멈추는 차들이 많으면, 월동장비를 갖춘 차들도 꼼짝없이 함께 발이 묶일 수 밖에 없습니다.

이렇게 눈이오면 '유치원' 차량 운행이 제일 걱정입니다. 아침 일찍부터 선생님들에게서 차량 운행이 가능한지 묻는 문의 전화가 걸려오기 시작합니다. 뭐라고 딱 부러지게 대답해줄 수 없는 상황인데, 다행히 교육청에서 유치원과 초등, 중학교 휴원, 휴교 지시가 내렸다고 합니다.



눈 내린 아파트 주변 풍경입니다. 아직 출근이 시작되지 않아서 자동차 위에는 눈이 많이 쌓였습니다. 차를 두고 대중교통을 이용하거나 걸어서 출근하는 사람들이 많은 것 같습니다. 여느날 같으면 아파트 마당에 1/3이상 자동차가 빠져나갔을 시간인데도 대부분 차들이 그냥 세워져 있습니다.



임항선 철길 주변입니다. 철길 위에도 눈이 하얗게 쌓였습니다. 주민자치센터에서 방송을 하고 있습니다. 내 집앞과 골목길에 눈을 치우라는 안내 방송을 거듭해서 하고 있지만, 길에 나와서 눈을 치우는 주민은 한 명도 보이지 않습니다.

눈이 자주 오지 않는 마산에 사는 사람들은 눈 치우는 일에 익숙하지 않습니다. 눈을 치우지 않으면 함께 불편하다는 것을 별로 경험해보지 못하였기 때문이지 싶습니다.

유치원으로 출근해서 현관과 입구에 쌓인 눈을 치웠습니다만, 눈이 계속 내리고 있어서 사람이 다닐 수 있는 길만 쓸어내고 그냥 들어왔습니다.


제가 일하는 유치원 마당에 눈이 내린 모습입니다. 예쁘게 꾸며 놓은 정원에 눈이 내렸습니다. 유치원 마당 잔디에 파란 새싹이 올라오고 있었는데, 그 위에 눈이 하얗게 쌓여버렸습니다.



봄볕을 맞으라고 겨우내내 실내에 있던 화분들을 밖에 내놓았는데, 모두 밤새 눈 벼락(?)을 맞았습니다. 눈과 추위를 잘 견딜 수 있어야 할텐데 혹시 얼어 죽지나 않을지 걱정입니다.



지난 일요일에 봄 비가 자주 와서 싫다는 이야기를 블로그에 썼는데, 가장 큰 이유는 바로 이 공사 때문이었습니다.  유치원에 급식 시설 확장하기 위한 공사를 하고 있는데, 비 때문에 일주일 이상 공사가 지연되고 있습니다. 공사가 늦어질 수록 여러가지 일들이 자꾸만 꼬이게 됩니다. 오늘은 글자 그대로 '설상가상'이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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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함께 평화 2010.03.10 23:15 address edit & del reply

    뭐이 그까이 눈가지고서는 호들갑이셔라.. 강원도에는 그정도는 눈도 아닌데...^^ 고생많겠수다.

    • 이윤기 2010.03.11 08:19 address edit & del

      오후에 눈 대부분 녹았어요. 오늘 아침은 언제 그랬냐는듯 하네요...그런데도 어제 유치원, 초, 중학교 휴교하고...버스기사도 운행 못하겠다고 그랬어요.

      눈 속에서 살아 본 경험이 없어서 그래요

여름 장마같은 봄비가 싫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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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 장마처럼 일주일 넘게 비가 내리고 있습니다. 중간에 잠깐 비가 그친 날이 있었지만 짧게 햇빛을 보여주고는 여전히 비가 계속됩니다. 축축한 날씨 때문인지 새로운 일로 인한 감당할 수 없는 스트레스 때문인지 정말 힘들고 지치는 날이 20여일 동안 이어지고 있습니다.


Through a glass by otodo 저작자 표시동일조건 변경허락

새로 시작하는 일이 마음처럼 되지 않으니 자꾸만 애궂은 날씨 탓을 하는지도 모르겠습니다만, 아무튼 비 때문에 계획에 차질이 생긴 일도 적지 않습니다. 새로 옮긴 건물의 일부 리모델링 공사도 비 때문에 자꾸만 늦어지고 있습니다.

전화와 인터넷 공사도 비 때문에 작업이 더 늦어지고 있습니다. 일주일 넘게 임시 전화를 사용하고 있답니다.

주말에도 휴일에도 출근해서 옮기고, 고치고, 새로 달고, 사 오고.......하는 일상이 반복됩니다.  2월 말부터 제가 일하는 단체중에서 유아교육을 하는 부서만 유치원으로 이전을 하고 있습니다.

이사와 함께 새학기를 준비하는 일이 자꾸만 꼬이고 있습니다. 쉽게 설명 드리면 이런 겁니다.  마흔 두평 아파트에 살던 사람이 비슷한 마흔 평으로 이사를 하였는데 식구가 두 배로 늘어난 꼴 입니다.

짐을 옮겨 놓을 곳이 없어서 아직 예전 사무실에서 가져오지 못한 짐도 많습니다. 아이들 급식 시설도 마무리되지 않아서 월요일부터는 또 한 바탕 전쟁을 치러야할지도 모릅니다.

40여년을 사는 동안 가장 우울한 봄 날을 보내고 있습니다. 그래서 봄 비도 싫습니다. 비 때문에 이삿짐을 못 옮긴고, 비 때문에 공사는 늦어지고...어찌 비가 좋을 수 있을까요?

창 밖으로 내리는 봄 비를 보며... 양희은의 '하얀목련'을 흥얼그리던 지난 봄이 더 그립습니다. "봄비 내린 거리마다 하얀 목련이 진다"  아직 목련은 피지도 않았는데... 비 내리는 창 밖을 보면 목련이 떨어지는 서글픔만 느껴집니다.

아 ~ 오늘 아침에도 창문을 열어보니 흐리고 또  추적추적 비가 내릴 것 같은 하늘 입니다. 흐린 하늘이 사람 마음을 우울하게 하는 아침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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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구르다 2010.03.07 22:58 address edit & del reply

    고생이 많으시군요.
    그냥 왕창 드리붓고,,한동안 잠잠하면 좋겠습니다.
    그러면 여러문제가 해결되지 싶은데...
    20일 나누어서 올거..
    하루저녁 그것도 딱 몇 시간만에 퍼부어 버리면...

프라이드(?) 세워주던, 16년 지기의 추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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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연말에 16년 동안 타고 다니던 프라이드 승용차를 폐차한 이야기를 몇 차례로 나누어 포스팅하였습니다. 16년 정든 차를 20년 못 채운 이유 그리고 16년을 무사히 타고 다닌 나만의 비법을 소개하였지요.

오늘은
16년 동안 생사고락(? 자동차는 좀 그런면이 있지요), 동고동락(?)타고 다녔던 프라이드에 얽힌 가지 추억을
기록으로 남겨보려고 합니다.

2010/02/05 - [시시콜콜] - 신형원, 안치환도 함께 탔던 프라이드
2010/01/18 - [시시콜콜] - 자동차 오래 탄 나만의 비법
2010/01/15 - [시시콜콜] - 16년 정든 차, 20년 못 채운 이유
2010/01/14 - [시시콜콜] - 사연 많은 16년 지기와 헤어지다

▲ 굴뚝 마크가 선명한 기아자동차 프라이드


16년 전, 시민단체 실무자가 뭔 돈으로 차를 샀나?

요즘이야 시민단체 활동가들도 차를 타고 다니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환경을 걱정하면서 자발적으로 차를 없애는 사람도 있지만 시간을 쪼개는 단체 활동 때문에 승용차를 이용하는 사람들이 적지 않습니다. 

그러나 16년 전 제가 프라이드를 구입하였을 때만 하여도 열댓명이 일하던 저희 단체에서 자동차가 있었던 사람은 저 한 사람 밖에 없었습니다. 저희 단체에 한 대 있는 낡은 15인승 승합차가 전부였습니다. 


함께 일하던 당시 사무총장께서도 승용차가 없었고 오랫 동안 제 차를 많이 이용하였지요. 대체로 제가 차를 구입하고 나서 1~2년쯤 후에 동료 실무자 중에서 승용차를 구입하는 사람들이 생기기 시작했으까요.

사실 단체 실무자는 지금도 박봉이지만 그 때는 더 어려웠습니다. 제가 받는 실무자 급여로 승용차를 장만한다는 것은 말도 안 되는 일이었고 꿈도 꿀 수 없는 일이었습니다. 그럼 저는 어떻게 자가용족이 될 수 있었을까요?

사실은 아들덕분이고, 실제로는 부모님의 도움이 컸습니다. 결혼하고 첫 아이를 낳을 무렵이 되자 아버지께서 자동차 이야기를 먼저 꺼내셨습니다. 맞벌이 하려면 매일 아이를 맡기러 가야하는데 차도 없이 아이를 안고 다녀야 하는 것이 영 맘에 걸리셨는지 차를 사는 것이 좋겠다는 말씀을 하시더군요.

저는 차를 구입할 형편이 안된다고 말씀드렸습니다. 그랬더니 "자주 손자를 데리고 부모님을 뵈러 오라는 것"을 조건으로 자동차 구입 비용의 절반을 보태주시겠다고 하시는겁니다. 

결국, 등록비용을 포함하여 800여만원 중에서 절반인 400만원을 부모님이 보태주시고 나머지 금액은 12개월 할부로 '프라이드 베타'를 구입하였습니다.


▲ 앞문에서 뒷문까지 긁힌 자국이 남아 있습니다.



차 때문에 눈물 흘릴 뻔했던 기억

신혼초에 주택에 살다가 첫째 아이가 태어나고 아내의 출산휴가가 끝나기 전에 아이를 돌봐주기로 한 처형이 사는 동네에 있는 아파트 이사를 갔습니다. 그러니까 '프라이드'를 처음 구입했을 때는 아버지 사시는 동네 근처 주택에 살고 있었다는 이야기입니다.

지금도 별로 달라진 것은 없습니다만, 주택가에는 따로 정해진 주차장이 없으니 퇴근 후에는 동네 골목길 적당한 곳에 차를 세우는 것이 당시의 주차문화였습니다. 제가 살던 집 담벼락에 주차하는 것이 가장 좋은데, 늘 저를 위해서 자리가 비어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퇴근 후에 골목길 적당한 곳에 차를 세울 수 밖에 없었습니다.

프라이드를 구입하고 한 달도 지나지 않은 어느 날, 아침 출근을 위하여 나갔다가 차를 보는 순간 울컥~ 울음이 쏟아질 것 같은 처참한 광경이 펼쳐져있었습니다. 누군가 못처럼 날카로운 물건으로 운전석에서부터 뒷문까지 가로, 세로로 좍~좍~ 긁어놓고 가버린 겁니다. 

아직 할부금도 까마득히 남았는데... 새 차 사고나서 한 달도 안 지났는데...소심한 아내는 두고 두고 안타깝고 속이 상해 어쩔 줄을 몰라하였습니다. 처참하게 긁힌 곳이 조수석 쪽이면 자주 보는 일이라도 없었을 것인데, 하필 운전석 쪽이 긁혔기 때문에 꽤 오랫동안 차에 타고 내릴 때마다 그 모습을 보면 화를 참을 수가 없더군요.

폐차 할 때까지 큰 사고도 없었고 한 번도 전체 도색을하지 않았기 때문에 위에 보시는 마지막 사진에 가로로 크게 한 줄, 세로로 여러 줄로 긁힌 흔적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지난 16년 동안 늘 이 긁힌 흔적을 보면서 타고 내렸지요. 처음에는 찢어지는 마음이었지만, 새차가 조금씩 헌차가 되어갈수록 마음의 아픔도 사라져가더군요.

그 뒤에는 쭉 경비원이 근무하는 아파트에 살았기 때문인지 이런 험한 일을 다시 격지는 않았습니다.
화가 나서 남의 차 쭉 긁고 가는 분들, 당하는 사람의 아픔을 한 번쯤 생각해주시면 어떨까요?

▲ 차는 폐차장으로 가고 열쇠만 남았습니다. 16년 사용하였던 열쇠입니다. 참 많이 닳았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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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용팔 2010.02.07 05:37 address edit & del reply

    차를 산지 얼마 안되어 차체에 난 상처는 몸에 상처만큼이나 마음이 아프죠...
    잘 읽고 갑니다.. 좋은 시간되세요.^^

    • 이윤기 2010.02.07 08:14 신고 address edit & del

      딱 정확한 표현으로 공감해주셨네요.

      정말 당시에는 몸에 난 상처 같았습니다.

  2. 아시마루 2010.02.07 06:39 address edit & del reply

    추천 한 방 날리고 갑니다. 왼쪽 상단 배너 반갑네요. 건필하세요.^^

    • 이윤기 2010.02.07 08:15 신고 address edit & del

      네, 저도 베너 홍보 열심히 하고 있습니다.

      베너 달 줄 모르는 분들에게 직접 달아주는 봉사(?)활동도 몇 번 했어요.

      한국 블로그들이 멋진 싸움을 해내고 있는것 같습니다.

  3. 저녁노을 2010.02.10 10:52 address edit & del reply

    노을이도 오래탓던 차종입니다.

자동차 오래 탄 나만의 비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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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년 탔던 차를 지난 연말에 폐차하였습니다. 1994년 1월 14일에 등록한 기아자동차 프라이드 승용차를 19만여 킬로미터를 주행하고 만 16년을 보름 앞두고 폐차하였습니다.

워낙 오래된 차도 많고, 주행거리가 긴 차(자동차, 최고 몇 킬로까지 탈 수 있을까?) 도 많아서 대단한 자랑은 아니지만, 보통 사람들에게 승용차를 16년씩 타는 것은 여전히 별로 흔한 일은 아닙니다.



우리나라 사람들이 워낙 차를 신차를 선호하고 차량 교체를 자주 하기 때문에 '자동차 10년 타기 운동'을 하는 시민단체도 생겼으니까 말 입니다. 제 차 역시 10년이 지나면서부터는 친척들이나 친구들을 만날 때마다 '프라이드' 아직 타고 다니냐? 혹은 이 차 몇 년 탔어요? 하는 이야기를 인사처럼 수 없이 많이 들어왔습니다.

새 차를 구입하는 경제적 부담과 새 차가 환경에 주는 부담을 생각하여 차일 피일 미루다가 2009년 연말까지 한시적으로 시행된 노후차 교체 세제감면 혜택 때문에 아직 수명이 좀 남은 차를 부득이하게 폐차하였습니다.

관련기사 : 2004/01/04- [시시콜콜] - 사연 많은 16년 지기와 헤어지다
관련기사 : 2010/01/15 - [시시콜콜] - 16년 정든 차, 20년 못 채운 이유


저는 닦고 조이고 기름치고 하는 일을 직접할 수 있는 능력이 없습니다. 고장나면 카센타에서 기술자의 도움을 받아야 하고 남들 보다 특별히 차를 아끼거나 차에 시간과 공을 들이지는 않았습니다.
 
새차 같은 오래된 차를 타는 분들은 직접 부품도 구해서 교체하고 늘 왁스 칠을 해준다고 하는데, 저는 그런 노력을 기울이지는 않았습니다. 그런데도 제가 남들 보다 차를  비교적 오래 탈 수 있었던 것은 아마 다음과 같은 몇 가지 이유 때문이 아닌가 싶습니다.



16년 무사고가 가장 중요한 비결

① 뭐니 뭐니 해도 가장 핵심적인 이유는 큰 사고가 없었다는 것 입니다. 자동차의 성능과 기능이 나빠지는 가장 큰 이유는 사고가 틀림없습니다. 제 차 역시 크고 작은 접촉사고가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가장 큰 수리를 하였던 때가 뒷 범퍼를 교체하였을 때입니다. 따라서 사고로 본네트 속에 있는 주요 부품을 교체한 적은 한 번도 없습니다.

지난 16년 동안 자동차보험으로 차를 수리한 적이 단 번도 없었습니다. 어떤 분은 꼬박 꼬박 낸 보험료가 아깝다고 하는 분도 있지만 저는 큰 사고가 없었다는 것만 해도 충분한 보상이라고 생각합니다. 한 마디로 저에겐 아주 운이 좋은 차였습니다.

② 두 번째로 저는 16년 동안 운전자가 바뀌지 않은 것이 가장 중요했다고 생각합니다. 제 경험으로는 차가 낡을 수록 운전하는 사람이 바뀌면 수명이 짦아지고 기능이 급격하게 떨어지는 것 같습니다. 여러 사람이 운전하는 제가 일하는 단체에 있는 승합차를 보면 확실히 자동차 관리가 잘 되지 않고, 운전 습관이 다른 사람들이 번갈아 운전하기 때문에 차의 수명이 줄어드는 현상이 분명히 있습니다

▲ 94년 12월 23일부터 작성한 차계부입니다.
엔진오일 교체와 수리 내역을 구분하여 기록하였습니다.



낡은 프라이드, 15년 동안 차계부를 작성하다.


③ 약 15년 동안 차계부를 작성하였습니다. 깔끔한 차계부를 작성한 것은 아니지만 작은 수첩에다가 카센타나 정비공장에서 정비한 내역을 메모해두었습니다. 휘 갈겨놓은 메모지만, 엔진 오일은 몇 킬로미터 마다 교환하였는지, 각종 소모품은 언제 교체하였는지, 어떤 부품을 교체하였는지는 모두 기록이 되어 있습니다. 차계부를 보며 매 5000킬로마다 한 번씩 엔진오일을 비롯한 소모품은 꼬박꼬박 교체하였지요.

④ 큰 사고가 없었기 때문에 자동차 전체 도색은 한 번도 하지 않았습니만 크고 작은 접촉사고로 긁힌 일은 수 없이 많이 있습니다. 그때마다 메니큐어처럼 생긴 자동차 도장 페인트로 흠집이 있는 곳에 페인트 칠을 해주었습니다. 따라서 적어도 긁힘이나 흠집 때문에 차의 겉면에 녹이 생기는 일은 없었지요.

⑤ 불필요한 튜닝을 하지 않는 것도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저도 프라이드를 새차로 구입하였을 때는 이것저것 여러가지 편의 장치를 설치하였습니다. 원격시동 경보장치를 비롯하여 핸즈프리 장치 같은 것을 설치하였습니다만 얼마 후에는 모두 제거하였습니다.

특히, 출고 당시에 설치되어 있지 않던 원격 시동 장치는 2년여 만에 자꾸 말썽을 부려서 결국 제거하였습니다. 새차에 설치되어 있지 않은 이런 저런 편의 장치를 설치하는 것이 반드시 차의 성능을 높여주는 것은 아닌 것 같더군요.

10년이 넘아가면서 제 차는 처음 출고 상태로 돌아갔습니다. 여러가지 부착물도 모두 없애고 마지막 폐차 할 때는 출고 상태에서 인조가죽 시트만 덧 씌워진 상태였습니다.




16년된 차, 취급설명서도 고스란히...

⑥ 저는 어떤 기계든지 새 기계를 구입하면 '취급설명서'를 꼼꼼히 읽는 편입니다. 16년 된 프라이드 베타는 지난 연말에 폐차하였지만, 저희집 책꽂이에는 늘 차에 싣고 다니던 '프라이드'의 사용설명서가 아직 남아 있습니다. 만약, 중고로 자동차를 처분할 일이 있었다면, 사용설명서와 차계부를 새 주인에게 넘겨 줄 생각을 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차에 대한 지식이 별로 없어 가끔 차에 이상이 있으면 보관함에 들어있는 '취급 설명서'를 꺼내 보곤 하였습니다. 요즘은 보험회사 긴급 출동 서비스를 편리하게 이용할 수 있지만, 언젠가 한 번 여행지에서 휴즈가 끊어져 시동이 걸리지 않았을 때, 취급 설명서를 꺼내 읽어보고 어렵지 않게 해결한 경험이 있습니다.

저의 경험담이 지금 타고 계신 차를 좀 더 오랫동안 타겠다는 계획을 세우신 분들에게 조금이나마 도움이되었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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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뽀글 2010.01.18 11:55 address edit & del reply

    우아~ 무사고만해도 대단하신데..차계부까지 정말 대단하세요.
    저도 이제라도 써야겠어요^^

    • 이윤기 2010.01.19 09:55 신고 address edit & del

      간단한 메모가 자동차 관리에 중요한 자료가 될 때가 있더라구요. 시간이 지나면 내가 언제 소모품을 교체했는지 잊어버리니까요.

  2. 뷁!!! 2010.01.18 12:45 address edit & del reply

    원래 프라이드 자체가 고장잘 안나기로 유명한 차라는...
    오죽 안망가졌으면 부품이 안팔려서 차가 망햇다는 이야기 까지...---

    • 이윤기 2010.01.19 09:55 신고 address edit & del

      네, 튼튼한 차는 분명한 것 같습니다.

  3. 2010.01.18 16:06 address edit & del reply

    비밀댓글입니다

    • 이윤기 2010.01.18 16:55 신고 address edit & del

      실비단안개님 다녀왔습니다. 가장 나태한 사람에게 책임을 맡기셨더군요. 노력해보겠습니다.

  4. mart-m 2010.01.18 17:00 address edit & del reply

    정말로 딱 맟는말씀입니다

  5. walk around 2010.01.18 17:52 address edit & del reply

    저는 이렇게 차를 사랑하는 분의 새로운 차가 무엇인지 궁금합니다. -,.-;

    • 이윤기 2010.01.19 09:57 신고 address edit & del

      이 정도로 차를 사랑한다는 평가를 받기에는 과분하지요... 정말 대단한 분들이 많더군요.

      사정이 있어서 지금 저는 8년째(2002년식) 되는 클릭을 타게 되었습니다.

  6. 골목대장허은미 2010.01.18 18:06 address edit & del reply

    많이 배웠습니다~ㅋ

  7. 바꿔요~ 2010.01.18 21:17 address edit & del reply

    제 생각에 내년에 바꾼다 하하 저희 아버지도 장년에 바꾸셨는데요 아끼는게 다는 아니죠. 프라이드 신형 누가 특별지시해서 잘만들으라고 뉴스에서 본것같아요 바꾸세요~

    • 이윤기 2010.01.19 09:58 신고 address edit & del

      연말에 차를 바꾸고 프라이드는 폐차 하였습니다.

  8. 저도프라이드 2010.01.19 00:04 address edit & del reply

    저도 프라이드를 끌고 있지요 저희 아버지께서 95년도인가 94년도인가 장만하시도 년식은 비슷한거 같내요 저희 아버지차와 매우 비슷~ 프라이드 배타 오토입니다. 주로 마을에서만 다녀서 아직 10만 키로도 못채워서 쌔차랍니다 연비도 매우 효율적 아버지랑 어머니랑 언제나 저희 프라이드를 아끼고 사랑하고 있지요 저도 이차를 오래오래~ 탈생각 입니다. 명차거든요~ ㅋㅋㅋ 한 10년뒤엔 제가 이렇게 글을 비슷하게 올릴듯 싶내요 ㅋ

    • 이윤기 2010.01.19 09:58 신고 address edit & del

      다른 사람 차라도 마음이 가네요.

      지금 타시는 프라이드 사고 없이 오래 타시기 바랍니다.

      화이팅 !

  9. 용팔 2010.01.19 19:33 address edit & del reply

    한국에서 차를 이만큼 타시었으면 정말 오래타시었군요. 꼼꼼하게 차계부와 안전운행이 그 비결중에 하나가 아닌가 생각됩니다.

    제 옆 동료 한명은 지금 46만을 타고 있어요, 그 비결을 물어보았더니... 웃음이 나는군요.
    중고차를 거의 매년 구입하더군요, 500불짜리 600불 짜리로 어떤때는 200불 주고 샀다고 하더군요. 우리돈으로 20만원 60만원.. 그리고 잘타며 몇년 이상 탄다고 하는데.. 나같으면 어디 불안해서 이런차 타겠어요 ? 돈 없는 넘도 아닌데, 이러고 사네요...

    • 이윤기 2010.01.20 08:51 신고 address edit & del

      고맙습니다.

      요즘은 국산차도 성능이 많이 좋아졌어요.

      지금 요즘 나오는 새 차를 사면 훨씬 오래 탈 수 있을 겁니다. 옆 동료분처럼 아예 싸구려 차만 매년 바꿔서 타는 것도 재미있겠군요. 여러 차를 타 볼 수 있으니 말 입니다.

  10. ^^ 2010.03.08 12:09 address edit & del reply

    우리나라도 소형차에 대한 인식이 어서 빨리 바뀌어야 할텐데말이죠.
    작은 땅덩어리에서 왜그리 큰차들을 선호하는지...

16년 정든 차, 20년 못 채운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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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연말에 16년 정들었더 프라이드를 폐차하였습니다. 기아자동차의 성공 신화를 이끌었던 차이고 당시 기술로는 동급 차 중에서 '단단하게 잘 만든 차'로 명성이 높았습니다. 10년이 넘은 차를 타고 다닐 때, 다른 사람들에게도 '프라이드' 참 튼튼한 차라는 이야기 많이 들었답니다.

관련기사 2010/01/14 - [시시콜콜] - 사연 많은 16년 지기와 헤어지다




웬만하면 폐차 안 시키고 20년을 채워보리라는 생각도 여러 번 해보았습니다. 그래서 만16년이 될 때까지 꿋꿋하게 타고 다녔지요. 앞서 포스팅에서 밝힌 것 처럼, 제가 낡은 프라이드를 폐차한 가장 결정적인 이유는 2009년 연말까지 한시적으로 시행된 노후차 세제감면 혜택을 놓칠 수 없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그 외에도 16년 정들었던 프라이드를 폐차할 수 밖에 없었던 중요한 이유가 있는데, 바로 차가 너무 많이 낡았다는 사실입니다. 사실 가끔 제차를 함께 타는 사람들도 잘 모르는 여러가지 노화 현상이 있었습니다. 실제로 안전을 위협 할 만한 부분도 없지 않았습니다.

사실, 겉 보기에 제 차는 멀쩡해보이고 관리도 잘 한 편입니다. 그래서, 10년쯤 차를 탔을 때부터 제가 새로 차를 구입하면 이 차를 타겠다는 후배가 있었습니다. 원래 이 후배에게 차를 물려줄 생각을 하였으나 저만 알고 있는 제 차의 '노화현상' 때문에 결국 폐차 결정을 하였습니다. 남들은 잘 모르는 16년 된 프라이드의 '노화현상'은 이렇습니다.




운전석, 트렁크에는 비가 샌다

첫째, 비가 오면 비가 샜니다. 아주 심각한 현상은 아니지만 비가 온 다음 날 운전석 바닥에 물이 질척질척하게 고일정도로 비가 샜습니다. 이 사실을 알고 농담 삼아 '우산 쓰고 타야겠네' 하시는 분도 있었답니다. 아무튼 신문 3~4일치를 바닥에 하루, 이틀 정도 깔아두어야 물기가 제거되곤하였습니다.

비가 새는 곳은 운전석 뿐만 아니었습니다. 벌써 4~5년전부터 트렁크에 비가 새기 시작하였습니다. 단골 카센타에 수리를 부탁해 보았지만, 트렁크에 비 새는 것을 고치기가 쉽지 않다고 하더군요. 폭우라도 쏟아진 다음에는 트렁크에 물이 출렁출렁 할 만큼 고여있는 날도 있었습니다. 트렁크 바닥에 있는 예비 타이어 휠이 모두 녹슬어버리더군요.

트렁크에 물을 빼내느라고 자세히 보니 바닥에 고무 마개 같은 것이 있더군요. 이 고무마개를 빼냈더니 바닥으로 구멍이 뚫여 물을 쉽게 뺄 수 있었습니다. 그때부터는 아예 바닥에 있는 고무마개 3개를 모두 빼두었습니다. 비가 오면 트렁크에 물이 들어와도 이 구멍을 통해 모두 밖으로 빠져나갈 수 있도록 말 입니다.

비가 오는 날 불편한 것은 그것만이 아니었습니다. 비가 오는 날 조수석에 앉은 사람이 창문을 내리면 낭패를 볼 수있습니다. 제가 타던 프라이드는 앞 유리만 전동식인데, 비가 오면 어떤 날은 유리창이 올라가지 않고, 어떤 날은 스위치를 올리면서 손으로 유리창을 함께 밀어주어야 올라갔었답니다.


가끔 기어가 들어가지 않는다
신호대기시 브레이크를 밟으면 그냥 쑥~ 밀려내려간다


중요한 노화현상이 몇 가지 더 있는데, 그 중에 하나는 가끔 기어가 들어가지 않는다는 것 입니다. 어떤 날은 1단 기어가 또 어떤 날은 후진 기어가 들어가지 않는 것 입니다. 처음 이 현상이 나타나기 시작한 날은 벽을 향하여 앞쪽으로 주차를 해두었는데, 후진 기어가 들어가지 않아 차를 뺄 수가 없는 것이었습니다. 

교차로에서 신호대기 후에 출발하기 위하여 1단 기어를 넣는데 기어가 들어가지 않아 당황했던 적도 있습니다. 그러나 비슷한 현상이 자주 나타나면서 대처할 수 있는 요령도 터득이 되더군요. 기어가 들어가지 않으면 신속하게 왼발로 클러치를 여러번 밟았다 떼면 기어가 제 자리를 찾아 들어갔습니다.  요령을 터득 한 후에도 가끔씩 교차로에서 기어가 들어가지 않으면, 잠시도 기다려주지 않고 빵빵 거리는 뒤차들 때문에 당황스러웠던 기억이 많이 있습니다.

브레이크 장치에도 이상이 있었습니다. 이것도 제가 차를 폐차 시킨 중요한 이유 중에 하나입니다. 평소에 브레이크를 밟으면 제동은 이상없이 되었지만, 2년쯤 전부터 교차로에 신호대기 하면서 브레이크를 밟고 있으면 힘없이 스르르 밀려내려 가 브레이크 패달이 바닥에 닿아 버리는 겁니다.

석전 사거리 같은 언덕길 교차로에서 신호대기를 할 때는 반드시 주차 브레이크를 당기고 기다리지 않으면 안 될 만큼 브레이크 패달의 압력이 빠져나가 버리는 현상이 반복되었습니다. 제가 타고 다니는 동안 주행중에 제동을 할 때는 브레이크에 이상이 없었지만, 이런 현상이 계속 되어 불안하기는 하였습니다. 카센타 사장님께서는 수리는 가능하지만 비용이 상당하다는 말로 은근히 폐차를 종용하셨지요.

사실, 브레이크 장치에 이상이 있었기 때문에 차를 후배에게 줄 수 없었습니다. 그 외에도 타임벨트, 라이닝을 비롯한 여러가지 소모품 교환주기가 임박하였기 때문에 적어도 40~50만원 정도 들여서 정비하지 않으면 안전하게 탈 수 없는 차라는 '진단'을 받았답니다. 16년된 제차가 보험가액이 30만원으로 잡혀있었는데, 50만원을 들여서 수리하고 타야 한다니까 모두들 포기하더군요.

동전으로도 열리는 첨단(?) 자동차

마지막으로 재미있는 '노화현상'이 하나 더 있습니다. 제 차는 열쇠로 문을 잠궈도 그냥 열수가 있습니다. 3~4년 전부터 다른 차 열쇠를 넣어서 돌려도 문이 열리기 시작하였습니다. 그런데, 얼마간 지난 후에는 차 열쇠가 아니어도 적당한 쇠붙이를 끼워서 돌리면 문이 열리고 나중에는 동전으로도 문이 열렸습니다.

아주 최근에는 제가 차 안에 키를 두고 내렸는데, 빳빳한 명함을 적당한 크기로 접어서 열쇠구멍에 넣었는데도 문이 철크덕 하면서 열리더군요. 그렇지만 남들은 제 차 문이 이렇게 열리는지 몰랐기 때문에 도둑을 맞은 일은 없습니다.

이런 여러가지 노화현상 때문에 제가 계속 탔다면 더 탈 수 있었을지도 모르지만, 다른 사람에게는 공짜로도 타라고 권하기 어려웠습니다. 제 차의 이런 노화현상을 자세히 알고 있는 주변 사람들은 하루 빨리 차를 바꾸라고 권하셨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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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괴나리봇짐 2010.01.15 11:28 address edit & del reply

    제 차는 올해 13년차에 접어들었습니다.
    달린 거리는 19만 1,500킬로미터 정도 되구요.
    전 20만 킬로 될 때 제 차에 대해 한 번 포스팅할 계획이랍니다.
    아마 5월에서 6월 사이가 되지 싶습니다.
    그리고 폐차 시점은 30만 킬로미터로 보고 있습니다.
    제 차도 비 엄청 오면 본네트가 좀 샙니다.
    운전석 손잡이는 부러져서 용접해 붙였는데 잘 안 열릴 때가 있구요,
    차창 올릴 때도 손으로 좀 잡아줘야 올라간답니다.
    그래도 엔진소린 아직 괜찮은 편이구요,
    중간에 서는 일도 아직은 한 번도 없었답니다.
    어쨌든 부장님 글 보니 '남의 일' 같지가 않습니다.^^

    • 이윤기 2010.01.18 08:52 신고 address edit & del

      작년에 일본의 유명한 대안학교인 키노쿠니 교장선생님이 78만킬로까지 타고 있다는 이야기를 포스팅 한 적이 있습니다.

      네, 관리 잘 하시고... 마음먹은대로 되시기 바랍니다.

  3. 김천령 2010.01.15 12:00 address edit & del reply

    오래 타셨군요.
    그만큼 애정도 각별할텐데요.
    이제는 새 차로 바뀌겠습니다.

    • 이윤기 2010.01.18 08:53 신고 address edit & del

      사연이 좀 있는데...요즘 저는 8년째 되는 '클릭'을 타고 다닙니다.

  4. 유영선 2010.01.15 12:24 address edit & del reply

    왜 우리나라 사람들은 차를 자주 바꿀까라는 의문이 늘 있었는데
    바꿀 수 밖에 없는 환경이군요.
    안타깝네요

    • 이윤기 2010.01.18 08:54 신고 address edit & del

      저 보다 오래 타는 사람도 많지만...저도 꽤 오래 탄 편이지요... 10년은 정말 꺼떡 없었던 것 같아요. 15년을 전후해서 급격하게 노화현상이 나타났던 것 같아요.

  5. 솔직히.. 2010.01.15 13:25 address edit & del reply

    오래된차들...그냥 그대로 유지해서 그렇게 된게아닙니다....
    배보다 배곱이 크죠....관리할려면 머니도 많이필요하죠...
    20년 타실꺼라고 하셧죠...그냥 말만20년타야지 하면...다되는거 아닙니다..
    마음가짐도 중요하지만..머니도 중요하죠...
    보통 차는 10년타도 많이 타는거라고봅니다....
    자동차10년타기운동처럼요..그런데 그두배인 20년이라면...흠...
    돈엄청들어가죠....그러니 오래된차를 보기도 힘들고...
    잇다고해도...관리를 엄청잘하고..돈이 많이들엇다는겁니다...
    부품구하기도 힘들고..아님 따로 개조를 하야할때도잇죠...
    그래서 전 15년이상20년이상 차를 가지고계신분들..부럽습니다....
    그리고 존경하죠...요즘사람들은..차값보다 더 비용이들면...
    폐차하지만 그차를 진짜 20년타야지하는 사람들은...어떻게해서든지 수리합니다(개조를 해서라도)
    님도 그렇게 하실수잇으실까요?? 오래된차나 할머니 할아버지분들이시나 같습니다...
    뭐든지 오래되고하면 고장나기 일수죠...당연한건죠..그런각오..하십시요!!!
    그래야 20년까지 탈수잇습니다...
    다른고장때문에 다른차로 바꾼신다고요??
    그럼 요즘사람들과 다를바가 없습니다....
    차량고장때문에 차를 바꾼다는..핑계....
    제가 잘못생각한거일수도잇지만...핑계로 밖에 안보이네요...
    진짜20년타실껀가요?? 요즘나오는 차가 괸찮고 부럽나요?? 타고싶으세요??
    이핑계 저핑계로 새차로 바꾸고싶으세요??

    • 태지 2010.01.15 17:47 address edit & del

      목숨을 좌지우지하는 고장들 때문에 어쩔 수 없이 20년을 채우지 못했다고 하셨잖아요. 이런 이유가 일반 한국인들이 4,5년만에 차를 바꾸는 '핑계'와 같다고 생각하십니까? 15년 이상 한 차를 갖고 계신분들을 존경한다고 직접 적으신 분이 그렇게 말씀하시니.. 참 흥미롭습니다.

    • 태지/// 2010.01.16 01:43 address edit & del

      태지/// 고장은 수리하면 되는 것! 차를 오래 보유하려면 그만한 댓가를 치뤄야한다는 것을 설명하는 댓글에 왠 헛소리를....
      분명 주인장도 고장난 차를 수리할 수 있지만 그 비용이 아까워 차를 바꾼 것이고... 솔직히님이 쓴 것처럼 오래된 차를 유지하려는 댓가를 치루지 않아서 차를 바꾼 것인데 태지님은 난독증인 건지...

    • 왜안고치냐고 하시는님아 2010.01.16 06:46 address edit & del

      수리해도 계속 저런다잖아요...
      님도10년이상 타고싶은데 차가 안따라줘서 열폭하시는걸로 밖에 안보이는데요...
      님은 20년 타시면서 말씀하시나요?
      수리하고 개조하고 하시면서 20년 타신거 아니면
      그냥 눈팅만하시지요...
      그리고 글좀 읽으세요 제목만읽고 리플쓰세요?

    • 왜안고치냐고 하시는님아/// 2010.01.17 16:18 address edit & del

      왜안고치냐고 하시는님아///수리해도 계속 그런다는 글이 도대채 내용에 어디가 있는지....
      너야 말로 글좀 잘 읽고 써라. 이 열폭하는 바보야.

    • 이윤기 2010.01.18 08:55 신고 address edit & del

      네, 20년 타야지 마음만 먹었지...노력은 많이 안했던 것 맞습니다. 그렇지만, 차에만 모든 걸 쏟아 부을 수 없는 것이 현실이니까요...

    • 이건 뭐 2010.01.18 11:02 address edit & del

      이건 뭐... 우이독경이라는 말이 이래서 생긴 것이군요 ㅋㅋ 님 댓글로 인하여 사자성어 의미를 되새겨봅니다.

  6. 룰사마빜라 2010.01.15 13:49 address edit & del reply

    솔직히 차를 오래 탄다는건 단순히 생각만으로 되는건 아닌것 같아요
    그만큼 시간과 돈이들어가야하는것같습니다
    저도 02년식카니발타면서 작년한해 정비비만 100만원이상 들어갔거든요 올해는 환경부의 저공해조치로 인해 그이상들어갈꺼구요
    저도 제차로 10년이상타보려고 하지만 너무힘들면 포기할것도 같습니다
    어쨋든 님의애마를 포기할때 마니힘드셨겠어요
    다음차도 오래타시길 빌겠습니다
    ps. 혹시 시차를 사시거든 언더코팅은 꼭하세요
    그래야 오래탈수있을겁니다
    부상을 방지해 주거든요

    • 이윤기 2010.01.18 08:56 신고 address edit & del

      네 맞습니다. 결국은 수리비와 새차 구입 비용을 놓고 기회비용을 생각하게 되는 것 같아요.

  7. asdf 2010.01.15 15:15 address edit & del reply

    저희집 세피아는 17년타다가 폐차햇네요

  8. 오사마빈오뎅 2010.01.15 15:17 address edit & del reply

    사고 나겠어요 그만 이제 그 차를 놓아주세요. 서로를 위해 ㅋㅋㅋ^^
    정이 많이 들었다면 전시용으로 집앞에 세워두시고 새차하나 구입하시죠!

  9. 크리스탈 2010.01.15 15:33 address edit & del reply

    지난번에 타던 차는 10년을 채우려고 했는데
    20만키로가 넘어가자 한번 고치는데 최소 50만원 이상의 수리비가 들어서
    3번 고치고 바꾼 차가 지금 차입니다.
    23만키로인가 탔는데 9년째였고 고속도로에서 한번 서기도 했지요.
    그 뒤로 남편이 장거리에 불안감이 심해 차를 바꾸었습니다.

    이번차는 경유차라서 10년은 타겠지 했는데
    지금 5년째인데 18만이라서 어찌될지 모르겠어요. ㅎㅎㅎㅎ

    • 이윤기 2010.01.18 08:57 신고 address edit & del

      자동차 오래타기 역시 마음만으로는 되는 것이 아니더군요. 20년 타려면 자동차 전문가가 되어야겠더라구요.

  10. 탁틴 2010.01.15 15:39 address edit & del reply

    많이 섭섭하시겠습니다.저도..95년식 슈퍼티코..아직타고다니는데..
    님과 비슷한 노화현상이...나타나네요~~저도 20년 채우고 싶은데..ㅠㅠ

  11. 돌이아빠 2010.01.15 16:15 address edit & del reply

    93년식 엘란트라 몰고 있습니다.
    말씀하신 노화 현상은 거의 없는데 부속품 들이 깨지고 하는 경우가 많네요.
    쏠쏠하게 돈이 들어가긴 하지만 자주 있는건 아니고 아직은 탈만해서 저도 20년 채우려고 합니다.
    정든 차 떠나보내셨다니 많이 아쉬우셨겠습니다.~

    • 이윤기 2010.01.18 08:58 신고 address edit & del

      마음 알아주시니 고맙습니다...엘란트라 오랫 동안 친구가 될 수 있기를 기원합니다.

  12. 지나가다가 2010.01.15 17:57 address edit & del reply

    마지막 노화현상 너무 웃겼어요

  13. 큐샤 2010.01.15 19:19 address edit & del reply

    와~ 정말 오래타셨군요!! 저희 아부지도 크레도스 96년산을 아직도 타고 계시는데..슬슬 고장이 생기네요 ㅎㅎ 얼마전엔 엔진 오일이 샜던가...엔진이 훅 갈뻔도 했다고 합니다. 그래도 계속 잘 관리하면서 잘 타고 계신답니다. 자차로 도장까지 다시 하고 ㅎㅎ..크레도스 퍼질때까지 타고 반드시 골프로 갈아타신다는데, 언제 퍼질지도 기약이 안가는군요 ㅎㅎ 차는 어떤 것으로 바꾸셨나요??

    • 이윤기 2010.01.18 08:59 신고 address edit & del

      크레도스도 좋은 차지요? 지구를 위해서도 오래타셔야지요... 저는 클릭을 타고 있습니다.

  14. 라키리 2010.01.15 21:09 address edit & del reply

    차도 수고 했고. 오래 타신 주인님도 고생이 많으셨습니다.

    글을 읽어보니 기분좋게 보내주신것 같네요^^~

  15. wild_dust 2010.01.15 21:30 address edit & del reply

    새차는 어떤차인가요? 새로 장만 하셨을텐데. 옛날차 생각도 나시겠네요.. 저도 노후차보상으로 지하주차장에서 휙 이끌려간 먼저차가 생각납니다. 14년지냈는데 스르르 잠들어 버렸읍니다. 그러길 기다렸지요 참 보내기 미안해서 그냥타다가 '보상'도 마침있구...각박하지요

  16. 어느정도는... 2010.01.16 01:47 address edit & del reply

    어느정도는 폐차하기 위한 주인장의 핑계로 들립니다....
    물새는 것은 웨더 스트립을 교체하면 되는 것이고 그다지 많은 비용이 들지 않습니다.
    키쪽은 키셋트를 바꾸면 되는 것이고....
    비용이 크게 들만한 것은 브레이크 정도인데 오래된차를 유지한다는 것은 그만한 비용과 댓가를
    치뤄야 됩니다.
    주인장은 아쉬운 것처럼 얘기를 했지만 수리하기 보다는 새차를 구입하는 것으로 결론 내린 것을 봐서는 마음 한켠에는 역시 오래된차 유지하고자하는 마음이 그다지 크지 않았던 것 같군요.
    차의 평가액이 2,30만원 밖에 안되더라도 아끼는 마음이 있다면 2,300만원을 들여서라도 수리를 합니다.
    제가 있는 동호회 사람들도 그렇고요....기껏해야 중고가 200만원짜리 차를 거의 7~800만원 들여 수리하고 전체도색에 광택까지 하기도 하니까요. 그만큼 자기차를 아끼고 유지하려는 노력이 있다고 봐야겠죠.
    주인장은 그런 정도로 타던 차를 아끼지는 않았던 것으로 보입니다.

    • 이님도 제목만 읽나 2010.01.16 06:53 address edit & del

      단골 카센타에 수리를 부탁해 보았지만, 트렁크에 비 새는 것을 고치기가 쉽지 않다고 하더군요.
      라는 글이 안보이십니까?
      글 쓴 사람 깔꺼면 제대로 보고오세요
      저한테는 님이 영화랑 소설을 제목만읽고 다 읽은것처럼 말하는 인간들로밖에 안보여요
      그리고 님은 그렇게 애지중지하면서 물건쓰시나요?
      지금 쓰시는 컴퓨터는 window98 펜티엄3 개조해서 쓰시고 차는 말할것도 없겠네요?
      집에 가구들은 나무판자 사다 붙여쓰세요?

    • 이님도 제목만 읽나// 2010.01.17 14:34 address edit & del

      차에 대해 모르면 먼 소리를 말던가...이건 바보도 아니고..
      물새는거 고치는게 쉽지 않다고 불가능한 것도 아니고..
      카센터에서 오래된차 참 고치기 쉽다고 하기도 하겠다...
      수소문하고 동호회 동원하면 수리가 불가능 한것은 없다는건 모르겠지...
      더 심한 고장도 다 수리가 가능한 세상인걸 모르는건지...
      그리고...집에서 펜3 아직도 쓰고 있다. 어쩔래?

    • 이윤기 2010.01.18 09:01 신고 address edit & del

      제가 자동차 마니아는 아닙니다. 차를 오래타기 위해 다른 것을 많이 희생할 수는 없다고 생각했구요. 어느 정도는 핑게 맞습니다. 솔직히 노후차 세제 혜택이 결정적인 이유였다고 밝혔습니다.

  17. 그러게 2010.01.16 20:48 address edit & del reply

    폐차를 종용하는 카센타에 단골 등록을 하셨다니 안타깝네요.

  18. 수원사람 2010.01.17 00:08 address edit & del reply

    글이 재미도 있고... 그러면서 뭔가 깊이가 있는 글입니다.
    항상 고맙게 잘 읽고 있습니다.

  19. juNS 2010.03.17 18:35 address edit & del reply

    93년식 저색깔 베타 아직 타고 댕기는 1인... 큰고장(15만원짜리이상)나면 언제라도 보낼 마음의 준비가 되있는데 고장이 안난다.... 타이밍벨트도 카센터에서 파격적인 10만원에 교환해줬다...

    단...93년식 이전은 에어컨가스가(R22쌩추리 프레온가스) 더이상 나오지 않기 때문에 에어컨 문제되면 마음의 준비를 하려는데... 역시나 고장이 안난다...
    가끔 좋은차 오래 탄다고 진심으로 말씀하시는 분들 땜에 그냥 탑니다.
    운전석 의자 쿠션만(오래되서 스폰지 주저앉음) 해결되면 20년 생각해 볼랍니다....
    아마 비경제적으로 차2대 끄는 상황이 와서리(뉴sm3는 지하주차장에 세우다 일주일에 한번쓰고 프라이드사용)

    사고만 안나면야... 한~ 참 더타지요 87년식 카브레타 엔진도 잘굴러 댕기드만...

    • 이윤기 2010.03.19 08:30 신고 address edit & del

      네, 제 선배 중 한 분도 프라이드 베타 아직도 타고 계셔요. 저는 낡은 차에 투자하기 싫어서 차를 바꾼 셈이지요.

  20. 이경주 2010.07.17 16:56 address edit & del reply

    저도 같은색 프라이드 94년식 아직 타고 댕깁니다
    차량관리를 워낙에 잘해주고 있었지만,
    올해 2월에 올도색에 하체 올수리해서 2백들어갔어요.
    다른데는 새차만큼 상태가 양호한데
    올해들어 운전석에 물이 새네요--;
    트렁크에는 님이 조치한대로 몇년전에 조치를 했구요..
    제 생각에는 당골 카센타도 좋지만 제조회사 본사를 이용하는게 좋다고 생각합니다.
    당골카센타를 저도 14년 이용했는데, 실력이 딸리더라고요... 이제 물새는거 잡아야 합니다.
    냉각수 체크해보고 웨더스트립고무쿠션체크해보고, 휀다교체때문인지 체크해봐야합니다.
    2백 들어서 이쁘게 도색 올수리 해놓고 보니 욕심이 생겨서 2025년 전기차가 활보하는날이 되면 전기차로 바꾸려고 합니다. 저 알뜰하죠? 헤헤
    그리고 저한테는 이차가 정말 편합니다~

    • 이윤기 2010.07.19 08:13 신고 address edit & del

      정말 대단하십니다.

      2백들여서 수리하셨다하니 놀라울 따름입니다.

      사실 저는 낡은 차에 큰 돈을 들이기 싫어 차를 바꿨답니다.

      꼭, 2025년까지 타시기 바랍니다.

      2025년에 94년식 프라이드의 건재한 모습을 볼 수 있기를 기대합니다.

  21. 이경주 2010.08.10 18:04 address edit & del reply

    하하하 고맙습니다~

    자동차 판매하시는 분들 입장에서는 저같은 사람이 밉겠지요?

    하지만 200이면 1000보다 작은돈이라 부담이 없었습니다~

    대한민국에서 프라이드 한대가 남을때까지 타보려고 작정한 사람입니다~

    아마 다음에 제가 뉴스에 나오지 않을까 싶은데요 ㅎㅎ

    건재한 모습을 꼭 보여드릴께요~

노대통령 참배, 봉하 '올레' 시즌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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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을 입구에서 노대통령 유골 안치된 정토원까지 천천히 걷는 길

노무현, 전 대통령 유골이 안치된 정토원 수광전


노무현 전 대통령의 공식 장례절차가 끝났지만, 봉하마을을 찾는 추모객은 좀처럼 줄어들 것 같지 않습니다. 현충일이 낀 이번 주말 연휴기간에도 봉하마을을 찾는 추모 인파가 적지 않을 것이라는 예상을 쉽게 할 수 있습니다.

어떤 네티즌이 인터넷에 올린 글에서 국민장 기간 중, 봉하마을 방문을 '올레' 길에 비유하였더군요. 제주 올레, 강화 올레에 이어서 봉하 올레 길을 걷는 추모인파를 보며 그런 생각을 한 것 같습니다. 국민장 기간에 봉하 올레 길은 봉하마을까지였는데, 지금은 노 전 대통령 유골이 안치된 '정토원'이 있는 봉화산까지 연장된 듯 합니다.

▲ 부엉이 바위 


엊그제, 일요일에 봉하마을을 거쳐 노대통령 유골이 안치된 정토원까지 봉하마을 새 '올레' 길을 다녀왔습니다. 공식 장례절차가 끝나서 봉하마을 노무현 전, 대통령 사저 건너편 임시 주차장까지 승용차를 타고 갈 수는 있습니다만, 봉하 올레 길 출발은 본산 공단이 끝나는 지점에서 출발하는 것이 가장 좋을 것 같습니다.

국민장 기간에 봉하마을에 와 보신 분들은 다 아시겠지만 셔틀버스 승하차가 이루어지던, 공단이 끝나고 마을이 시작되는 장소 말입니다. 여기서부터 걷는 것이 좋은 이유는 걷기에 적당한 거리이기도 하고, 주말이면 여전히 마을주차장까지 가는 길은 굉장히 혼잡하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아울러, 아직 치워지지 않은 만장이 길 양편으로 세워지 있어 '노무현 대통령 추모' 분위기를 느낄 수 있기도 합니다. 1km 남짓한 마을로 들어가는 길을 따라가면, 금새 봉하마을을 알리는 커다란 표지석을 만날 수 있습니다. 길 오른편으로는 노무현 전, 대통령이 마을작목반원들과 함께 봉하 오리쌀 농사를 짓던 논이 있습니다.

▲ 지난 일요일 봉하마을 추모인파 입니다.


대통령 서거 때문에 모내기가 늦어졌는데, 영결식이 끝난 후 모내기 일손이 바삐 움직이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만장에 쓰인 고인을 추모하는 글귀를 하나하나 읽으면서, 천천히 걸어가도 10~15분이면 봉하마을에 도착할 수 있습니다.

마을입구에 들어서서 왼편으로 있는 마을 회관 앞 공식 분향소는 아직 철거되지 않았습니다. 국민장 기간에 비하면 국화꽃도 많이 시들고 헌화 할 꽃도 없지만, 노무현 대통령을 지지하는 자원봉사자들이 분향소를 지키면서 추모객을 맞이하고 있습니다.

공식분향소 왼편에는 부산에서 활동하는 민중미술 작가가 그렸다고 알려진 노무현 전 대통령 대형초상화가 세워져있습니다. 저는 아들 녀석과 함께 이곳에서 노대통령 초상화를 배경으로 기념사진을 찍었습니다. 반대편에 있는 노사모 회관에도 추모 시설이 마련되어 있고, 고인의 사진을 비롯한 유품과 추모편지 등 전시물들이 있어 둘러 볼 만합니다.

▲ 봉화산 등산로에서 부엉이 바위 쪽으로 가는 다리입니다. 


마을회관 공식분향소 참배 후, 추모 열기 간직한 노사모 회관 들리시길...

김해시와 행정안전부가 국민장 이후에 지원을 전면중단하였기 때문에, 간단한 음식을 준비해오시거나 아니면, 봉하마을에 있는 매점을 이용하셔야 합니다. 대통령께서 손녀와 함께 아이스크림을 사 먹던 그 가게에 들러실 수도 있고, 술빵을 비롯한 봉하표 간식도 판매하고 있습니다.

분향소를 들리신 후에는 마을 안쪽으로 걸어 들어가 노대통령이 생전에 지내시던 사저를 둘러보시면 됩니다. 일부 언론이 '아방궁'에 비유했던 사저를 직접 꼭 확인하시기 바랍니다. 사저 건너편에는 생가가 있지만, 지금은 고인의 유골이 안치된 '정토원'을 찾는 분들이 훨씬 많습니다.

고인이 생을 마감한 부엉이 바위 오른편으로 나 있는 등산로를 따라가면 정토원 가는 길  입니다. 등산로 입구에서 정토원까지는 불과 200여 미터 밖에는 안 됩니다. 그렇지만, 산을 오르는 길이 가파르고 모두 계단으로 되어 있기 때문에 그리 만만한 길은 아닙니다.

▲ 봉화산 등산로, 낮은 산이지만 길은 가파르고 험 합니다.   


더군다나, 추모 인파가 몰리면 오르고 내리는 사람들이 많아서 좁은 길이 복잡하여 생각보다는 시간이 많이 걸립니다. 정토원 방문객 중에는 나이 드신 불교신자들이 많아 걸음이 느리기 때문에 마음을 느긋하게 하고 여유롭게 걷는 것이 좋습니다.

정토원 가는 길은 추모 글이 씌어진 노란 리본이 잔뜩 걸려있기 때문에 길 잃을 염려도 없고, 중간에 샛길이 나타나도 그냥 등산로만 따라가면 됩니다. 입구에서 100여 미터를 오르면 왼편으로 옆으로 넘어져있는 마애불상이 있습니다. 조금 위쪽에는 약수터가 있으니 이쯤에서 한 숨을 돌리고 쉬었다 가는 것도 나쁘지 않습니다. 약수터에서 조금 더 위로 올라가면 목교가 나옵니다.

목교는 노대통령이 생을 마감한 부엉이 바위로 쪽으로 건너갈 수 있는 작은 다리입니다. 아직은 폴리스라인이 설치되어 있어 부엉이 바위 쪽으로는 갈 수 없습니다. 반대편 길은 노무현 대통령 유골이 안치된 정토원가는 길입니다.

정토원은 조그만 절입니다. 이 절은 노무현 전 대통령이 생전에 '정신적 지주'로 칭하면 존경심을 표했던 선진규 선생이 원장으로 있으며, 노대통령 부모와 장인의 위패가 모셔진 곳이기도 합니다. 선진규 원장은 그 옛날 중학생시절부터 노무현 전 대통령에게 많은 영향을 주었고 불교의 사회적 역할을 강조하는 사회운동을 벌여왔다고 합니다.

▲ 노무현 전 대통령 유골이 안치된 정토원 수광전 분향소

노대통령 유골 모신 정토원 '수광전'

노무현 전 대통령 유골은 이 절 대웅전인 수광전에 봉안되어 있습니다. 커다란 관음상 아래로 조그만 영정사진이 있고, 영정 사진 뒤편에는 고인의 유골이 안치되어 있다고 합니다. 49제때까지 정토원에 가시면 참배가 가능합니다. 제가 다녀온 지난 주말에도 이곳에 추모객들의 발길이 이어져 대웅전 마당까지 길게 줄을 서서 참배를 하였습니다.

대웅전 오른편 능선에 서면 봉하마을과 건너편 논밭이 한 눈에 들어옵니다. 시원한 바람이 부는 이곳에서 다리쉼을 하면서 한 눈에 들어오는 마을을 둘러보실 수 있습니다. 노 대통령께서는 '발 아래 펼쳐진 봉하마을 잘 다음어진 논에 올 봄에도 모내기를 하시고 싶어' 하셨는데, 그 소박한 꿈마저 접고 죽음의 길을 가야하셨지요.

다리쉼을 하신 후에는 그냥 왔던 길을 되돌아 내려올 수도 있고, 아니면 봉화산 정산을 다녀올 수도 있습니다. 호미든 관음상이 세워져 있는 봉화산 정상까지는 정토원에서 10 ~15분이면 갈 수 있습니다. 지도를 살펴보니 정상에서 봉수대 사자바위를 거쳐서 내려오는 코스도 괜찮을 것 같습니다.

▲ 정토원 쉼터에서 내려다 본 봉하마을 

봉하마을 정경 한 눈에 들어오는 정토원 쉼터

혹, 경찰조사가 끝나고 폴리스라인이 걷히고 나면, 정토원에서 부엉이바위를 거쳐 마을 쪽으로 내려올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부엉이 바위를 거쳐서 내려오면 넓은 잔디밭이 있어서 역시 쉬었다가기에 좋은 장소입니다. 노무현 전 대통령 사저와 부엉이 바위 사이에는 커다란 산딸기 밭이 있습니다.

지난 주말에 봉하마을을 들렀던 참배객들 중에는 이곳에서 산딸기를 사 가는 사람이 여럿 있더군요. 저도 한 상자 사 볼까하여 가까이 다가갔더니, 그날 수확한 산딸기는 모두 팔았다고 하시더군요.

노무현 전 대통령을 추모하는 봉하마을 올레 길은 천천히 걸어도 한 나절 길입니다. '봉하마을 입구에서 만장 따라 걷기 ~ 마을 임시분향소 ~ 부엉이바위 아래 노 전 대통령의 추락 지점 ~ 부엉이바위 근처~고인의 유골이 안장된 정토원 ~ 정상 또는 부엉이 바위' 코스를 거쳐서 돌아오면 딱 입니다.

아 ! 빠뜨린 곳이 있네요. 실비단 안개님이 블로그에 소개하신 수생식물단지와 '사람사는 세상 원두막이 있습니다. 봉화산에서 내려와 마을 앞 노란리본을 따라 안쪽으로 들어가면 수생식물 단지가 있습니다. '사람 사는 세상'이라는 현판이 붙어 있는 원두막도 있지요. 수생식물 단지에 수련이 피어있고, 곧 연(蓮)이 꽃을 피울 거라고 합니다. 저도 연꽃이 필 무렵 꼭 한번 가 볼 생각입니다.

제가 다녀온 지난 주말 동안에만 10만 명 이상 추모객이 다녀갔다고 하는군요. 다가오는 현충일 연휴 봉하 마을을 찾으실 분들 봉하 '올레' 길 따라 한 번 걸어보세요.


 

▲ 걷기 힘든 사정이 있는 분들은 자동차로 바로 정토원으로 갈 수 있습니다.
마을 입구에서 정토원으로 가는 갈림길이 있습니다.


▲ 노무현, 전 대통령 초상화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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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바람불는날 2009.06.02 11:29 address edit & del reply

    저도 그 만장이 세워져 있는 길 걸으면서 걸어 오길 잘했다 생각했어요. 고향에 온 듯 아늑하고 경치도 좋고.. 아마도 앞으로 성지순례 길이 될 것 같더군요.

    • 이윤기 2009.06.02 15:17 신고 address edit & del

      네, 마을 안까지 차를 타고 가며 먼지를 날리는 것 보다 훨씬 좋을 것 같습니다. 주변 경관도 걷기에 나쁘지 않구요.

  2. 저녁노을 2009.06.02 13:35 address edit & del reply

    이번 주 일요일 봉화산 등산계획이 있습니다.
    정토원에도 들리고....

    잘 보고 갑니다.

    • 이윤기 2009.06.02 15:18 신고 address edit & del

      네, 즐거운 산행 되시기 바랍니다. 봉하마을 수생식물단지와 '사람사는 세상' 원두막도 꼭 둘러보시기 바랍니다.

  3. 마실 2009.06.02 15:13 address edit & del reply

    '봉화올레' 좋은데요

    • 이윤기 2009.06.02 15:19 신고 address edit & del

      제가 처음 쓴 표현은 아니구요. 어떤 블로거께서 '봉화오레'라고 썼더라구요. 저는 국민장 기간이 끝나서 새로 생긴 올레 길을 소개해 본 것 뿐 입니다.

  4. 맹그로브 2009.06.02 18:19 address edit & del reply

    아는 언니가 노대통령 서거 그 다음날 바로 봉하마을로 12시간 걸려 다녀왔다고 하던데
    그렇게 소박하게 사시는줄 몰랐다고 합니다.. 아방궁은 무슨 아방궁.. 넘넘 소박하고 그야말로
    촌 그런줄 몰랐다고 더 복받쳐 원통해 했어여.. 저도 함 가보고 싶네여.. 항상 거기 계신줄 알고
    나중에 아이들과 함다녀와야지 와야지 하면서 결국은 이렇게 되고 말았어여... 웬지..

  5. 차선진 2009.06.03 12:21 address edit & del reply

    생전에 꼭 한번 가보지 못한것이 한이되는군요 올여름엔 꼭 한번 가봐야지요

  6. 눈물이 나는군요ㅠㅠ 2010.04.29 19:41 address edit & del reply

    서울에서 김해가 멀다고 생각되었습니다.
    언제나 그 곳에 계실거라 생각했습니다.
    그렇게 미루다....이렇게 눈물만 흘리는군요.
    정말 올해는 꼭 가보겠습니다. 인사드리러....평안히 계세요.

  7. 김가 2011.10.27 20:49 address edit & del reply

    눈물만 나는 우리들의 참사랑 노무현대통령님!
    그렇게도 멍청이고 요괴이고 소통안되는 완전 속통 머저리가 대통령님을 죽였지요
    백번천번 아까운 님

    • 이윤기 2011.10.28 08:56 신고 address edit & del

      이제 1년 조금 더 남았네요. 내년 12월 내선 치르고...심판이 이루어질겁니다.

  8. Christian louboutin 2013 2012.12.18 19:56 address edit & del reply

    공단이 끝나고 마을이 시작되는 장소 말입니다.

김해시, 행안부 참 야박한 인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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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민장 끝나자 봉하마을 장례지원 전면 중단

지난주 국민장 기간에 조문을 다녀오지 못한 두 아들을 데리고 봉하마을에 다시 한 번 다녀왔습니다.

일요일 오후에 빈둥거리는 아들녀석들에게 봉하마을에
다녀오자고 했더니, 흔쾌히 가자고 따라나서더군요.


저 역시 엊그제 영결식을 마치고 화장 후에 정토원에 모신 노무현 전 대통령을 한 번 더 찾아보고 싶은 마음도 있었구요.

국민장이 끝나고 이틀이 지났지만, 봉하마을을 찾는 조문객은 여전하였습니다. 국민장 기간만큼 사람들이 밀려드는 것은 아니었지만, 여전히 마을앞 공단에 차를 세우고 걸어가야 할 만큼 많은 사람들이 찾아오고 있었습니다.

셔틀 버스 운행이 중단되었기 때문에 대부분 승용차를 가지고 봉하마을을 찾는 조문객들은 오랜 시간 기다려서 마을 주차장까지 차를 타고 들어가는 사람들도 있었지만, 그 보다 훨씬 많은 사람들은 장례 기간때 처럼  공단 주변에 차를 세우고 걸어서 마을을 찾고 있었습니다.



1.5km 정도 거리를 가볍게 걸어서 봉하마을에 들어섰더니, 눈에 뛰는 '알림판'이 두 군데나
붙어 있었습니다. 아마 국민장이 끝났음에도 불구하고 전국 각지에서 봉하마을을 찾아오는 조문객들에게 밥 한 그릇은 고사하고, 물 한 그릇도 대접할 수 없는 자원봉사자들이 안타까운 마음에 써 붙인 안내문인듯 하였습니다.


"행안부와 김해시의 식사 및 식수지원이 중단되어 부득이 조문객 여러분께 지급해드리지 못함을 송구스럽게 생각합니다.- 자원봉사자 일동"

김해시와 행자부가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 이틀이 지나고서 여론의 질타를 당한 후에야 부랴부랴 식수와 식사를 지원하더니, 국민장이 끝나자마자 모든 지원을 완전히 중단하였다는 것 입니다. 

'뻑' 하면 동방예의지국이라고 하는 이 놈의 나라 참 인심 한 번 야박하지 않습니까?


아무리 국민장 기간이 끝났다고 하지만, 노무현 전 대통령을 애도하는 국민들이 끊이지 않고 봉하마을을 찾고 있는데, 밥 한 그릇은 고사하고, 물 한 그릇도 대접해주지 못하는 것이 김해시 인심이라는 것 아닙니까?

봉하마을, 헌화 할 국화꽃도 없었다.

노무현 전 대통령 빈소를 찾는 조문객이 아니고, 김해시를 찾는 그냥 단순한 관광객이라고 하더라도 이런 대접은 너무 야박합니다.  하물며, 전직 대통령 빈소를 찾는 조문객이 끊이지 않는 마당에 물 한 그릇 조차 대접해주지 않는 것, 참 해도 너무하는군요.

 


모르긴 해도 앞으로 봉하마을은 광주 망월묘역 못지 않은 이 나라 민주성지가 될 것이 분명합니다. 언젠가 김해시는 노무현 전 대통령이 태어나고, 그 파란만장한 삶을 마감한 봉하마을을 김해시의 자랑으로 삼을 날이 분명히 오리라고 장담할 수 있습니다.

국민장 끝났다고 이렇게 야박하게 하고서, 나중에 노무현 전 대통령을 얼마나 팔아먹을지 두고 볼 일 입니다. 제가 찾은 일요일에는 조문객들이 헌화할 국화꽃도 없더군요. 여전히 수 백명씩 줄을 서는 조문객들은 대표로 한 분이 향불 하나 밝히고, 예를 올리고 쓸쓸하게 돌아서야 할 만큼 분향소가 초라해졌더군요.

하기야, 서울 덕수궁에서는 국민장이 끝나자마자, 전경들이 들이닥쳐 분향소마저 때려 부순 정부이니 어쩌면 이 정도 야박한 인심에 섭섭하다 하는 제 생각이 틀렸거나 순진한 생각인지도 모르겠습니다. 

김해시장, 이렇게 민심 외면해도 될까?

왜 이런 일이 생겼을까 생각해보았습니다. 민선 김해시장은 민심을 이렇게 모를까하는 생각 말입니다. 내년이 지방선거인데, 이렇게 민심을 못 읽는 사람이 당선될 수 있을까하는 생각을 하였습니다.

좀 더 깊이 생각해보니 역시 제가 순진하였더군요. 김해시장의 당락은 민심이 좌우하는 것이 아니라 한나당 정당 공천이 좌우하는 것이더군요. 한나라당과 청와대 그리고 지역구 국회의원 눈치를 잘 살펴야 하는 것이지, 민심은 자신의 당락에 직접적인 영향을 주지 않기 때문이더군요.

이명박 정부 기구인 행안부는 또 그렇다치고,  민선 김해시장님 ! 민심이 천심입니다. 참 해도 너무 하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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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당연한 선택;;; 2009.06.01 11:07 address edit & del reply

    끝날거 다 끝났으면 당연히 지원을 안해야지;;; 크게보면 전국민, 작게보면 김해시민을 위해 쓰라고 꼬박꼬박 세금 바치는거지, 그 잘난 [일부] 추모객 뭐좀 처먹이라고 세금내는거 아니거든;;;

    • 이윤기 2009.06.02 09:11 address edit & del

      밥 달라고, 물 달라고 떼 쓴거 아니니 글 좀 잘 읽어보시지요.

    • 임꺽정 2009.07.12 20:41 address edit & del

      당연하거 좋아하네...
      이눔아~니 에비가 죽어도 이렇게 야박하게 문상객을 대할거니?
      한심한눔 ...너 왜 사니?

  2. 새길 2009.06.03 08:56 address edit & del reply

    정말 해도해도 너무하다. 끝났다고 바로 치우고 국민들이 계속오고 전직 대통령인데

    대운하에 쓰는 세금 생각하면 가슴이 미어진다.

한겨레 만평, 노대통령 죽음을 예감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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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무현 전 대통령이 서거한 지난 5월 23일(토) 한겨레신문 만평을 보셨나요?
노무현 전 대통령과 천신일 회장을 한 데 묶어 1+1 신상품으로 넘기려 한다는 풍자 만화 입니다.

그런데, 이 만화에서 노무현 대통령은 테이프 같은 것으로 천신일과 한데 묶였는데, 입과 코가 틀어막혀 숨이 막힌듯한 표정입니다. 하필, 아침 신문에서 이 만평을 보며 노 전 대통령 모습이 참 초라하고 안타깝게 느꼈었는데, 몇 시간이 못가서 그가 봉하마을 뒷산에서 '서거'하였다는 비보를 듣게 되었습니다.

라디오에서 전해주는 속보를 듣고나니, 문득 아침 신문에서 만평에서 본 숨 조차 제대로 쉴 수 없어 힘들어하던 노무현 전 대통령의 표정이 떠 오르더군요. 나중에 언론 보도를 보면서, 그가 정말 숨 조차 제대로 쉴 수 없을 만큼 힘든 시간을 홀로 외롭게 보내고 있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한 컷 만화가 그의 마음을 다 담아내고 있는 줄 그날 아침엔 미처 몰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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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무현 전 대통령을 추억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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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득 10년 전에 끊은 담배 생각이 났습니다. 그가 세상에 남긴 마지막 말이 "담배 있느냐"는 물음이었다고 하더군요.

너무도 안타까운 소식을 듣고 가슴이 답답하고 먹먹하여 도저히 그냥 있을 수 없어 봉하마을을 다녀오는 첫날 10년 전에 끊은 담배 생각이 간절하였습니다.

친척 결혼식에 가며 한가롭게 라디오를 듣다가 여자 아나운서가 전하는 날카롭고 다급한 목소리를 들었습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이 오늘 아침 사저 뒤편 봉화산에서 투신하여 자살을 시도하였습니다."


도저히 믿기지 않은 '속보'가 전해지고 한 시간쯤 후에, 문재인 전 비서실장이 노무현 전 대통령의 죽음을 확인하는 공식발표를 하더군요.

한 나라 대통령을 지내신 분이니, 그분에 대한 크고 작은 추억을 간직한 분이 어디 한두 분이겠습니까만, 그를 떠나보내는 이 아침, 저도 제가 만난 서민 대통령에 대한 기억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습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을 처음 본 것은 1985년 마산지방법원 재판정입니다. 대학 새내기 시절, 선배들이 준 임무(?)를 수행하러 훗날 민주노동당 대표가 된 통일중공업 문성현 위원장 재판에 방청을 갔습니다. 삼엄한 경찰 경비를 뚫고 법정에서 대학 초년생의 인생을 흔들어놓는 최후 변론을 하던 노무현 변호사를 처음 만났습니다.



1985년 마산지방법원에서 만난 '노변'

서울 상대 출신 지식인 청년 문성현이 노동자로서의 삶을 선택하는 과정과 처절하게 짓밟힌 이 땅의 노동 현실과 권력의 시녀가 된 민주주의에 대해 격정적인 최후 변론을 하던 노무현 변호사 모습은 지금도 잊을 수 없습니다. 눈물을 참을 수 없었던 가슴 울리는 최후 변론은 새내기 대학생을 깊이 '의식화' 시켰고, 훗날 학교를 졸업하기도 전에 노동운동 언저리에 발을 들여놓는 중요한 계기가 되었습니다.

그로부터 몇 년 후 마창노련이 건설될 무렵 수출자유지역에서 열린 노동자 집회에서 노동형제들을 향해 노동악법철폐를 주장하는 연설을 하던 노무현 변호사를 다시 만났습니다. 노동자의 처지에서 노동악법을 조목조목 비판하는 연설을 듣던 노동자들이, "노무현", "대통령", "노무현", "대통령"을 한목소리로 외치던 그날을 지금도 또렷하게 기억하고 있습니다.

이때만 하여도 그가 진짜 대통령이 되리라고 아무도 생각하지 못하였지만, 십수 년이 지난 2002년 그는 한 편의 드라마처럼 대통령에 당선되었습니다. 마산에서 국민경선이 열리던 날 그리고 대통령 선거를 앞둔 어느 날 밤, 창원에 있는 모 복지관 회의실에서 지지를 호소하는 대통령 후보 노무현을 만났습니다.

민노당과 노무현 후보 사이에서 고민하던 젊은 활동가들에게 간곡한 도움을 요청하였고 우리는 그의 승리를 기원하였습니다. 12월 대통령 선거에서 그는 당선되었고, 개표 방송이 있었던 그날 밤, 많은 사람이 그랬던 것처럼 매우 기뻐 밤새 잠을 이루지 못했습니다.

격정적인 최후변론 모습 잊을 수 없어

왜 그랬을까요? 바로 그의 승리가 가지는 특별한 의미와 기대 때문이었을 것입니다. DJP 연합과 같은 방식이 아니라 국민 참여 경선을 통해 대통령 후보가 되고, 초기 여론조사 결과를 꾸준히 뒤엎고 온전히 국민의 지지를 받아 당선된 민주 정권이었기 때문입니다. 아울러, 한국정치를 왜곡해왔던 기득권구조인 보수언론, 지역주의, 그리고 재벌에 정면으로 도전하여 축적한 정치적 자산으로 승리하였기 때문입니다.

노무현 대통령이 취임하고 나서, 진보 개혁 진영에서 일하던 선배들이 청와대와 정부에 참여하는 것을 보며 적지 않은 기대를 키웠고, 탄핵정국을 거쳐 국회에서 진보개혁진영이 수적 우위를 점하였지만, 개혁에 실패하였을 때는 실망이 컸던 것도 사실입니다. 
 
오늘은 세상에 당신을 사랑하는 국민을, 당신이 사랑했던 국민을 남겨 놓고 떠나는 날입니다. 제가 세상을 사는 동안 꼭 대통령이 되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던 사람이 대통령에 당선된, 그 기적 같은 시대를 함께 살았던 것이 세상을 바꾸는 일을 하는 저에게 늘 희망의 밑천이었습니다. 노무현 대통령님, 안녕히 가십시오.

※ 2009년 5월 29일, 노무현 대통령 영결식이 열리는 날, 경남도민일보 칼럼 '향기가 있는 글'에 쓴 글 입니다.



윤민석님이 만든 노무현 대통령 추모노래 '바보 연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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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김경주 2009.07.21 19:52 address edit & del reply

    안녕하세요. 저는 한 부산시민입니다.이곳에 오니 제가 배울게 많고
    많은 생각을 하게 됩니다.
    블로거님이 노무현대통령을 처음 만났을때 저는 5살이였네요.
    사회문제,정치가 어려울거라는 생각으로 외면했던 것이 마음아픕니다.
    선의를 품은 사람은 순수한 열정을 감추기가 어려운가봅니다.
    아직 그분이 마음에 많이 차있어서 무슨희망을 어떻게 꿈꿔야하는지 잘 모르겠지만...
    좋은글 보게해주셔서 감사합니다.

    • 이윤기 2009.07.22 14:08 신고 address edit & del

      김경주님 고맙습니다. 마음 뿌듯한 격려의 글을 남겨주셔서 정말 힘이 됩니다. 자주 찾아주시고... 댓글도 남겨 주세요.

      정치에 대하여... 프레시안 논객 '막시무스'가 쓴 글을 전해드립니다.

      정치

      좀 괜찮은 사람들은
      정치하겠다고 나서지 않는다.
      당연한 일이다.
      하지만
      정치하는 사람들을 비난하며
      정치에 참여하지 않는
      좀 괜찮은 사람들은
      자신들이 비난하는 사람들에게 모든 권력을 내주고
      그들로부터 지배받는 벌을 받는다.

      - 막시무스

  2. 그러세요 2010.06.15 19:07 address edit & del reply

    내가 왜 노무현에게 실망했냐면, 대통령직에 있으면서 한나라당 후보를 공식석상에서 욕하고 한나라당을 지지하지 말라고 이야기해서 그렇다. 물론 이것이 탄핵의 주요 쟁점이 되기도 했지만... 헌법에서는 투표에 있어 대의민주주의 제도를 택하고 있다. 맘에 드는 정당을 택해서 그 공약을 지지하는 것은 국민의 헌법적인 권리이다. 그 권리를 얻기 위해서 선배들은 얼마나한 피와 땀을 흘렸던가. 독재정권에 대항한 선배들의 넋은 헌법과 민주주의 제도로 남았다.

  3. 그러세요 2010.06.15 19:09 address edit & del reply

    그런데 국민들이 특정 정당을 지지하는 것을 반대한다고? 그것도 대통령이 공식 석상에서? 모두를 아우르고 잘못된 점이 있다면 준엄하게 꾸짖는 것이 국가의 수장으로서의 역할이다. 그런데 그의 말에 한나라당을 지지한 지지자들은 상실감을 느낄 수 밖에 없었다. 울타리 안의 양만 양이라고 말하는 예수처럼, 그의 주장은 자신의 철학에 동조하는 국민들에게만 전해지는 듯한 상실감. 그리고 세종시가 뜻대로 되지 않자 '그놈의 헌법'이라고 소리치며, 헌법을 위해 스러져간 사람들을 무시하는 발언. 지나치게 아집적이다.

  4. 그러세요 2010.06.15 19:12 address edit & del reply

    주인장은 어떤 식으로 세상을 읽는지는 모르겠다. 그러나 한가지만큼은 이야기 해주고 싶다. 노무현의 마지막 선택은 결단코 잘못되었다. 죄가 없다면 끝까지 당당한 모습을 보여주고, 죄가 있다면 끝까지 살아남아 죗값을 받는 것이 대통령으로서의 역할이다. 조사도중 투신자살을 하여 조사과정의 의혹을 증폭시켜서, 자신의 바통을 이어받은 정권에 심대한 타격을 입히고, 자신을 지지하는 사람들에게는 엄청난 도덕적인 이점을 넘겨준 노무현. 그는 죽을때까지도 국민의 대통령이 아니라 자신을 지지하는 자들의 대통령이었다. 그 사실이 너무너무 싫다.

  5. 그러세요 2010.06.15 19:15 address edit & del reply

    내가 남긴 수많은 댓글들, 지우지는 못할 것이다. 자신과 다른 의견을 검열하고 삭제하는 순간 당신이 세우려는 공동체 사회와 민주주의는 무너지고 말테니까. 대체 어떤 사회를 만들고 싶어하는지는 모르겠지만, 그저 자상하고 옆집 할아버지 같은 탈권위만이 최고의 대통령의 덕목은 아니라고 말하고 싶다. 권위적인 모습에서는 탈피해야 겠지만, '권위' 그 자체는 지켜야 하는 것이 지도자이다. 그 차이점은 당신이 더 잘 알것이라 믿는다. 예컨데 법을 무시하고 헌법을 경시하는 발언 같은 것은 금해야 한다.

  6. 최미숙 2011.10.04 05:48 address edit & del reply

    그러세요님, 그것 한가지때문에 노무현님을 싫어하세요? 그럼, 당신이 지지하는분이 누군지는 모르겠지만 그분은 모든것에서 완벽한 분입니까? 누군지 좀 알려주세요.

  7. 최미숙 2011.10.04 05:49 address edit & del reply

    제 생각에 당신을 만족시킬 사람은 이 지구위에는 아무도 없을것 같네요.

  8. Chaussure louboutin hommes 2012.12.18 20:14 address edit & del reply

    가며 한가롭게 라디오를 듣다가 여자 아나운서가 전하는 날카롭고

노무현 대통령과 노동계의 첫 만남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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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노무현 전 대통령 영결식이 열리는 날 입니다. 여러 언론에서 노무현 전 대통령을 조명하는 기사를 앞 다투어 내보내고 있습니다. 그 중에는 노무현 전 대통령과 노동계의 인연을 소개하는 기사도 많더군요. 대부분 언론보도를 보면, 노무현 변호사와 노동계의 만남을 1987년 대우조선 이석규 열사 사건으로부터 시작되었다고 보도하고 있습니다.

인권변호사와 노동계의 인연은 거제 대우조선에서 시작한다. 87년 7~9월, 거제에서 구로까지 노동자 투쟁이 뜨거웠다. 그해 8월 22일 거제 옥포에서 거리시위 중 대우조선 노동자 이석규 씨가 최루탄을 맞아 사망했다. 당시 거제로 달려갔던 재야인사 중에 '노변'이 있었다. 그는 <여보, 나 좀 도와줘> '사람 사는 세상'에서 "그 사건은 그해 여름 노동자 대투쟁에 기름을 끼얹은 격이 됐다"고 술회했었다. 그때 노동쟁의 조정법 독소조항인 '제3자 개입금지' 혐의로 20여 일 동안 구속되기도 했다. (5월 29일자, 경남도민일보)


그러나, 사실은 그 보다 5~6년 앞서 노무현 변호사와 노동계의 만남은 이미 시작되었습니다. 당신께서 특별히 기록을 소중히 여기신 분이기 때문에 1987년이전에 이루어진 노동자들과의 만남에 대하여 소개해 봅니다.

먼저, 노무현 대통령께서 2003년 10월 YMCA 100주년 기념식 축사에서 직접 밝히신 것에 따르면 부산YMCA 활동을 시작하면서 노동자들과 만나기 시작합니다.(관련기사 2009/05/26 - [블로그 뉴스] - 노대통령, 내가 어디 내놔도 한점 티 없는 떳떳한 사람이라면...)


저는 기독교인이 아니지만 YMCA 회원입니다. 78년에 제가 부산에서 변호사 개업을 했는데, 79년경 부산YMCA에서 노동자 교실이 있었는데, 그 노동자 교실에 저 더러 교장을 맡으라고 해서 그래서 노동자들과 함께 전점석씨(당시 부산Y 부장, 현, 창원YMCA 사무총장)와 함께 거창으로 가서 노동자 프로그램에 참여했었습니다.




여기에는 노 전대통령의 기억에 약간의 착오가 있는 것 같습니다. 전점석 사무총장의 증언에 따르면, 노무현 전 대통령이 부산YMCA 활동을 시작한 것은 1982년 무렵이고, 노동자 교실과 노동자 캠프(거창 갈계숲)가 열린 것도 82~83년 쯤 이었다고 합니다.


아무튼, 노무현 전 대통령과 노동자들과의 첫 만남은 1987년 대우조선 사건보다 5년 정도 앞선 1982년 혹은 83년 무렵입니다. 그는 노동자 교실 교장을 맡았지만, 제일 초보적인 학생이었다고 밝히고 있습니다. 어쨌던, 전두환 군사독재가 판을 치던, 그 엄혹한 시절에 시민단체가 주최한 '노동자 교실' 교장을 맡은 것은 이미 노동문제에 대한 그의 관심이 상당하였다는 것을 알 수 있는 대목입니다.

전점석 사무총장의 증언에 따르면, "당시 거창 갈계숲에서 이루어진 노동자 캠프에 기념 티셔츠를 노무현 변호사가 스폰서를 해서 제작하여 참가자들에게 나눠주었다"고 합니다. 아마 집에 있는 자료를 정리해보면, 당시 노동자 교실 자료와 노동자 캠프 자료가 있을 거라고 하더군요. 당시에 만든 낡은 티셔츠도 남아있을 것 같다고 하였습니다.

함께 전점석 사무총장의 이야기를 듣는 후배들이, "봉하마을에 노무현 대통령 기념관이 만들어지면 그 때 기증하시면 되겠다"고 말씀드렸더니, 고개를 끄덕끄덕 하시더군요.

또 다른 중요한 만남도 있는데, 어제 제 블로그에  쓴 글 1985년, 노무현 변호사 첫 번째 노동사건 변론 그리고 도민일보 칼럼 '향기가 있는 글'(5월 29일) 에서 쓴 것 처럼, 1985년 5월 당시 문성현 통일중공업 노조위원장 변론도 노동계와의 중요한 만남이었을 것 입니다.

창원에서 활동 중인 노동운동가의 변론 사건을 맡을 당시에는 이미 노동문제에 깊이 관여하고 있었다는 것을 암시하는 사건입니다. 노무현 변호사는 1985년에 이미 자신의 변호사 사무실에 '노동문제상담소'를 개설하여, 노동문제에 적극적으로 개입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앞서 소개드린 이런 저런 자료를 살펴보면, 노무현 전 대통령은 1981년 부림사건 변론을 맡은 후에 적극적으로 사회문제에 관심을 갖고 참여하였으며, 1982년 무렵에는 부산YMCA 노동자 교실 '교장'을 맡아 노동자들과 인연이 시작된 것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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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좋은바다 2009.05.29 15:25 address edit & del reply

    이윤기님의 지적이 옳습니다.
    당시 통일 노동조합투쟁과 관련해서 85년엔 문성현씨를 무료 변론하였고,
    그 다음해(86년)엔 뒤이어 노동조합 민주화투쟁으로 구속된 사건(박성철,여영국)을
    무료변론 하였지요.

    그러고 보니 이러한 노동계와의 만남들도 정리되어질 필요가 있겠군요.
    가능하다면 최후변론문도 구할수 있다면 소중한 자료가 될 수 있겠다는 생각입니다.

  2. 행인 2009.05.29 17:22 address edit & del reply

    그가 직접 말한 내용이지, 객관적인 자료가 있는 것은 아니군요.
    인권 변호사 출신이라면서, 왜 그리 노동자들을 못잡아먹고 죽음으로 내모셨는지...
    지난 정권의 노동자 자살률이 극에 달한 이유가 무엇일까요?

    • 이윤기 2009.05.29 17:35 신고 address edit & del

      당시 부산Y 부장이었던, 전점석 사무총장이 확인을 해주었습니다. 내용중에도 나오지요.

  3. laborfree 2009.05.29 17:41 address edit & del reply

    그런 노무현 대통령이 권좌에 올라서는 노동자 탄압에 앞장섰죠. 신자유주의자로서 구조조정 앞장서고 화물연대 철도노조 공권력 투입하고 비정규직 양산하고, 고인이 되셨다고 무조건 좋은 평가만 있어서는 안됩니다. 노동자에겐 한 없이 가혹했던 분입니다.

    • 이윤기 2009.05.29 17:47 신고 address edit & del

      공은 공대로 과는 과대로 평가해야겠지요.
      훗날 과가 있었다고하여 모든 삶을 송두리째 부정할 수는 없다고 봅니다.

1985년, 노무현 변호사 첫 번째 노동사건 변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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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무현 변호사가 시국사건 변론을 맡기 시작한 것은 1981년 이른바 부림 사건을 맡은 것이 계기가 되었다고 합니다. 아래는 위키 백과사전에 나오는 변호사 시절의 노무현 대통령에 관한 기록입니다.

1981년 부림사건의 변호에 참여하라고 권유했고, 이를 수락함으로써 본격적인 인권변호사 활동을 시작하는 계기가 되었다. 1982년에는 미국문화원 방화사건의 변론에 참여하였고 1984년부산공해문제연구소 이사를 거쳐 1985년에는 부산민주시민협의회 상임위원장을 맡게 되면서 시민운동에 발을 들여 놓게 되었다. 그해 자신의 사무실에 노동법률상담소를 열기도 했다.

또 1987년에는 민주헌법쟁취국민운동본부 부산본부 상임집행위원장을 맡아 6월 민주항쟁에 앞장섰다. 그 해 8월 22일의 거제도 대우조선 사건에서 경찰이 쏜 최루탄에 맞아 대우조선 노동자 이석규가 사망하자 이상수 등과 함께 사인 규명 작업을 하다가 9월에 제3자 개입, 장식(葬式)방해 혐의로 경찰에 구속되었다. 이어 1987년 11월에는 변호사 업무정지 처분을 받았다.



위키 백과사전 기록에는 1981년 부림사건 변론을 계기로 시국사건을 맡기 시작하였고, 1985년 노동법률상담소를 열었으며, 87년에 이석규 열사 사건에 개입하여 구속되었다는 부분만 나옵니다. 그렇다면, 노무현 변호사가 본격적으로 노동사건 변론을 하기 시작한 것은 언제일까요?


▲ 봉하마을에 조문 온 문성현 전 민노당 대표와 이혜자 선생이 추모 글을 적고 있습니다.


앞서 다른 글에서 밝혔듯이 노대통령 서거 이틀째 되던 날, 오마이뉴스 특별 취재팀을 거들러 봉하마을에 있었습니다. 그날, 문성현 위원장 부부가 다른 동지들과 함께 봉하마을로 조문을 왔었는데, 우연히 저와 마주쳤습니다. 조문을 마친 문성현 위원장 부부가 방명록에 추모글을 적을 때 마침 근처에 있다가 그 내용을 관심있게 지켜보게 되었습니다.




문성현 전 대표는 " 정말 제가 사랑한 인간 노무현, 당신을 잃은 슬픔보다 당신을 죽게한 시대의 분노를 꼭 기억하겠습니다. 민주노동당 문성현, 당신의 첫 노동자 재판 1985. 5" 이렇게 적었더군요. 이혜자 선생은 " 착한 바보 노무현, 저도 이제 노사모 ! 입니다."라고 적었습니다.

그날 문성현 위원장이 쓴 추모 글을 보고, 노변(당시에 다 이렇게 불렀다고 하지요)이 맡은 첫 번째 노동사건 변론 주인공이 '문성현 위원장'(전 민노당 대표) 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이것은 두 사람에게도 굉장한 인연이었고, 이 인연에 훗날 역사의 여러 장면에서 새로운 인연으로 나타나기도 합니다.

인터넷을 검색해보니 전에 손석춘씨가 쓴 글에서 두 사람의 인연이 소개된 적이 있는 것 같습니다. 노변의 정치 진출을 문위원장이 반대 했다는 이야기, 노변이 5공비리 청문회 당시 국회의원 사퇴서를 썼을 때는 찾아가 만류했다는 이야기...... 그리고, 노변이 대통령이 되었을 때, 문성현 민노당 대표가 청와대 앞 농성을 하면서 두 사람의 인연이 많이 회자되었습니다.

또 다른 일도 있었네요. 문성현 위원장이 민노동대표가 된 후에 회사에서 월급을 받고 있다는 이야기가 언론의 도마에 오른적도 있습니다. 해고 무효소송 후에 회사가 그를 복직시키지 않고 일방적으로 기본급을 지불하고 있었는데, 이것이 보수언론에 의해 왜곡되어 알려진 일이 있습니다. 바로 이 월급 문제의 시초가 되었던 해고 무효소송은 바로 1985년 마산법원에서 진행되었던 노변의 첫번째 노동사건 재판에서부터 시작된 것 입니다.


1985년 법정에선 문성현과 변호사 노무현을 기억하는 대학 새내기 방청객

그런데, 저 역시 노변의 첫 번째 노동사건 재판에 나름대로는 각별한 인연이 있습니다. 왜냐하면, 저는 1985년에 마산지방법원에서 개최된 이 사건의 단골 방청객이었기 때문입니다. 당시 학교 교지 교집위원으로 활동하면서 여러 차례 문성현 위원장 사건 방청을 다녔습니다.

법정에서 일어나는 일과 문성현 위원장의 진술, 그리고 재판의 부당함을 바깥으로 알리는 것이 좋겠다는 결정을 선배들이 하였고, 당시 대학 1학년이라 얼굴이 알려지지 않은 저와 동기 한 명이 몸에 소형녹음기를 숨기고 방청을 갔었습니다.

당시 재판이 열리는 법정 밖에는 전경들과 사복형사들이 줄지어 늘어서 있었고, 작업복을 입은 통일중공업 노동자들이 자유로운 방청을 방해하지 말 것을 요구하면 몸싸움을 벌이곤 하였습니다. 갸날픈 몸매를 한 여인이 제가 살아오면서 본 어떤 여인보다 더 매섭게 경찰에 맞서 싸우는 것을 본 것도 그때입니다. 그 여인이 문성현 위원장 부인 이혜자선생이더군요.

솔직히 어린 제게는 법정에서 판사를 향하여 해고의 부당함과 열악한 노동현장 상황을 담담하게 밝히는 문성현 위원장보다 이혜자 선생이 더 뚜렷하게 각인되었습니다.
그리고, 이 사건 선고를 앞둔 마지막 재판에서 재 인생에 큰 영향을 준 경험을 하게 됩니다.

그날은 문성현 위원장의 최후 진술과 노변의 마지막 변론이 진행된 날 입니다. 오래된 일이라 기억이 분명하지는 않지만, 저와 함께 방청을 했던 동기는 참 많이 울었습니다. 그는 소리내어 흐느껴 울었고 저는 눈시울을 많이 붉혔던 기억이 납니다.


노변은 변론에서, 서울 상대 출신 지식인 청년 문성현이 대학을 졸업하고 선택한 좋은 직장(제 기억으로는 은행원이었던 것 같습니다.)을 그만두고 노동자로서의 삶을 선택하는 과정을 상세하게 들려줍니다. 대학시절 전태일 평전을 읽으며 노동자의 벗으로 살게다고 결심하는 과정, 좋은 직장을 그만두고 직업훈련원을 현장 노동자로 살아 온 과정을 변론으로 담아냅니다.

당시 이 땅의 열악한 노동현실과 권력에 짓밟힌 민주주의에 대해 비판하며, 격정적인 최후 변론을 하던 노무현 변호사의 모습이 지금도 잊혀지지 않습니다. 학력을 속이고 현장 노동자가 된 것은 ‘죄’가 아니라고, 처절하게 짓밟히던 이 땅의 추악한 노동현실을 고발하던 가슴을 울리는 변론에 눈시울을 붉히며 그날 대학 1학년생은 많이 ‘의식화’ 되었습니다.

지금 생각해보면, 노변이 그렇게 격정적인 변론은 하게 된 것은 문성현 위원장 사건을 맡으면서 그 자신도 노동문제 속에서 이 땅의 근본적인 모순이 기인한다는 것을 깨닫는 과정이었을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또 한편으로는 고졸 학력으로 피나는 노력 끝에 사법시험에 합격하여 판사를 거쳐 변호사로 살아가던 자신의 삶을 서울 상대를 나와서 안정적인 직장을 그만두고 현장노동자가 노동자의 편에서서 살아가다 감옥 생활을 하게 된 문성현의 삶에 비춰보면서 스스로를 성찰하는 시간이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아무튼, 그 날 법정에서 만난 두 사람은 훗날 제가 대학을 졸업하기 전부터 노동운동 언저리에 발을 들여놓게 된 중요한 계기가 되었으며, 저는 이런 저런 인연을 거쳐서 당시 마산 YMCA 노동자 배움터 교실(현장 활동가 교육과정)에 깊이 참여하게 됩니다. 1990년대 중반까지 노동자 교육과 노동자캠프를 비롯한 여러 프로그램에 자원활동가와 실무자로 참가하다 우여곡절 끝에 지금까지 YMCA 활동가로 살아가고 있습니다.



덧붙이는 글, 노무현 대통령 서거 후에 무의식적으로 김광석이 부른 노래 '어느 60대 노부부 이야기'를 자꾸 흥얼거리고 있습니다. 노래 가사의 마지막 구절 "여보 왜 한 마디 말이없소, 여보 안녕히 잘 가시게, 여보 안녕이 잘 가시오"하는 구절이 더욱 절절들리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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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Louboutin homme pas cher 2012.12.18 20:18 address edit & del reply

    1년 부림사건 변론을 계기로 시국사건을 맡기 시작하였고

내가 간직한 빛 바랜 신문 속 노무현 대통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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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통령 당선 되던 날, 대통령 취임하던 날, 그리고 서거 한 날

2002년 12월 20일(금) 신문

노무현 대통령 당선을 기념하고 싶어 간직한 신문

2002년 12월 19일, 월드컵 4강 신화가 이루어진 그 해 겨울 대통령 선거에서도 신화가 씌어졌습니다. 광주에서 시작된 국민경선에서 시작된 신화는 서울에서 마무리되었고, 온갖 우여곡절을 끝에 마침내 노현현 대통령이 당선됩니다.


그가 대통령에 당선 된 날, 기뻐서 잠을 이루지 못한 사람이 어디 저 뿐이겠습니까? 수 많은 국민들이 기쁨에 잠을 설쳤겠지요 ! 저는 이 날을 기억하고 기념하고 싶어 '노무현 대통령 당선'이라는 머릿 글자가 선명한 이 날 신문을 따로 보관하였습니다.

요즘이야 인터넷으로 오래된 신문도 쉽게 검색해서 볼 수 있지만, 내용을 읽는 것 이상으로 이 날의 기쁨을 간직하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낡고 빛 바랜 종이 신문을 가끔씩 꺼내 보면서 이 기쁜 날을 기억하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첫 번째, 사진으로 보시는 낡은 신문은 대통령 당선이 확정된 2002년 12월 20일(금) 신문입니다.


▲ 2003년 2월 25일(화) 신문

두 번째, 신문은 2003년 2월 25일(화) 신문입니다. 그가 제 16대 대통령으로 취임하던 날, 신문입니다. 어렵사리 대통령에 당선된 그가 무사히 대통령에 취임할 수 있을지하는 걱정을 하면서 그해 겨울을 보냈습니다.

노무현 대통령 재임 기간 중에 이 두 신문을 간간히 꺼내 보았습니다. 언제 보았냐구요? 처음 신문을 꺼내 본 것은 탄핵을 받아 대통령 직무가 중지 된 때입니다. 그때도 참 비통한 마음으로 신문을 꺼내 보았지요. 그 때는 지금 처럼 신문의 빛이 바래지는 않았습니다. 탄핵 정국을 돌파하기 위하여 나름 촛불집회를 조직하면서 싸웠고, 그는 대통령 직무를 다시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국민들은 그 해 총선에서 열린우리당과 노무현 대통령에게 압도적인 지지를 모아주었습니다.


그 후에도 간간히 신문을 꺼내 보았습니다. 대체로 기대했던 모습을 보여주지 못할 때 였습니다. 이라크 파병을 결정할 때, 한미 FTA를 소신으로 밀어 붙일 때, 국가보안법 폐지에 실패하였을 때 조금씩 빛 바래 가는 신문을 보며 노무현 대통령에 대한 기대도 조금씩 빛이 바래갔습니다.

5년 시간은 빠르게 지나갔습니다. 노무현 대통령에 대한 기대가 컸던 국민들 중에서 많은 유권자들이 선거를 외면하였고, 이명박이 '어부지리'로 대통령에 당선되었습니다. 저는 어부지리라고 생각합니다.

▲ 2009년 5월 24일(일) 신문

비통한 죽음을 알리는 신문과 함께 보게 되는 안타까움
'고통' 큰 줄 알았지만, 다시 일어서리라 믿었는데...

노무현 대통령 당선되던 날, 그리고 취임하던 날 신문과 함께 그가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는 안타까운 서거 소식이 담긴 신문을 보게 될 줄은 꿈에도 생각해보지 못하였습니다.  빛바랜 이 낡은 신문을 다시 꺼내보며, 그의 안타까운 죽음에 비통해하게 될 줄 어찌 알았겠습니까.

안타깝게 지켜보며, '고통' 큰 줄은 알았지만, 분명 다시 일어서리라 믿었습니다. 첫 번째, 신문 속 사진에서 그는 기쁨을 감추지 못하는 표정이 역력합니다. 대통령 취임식이 열리던 날, 두 번째 신문 속 사진에 그는 듬직하고 자신감에 찬 표정입니다. 그러나, 대통령에 당선 된 날부터 퇴임하는 날까지, 그리고 그 후에도 스스로 목숨을 거둔 날까지 하루도 마음 편히 지내지 못하였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세 번째, 신문 속 그의 뒷 모습을 오래도록 있을 수 없을 것 같습니다. 제가 세상에 태어나 사십여년을 사는 동안 꼭 대통령이 되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던 사람이 대통령에 당선된, 그 기적같은 시대를 함께 살았던 것이 세상을 바꾸는 일을 하는 저에게 늘 희망의 밑천이었습니다. 노무현 대통령님, 안녕히 가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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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골목대장 2009.05.28 17:10 address edit & del reply

    마음이 아파 눈물이 나네요..글을 보니 노무현대통령을 사랑하는 마음이 느껴져요...좋은 곳 가시겠지요...기도해야겠어요...

  2. 투덜.. 2009.06.07 16:15 address edit & del reply

    내손으로 뽑은 첫 대통령.. 남이 비난할때.. 그 분은 그런 분이 아니라고.. 큰 소리로 주장해드리지 못하고.. 아니라고.. 우물쭈물하던 내가 너무 미안해서.. 볼 때마다 눈물이 납니다. 죄송합니다.. 죄송합니다.....

  3. louboutin homme 2012.12.18 19:41 address edit & del reply

    던 내가 너무 미안해서.. 볼 때마다 눈물이 납니다. 죄송합니다..

서거 사흘째, 날마다 봉하마을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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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무현 대통령 서거 사흘째, 매일 봉하마을을 다녀왔습니다. 서거 소식을 들은 첫 날은 너무 가슴이 답답하고 먹먹하여 참을 수 없어 친구들과 봉하마을을 다녀왔습니다. 아무 생각없이 막무가내로 갔다가 2시간 정도 공식분향소 설치를 기다린 끝에 조문을 하고 왔습니다.

둘째 날은 오마이뉴스 특별취재팀을 거들어주려고 봉하마을에 갔습니다. 이 날은 하루 종일 봉하마을 주변을 돌아다니면서 이런 저런 현장 상황을 카메라에 담았습니다. 오후에는 김형오 국회의장이 봉하마을에서 쫓겨나고, 경비대 초소에 1시간 동안 피신해 있는 상황을 가까이에서 취재하였습니다.

운동화 신고, 생수병 들고 산책하는 기분으로 느긋하게

어제 셋째 날은 제가 일 하는 단체 회원들과 공식 조문을 다녀왔습니다. 오후 7시, 직장에서 퇴근한 30여명의 회원들이 YMCA 회관에 모여서 차를 나누어타고 봉하마을로 갔습니다. 승용차를 가져 갔기 때문에 마산-김해 국도에서 봉하마을로 좌회전한 후 공단부근에 자동차를 주차하고 걸어서 가기로 하였습니다.

세번째 방문이지만 걸어서 가는 것은 처음이었습니다. 서거 첫 날은 운이 좋게 승용차로 마을입구 삼거리 셔틀버스 승하차장까지 들어갈 수 있었습니다. 약 1 km 남짓 걸어서 봉하마을에 도착하였지요.

첫날 저녁부터 경찰의 차량통제가 심해져서 둘째 날은 아예 스쿠터를 타고 갔습니다. 마산에서 스쿠터를 타고 봉하마을까지는 40분 정도 걸리더군요. 승용차보다 시간은 더 걸리지만, 마을안까지 타고 갈 수 있어서 편리하였습니다.  약간의 간식과 물을 챙겨가기에는 스쿠터가 딱 이더군요.

아무튼, 마음을 단단히 먹고 걸어 가는데 운이 좋게 마을로 들어가는 셔틀버스를 세워서 탈 수 있었습니다. 셔틀버스를 타고 들어가니 잠깐이더군요. 그러나 나올 때는, 셔틀버스를 탈 수 없어 승용차가 세워진 공단 입구까지 걸어서 나왔습니다. 표지판에는 2.5km라고 적혀 있었는데 실제로 걸어보니 만만치 않더군요.

김해공설운동장이나 국도변에 차를 주차하고 걸어서 봉하마을을 다녀오시는 분들은 왕복 5km는 족히 걸어야 하는데, 모두들 참 대단하다는 생각을 하게되었습니다.




봉하마을 다녀오는 시간, 왕복 3시간

저희 단체 회원들은 7시에 마산에서 출발하여, 8시쯤 봉하마을에 도착하였습니다. 마을 입구부터 줄을 서야 했지만 첫날이나 둘째 날 만큼 시간이 많이 걸리지는 않았습니다. 처음 이틀은 문상객이 몰려들자 체계자 잡히지 않고 우왕좌왕하여 1시간 이상 기라려야 했습니다.


어제도 그런 각오를 하고 줄을 서 있었는데, 생각보다 빨리 빨리 줄이 앞으로 나가더군요. 둘째 날까지는 땡볕에서 분향 순서를 기다려야 했는데, 천막도 쳐져 있었습니다. 10명씩 줄을 서서 한 번에 세줄씩 30명이 한 번에 조문을 하니 금새 금새 앞으로 나갈 수 있었습니다. 30여분 만에 저희 순서가 와서 YMCA 회원들이 함께 조문을 마쳤습니다.

첫날, 둘째날에는 문희상, 유시민, 문재인 등 얼굴이 잘 알려진 청와대 참모들이 많았는데, 국민장으로 결정된 후 서울, 부산 등 전국으로 흩어진 모양이었습니다. 저희가 조문을 할 때는 상주 대표로 영화배우 '문성근'씨가 계시더군요. 아는 얼굴을 보니 반가웠습니다.


밤이 깊어질수록 점점 늘어나는 조문 행렬

조문을 마치고, 잠깐 봉하마을을 둘러 본 후에 마산으로 돌아왔습니다. 초 저녁에는 줄이 길지 않았는데, 저희가 조문을 마치고 나오는 동안 줄이 두 배 이상 길어졌습니다. 마을을 빠져나오는데 초 저녁보다 훨씬 많은 사람들이 봉하마을로 걸어들어가고 있었습니다. 셔틀 버스도 잇달아 문상객들을 싣고 들어왔습니다. 밤이 깊어질 수록 문상객이 점점 늘어났는데, 퇴근 이후에 가족, 친구들과 함께 오는 분들이 많아 그런 것 같았습니다.


밤이 깊어지지 봉하마을은 촛불이 환하게 길을 밝혀주었습니다. 사람들이 조문 순서를 기다리며 들고 있던 촛불을 마을을 빠져나가면서 나란히 줄을 세웠습니다. 마을 입구에 노무현 대통령 생가를 알리는 표지석이 서 있는 곳까지 촛불이 나란히 서서 문상객들을 마중하고, 배웅해 주었습니다.

봉하마을을 찾아가는 기본 원칙이 있습니다. 먼저 운동화를 신고 생수를 한 병들고 멀리 차를 세워놓고 한 5km 정도 산책하는 기분으로 느긋하게 다녀와야 합니다. 봉하마을에 조문 온 국민이 오늘까지 60만 명이 넘었다고 하는군요. 저는 내일 또 전국YMCA 회원들과 봉하마을에 조문을 다녀올 계획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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