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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산까지 갔지만 교실엔 못 들어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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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소년YMCA가 주최한 세월호 참사 1주기 추모 행사에 다녀왔습니다. 제가 속한 단체 회원들과 안산을 다녀온 지 한 달이 채 지나지 않았습니다만, 안산 합동분향소와 단원고등학교 교실을 직접 가 보고나니 또 다시 청소년들이 스스로 준비하는 행사에도 참여해서 마음을 보태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뉴스로 듣는 것 지역을 방문하는 유가족들의 증언을 듣는 것도 의미있는 일이지만, 안산 분향소와 희생자들의 추모 공간이 되어 있는 단원고등학교 교실을 둘러보고나니 공감과 연대의 정말로 마음이 깊어지더군요. 저만 그런 것이 아니라 함께 안산을 방문했던 회원들의 공통된 증언이었습니다. 



지난 토요일 1주기 추모행사에 참여하기 위하여 마산과 부산의 청소년들이 관광버스 1대를 임대하여 안산으로 갔습니다. 부산에서 아침 7시에 출발한 버스가 마산에 들러 8시에 안산으로 출발하였습니다. 점심시간을 포함하여 5시간쯤 걸려 안산화랑유원지 앞 합동분향소에 도착하였습니다. 


오후 2시로 예정된 'YMCA 추모행사'에 참여하기 전에 함께 간 청소년들과 합동분향소에 들러 참배를 하였습니다. 3월 말에 YMCA 회원들과 함께 방문했을 때에 비하면 분향소를 찾는 시민들이 훨씬 많았습니다. 세월호 1주기 추모행사가 시작되면서 국민들의 관심이 높아졌기 때문이라고 봅니다. 



정부 합동분향소 바로 앞에서는 '해수부가 만든 시행령 폐기'를 주장하는 문화행사가 열리고 있었습니다. 분향소 참배를 위하여 줄을 서서 기다리는 동안 '팬플룻 연주'가 진행되고 있었고, 분향소로 입장할 때는 시민합창단 20명이 공연을 준비하고 있었습니다. 


공연이 준비되는 동안 사회자는 해수부가 만든 '시행령'은 사실상 진상조사를 하지 않겠다는 법률이라면서 조목조목 내용을 비판하였습니다. 세월호 유가족들은 해수비 시행령 폐기를 외치면서 삭발 투쟁에 이어서 광화문 광장에서 또 다시 농성을 이어가고 있던 중이라고 하더군요.



청소년YMCA가 주최하는 이번 추모행사도 광화문 광장으로 장소를 옮겨야 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의견들도 있었지만, 이미 준비가 모두 이루어졌기 때문에 원래 계획대로 화랑유원지 공연장에서 이루어졌습니다. 


전국에서 모인 300여명의 청소년 YMCA 회원들이 추모 노래공연, 추모 편지 낭송, 추모 기도를 하면서 1주기 추모 예배를 진행하였습니다. 특히 세월호 전체 희생자 중에서 6명이 안산 단원고등학교 YMCA 회원이었기 때문에 단원고등학교 YMCA 'TOP' 회원들이 추모 예배 준비에 많은 노력을 기울였더군요. 


대학에 간 선배들 이야기, 3학년이 된 선배들 이야기, 새로 들어 온 신입생 후배들 이야기를 담담하게 들려주었는데, 시간이 1년 4월 16일에 딱 멈춰있지만은 않다는 것이 다행스럽게 여겨졌습니다. 전국에서 모인 회원들에게 자신들의 이야기를 담담하게 전하는 시간이 치유의 시간이 되었기를 기대해봅니다. 



전국에서 모인 청소년YMCA 회원들이 각자 적어 온 편지를 배에 담아 하늘로 띄우는 퍼포먼스를 진행하였습니다. 많은 친구들이 편지를 적어 왔고 그 편지를 하늘에 있다고 믿는 친구들에게 전하였습니다. 풍선에 매달린 배가 하늘로 날아오르지는 않았지만, 아이들 마음은 다 전해졌으리라고 믿습니다. 



추모예배를 마치고는 안산 단원고등학교까지 추모 행진을 하였습니다. 한 20여 분 걸었을까요? 합동분향소에서 단원고등학교는 생각보다 가까웠습니다. 지난 번 차로 이동할 때는 네비의 길 안내만 따라갔기 때문에 거리에 대한 감각이 없었는데, 걸어서 가 보니 멀지 않은 거리였습니다. 


원래 행사 계획에는 단원고등학교를 방문하여 추모행사를 마무리하는 것을 되어 있었는데, 행사 준비 과정에서 당초 계획이 변경되어 단원고등학교 정문 건너편에 있는 공원에서 마무리 행사를 진행하였습니다. 



전국에서 모인 청소년 회원들은 3시간 동안의 추모 예배와 추모 행진을 마무리하고 헤어졌습니다. 멀리서 안산까지 왔던 청소년Y 회원들은 아쉬운 발걸음으로 지역으로 되돌아 갔습니다. 추모 행사가 마무리 되는 동안 단원고등학교 정문으로 가서 입구를 지키고 있는 경비 아저씨에게 학교 출입을 할 수 없냐고 물었습니다. 


그랬더니 "일반인은 들어갈 수 없다"고 하더군요. "유가족이나 유가족의 안내를 받고 오는 사람들만 교실을 둘러 볼 수 있다"고 하였습니다. 그래서 사정을 해 보았습니다.


"마산에서 왔습니다. 청소년 20여명이 버스로 5시간이나 걸려서 왔는데, 교실을 좀 둘러보고 갔으면 좋겠습니다." 하지만 아쉽게도 되돌아 온 답은 "학교 방침이기 때문에 그래도 안된다"는 것이었습니다. 



마산에서 안산까지 함께 간 청소년들에게 단원고 교실을 꼭 보여주고 싶었는데, 안타깝게도 교문 앞에서 막혀버린 것입니다. 유가족 대부분은 광화문 농성장에 있는 시간이기도 하였고, 마산으로 되돌아와야 하는 차 시간도 정해져 있어서 더 이상 싸워보지도 못하고 물러설 수 밖에 없었습니다. 


재학생들이 자율학습과 보충수업을 하고 있다는 학교측의 설명을 전혀 납득할 수 없는 것은 아니지만, 경기교육청이나 학교가 좀 더 전향적이고 적극적인 자세로 추모객들을 맞이해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학교 수업에 방해가 되지 않도록 하고, 큰소리를 떠들지 않고 교실을 둘러보고 나가라고 주의만 준다면 수업이나 학습에 방해되지 않는 범위 안에서 추모 방문을 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되기 때문입니다. 너무나 숙연한 공간이기 때문에 누구도 그곳에서 큰소리를 떠들거나 산만한 행동을 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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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16 범국민 집중행동...별이된 아이들을 만나러 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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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수부가 세월호 특별법 시행령을 발표한 이후 유가족 대책위가 다시 광화문 광장에 섰습니다. 가족들은 한결 같이 가장 먼저 진상 규명이 이루어져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는데, 정부는 막대한 보상금이 지급되는 것처럼 언론프레이를 하고 있고 진상규명이 불가능한 시행령을 발표하여 가족과 국민들의 분노를 사고 있습니다. 


세월호 유가족 부모님들이 삭발하는 모습을 뉴스로 보면서 참 많이들 울었을겁니다. 머리를 깍는 것은 목숨을 걸겠다는 의미라고 하는 이야기를 들으면서 자식 잃은 부모들이 왜 이런 시련을 겪어야 하는지 정말 울화가 치밀어오르더군요. 


지난 3월 말 안산분향소와 단원고등학교를 다녀오고나니 세월호 사고를 대하는 마음과 그 가족들에 대한 관심과 연대가 한층 더 깊어지더군요. 저의 경우는 단원고 교실을 둘러보면서 정말 많이 아팠습니다. 


누구나 사는 것이 힘겹기 때문에 여건이 안 되는 분들이 훨씬 많겠지만, 그래도 시간을 낼 수 있는 분들은 416 범국민 행동주간(4.11~18)에 진행되는 각종 추모 행사와 공연, 토론회, 강연회 등의 행사에 참여하여 할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제가 속해 있는 YMCA에서도 4월 11일 화랑유원지 분향소 앞에서 전국 청소년 YMCA 416추모대회를 개최합니다. 같은 날 1주기 추모 콘서트도 준비되어 있고, 4월 16일에는 합동분향식이 열린다고 합니다. 


눈에 띄는 행사를 몇 개 소개해 드리자면, 4월 14일에는 한양대학교 에리카캠퍼스 소극장에서 배우 김여진의 시민강좌 '지금 우린 괜찮은가요?'가 진행되고, 4월 15일에는 정혜신박사와 함께하는 이야기 마당이 치유공간 이웃에서 진행된다고 합니다. 


동행 사진전, 아이들의 방 사진전, 4.16 기억서고 등을 비롯한 여러가지 전시회도 같은 기간에 분향소 앞 광장, 기억전시관, 416기록관, 경기미술관 등에서 진행될 예정입니다. 여건이 허락하는 분들이면 4월에는 시간을 내서 안산에 가서 연대의 끈을 이었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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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하기 힘들다는 허니버터칩 책상마다 놓인 교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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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산 가시면 단원고 꼭 가보세요. 정부합동 분향소에서 참배만 하고 가지 마시고 꼭 단원고등학교 2학년 교실을 들렀다 가시기 바랍니다. 지난 토요일 안산 정부합동분향소와 가족대책위를 방문하였을 때, 재욱 엄마의 권유로 두 곳을 더 들렀습니다. 


한 곳은 경기미술관에 있는 대책위 TF 사무실이었는데, 그곳에서 해수부가 만든 특별법 시행령이 얼마나 엉터리로 만들어졌는지 자세히 알게 되었습니다. 해수부가 만든 시행령은 한 마디로 진상조사 자체를 포기하고, 진상조사 특위를 무력화 시키는 법이라는 것이 가족대책위의 입장이었습니다.(그때만 해도 아직은 비공식 입장이라고 조심스럽게 말씀하셨습니다만, 일요일 저녁 대책위 전체 회의를 거친 후에 월요일부터 반대 시위와 행동이 진행되고 있습니다.)


사고 원인에 대한 이야기, 인양 작업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면서 한 가지 결론에 도달하였습니다. "사고의 진실을 밝히는 진상 조사를 방해하는 세력이 분명히 존재하고 있고, 그들이 바로 사고를 일으킨 범인이라는 것"이었습니다. 가족대책위 분들을 만날 때마다 한결 같이 듣는 이야기는 딱 한가지였습니다. "우리 아이들이 왜 죽었는지 알아야겠다"는 것이었습니다.


 


경기미술관을 나와 차로 5분 남짓한 거리에 있는 안산 단원고등학교로 이동하였습니다. 단원고등학교 2층과 3층에 있는 옛 2학년 교실은 2014년 4월 16일에 시간이 멈춰 있었습니다. 그야말로 커다란 추모 공간이었습니다. 


책상마다 사진이 놓여 있었고 꽃과 화분 그리고 수많은 사연이 담긴 쪽지와 편지지들이 가득하였습니다. 책상위에 아무 것도 없는 자리는 살아남은 아이들의 자리였고, 책상위에 온갖 추모 물품이 가득한 곳은 모두 작년 4월 16일에 돌아오지 못한 아이들의 자리였습니다. 


그 구하기 힘들다는 허니버터칩이 책상 마다 놓인 교실도 있었습니다. 누군가 반 아이들 모두에게 허니버터칩을 사주고 싶었던 모양입니다. 발렌타인 데이에 놓였을 것 같은 쵸콜렛도 있었고 화이트 데이에 놓였을 것 같은 사탕도 있었으며, 빼빼로 데이에 올려놓았을지도 모르는 빼빼로도 있었습니다. 


아이들 뿐만 아니라 아이들과 함께 돌아오지 못한 선생님들을 그리워하는 글귀도 정말 많았습니다. 여러 교실에 반아이들과 선생님들이 함께 찍은 단체 사진이 붙어 있었는데, 젊고 고운 선생님들도 교사의 꿈을 못다피우고 떠나신 분들이더군요. 




저희 일행이 단원고 교실을 둘러 보는 동안에 많은 분들이 함께 교실을 둘러보았습니다. 젊은 신부님도 계셨고, 중학생, 고등학생으로 보이는 아이들도 여러 명이 교실을 차근차근 둘러보았습니다. 


무거운 마음으로 교실을 둘러보고 있을 때, 재욱 엄마가 단체 사진을 찍자고 하시더군요. 일행들 모두 각자 스마트폰으로 추모 글귀와 교실 풍경을 부지런히 찍었지만 우리 일행 중 누구도 기념 사진을 찍는 사람은 없었습니다. 스마트폰으로 사진을 찍은 것은 이곳에 와 보지 않은 사람들에게 보여주고 싶은 마음으로 찍었을겁니다. 


그런데 재욱엄마가 먼저 단체 사진을 찍어주겠다고 하셨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다같이 사진을 찍을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도 막상 카메라 앞에 선 일행의 표정이 모두 굳어 있었던 모양입니다. 


재욱 엄마가 한 마디 하시더군요. "아이들도 굳은 표정으로 사진 찍으면 싫어할 겁니다. 괜찮습니다. 웃으면서 찍으세요. 웃어세요" 그러고보니 책상위에 놓인 아이들 사진은 모두 하나 같이 활짝 웃는 사진들이었습니다. 



저희 일행이 단원고 교실을 둘러 보는 동안, 저희를 맞이하여 대책위 할동을 소개할 때는 담담하고 결기 있는 목소리와 표정으로 소개를 해주셨던 아버님 한 분이 단원고에 오셨습니다. 


활동 소개를 마치며 학교에 가면 "우리 아들 한 번 찾아봐 주세요" 하고 당부 말씀을 하셨던 분이 정작 본인은 아들이 있는 교실에 들어가지 못하고 복도를 서성거리고 계셨습니다. 여전히 아들 교실을 들어가는 일이 쉽지 않다는 것을 알겠더군요. 


부모님들이 자식들을 마음 편하게 만날 수 있는 길은 모두가 궁금해 하는 '사고 원인'이 제대로 밝혀지는 것 밖에는 없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왜 죽었는지 이유도 모르는 채 아이들을 땅에 묻을 수도 없고, 가슴에 묻을 수도 없는 것이 그 부모들이더군요. 



저희 일행이 단원고등학교를 떠날 때 재욱 엄마가 하신 말씀이 귓가에 선명합니다. "진실이 밝혀질 때까지 끝까지 싸울 겁니다. 쉽게 진실이 밝혀질 거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아이들이 사고를 당하고 지난 1년 동안 아무 것도 밝혀진 것이 없습니다. 죽을 때까지 싸울 각오가 되어 있습니다."


단원고등학교를 출발하여 안산을 떠나오는데, 1986년 어느 봄 날 광주 망월묘역을 처음 갔던 날의 기억이 떠올랐습니다. 광주와 망월 묘역의 스산한 기운 그리고  세상에 태어나 처음으로 억울한 죽음들을 집단적으로 마주하던 날의 분노와 슬픔이 다시 생각나더군요. 어쩌면 세월호 사고는 2014년에 일어난 또 다른 광주 학살 사건일지도 모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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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green 2015.04.02 13:24 address edit & del reply

    흘릴눈물조차두 미안하고미안해요..
    다신 이런비극이없는세상에 다시태어나길
    기도합니다

  3. 여우 2015.04.02 13:24 address edit & del reply

    가슴이 먹먹하네요...눈시울만 붉어지고...잊지않겠습니다..!!

  4. 미안해요 2015.04.02 13:33 address edit & del reply

    그동안 잊고 있었는데 미안해요. 그냥 너무 미안해요. 잊지 않을께요. 정말 미안해요

  5. 아직 아픔이 2015.04.02 13:43 address edit & del reply

    대통령이랑 새눌당 국회위원 세월호사고자들을 비하하는 벌레들 모두 저곳에 다녀와라
    저곳에 가서도 아무 반성이나 후회 슬픔 아픔이 없다면 더이상 인간이길 포기한 자들이다

  6. 글라라 2015.04.02 13:43 address edit & del reply

    일년이 지났는데도 왜 이리 눈물이 나는지요...

  7. 라라 2015.04.02 14:24 address edit & del reply

    보상금 기사가 뜨자마자 악플이 달리고 있습니다. 그걸 보는 제 마음도 갈갈이 찢어지는 듯 했읍니다. 제3자인 저도 그러한데 유가족들은 인격살인의 수준을 당하고 있다 해도 과언이 아닐겁니다. 사랑하는 가족을 잃었는데 돈타령하면 욕하는 그들...진정 그들의 마음이 아니길 빌어봅니다. 그 날 그 사고만 아니었으면 아무일 없는 듯 고3이 되어 공부하고 있을 아이들을 생각하니 눈물이 나네요.
    부디 잊지말기를...

    • 라라 2015.04.02 14:28 address edit & del

      했읍니다->했습니다 돈타령하면->돈타령한다면서 로 수정합니다.

  8. ssl315 2015.04.02 14:30 address edit & del reply

    내가 할수있는 일이 ..... 눈물흘리는 일 밖에 없으니 미안합니다.ㅠㅠ

  9. 악어 2015.04.02 14:55 address edit & del reply

    벌써 일년이네요 . 이렇게 좋은 계절에 ..... 너무 아퍼 마셔요 .

  10. 에카사엘 2015.04.02 16:00 신고 address edit & del reply

    1년이 다 되어 가는데도 책상위에 올려진 국화꽃을 보면 왜이리 눈물이 나는지요....
    이 포스팅을 보는데 때마침 소나기가 내렸습니다...
    이런 글에는 어떤 댓글을 달아야하는지 썼다 지웠다를 몇번이나 반복했네요....

  11. 쪼쪼선생 2015.04.02 17:02 신고 address edit & del reply

    합의금 관련 뉴스가 어제부터 나오더군요.. 3억이라.. 누군가의 목숨값을 책정하는건
    참 어렵고 불편한일지요

  12. 김영남 2015.04.02 18:15 address edit & del reply

    잊지않겠습니다ㅠㅠ

  13. 유가네 2015.04.02 22:59 address edit & del reply

    아주 관광지네 자식죽은게 벼슬인가 무조건 나라탓 정부탓... 소름이 끼친다. 유가족 내세우면서 대리기사 폭행, 호프집 만행 이런사실이나 규명해라!

    • 백샘 2015.04.02 23:10 address edit & del

      빙신

  14. 제목 2015.04.02 23:31 address edit & del reply

    제목좀 수정 해주세요 과자 이름이 왜 제목인가요 다른 제목으로 하시는게 낫겠어요

  15. 빈별 2015.04.02 23:51 address edit & del reply

    암요~~ 죽을때까지 싸워야합니다.끝까지 진상규명되야합니다.
    있을수 없는 사고가 난것에대해 정부와관계자는 죽을때까지 사죄하고 진상규명해야합니다.

  16. 빈별 2015.04.02 23:52 address edit & del reply

    부모이기에 남얘기가 아니기에 눈물이 납니다

  17. 엄태일 2015.04.03 08:32 address edit & del reply

    사고원인을 알려면 어떤식으로 참여해야 할까요?

  18. 티스토리 운영자 2015.04.03 11:32 신고 address edit & del reply

    안녕하세요, TISTORY입니다. 이 게시글의 이미지가 4월 3일자 티스토리 앱 카테고리 배경이미지로 소개되었습니다. 항상 좋은 글과 사진으로 활동해주셔서 감사합니다.

  19. 이진숙 2015.04.06 08:56 address edit & del reply

    맘이 너무 아프네요~~원인도 모른채 죽어간아이들 이 한을 어떻게 풀어야 할까요??진상규명이 우선입니다!!왜 죽어야만 했는지!!왜 구조 안했는지 꼭 밝혀야합니다!!꼭!!

  20. 미니 2015.04.07 02:25 address edit & del reply

    우리자체에서 진실규명이 어려우면 세계유수의 전문가팀을 꾸리는건 안될까???

  21. 2015.06.02 00:48 address edit & del reply

    비밀댓글입니다

늦었지만...안산 분향소에 다녀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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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산 합동분향소에 다녀왔습니다. 세월호 사고와 관련한 이런 저런 활동에 조금씩 참여해 왔지만 사실 안산까지 다녀 올 생각은 못하고 있었습니다. 


안산을 다녀와야겠다고 마음 먹은 것은 지난 겨울입니다. 제가 활동하는 단체에서 세월호 유가족을 두 분을 초청하여 강연회를 개최했던 날, 두 분의 어머니께 안산에 한 번 방문해달라는 초청을 받았기 때문입니다. 


여러 회원들끼리 일정을 조율하다보니 3월 마지막 주말에야 시간을 맞출 수 있었습니다. 마산에서 출발한 7명과 서울에서 합류한 1명 모두 8명이 분향소를 방문하였네요. 


마산에서 안산까지 가는 길은 예상보다 훨씬 멀었습니다. 출발 할 때 네비를 찍었더니 3시간 50분이라고 나왔지만, 막상 안산 분향소에 도착해보니 예상 시간보다 1시간 이상 늦어지더군요. 자동차가 수도권에 진입하면서부터 주말 정체가 시작되었고, 네비게이션의 예상시간은 점점 더 늦어졌습니다. 





낮 12시 30분에 도착한다는 계획을 세우고 출발하였지만 1시간 훌쩍 넘어서야 화랑유원제 제 2 주차장에 도착할 수 있었습니다. 주차장 옆에 있는 추어탕 집에서 점심을 먹고 가족대책위원회 사무실로 이동하였습니다. 분향소 앞 대책위에서 활동하고 계시는 분들에게 세월호 사고 1주기 추모 행사가 어떻게 준비되고 있는지 그리고 세월호 인양에 관한 협의가 어떻게 진행되고 있는지에 관한 설명을 들었습니다. 


1주기가 다가오면서 가족들 모두가 몸과 마음이 많이 힘들다는 이야기를 전해들었는데 참 마음이 아팠습니다. 대책위 사무실에는 아직 주검을 찾지 못한 희생자들의 사진이 담긴 대형 현수막이 걸려 있었습니다. 실종자를 모두 찾아내기 위해서라도 선체를 온전하게 인양하는 것은 아주 중요한 일이라는 사실을 다시 한 번 깨달았습니다. 


저희가 짧은 간담회를 하는 동안에 뒤편으로는 충북 옥천에서 단체로 분향소를 찾은 청소년들이 점심을 먹고 있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잊지 않겠습니다"라고 했던 약속과 다짐을 잊지 않고 있더군요. 



저희를 안내해주신 재욱엄마와 함께 정부 합동분향소를 방문하였습니다. 하얀색 대형 건물을 향해 걸어가면서 재욱 엄마는 "세월호 사고 희생자 정부 합동 분향소"라는 글씨를 보면서 '정부'라는 글자를 지우고 싶다고 하더군요. 


정부가 정부의 역할을 못하고 있는 것에 대한 분노와 노여움이 담긴 표현이라고 생각되었습니다. 사고 1주기를 얼마 남겨놓지 않은 시기이다보니 참배하는 방문객이 많지는 않았습니다. 하지만 발길이 완전히 끊기지는 않았더군요.  


저희 일행이 분향하고 참배하는 동안에도 가족끼리 분향소를 찾으신 분들, 단체나 개인으로 방문하신 분들의 발길이 계속이어지고 있었습니다. 깊고 깊은 침묵의 공간에서 안타깝고 억울하게 희생당한 죽음들을 마주하는 일이 참 쉽지 않았습니다. 


몸도 마음도 참 힘이 들더군요. 겨우 몇 시간 둘러보는 우리 일행이 이렇게 힘든 시간을 보냈는데...지난 1년을 버텨온 가족들은 얼마나 힘이들었을까요?



합동 분향소 앞 마당에는 '동행사진전'이 열리고 있었습니다. 세월호 사고 이후에 있었던 크고 작은 활동을 담은 사진들이 전시되어 있었는데요. 


마당 한 가운데에 사진전을 알리는 입체 걸개그림이 그려져 있었습니다. 육안으로 볼 때도 입체감이 있지만 사진을 찍으니 더욱 입체감이 커지더군요. 



"사랑합니다", "감사합니다" 하는 인사들이 바로 이곳을 찾는 시민들과 이곳을 지키고 있는 유가족들이 주고 받는 마음이 아닌가 싶었습니다. 



안산 화랑유원지 주차장에서 마주 보이는 길거리에는 노란 현수막이 가득합니다. 안산시내를 지나오는 동안에도 간간히 노란 현수막을 볼 수 있었습니다만, 분향소 주변에는 정말 많은 분들의 관심과 지지와 격려를 담은 현수막이 가득하더군요. 



안산에서 돌아와 뉴스를 보면서 더욱 화가 치밀었습니다. 행양수산부가 만든 세월호 특별법 시행령이 사실상 위원회 활동을 무력화시키는 내용으로 만들어져 있다는 뉴스 때문이었습니다. 


이 분들의 싸움이 얼마나 길어질지 한 숨이 절로 나오더군요. 자식들이 왜 죽었는 지 그 진실을 밝히고 싶다는 것이 유일한 바람인 분들...이 처절한 싸움을 이어가는 분들에게 고작 밥값 때문에 홍준표와 싸우고 있어야 한다는 것이 부끄럽다는 생각마저 들었습니다. 



오마이뉴스 기사  "세월호 진상규명 약속... 박 대통령, 진실이었나?"

[기자회견] 이석태 특위위원장, 정부 시행령안 철회 요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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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Sun 2015.04.18 00:33 address edit & del reply

    먼길 고생하셨습니다...
    제가 괜시리 감사하네요...ㅠㅠ

세월호 선장, 살인죄 적용보다 의혹 먼저 밝혀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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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승의 날이었던 15일 검경합동수사본부가 밝힌바에 따르면 세월호 이준석 선장과 기관장, 1, 2등 항해사에 대해 살인죄로 기소한다고 합니다. 이준석 선장을 비롯한 이들 4명은 세월호 침몰 당시 승객들이 충분히 탈출할 수 있었음에도 안내 방송을 하지 않아 고의로 마땅히 해야할 의무를 저버렸다는 것입니다.


만약 검찰이 기소한 이런 혐의가 재판에서도 인정된다면 최고 사형선고까지 이루어질 수 있다고 합니다. 특히 검찰은 "이들이 제복을 입고 있으면 승객들보다 먼저 구조될 수 없다는 점을 알고 옷을 갈아입은 점에서 승객들의 사망 위험을 외면한 미필적 고의가 성립된다"고 판단하였다는 겁니다. 


아울러 진도관제센터와의 교신으로 해경 함정이 오는 걸 알면서도 자신들의 구조에만 몰두한 점 등도 살인 고의성을 뒷받침하는 정황이라고 판단하고 있다고 합니다. 이런 보도를 보면 정부 수뇌부와 검찰은 세월호 선장과 기관장, 1, 2등 항해사에 대한 강력한 처벌이 국민적 요구라고 판단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혹은 세월호 이준석 선장과 기관장, 1, 2등 항해사에 대한 강력한 처벌로 최근 일어나고 있는 '정부 책임론, 대통령 책임론'을 잠재울 수 있다고 판단하는 모양입니다. 아마 바로 이런 이유 때문에 법무부가 나서서 살인죄 기소와 동시에 '업무상 과실치사'의 형량을 높이는 법개정도 추진하는 모양입니다.


검경합동수사본부가 선장과 기관장, 1, 2등 항해사에 대하여 살인죄를 적용하여 기소하여도, 재팜 과정에서 '살인죄 적용'이 받아들여지지 않을 수 있으며 '업무상 과실치사'를 적용할 경우 최고 형량이 '징역 5년'에 그치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


하지만, 수사와 재판이 지금처럼 이루어진다면 정부 수뇌부와 검경합동수사본부는 정말 중요한 것을 놓치고 있다거나 혹은 숨기고 있다(?)는 의혹을 피할 길이 없습니다. 왜냐하면 국민들이 가장 궁금하는 것은 왜 세월호 선장과 기관장, 1, 2등 항해사 등이 승객들에게 '퇴선을 명령하지 않았나?'하는 것입니다.


수사의 핵임은 '퇴선명령을 하지 않은 까닭 밝히는 것'


상식과 양심을 가진 사람이라면 누가 봐도 이런 사고 현장에서 선장과 선원들이 퇴선 명령을 하지 않고, 학생과 승객들에게 '가만히 있으라'고 하는 것은 도저히 납득할 수 없는 일입니다. 납득할 수 없는 일이 일어 났으니 가장 중요한 것은 왜 이런 일이 일어났는지를 밝혀야 하는 것입니다.


이준석 선장을 비롯한 선원들을 '사형'에 처하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도대체 왜? 정말로 왜? 승객들을 탈출 시키지 않고 자신들만 배를 빠져나왔는지 그 이유를 밝히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강력한 처벌은 그 다음에도 늦지 않습니다.


세월호 사고가 일어나고 한 달이 다 지났는데, 그동안 검경합동수사본부는 도대체 뭘 밝혀냈다는 말입니까? 국민들이 가장 안타까워하고 가장 납득하지 못하는 이유는 밝혀내지 않고 언론 플레이를 통해 강력한 처벌만 강조 것은 의혹만 더 키울 뿐이라고 생각합니다.


다시 한 번 생각해봐도 세월호 사건은 선원들을 극형에 처하는 것이 다가 아닙니다. 상식적으로 도저히 납득할 수 없는 세월의 참사의 가장 크고 중요한 의혹인 '선장이 퇴선을 명령하지 않은 까닭?"이 밝혀져야 하기 때문입니다.


자신들만 살기 위해서 승객들을 객실에 남겼어야 했는지? 아니면 정말로 승객들이야 죽든 말든 숨겨야 할 어떤 비밀이 있었는지? 항간에 떠도는 소문처럼 '보험과 보상'을 위해서 과실을 감추어야 하는 일이 있었는지......, 아니면 자신들이 먼저 도망쳐도 해경이 승객들을 다 구할 줄 알았다던지......


사고 당일...해경과 선장 간에 무슨 일이 있었을까?


아무튼 승객들을 버리고 자신들만 황급히 탈출 한 까닭을 밝혀내야 분노도 사그라들 수 있고, 의혹도 해소될 수 있습니다. 세월호 사건 이후에 소위 '잠수함설'부터 시작하여 각종 의혹이 난무하는 것도 이준석 선장과 선원들이 "왜 승객들에게 퇴선 명령을 하지 않았는지?" 그 까닭이 밝혀지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선장과 선원들에 대한 강력한 처벌 그리고 해경이 세월호 선체 진입을 시도하지 않고, 승객 구조를 제대로 하지 않은 이유도 밝혀야 하고, 해경이 초기 구조 활동에 실패한 까닭과 특정 업체를 끌어들여 구조활동을 독점하도록 한 이유도 밝혀져야 합니다. 해경과 관련해서는 꼬리에 꼬리를 무는 의혹들이 모두 밝혀져야 합니다.


하지만 그 중에서도 가장 중요한 것은 왜 세월호 선장과 선원들이 '퇴선 명령'은 내리지 않은 채 승객들을 내버려두고 황급히 자신들만 도망을 쳤는지를 밝혀야 한다는 것입니다. 국민적 의혹의 핵심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정말 자신들만 살기 위해 그랬다고 하기에는 너무나 엄청난 일이기 때문입니다. "제복을 입고 있으면 승객보다 먼저 구조될 수 없다"는 것을 알았다고 하더라도, '퇴선 명령'을 내린 후에 제복을 벗어 던지고 일반 승객들 속에 섞여서 탈출할 수도 있지 않았을까요?


오히려 선장과 선원들만 한 곳에 몰려 있다가 탈출하는 것보다 훨씬 자연스럽고, 자신들의 신분을 숨기기도 좋았을 것입니다. 따라서 아무리 생각해봐도 핵심은 '먼저 구조되기 위해 옷을 갈아 입은 것'이 아니라 '왜 퇴선 명령을 내리지 않았나?'입니다. 


이렇게 보면 단지 일반승객보다 먼저 구조되기 위하여 퇴선명령을 내리지 않았다고 납득하기는 쉽지 않습니다. 아무튼 검찰은 가장 중요한 이 의혹을 풀어주어야 합니다. 국민들이 가장 납득할 수 없는 의혹을 풀어주는 것이 강력한 처벌보다 더 중요합니다. 


"왜 선장이 퇴선 명령을 내리지 않았는가?" 


세월호 사건이 일어 난 바로 그날부터 지금까지 모든 언론은 '이해 할 수 없는 초동대응'이라고 보도하였으며, 모든 국민이 가장 납득할 수 없는 의혹의 핵심도 바로 '퇴선 명령을 내리지 않은 까닭?'이었습니다. 그 이유가 먼저 밝혀져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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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님, 국민은 경기부양 바라는게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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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호 참사가 한 달이 다 되어가고 있습니다만, 아직도 시신조차 수습하지 못한 실종자들이 차가운 바닷 속에 있습니다. 이미 시신 훼손이 심각할 것이라는 걱정이 나오고 있고, 시신조차 수습하지 못하면 어쩌나 하는 염려도 이어지고 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도 대통령은 '세월호 참사에 따른 경기 위축'을 먼저 걱정하고 있는 모양입니다. 지난 9일 청와대에서 '긴급 민생대책회의'를 주재한 자리에서 민생대책은 세우지 않고'경기 위축'만 걱정하였다고 합니다. 


"사회불안이나 분열을 야기하는 언행들은 국민경제에 전혀 도움이 안 될 뿐 아니라 결정적으로 우리 경제에 악영향을 끼치게 된다. 경제에 있어 가장 중요한 것은 국민의 심리가 아니겠는가. 이 심리가 안정돼야 비로소 경제가 살아날 수 있다"


이 발언만 놓고보면 대통령은 경제에 있어서만 국민 심리가 중요하고, 정치에 있어서도 국민 심리가 중요하다는 사실은 간과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지금 국민은 경제보다 '안전'과 진상 규명을 더 바라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지 못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이런 대통령의 발언을 보면 국가지도자의 현실 감각을 의심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대통령은 세월호 사고 이후 정부에 대해 비판적인 목소리가 터져 나오는 것을 '사회분열 세력이 주도'하고 있다고 판단하고 있으며, 이런 정부 비판이 국민을 불안하게 만들고 경기 악화를 가져올 수 있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지금 국민이 바라는 건 경기부양이 아니라, 세월호 참사 진실 규명이다


대통령은 세월호 사고 실종자들과 유가족들이 왜 분노하고 있는지, 그리고 다수의 국민들이 왜 그들과 함께 분노하고 있는지를 모르고 있는 것 같습니다. 국민들이 분노하고 있는 것은 세월호 사고를 통해 "인간의 존엄성이 짓밟히는 현장을(TV 보도를 통해) 두 눈 뜨고 목격하였기 때문"입니다.


사고 현장에 도착한 해양 경찰이 두 손 놓고 버젓이 지켜보고 있는 가운데 300여명의 승객들이 타고 있는 배가 침몰하였고, 눈앞에서 침몰하는 배를 보면서도 침몰을 늦추기 위한 어떤 조처도 하지 않는 것을 지켜보았고, 배가 뒤집힌 후에도 구조작업을 제대로 하지 않는 것을 모두 지켜보았기 때문입니다. 


지금 국민들이 분노하는 것은 300여 명의 승객들과 어린 학생들이 단 1명도 구조되지 못하고, 속절 없이 물에 빠져 죽는 모습을 지켜보면서 국민이 버림 받는 것을 경험하였기 때문입니다. 많은 국민들이 나도 저런 일을 당하면 똑같은 취급을 당할 것이라고 느끼기 때문에 분노하는 것입니다. 


대통령께서는 여전히 우리 국민들의 수준을 그 아버지가 대통령을 할 때와 똑같은 것으로 착각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경제를 성장시키기 위해서는 노동자가 희생을 감수해야 하고, 국가를 일으켜 세우기 위해(더 부자나라가 되기 위해)서는 농민과 서민들이 희생되어도 할 수 없다는 생각을 하던 40년 그 시절에 머물러 있는 것 같은 느낌입니다. 


대통령은 "최근 세월호 사고 여파로 소비심리 위축 조짐이 나타나고 있다"며 걱정하였다고 합니다. 정말 기가막히는 발언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럼 이 와중에도 국민들이 흥청망청 돈을 쓰고 다녀야 한다는 뜻일까요? 나라 전체가 초상집이나 다름 없는 상황인데, 소비 심리가 위축되어야 정상인 것 아닌가요?


이런 황당한 사고를 하고 있기 때문에 내놓는 대책 또한 국민 일반의 감정과는 괴리가 생길 수 밖에 없습니다. 이른바 '긴급 민생 대책회의'에서 내놓은 대책이 "세월호 참사에 따른 경기 위축 가능성에 대응하기 위해 2분기 재정 집행 규모를 7조 8000억원 늘이기로 했다"는 것입니다. 



이런 국난 상황에는 경기 위축되어야 정상 국가다


하지만 내용을 살펴보면 '민생 대책'이라기 보다는 기업 지원 대책에 불과합니다. 여행, 운송, 숙박업종에 대해 관광진흥개발기금, 기업은행 등을 활용해 750억원의 저리자금을 지원하고 세금 납부 기한을 연장 또는 유예해 주기로 한 것이 전부입니다. 


겨우 이 따위 대책이나 내 놓은 회의를 대통령이 직접 주재 했어야 하는지도 납득이 잘 안 됩니다. 대통령은 세월호 사고 이후에 청와대 참모나 내각 책임자들을 모아놓고 '국민들이 납득할 만한' 대책회의는 한 번도 제대로 하지 않았습니다. 


한 나라의 대통령이 어떻게 이렇게 시대착오적일 수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지금 시점에 정부가 내놓아야 할 민생대책은 '세월호 사고로 인해 피해(정부의 무책임하고 무능한 구조 활동 방기)를 입은 실종자와 유가족을 위한 민생대책을 내놓는 것이 급선무가 아닐까요?


이미 한 달 넘게 진도 실내체육관과 팽목항을 오가면서 직장과 생업을 제쳐놓고 있는 유가족들이 있습니다. 이들은 위한 '민생 대책'을 먼저 내놔야 정상 상식있는 인간들이 아닐까요? 


사고 한 달이 넘도록 국민들에게 앵벌이 한 물품으로 자원봉사자들 시켜서 밥만 주면 정부가 할 일을 다 한 거라고 생각하는 것일까요?


이 나라 대통령은 사고 한 달이 지났지만, 왜 국민들이 점점 더 분노의 수위를 높여가는지 도무지 이해하지 못하는 것 같습니다. 지금까지도 '선장이 배를 버리고 도망가서 승객들이 죽었는데, 왜 대통령한테 책임을 묻는냐?'고 생각하면 억울(?)해 하는 모양입니다. 





경기부양? 실종자와 유가족 대책부터 좀 내놔라 !


세월호 사고가 일어 날 수 밖에 없었는 것은 낡은 선박 도입, 무리한 증축, 무리한 화물 적재, 선박 안전검사 등 모든 과정에 정부와 정부기관이 자기업무를 소홀히 하여 생긴 일이기 때문입니다. 

국민들이 분노하는 것은 정부가 낡은 선박을 도입할 수 있도록 규제를 풀어주지 않았다면, 정부 기관이 선박 안전 검사를 제대로 하였다면, 해경이 배가 침몰하기 전에 제때 구조활동을 하였다면, 배가 침몰한 후에라도 적극적인 구조를 하였다면 이런 참담한 상황까지 오지는 않았을 것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사고 이후에 이른바 재난컨트롤 타워가 제 역할만 했다면, 정말 대통령이 나서서 모든 장비와 인력을 총동원해서 구조활동을 펼쳤다면, 사고 당일 바로 최정예 잠수 요원들이 배안으로 들어가 학생들을 구출했었다면 지금 이렇게 분노할 까닭이 없었을 것입니다. 


그녀의 아버지가 대통령이었을 때와 똑같이 '경제 성장'만 시켜주면(부자만 만들어주면) 일부의 반대가 있어도 결국은 어렵지 않게 국민을 통치할 수 있다고 생각하고 있는 것 같아 정말 불쾌합니다. 



특검도입, 청문회 실시...유족 요구에 먼저 응답하라


세월호 사고의 근본 원인을 밝히고, 초기 사고 신고와 접수과정에 숨겨지고 조작된 진실이 밝혀지고, 구조활동 실패의 원인과 책임을 밝히고 관련자들이 처벌되지 않으면 국민의 분노는 사그라들기 어렵습니다. 


지금 다수의 국민들은 세월호 사고로 인한 희생자들의 아픔과 슬픔에 공감하여 촛불을 들고 나왔습니다만, 동시에 희생자들의 존엄성과 함께 인간으로서 자신의 존엄성을 되찾기 위하여 촛불을 들고 나온 것입니다. 


만약 대통령이 이런 점을 깨닫지 못하면 국민 각자는 자신들의 '민생'을 일부 등한시 하더라도 국민들은 '인간의 존엄성을 되찾기 위해 거리로 나설 수 밖에 없습니다.  


당장 진상규명을 위하여 실종자와 희생자 유가족들이 요구하는 '특검 도입, 청문회 실시'와 같은 구체적 요구에 응답하지 않으면, 경기 침체를 막는 허접한 '민생대책'으로 국민의 분노를 잠재울 수는 없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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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TOP10 2014.05.14 12:32 신고 address edit & del reply

    벌써 한달이나 되었네요,
    여전히 찾지못한 시신들, 가족분들도 같이 쓰러지시네요 .ㅜㅜ

세월호 아픔에 공감했다면 '분노하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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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호 침몰 사고가 일어나고 20여일을 보내면서 <오마이뉴스>는 물론이고, 제 개인 블로그에 올리는 '소소한 일상'조차 포스팅하기가 쉽지 않았습니다. 최근에 읽었던 몇 권의 책은 서평을 써놓고도 지금 소개하기엔 적절한 책이 아닌 것 같아 기사 송고를 미뤄두고 있습니다. 


세월호 침몰 사건 이후 <오마이뉴스>에 송고한 서평 기사는 표창원이 쓴 <정의의 적들>(세월호 슬픔 속 표창원의 책을 권하는 까닭) 한 권뿐입니다. 사고의 전 과정에 '정의의 적들'이 곳곳에 숨어 있었기 때문에 비록 구조작업이 진행되는 동안이라고 해도 독자들에게 소개하는 것이 좋겠다는 판단을 하였기 때문입니다. 


스테판 에셀의 책 <분노하라>, <참여하라>, <분노한 사람들에게>, <멈추지 말고 진보하라>



하지만 사고 후 보름이 지나도록 여전히 구조와 수색작업이 진행되고 있는 터라, 국민적 애도와 추모 분위기에 맞는 서평을 써달라는 편집부의 부탁에도 적당한 책을 떠올리기는 쉽지 않았습니다. 인터넷 서점을 살펴보고 그동안 읽었던 책 목록을 넘겨보면서 골라낸 책이 바로 스테판 에셀의 <분노하라>입니다. 


세월호 사고가 일어난 이틀 후에 진도실내체육관을 다녀온 후 사고 수습이 진행되는 지금까지 내내 '기도만으로 기적이 일어나지는 않는다'는 생각이 뇌리를 떠나지 않습니다. 언론과 방송이 앞장서서 국민들에게 '마음을 모아 기적을 만들자'고 하였지만, 바로 그 순간 구조 작업을 맡은 해경, 해군, 민간 구조회사와 정부는 온갖 헛발질로 시간을 다 보냈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안타깝지만, 기도만으로 기적이 일어나지는 않았습니다


대략 한 세기에 가까운 일생을 살면서 '평화와 인권, 민주주의의 확장'을 위해 살았던 스테판 에셀의 <분노하라>가 국내에 소개되어 큰 반향을 일으킨 후에 <참여하라>, <분노한 사람들에게> 그리고 그의 마지막 자서전인 <멈추지 말고 진보하라> 등의 책이 연이어 소개되었습니다. 


<분노하라>는 말할 것도 없고 그 이후에 소개된 연작들 역시 단순히 '분노하라'고 선동만 하는 책이 아닙니다. 그는 <분노한 사람들에게> "공감하라, 행동하라, 세상을 바꾸라"고 외칩니다. 인생의 끝이 얼마남지 않았던 아흔이 넘은 나이에도 '진보를 향해 멈추지 말라'고 주장하였습니다. 


프랑스 청년들에게는 "침묵을 깨고 일어서라, 참여 그것이 곧 저항이요 투쟁"이라며 <참여하라>고 외치면서 그들의 심장을 뜨겁게 달구었습니다. 아쉽게도 그가 쓴 이 책이 프랑스의 젊은이들에게 어떤 영향을 주었는지는 알지 못합니다. 


하지만 세월호 침몰 사고 이후 '주권자'인 온 국민이 권력을 가진 자들에게 농간 당하고 있는 지금 같은 시기에, 세계인의 '정치적 무관심'을 뒤흔들었던 '스테판 에셀'의 <분노하라>와 그의 연작들이 한국의 독자들에게 어떤 영감을 던져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긴 시간 고민 끝에 스테판 에셀의 <분노하라>를 가장 먼저 다시 펼쳐들었습니다. 스테판 에셀의 <분노하라>를 처음 읽은 것은 2011년 7월이었습니다. 당시 나이 아흔 세 살이었던 프랑스 '레지스탕스' 출신 노투사의 '분노하라'는 외침이 전 세계로 울려퍼지던 때였습니다. 


프랑스에서 출간 7개월 만에 200만 부가 팔려나가고 세계 20여 개국에서 번역 출판이 이루어졌으며, 한국에서도 하버드 강의를 담은 <정의란 무엇인가>에 이어 '분노' 신드롬이 일어났지요. 이 책의 본문은 겨우 20쪽(한국어판 26쪽) 밖에 안 되는 문고판 소책자였습니다. 


스테판 에셀은 유대계 프랑스인으로 파리고등사범학교 재학 당시 사르트르에게 큰 영향을 받았고 2차 세계 대전이 벌어지자 레지스탕스 활동에 뛰어들었습니다. 1944년 파리에 밀입국해 연합국의 상류작전을 돕다 체포 당해 유대인 강제 수용소에서 사형을 선고 받았으나 다행히 극적인 탈출에 성공합니다.


전쟁이 끝난 후에는 외교관으로 일하면서 1948년 유엔세계인권선언문 초안 작성에 참여했으며, 퇴임 후에도 인권과 환경문제를 중심으로 사회운동에 참여하며 열정적인 사회운동가로 살다 떠났습니다. 그는 <분노하라>에서 "무관심이야말로 최악의 태도이며, 지금은 분노하고 저항해야 할 때"라고 외침니다. 


"나는 여러분 모두가, 한 사람 한 사람이, 자기 나름대로 분노의 동기를 갖기 바란다. 이건 소중한 일이다. 내가 나치즘에 분노했듯이 여러분이 뭔가에 분노한다면, 그때 우리는 힘 있는 투사, 참여하는 투사가 된다. 이럴 때 우리는 역사의 흐름에 합류하게 되면 역사의 이 도도한 흐름은 우리들 각자의 노력에 힘입어 면면히 이어질 것이다."


그는 1948년 세계인권선언이 명시한 보편적인 인간의 존엄과 권리를 제대로 누리지 못하는 사람들을 만나면 그들의 편을 들어주고 그 권리를 찾을 수 있도록 도움을 주라고 강조합니다. '무관심이야말로 최악의 태도'라고 강조합니다. 





무관심이야말로 가장 최악의 태도


그는 사람들에게 특히 젊은이들에게 지금 내 주위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제대로 살펴보라고 말합니다. 무관심을 넘어서야 참여를 시작할 수 있게 된다는 것이지요. 21세기 프랑스는 빈부격차와 인권의 후퇴가 심각한 지경에 이르렀다고 주장합니다.


그럼 21세기 한국은 어떤가요? 비정규직이 절반을 넘고, 재벌의 금고에는 사상 최고의 현금이 쌓여 있는데, 사상 최고의 실업률이 유지되고 있고, 일터에서 쫓겨난 해고 노동자들은 죽음으로 항거하고 있습니다. 프랑스보다 더 심각한 빈부격차, 프랑스보다 훨씬 부실한 복지제도, 프랑스보다 더 심가한 인권 후진국이 바로 대한민국입니다. 


세월호 사건으로 한국 정부와 지도자들은 이미 여러 선진국 언론들로부터 '무능'이 검증되었고 '조롱'의 대상이 되었습니다. 서구 언론 중에는 한국의 최고 권력자가 권력을 유지하고 있는 것을 납득할 수 없다는 곳도 있었지요. 


사실 세월호 사건 이후 지난 20여 일 한국 사회는 '비통', '슬픔' 그리고 '공범 의식'에 빠져 있었습니다. 그러면서 조금씩 분노하기 시작하였습니다. 무능한 정부, 무책임한 정부 때문에 '슬픔'을 이기려면 '분노'하지 않을 수 없다는 사람들이 생겨나기 시작했습니다. 


어처구니없는 사고와 단 한 명도 구조하지 못한 무능한 정부의 대응을 보면서 많은 사람들이 처음엔 가눌 수 없는 '슬픔'과 동시대를 사는 부모이자 어른으로서의 미안함으로 어쩔 줄 몰라 했습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슬픔'이 '분노'로 바뀌고 있다는 것을 느끼고 있습니다. 


저와 관계 맺고 있는 사람들의 SNS 활동을 보면 "담벼락에 대고 욕을 내밷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습니다. 페북이나 트윗, 카톡방에서 육두문자를 그대로 날리는 일은 흔치 않았습니다. 이모티콘이나 생략된 글자로 욕을 하는 것이 센스 혹은 대화 예절처럼 여겨졌지요. 


하지만 국민을 우롱하는 정부와 권력에 놀아나는 언론 보도에 분노한 사람들이 '욕'이라도 내뱉지 않으면 견디지 못할 지경이 되어 버린 것 같습니다. 스테판 에셀은 분노가 끓어 넘치는 상태를 '격분'이라고 하였는데, 더 이상 분을 참지 못하고 '격분'하는 젊은이들은 거리로 나서기 시작하였습니다. 


하지만 스테판 에셀은 <분노하라>에서 이런 격분의 상황을 예견한 듯이 '도에 넘치게 분노'하지는 말고, 비폭력 저항을 통해 '희망'을 일구라고 충고합니다. 누구를 막론하고 인권을 침해하는 주체에게는 분노해야 하며, 인간의 권리를 지키는 일에는 타협의 여지가 없다는 것을 분명히 하고 있지만 '비폭력 저항'이 더 큰 힘을 발휘할 수 있다고 강조합니다. 


분노하자 그리고 평화적으로 봉기하자!


한국어판 인터뷰에서는 "비폭력이란 손 놓고 팔짱 끼고 속수무책으로 따귀 때리는 자에게 뺨이나 내밀어주는 것이 아니라"고 말합니다. "비폭력이란 우선 자기 자신을 정복하는 일, 그 다음에 타인들의 폭력 성향을 정복하는 일"이라는 점을 강조한 것입니다. 


스테판 에셀의 <분노하라>를 요약하면 "분노하라 그리고 평화적으로 봉기하라"는 것입니다. 비폭력으로 희망을 향해 갈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지요. 아흔 셋 노전사가 쩌렁쩌렁한 음성으로 <분노하라>고 외치는 소리가 들리는 듯합니다. 


"인간의 핵심을 이루는 성품 중 하나가 '분노'입니다. 분노할 일에 분노하기를 결코 단념하지 않는 사람이라야 자신의 존엄성을 지킬 수 있고, 자신이 서 있는 곳을 지킬 수 있으며, 자신의 행복을 지킬 수 있습니다." (본문 중에서)


스테판 에셀은 자신이 쓴 겨우 20쪽 분량의 소책자가 이런 반향을 불러일으킨 것은 결국 시민들이 광범위하게 절감하고 있는 문제에 '화답'하였기 때문이라고 해석합니다. 그는 사람들에게 자유를 잃지 말라고 말합니다.


"자기 나름으로 자유롭게 생각하는 것, 광고 메시지나 언론이 하는 말에 속아 넘어가지 않는 것, 이것이 중요합니다. 자유로운 사고를 해야만 자유롭게, 양심에 입각해서 행동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본문 중에서)


예컨대 창조적 저항의식으로 무장하기 위하여 구체적 실천을 시작하라고 충고합니다. 자신의 뜻에 맞는 정당에 투표를 통해 지지를 표명하는 것, 그리고 어떤 특별한 대의를 위해 활동하는 기구, 협회, 운동에도 참여하라는 것입니다. 세계인권연맹, 앰네스티 인터내셔널, 그린피스와 같은 단체와 노동조합 참여 같은 활동이야말로 정말 중요하다고 하였습니다.


당시 한국에서 이 책이 큰 반향을 불러일으킨 것은 프랑스보다 더 기가 막힌 이 나라의 현실 때문이었을 것입니다. 스테판 에셀은 다른 책 <분노한 사람들에게>를 통해 '분노와 참여'를 더 강조합니다.


"인간은 분노할 줄 알아야 비로소 인간이 되기 때문입니다. 분노하지 않는 한 완전한 인간이 아니에요. 그러나 분노와 참여는 시작일 뿐입니다. 단지 시작일 다름이지요." (본문 중에서)


아울러 분노와 함께 '공감'을 강조합니다. 함께 분노하기 위해서 다른 사람의 입장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공감이 필요하다는 것이지요. 세월호 사고 이후에 자식을 둔 대한민국의 부모들은 그 슬픔과 비통함에 절절히 '공감'하고 있습니다. 그 분노에도 '공감'하고 있습니다. 


슬픔에 공감하고, 함께 분노를 표출하자!


2011년 당시 스테판 에셀의 <분노하라>가 한국에서 큰 반향을 불러일으켰던 것은 대선을 앞둔 탓도 있었을 것입니다. 한국어판 추천사에서 조국 교수가 "평화적 봉기를 일으키자", "표현의 자유를 행사하자", "정치권력과 시장권력의 오만과 횡포, 불법과 탈법을 감시하고 비판하자", "단호하게 그리고 발랄하게. 또한 무조건 투표하자"고 호소한 까닭도 대선을 염두에 두었기 때문이었습니다. 


하지만 아쉽게도 우리는 2012년 대선에서 '사상 최악의 대통령'을 선출하였다는 사실을 깨닫는 데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사상 최악의 대통령이 보여주는 무능한의 극치를 이번 세월호 사건으로 경험하고 있는 것이지요. 


다시 한 번 강조하지만 스테판 에셀은 무관심이야말로 최악의 태도라고 하였습니다. 세월호 사고 이후 많은 국민이 '무관심'에서 벗어나 '슬픔과 분노'에 공감하고 있습니다. 국민적 슬픔이 국민적 공감을 일으키고 국민적 분노로 승화되고 있는 상황입니다. 


우리의 정당한 분노와 실천이 무능하고 부패한 권력을 바꾸고 마침내 인간의 존엄성을 지킬 수 있는 세상을 만들 수 있을 것입니다. 당시 아흔 셋 노투사가 전한 절박한 호소문의 마지막 문장은 이렇게 끝납니다.


"창조, 그것은 저항이며 저항, 그것은 창조다."


마침 도올 김용옥 선생도 한겨레 칼럼에서 "더 이상 애도만 하지 말라, 의기소침하여 경건한 몸가짐에 머물지 말라, 국민들이여 분노하라, 거리로 뛰쳐나와라, 정의로운 발언을 서슴지 말라"고 주장하더군요. 세계적 지성 스테판 에셀, 한국을 대표하는 지성 김용옥이 한 목소리로 외치고 있습니다. 


"애도만 하지 말고 분노하라."


분노하라 - 10점
스테판 에셀 지음, 임희근 옮김/돌베개
스테판 에셀의 참여하라 - 10점
스테판 에셀 지음, 임희근 옮김/이루
분노한 사람들에게 - 10점
스테판 에셀 지음, 유영미 옮김/뜨인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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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김용만 2014.05.13 09:12 address edit & del reply

    잘읽었습니다. 스승님.

마산 창동에서...안산에서 함께 촛불을 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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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토요일 오후 7시 창동에서 열린 세월호 희생자 추모 촛불 행진에 다녀왔습니다. (이 포스팅에 있는 사진을 블로그 김용만님의 사진과 페친들이 올린 사진을 가져온 것입니다.) 창동에서 추모 촛불이 시작된 지 20여 일이 지났는데, 대략 절반은 함께 참여했던 것 같습니다. 


군대 간 아들 면회 갔던 날, 친척 결혼 식에 다녀 온 날, 업무 때문에 늦은 날, 출장은 갔던 날은 어쩔 수 없이 창동사거리를 지킬 수 없었습니다만, 그래도 마음은 늘 그곳에 가 있었습니다. 창동 추모 촛불은 창동에 계시는 분들이 주축이 되었고, 그 분들의 뜻에 호응한 시민들이 주축이 되어 이어가고 있습니다. 


저도 자주 참여하다보니, '그 분들의 뜻에 호응한 시민' 중에 한 명이 되었습니다. 매일 저녁 적은 날은 10여명 많은 날은 30여명이 모여서 촛불을 들고 '희생자를 추모하고, 구조 실패에 책임 있는 자들은 처벌 해야 한다'며 함께 마음을 모았습니다.

 

'추모 리본'을 받아 가는 시민들을 만날 때마다 반가웠고, 길을 가다 함께 촛불을 들고 서 있는 시민들을 만날 때마다 반가웠습니다. 



지난 토요일 촛불 추모 행진을 준비하며서도 기대와 두려움이 동시에 있었습니다. 많은 시민들이 우리와 같은 마음으로 창동으로 나올 것이라는 기대와 참여하는 시민들이 별로 없으면 어쩌나 하는 두려움이었습니다. 


저녁 7시에 맞춰 창동사거리에 나갔는데, 정말 기대했던 것보다 많은 사람들이 모이기 시작하였습니다. 원래는 오후 7시에 모여서 1시간 정도 촛불 행진을 하고 마칠 계획이었습니다만, 7시가 되자 구름이 몰려오듯이 여기저기서 촛불을 함께 들겠다는 시민들이 소리없이 모여들었습니다. 


자연스럽게 출발시간은 늦춰질 수 밖에 없었지요. 오후 7시 30분이 되어서야 촛불행진을 시작하였습니다. 200여명의 시민들이 촛불을 들고 창동 사거리를 출발하여 코아양과 - 오동동사거리 - 아구찜 거리 - 어시장 - 옛남성동파출소를 거쳐 다시 창동 사거리로 돌아오는 코스를 40여분 간 걸었던 것 같습니다. 



지난 20여 일 동안 창동 사거리에서 촛불을 들고 만났던 분들도 대부분 다시 만났고, 그날 저녁 처음으로 나온 분들도 많았습니다. 대부분 같은 마음이었습니다. 희생자들을 추모하는 마음을 가진 분들이 모였고, 단 1명도 구조하지 못한 당국을 원만하는 사람들이 모였습니다. 


왜 단 1명도 구조하지 못하는 이런 일이 일어났는지 진상을 밝혀야 한다고 생각하는 시민들은 '특검 도입, 청문회 실시'를 요구하는 유가족들의 뜻이 실현되어야 한다는 마음으로 '진상규명 서명운동'에 참여해주었습니다. 


이번 주에도 창동 사거리 촛불 추모제는 매일 저녁 7 ~8사이에 계속됩니다. 이 자리에 나온 분들은 모두 같은 마음이었을 것입니다. "많은 사람이 아니어도 좋다. 몇 사람이라도 모여서 그들을 잊지 말자"는 마음이었을 겁니다. 

 

"나 혼자서라도 촛불을 들겠다"는 심정이었던 분들이 모여서 촛불 추모제를 이어가고 있습니다. 토요일 많은 사람들이 모인 추모 촛불 행진이 지나가고, 일요일 저녁에는 다시 15~16명이 모여서 조촐하게 '촛불 추모'를 이어갔습니다.








세월호 참사 희생자 추모와 다짐을 위한 청소년YMCA 회원대회


지난 토요일 안산에서는 '세월호 참사 희생자 추모와 다짐을 위한 청소년 YMCA회원대회'가 개최되었습니다. 사고가 난 세월호에는 안산 단원고 청소년Y 회원들도 있었습니다. 


청소년Y 친구들과 그들과 함께 세월호에 있었던 친구들을 '잊지 않겠다'는 다짐과 그들의 죽음을 보고 그냥 '가만히 있지 않겠다' 다짐을 하는 자리였다고 합니다. 전국 곳곳에서 "가만히 있지 않겠다"는 마음을 가진 시민들이 함께 촛불을 들었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니다. 










 

세월호 참사로 친구들을 잃은 청소년들의 입장문

안녕하세요. 저희는 청소년YMCA전국대표자회입니다. 2014년 4월 16일 신나게 수학여행을 가던 안산 단원고 2학년 학생들과 일반 승객분들이 태운 세월호가 진도 앞바다에서 침몰했습니다. 우리는 모여서 살아 돌아오기를 기도했지만 결국 우리들의 친구였던 안산청소년YMCA TOP아카데미 회원 5명의 장례식을 치뤘고 아직도 차가운 바다에 있는 1명의 친구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잊지 않겠습니다. 그리고 가만있지 않겠습니다.

첫 번째 참사로 인해 목숨을 잃은 단원고 친구들을 잊지 않겠습니다. 우리와 함께 많은 이야기와 꿈을 나누었던 수많은 친구들을 잃었습니다. 선실에 가만히 있으라는 방송을 지켰던 친구들이 우리의 곁을 떠났습니다. 지금도 우리는 밝게 웃던 친구들이 보고 싶습니다. 그 절망의 바다에서 나오지 못했던 단원고 친구들과 여행객들께 죄송하고 미안한 감정을 지울 수가 없습니다. 친구들의 명복을 빌며 그 두려움과 고통의 시간을 떠나 편안한 곳으로 갔기를, 부디 하늘에서는 이러한 고통을 겪지 않고 행복했으면 좋겠습니다.

친구들아 많이 힘들었지?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이 이런 것 뿐이라서 미안해. 그리고 지금까지 연락 많이 못 해서 미안해. 더 많이 만나고 더 친해지고 싶었는데 이제 볼 수 없다는 것이 너무 슬퍼. 너희들이 못다 이룬 꿈, 너희 들이 꿈꾸던 생명 평화의 세상을 우리가 꼭 만들어 볼게. 또 너희들을 희생시킨 사람들을 찾아 꼭 진실규명을 할게. 다음에 우리가 만날 땐 좀 더 좋은 세상에서 만나자. 그때는 좀 더 친해졌으면 좋겠어. 고마웠고 미안하고 사랑한다. 잊지 않을게. 친구들아.

두 번째로 이제 우리의 또 다른 가족이 되신 분들을 잊지 않겠습니다. 친구의 부모님은 우리의 부모님이십니다. 신나게 인사를 하며 잘 다녀오겠다던 아들, 딸들이 이렇게 될 줄은 상상도 하지 못하셨을 친구들의 부모님이십니다. 잘 다녀올 줄만 알았던 우리 친구들의 부모님들은 아마 평생을 가슴으로 기다리실 것입니다. 우리는 유가족분들 옆에서 같이 슬퍼하는 일 밖에 할 수 없어 죄송하기만 합니다. 장례식장에서 오히려 저희를 위로 해주신 손길을 잊지 않겠습니다. 우리가 또 다른 가족이 되겠습니다. 자랑스러운 친구들을 추억하며 슬픔과 위로의 자리에 함께 있겠습니다.

또 다른 가족이 되신 부모님. 우리들은 함께 했던 친구들을 잊지 않겠습니다. 또 매년 4월이 돌아오는 자리에 부모님 곁에서 함께 슬퍼하겠습니다. 그리고 살아 돌아와 준 친구들아. 너희 때문이라고 자책하지 말아줘. 누구보다도 슬픈 거 알아. 하지만 너희가 계속 슬퍼하는 것을 보면 떠난 친구들이 더 슬퍼 할꺼야. 너희가 친구들의 꿈을 다시 살려줘야 친구들도 기뻐 할꺼야. 언제든지 우리가 함께 할게. 살아 돌아와줘서 정말 고마워.

세 번째로 세월호 참사로 인해 알게 된 우리나라의 진짜 모습을 잊지 않겠습니다. 우리가 바라봤던 대한민국이라는 나라는 세계경제 20위에 K-pop으로 널리 알려진 자랑스러운 나라였습니다. 하지만 이번 세월호 사고를 통해 다시 바라본 한국사회의 모습은 겉과 속이 달랐습니다. 배가 침몰하기 전까지는 분명 모든 승객들이 탈출할만한 시간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왜 전부 빠져나오지 못했을까요? 왜 전부 살아남지 못했을까요? 세월호의 선장은 승객에 대한 자신의 의무를 버리고 자신의 이익만 챙기며 잘못된 정보 전달로 인해 많은 사람들을 죽게 만들었습니다. 무책임하게 배를 버린 선장을 용서하지 않겠습니다. 하지만 선장만이 무고한 시민들을 죽였다고 봐서는 안됩니다. 우리가 믿었던 우리나라의 정부는 늑장대응에 국무총리는 중요한 시기에 사퇴를 선언하였습니다. 현 정부는 사고에 대한 빠른 대처를 하지 못하고 문제의 원인을 다른 사람 탓으로 돌리고만 있습니다. 박대통령은 한참 뒤늦게, 국민들의 여론이 심각해지고서야 국민들에게 사과의 뜻을 밝혔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이 사과를 받을 수 없습니다. 선장을 비롯해서 대통령까지, 책임감을 가지고 이번 사고를 대하는 우리나라의 어른을 찾을 수가 없습니다. 정부는 이 사건을 계기로 두 번 다시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해야 하며, 안전사고에 대해 체계적으로 예방하고 대책을 세우고 책임지는 믿음직한 정부의 모습을 보여줘야만 할 것입니다.

사과는 눈을 보고 진심을 다해서 하는 거라고 어릴 때부터 배웠습니다. 사과 대신 수학여행, 소풍, 현장체험의 금지라는 이상한 대책을 안겨주는 것은 아니지요. 친구를 잃은 우리들에게, 자식을 잃은 부모님께 제대로 사과하고 어떻게 하면 되는지 물어 보아주세요.

네 번째로 우리 청소년들은 세월호 사고에 대해 절대 가만히 있지 않겠습니다. 나이가 어리다고요? 아니면 청소년들은 뭘 모른다고요? 한국사회에 촛불을 가장 먼저 든 것도 우리 청소년이었습니다. 우리 친구들은 꿈을 꿀 수 있는 자유가 있었고, 꿈을 펼칠 수 있는 기회가 있었지만 무책임한 정부는 이를 놓쳤습니다. 이 사고을 이용해 새로운 법을 만들고 생각없이 술판을 벌인 정치인과 아무런 대응도 하지 못하는 박대통령에게 진실을 요구합니다. 단원고 학생들 뿐만 아니라 교사분들, 학생들을 살리고 빠져나오지 못한 승무원, 아르바이트생까지 모든 탑승자 중 실종자 1명 없이 다 찾아야 할 것입니다. 이를 위한 구조대원분들과 구조를 돕고 있는 어민들의 안전 역시 지켜져야 할 것입니다. 거짓을 알리는 언론과 시간이 지나 관심이 시들해지기를 기다리는 어른들을 믿지 않겠습니다.

우리 모두는 탑승객 전부를 찾을 때까지 또 그 이후에도 절대 관심을 거두지 맙시다. 먼저 간 친구들을 위해 또 이런 나라에서 살아가야할 우리들을 위해 다시는 이런 슬픈 비극이 발생하지 않도록 우리 함께 움직입시다. 무엇이 잘못되었는지 같이 이야기하고, 너무 커서 우리 힘으로 바꿀 수 없다고 미리 포기하지 맙시다. 우리가 먼저 생명평화의 촛불을 듭시다.

잊지 않겠습니다. 가만히 있지 않겠습니다.

2014년 5월 10일

청소년YMCA전국대표자회 일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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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참교육 2014.05.12 10:11 address edit & del reply

    마산이 살아나야 하는데... 그게 가능할런지요?

    이런 뉴스는 KBSㄹ르 비롯한 공중파 찌라시들은 보도조차 하지 않습니다.
    종편보다 더 못합니다.

  2. 수인선 2014.05.12 11:57 address edit & del reply

    천안 촛불추모제 다녀왔어요..
    생각보다 많은 분들 보면서 조금은 위로받는 기분이었습니다.
    날씨가 너무 좋으면 화사한 햇살때문에 미안하고,
    비가 억수같이 내리면 아직 못돌아온 아가들 때문에 밥도 안넘어갑니다.
    어찌 남의 일입니까.. 어찌 남의 아이입니까..
    안산은 이제 이땅에서 가장 아픈곳 중의 하나가 되었습니다.

    촛불을 끄려는자 촛불에 태워질 것입니다.
    고3, 중1 아들딸 둔 사람입니다.
    진실도 선동이되고, 분노한 자가 빨갱이가되는 이런 나라, 절대 내아이들에게 물려줄수 없습니다.

  3. TOP10 2014.05.12 12:41 신고 address edit & del reply

    맘으로나마 함께하고 있습니다.

  4. 마산 김용만 2014.05.12 14:11 address edit & del reply

    응원합니다.^^

  5. 제주바당 2014.05.12 17:20 address edit & del reply

    마산이면 분위기가 쉽지 않았을텐데 애 쓰셨네요.
    너무 많은 사람들이 살수있었는데도 희생된것을 슬퍼하는것조차
    이념으로 몰아가며 비난하는 사람들은 사람의 마음을 가지지 못해서 일겁니다.
    살릴수있었는데 못살리 정부에 화를 내고 야단을 치는것은 너무나 당연한 것인데 말입니다.

  6. 빨갱이척결 2014.05.13 02:49 address edit & del reply

    그럴 시간에 니 부모나 한번더 찾아뵈라..추모 촛불 좋아하고 있네.

    • 김수진 2014.05.13 05:01 address edit & del

      이 정신병자는 머니?? ㅊ ㅊ ㅊ병이다 병

    • 부모 2014.05.13 06:31 address edit & del

      이런 댓글 쓸 시간에 니 부모나 한 번 더 찾아뵈라...'빨갱이 척결' 좋아하고 있네.

    • 잼브이 2014.05.13 08:29 address edit & del

      "빨갱이 척결 당신" 이런 댓글이 당신한테 정말 중요한 것인가요

    • 2014.05.13 09:10 address edit & del

      이 병신은 모야

  7. 김주한 2014.05.13 11:41 address edit & del reply

    난 또 서울 도봉구 창동인줄 알았어. 지방이구만. ㅋㅋ. 가만있지 않겠다? ㅎㅎ

국민에게 앵벌이 하는 무능한 정부, 싫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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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객선의 운항을 관제하는 기관과 각종 응급 구조 기관이 허둥대는 사이에 세월호가 침몰하였습니다. 배가 침몰하는 동안 선장과 운항선원들은 승객들을 대피시키지 않고 빠져나왔습니다. 해경이 도착하기 전에 바로 가까이에 두 척의 유조선이 구조를 위해 대기하였지만 탈출하지 않는 승객을 구조할 수는 없었습니다. 


응급구조 시스템을 헛바퀴를 돌았고 결국 사고 발생후 1주일이 지났지만 추가 생존자 구조는 단 1건도 없고, 시신 인양만 반복되고 있습니다. 행정부의 수반인 대통령은 마치 남의 일인양 공무원들에게 '엄중문책'만 강조하고, 수사도 끝나지 않는 선장에 대하여 '살인자' 운운하며, 책임을 떠넘기고 있습니다. 

 

 


세월호 사고 이틀 후에 목포로 출장을 갔다가 다음 날 실종자 가족이 모여 있던 진도체육관을 다녀왔습니다. 체육관 안쪽과 바깥쪽에는 수천명의 사람들이 몰려있었습니다. 체육관 바닥에는 실종자 가족들과 의료진, 지원팀이 가득하였고, 체육관 바깥 복도와 스텐드에는 기자들로 가득하였습니다. 


진도 체육관에는 실종자 가족, 언론사 기자 및 방송관계자, 자원봉사자가 뒤섞여 있었습니다. 현장을 둘러 본 첫 번째 느낌은 기자가 너무 많다는 느낌이었고, 두 번째는 자원봉사자도 너무 많이 몰리면 오히려 혼란스럽겠다는 생각이들었습니다.

 

국민의 알권리를 빙자한 언론사의 과도한 취재 경쟁 바람직한가?

 

재난과 구호를 총괄 지휘하는 정부기관이 있다면 세월호 사고와 같은 대형 재난 사고가 발생하는 경우 언론 취재도 적절하게 조절하는 것이 필요하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예컨대 월드컵 중계 방송을 할 때 처럼 공동 취재단을 구서하게 하는 것이 좋겠다는 것입니다.

 

실종자 가족 숫자보다 더 많은 취재기자와 방송 관계자들이 몰려들어 있는 것이 구조와 사고 대책 마련에 도움이 될 것 같지 않았습니다. 이곳에 있는 수 많은 언론사 관계자 중에는 각종 오보를 쏟아내면서 실종자 가족들을 위해 마련된 구호물자만 축내는 자들도 적지 않았습니다.

 

자원봉사자도 적정 숫자가 투입되어야 하고 반드시 훈련된 봉사자들이 투입되어야 하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사고 후 여러 날이 지난 후에는 라디오 방송 등을 통해 '무작정 자원봉사는 바람직하지 않다'는 이야기가 국민들에게 전해졌지만, 초기에는 제대로 관리가 이루어지지 않았습니다.

 

이런 엄청난 재난 현장의 자원봉사는 조직화된 봉사자 훈련된 봉사자가 아니면 제대로 실종자 가족을 돕고, 현장 지원을 하기 어렵겠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입니다. 실제로 사고 사흘 째 되는 날 진도 체육관에 갔을 때도 자원봉사자가 부족하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습니다.

 

다만 이 분들이 교대로 일할 수 있는지, 혹은 동시에 투입되는 인원이 적절한지 하는 것은 의문이었습니다. 자원봉사자가 무조건 많이 몰린다고 해서 더 효율적인 현장 관리가 되는 것은 아니기 때문입니다. 실종자 가족 숫자를 파악하고 그 규모에 맞는 자원봉사를 조직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엊그제 뉴스에서 전국에서 1800여명의 자원봉사자가 몰려 들었다는데, 적정 규모를 넘어섰다는 생각을 떨치기 어려웠습니다. 체육관의 규모나 실종자 가족들 숫자를 볼 때, 1800명이 몰리면 자원봉사자들이 먹고, 씻고하는 일만 해도 엄청난 규모이기 때문입니다.

 

 

자원봉사와 구호물품 다다익선 아니다?

 

이런 일이 벌어진 것은 온갖 방송프로그램에서 "자원봉사의 손길이 필요하다", "구호물자가 더 필요하다"고 떠들어댔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사고 상황실에서는 현장 구호가 가장 중요한 일이겠지만, 현장 구조팀 말고도 실종자 가족 지원팀이 있을 것이고, 그 곳에서 일하는 사람들은 '자원봉사자'를 적재적소에 배치하고, 구호물품을 제대로 배분하는 일을 지휘해야 할 것입니다.

 

하지만, 사고 이후 진도 체육관에서 이런 일사불란한 지원이 이루어지지는 않은 것 같습니다. 특히 '구호 물자 부족'을 국민들에게 호소하는 언론과 '공무원'들의 작태는 불쾌하기까지 하였습니다. 현장 구조가 늦어지면서 안타까운 마음으로 지켜보는 국민들 중에는 '기도'만 하고 있을 수 없어, 마음만 모으고 있을 수 없어서 뭐라도 구체적인 도움을 주고 싶은 분들이 많았을 것입니다.

 

너무 안타까운 마음에 어떤 분들은 무작정 사고 현장으로 자원봉사를 떠났고, 어떤 분들은 부족한 생필품이라도 보내야겠다고 마음을 냈을 것입니다. 이웃이 어려움을 당했을 때, 그 아픔과 어려움을 함께 나누고자 하는 국민들의 소중하고 따뜻한 마음을 탓하려는 것이 결코 아닙니다.

 

하지만, 정부와 방송이 이 분들의 선한 마음을 자극하여 마치 앵벌이 하듯이 구호물자를 보내달라고 떠드는 것은 못마땅한 일이었습니다. 정말 우리 정부가 진도 체육관에 모인 겨우 수 백명의 실종자 가족들도 돌볼 수 없을 만큼 '국가 예산'이 부족할까요? 세계 10위 경제대국은 헛말이었을까요?

 

절대 그럴리가 없다고 생각합니다. 제대로 된 정부라면 "국민 여러분 걱정하지 마십시오. 정부가 구호물자를 충분히 공급하고 있습니다."라고 말해야 하고, 언론 역시 "구호 물자는 부족하지 않다"고 방송할 수 있어야  합니다. 물론 실제로 구호물자가 부족하지 않아야 하는 것이구요.

 

하지만, 이 나라 정부 공무원들은 방송에 나와서 "생필품이 부족하다", "진도 군청 사회복지과로 보내달라", "가급적 우체국 택배"로 보내달라고 하는 것은 정말 납득할 수 없는 일이었습니다. 월급쟁이인 대부분의 국민들은 정부가 내라는대로 세금을 내는 성실한 국민들입니다. 세금을 다 냈으면 세월호 사고와 같이 긴급 구호가 필요할 때는 정부가 책임지고 구호 물품이 부족하지 않도록 해야 하는 것 아닐까요?

 

긴급 구호 현장에서 생필품이 부족하다는 방송이 거듭되고 있어도 대통령이나 국무총리는 부끄럽다는 생각이 들지 않는 걸까요? 우리나라 도시마다 있는 대형마트에 가보면 없는 생필품이 없고 소비재가 넘쳐나고 있습니다. 이런 나라에서 겨우 수백명 실종자 가족이 모여있는 진도체육관에 '생필품이 모자란다'는 방송이 나오도록 내버려둔다는 것이 말이나 됩니까?

 

 

 

국민들에게 "생필품 보내달라"는 방송 보고 대통령은 부끄럽지 않은가?

 

납세의무를 다한 국민들에게 "생필품을 택배로 보내달라"고 앵벌이 하는 정부가 용서가 되지 않습니다. 긴급 구호 물품이 부족한 것은 정부가 부자감세를 해서 생긴일이 아닐까하는 생각마저 듭니다. 온갖 방송은 전 국민에게 죄책감을 주입하고, 정부는 국민들에게 '구호물품이 부족하다'고 앵벌이 하는 나라가 정상국가인가요?

 

전국에서 국민들이 보내주는 택배는 수요 예측이 불가능합니다. 어떤 물건이 얼마나 올지 알 수 없기 때문에 어떤 물건은 남아서 처치 곤란이 될 수도 있고, 또 어떤 물건은 계속해서 모자잘 수도 있습니다. 재난 현장이기 때문에 어떤 물자든 무조건 많은 것이 좋은 걸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꼭 필요한 구호물품과 생필품을 적재적소에 공급하기 위해서는 공무원이 수요와 공급을 파악하고 조절할 수 있어야 합니다. 국민들이 마구잡이로 보내주는 구호물품으로는 수요 공급을 조절하기 어렵습니다. 국민들이 세금 꼬박꼬박냈으면 그 돈으로 구호물품을 적재적소에 공급해야  부족하지도 않고, 낭비도 생기지 않습니다.

 

사고 이후 진도체육관을 지키고 있었던 것은 아니지만, 많은 구호 물품은 '실종자 가족'에게만 지급되는 것이 아니라 현장에 있는 기자와 다른 자원봉사자에게까지 무분별하게 지급되고 있다는 것을 확인 할 수 있었습니다.

 

무슨 일로 현장에 와 있는 것인지 알 수 없는 많은 사람들이 실종자 가족을 위해 준비된 구호 물품을 아무 거리낌 없이 주머니가 불룩하도록 챙겨서 왔다갔다 하는 모습도 수 없이 목격되었습니다.


(국민을 이렇게 취급하면서 택배로 구호품 보내달라?)

 

 

이글은 옮겨온 글입니다..

저를 아는 모든 분들께 부탁드립니다.

이 6분짜리 뉴스타파 동영상 좀 주변의 모든 사람들에게 퍼뜨려주십시오..

가족들의 비통과 울분, 그리고 정부의 무능과 언론 조작질을 KBS와 MBC 를 보며 답답해만 하고있는 전 국민에게 알려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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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선비(sunbee) 2014.04.23 10:32 신고 address edit & del reply

    황제노역, 무인 비행기 등 부도덕, 무능 정부 보도를 덮어버리는 의도된 언론보도 아닐까요?ㅎㅎ

    • 이윤기 2014.04.23 15:41 신고 address edit & del

      예 혼란만 가중시키는 일이라고 보여집니다.

  2. 김용만 2014.04.23 12:36 address edit & del reply

    좋은 글. 감사합니다. 충분히 고려되어야 할 사항이라고 생각됩니다.

    • 이윤기 2014.04.23 15:43 신고 address edit & del

      격려 감사합니다.
      우리는 세금을 꼬박꼬박 냈다는 사실,
      대통령과 장관, 권력자들...공무원들은 이런 사실을 기억하지 못하는 것 같습니다.

      오마이뉴스 기사 제목처럼 "애국심만 바라지 말고, 애민심 좀 보여줬으면 좋겠습니다."

  3. 초원길 2014.04.23 18:27 신고 address edit & del reply

    참.. 답답합니다
    원칙과 상식이 통하는 사회가 되었으면 해요..
    정부에게 기댈수도 없고...
    참...

  4. 우리 해경이 2014.04.23 20:37 address edit & del reply

    안내여승무원이 어떻게해야할지 선장과 선박직승무원에게 10차례에 걸쳐서 문의 할때 안내방송으로 갑판에 나가라는 말이라도 하고 선장과 선박직승무원이 도망갔더라면 비난 받지 않았을 겁니다 하다못해 퇴선벨이라도 누르고 갔더라면 하는 안타까움이 듭니다
    승객들이 10시이후에 우르르 몰려나와서 대참사였습니다
    어차피 배는 침몰할 운명이었습니다
    답답합니다
    그것도 안되면 8시 50분쯤 학생이 해경한테 전화했을때 해경이 학생들이나 선생님 교감선생님한테 갑판으로 나와서 대기하라는 말이라도 전해줬으면 전부다 살수 있었을것입니다
    해경이 공무원으로서 서비스정신을 조금이라도 발휘했다면 하는 생각이 듭니다

  5. Experience Degree 2016.05.09 18:01 address edit & del reply

    여객선의 운항을 관제하는 기관과 각종 응급 구조 기관이 허둥대는 사이에 세월호가 침몰하였습니다.

자전거 국토순례, B급 로드가이드가 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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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월 27일부터 8월 3일까지 7박 8일 동안 자전거 국토순례를 다녀왔습니다. 그동안 아이들 이야기만 여러편 포스팅하였는데요. 오늘은 제 이야기를 한 번 해 보겠습니다.

자전거 국토순례는 이번이 세 번째입니다. 2007년 지금 고3을 보내고 있는 첫째 아이가 중학생이었을 때, 마산을 출발하여 부산 - 울산 - 경주 - 대구 - 구미 - 김천 - 대전 - 천안 - 평택 - 부천 - 임진각으로 가는 620km 국토순례에 참여하였습니다. 

전국에서 80여명의 청소년들이 참가한 행사였는데, 방문 지역마다 '통일자전거 모금 캠페인'을 진행하면서 임진각까지 자전거로 620km 국토 종주를 하였습니다.

당시 YMCA는 이 캠페인 통해 매년 1억원을 모금하여 1000대의 자전거를 북한에 지원하였으며 3년 동안 3000대의 자전거를 지원하였습니다.


장거리 자전거 국토순례에 재미를 붙여 이듬해 겨울에는 수능시험을 마친 고3 아이들, 그리고 대학생들과 함께 제주도 자전거 국토순례를 다녀왔습니다. 3박 4일 동안 250여 km를 달려 제주도 일주를 마치고 다음날은 새벽부터 한라산 겨울산행을 하고 돌아왔습니다.

어려서부터 자전거 타기를 좋아하였고, 두 번의 국토순례 참가 후에 한 참 동안 자전거를 즐겨탔습니다만, 타던 자전거를 몽땅 도둑맡고 나서는 2~3년 동안 좀 시들해졌습니다. 세 번째 자전거 국토순례에 참가하게 된 것은 제가 속해있는 YMCA에서 전국적으로 자전거 타기 운동을 본격적으로 한 번 해보자는 결의를 하는 과정에 저도 참여하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또 개인적으로는 중학교 2학년이 된 둘째 아이와 자전거 국토순례를 함께 하고 싶은 마음도 있었습니다. 2007년에 첫째 아이가 중학교 2학년이었을 때 임진각까지 국토순례를 다녀온 경험이 있이 때문에 둘째와도 같은 시기에 비슷한 경험을 함께 하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마흔 여섯 나이 탓만은 아닐텐데 이번 자전거 국토순례가 4년 전에 비하여 더 힘들었습니다. 국토순례를 앞두고 주말마다 하루에 20~30km씩 자전거를 타면서 준비를 하였지만 막상 매일 100km씩 달리는 국토순례를 시작하니 몸 곳곳에 이상이 생기더군요.



그래도 꾸준히 등산도 다니고 주말마다 조금씩 자전거 타기 연습을 해둔 덕분인지 다리 근육이 뭉치거나 아파서 힘들지믄 않았습니다. 작년부터 왼쪽 무릎에 약간의 통증이 있어 장거리 등산을 자제하고 있었는데, 자전거 연습이 도움이 되었는지 걱정하였던 무릎 통증도 없었습니다.

물론 장거리 자전거 타기를 할 때마다 찾아오는 엉덩이 통증은 어쩔 수 없는 노릇이지요. 주행 중에 자주 엉덩이를 들어주고 했습니다만, 셋째 날부터는 엉덩이가 아파오기 시작하더군요. 땀을 많이 흘리니 여섯째 날부터는 약간 짓무르기도 하였지만 큰 탈 없이 마무리 할 수 있었습니다.

의외로 가장 큰 통증은 어깨 통증이었습니다. 4년 전에도 장거리 국토순례를 해봤기 때문에 어깨 통증이 만만치 않다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이번에는 유독 심하였습니다. 쉬는 시간마다 스트레칭을 해주고 자전거를 타면서도 자주 어께를 풀어주었지만 어께 통증은 사라지지 않더군요.



세 번째 국토순례, 나이 탓은 아닌데...어깨 통증으로 고생

임진각까지 국토순례는 무사히 마쳤는데, 집으로 돌아 온 그날 밤에 너무 어께가 아파서 잠을 제대로 잘 수 없을 만큼 힘이 들었습니다. 결국 다음날 아침에 한의원에 가서 침을 맡고 뜸을 뜨고 물리치료를 받은 후에야 통증이 가라앉았습니다. 제가 웬만해서는 병원을 잘 가지 않는 사람인데, 아침에 일어나서 아무리 스트레칭을 해도 어께 통증이 사라지지 않아 도저히 견딜 수가 없어 한의원을 갔었지요.

사실, 4년전 국토순례를 갔을 때와 비교하면 제가 맡은 역할이 달라진 탓도 있습니다. 그때는 자전거를 전문으로 타는 대학생 로드가이드들이 있었고 아이들 생활지도를 해주는 지도자들도 있었습니다. 제가 맡은 일은 홍보였기 때문에 낮에는 아이들과 함께 자전거를 타고 저녁 시간에는 글을 쓰고 인터넷을 통해 홍보하는 것이 전부였습니다. 한 마디로 제 한 몸만 잘 건사하면 되었습니다.

그런데 올 해는 사정이 좀 달라졌습니다. YMCA 실무자들이 로드가이드 역할을 맡았기 때문에 그냥 혼자서 자전거만 묵묵히 탈 수 없었습니다. 광주에서 참가한 성인 참가자 중에서 4분과 꾸준히 생활자전거 운동을 펼쳐 온 몇몇 지역 YMCA 실무자들이 전문로드가이드 역할을 맡아주었습니다만 저 같은 B급 가이드도 역할을 맡아야 했기 때문입니다.



도심 구간을 통과할 때는 가끔씩이지만 대열을 파고드는 버스나 승용차를 막는 역할도 해야 했고, 40여명으로 편성된 1개팀의 도로 주행을 리더하는 역할도 맡아야 했습니다. 주행하는 대열의 앞위를 오가면서 참가자들을 독려하는 역할, 출발, 정지, 서행 등 주행 상황을 큰 소리를 전달하는 역할 그리고 자전거 체인이 빠지거나 하는 이상이 있으면 응급조치를 하는 역할 등 입니다.

처음엔 이런 역할들이 재미있더군요. 자전거 체인을 끼워주는 동안 순식간에 전체 대열이 지나가 버립니다. 얼른 본 대열의 제 자리로 찾아가려면 힘차게 패달을 밟아 전속력으로 주행 대열을 추월해서 달려 나가야 하는데 이때 느끼는 짜릿함 같은 것이 있습니다.

그런데 이게 하루에 20 여회 이상 반복되니 날짜가 지날수록 힘 들어지더군요. 저는 B급 로드가이드였기 때문에 애초에 체력이 모자라서 뒤쳐지는 아이들을 밀어주는 역할은 맡지 않았는데, 뒤쳐지는 마산 참가자들을 다른 지역 실무자들에게만 맡길 수 없어 나중에는 그 역할도 몇 차례 맡았습니다.

맨 후미까지 뒤 쳐진 아이를 독려하고 언덕 길에서는 한 손으로 등을 밀어주면서 주행하는 것이 체력적인 부담되더군요. 정읍에서 공주로 가던 날, 공주에서 평택으로 가던 날 마산 참가자 세 명을 번갈아 가면서 밀어주었는데, 마지막에는 저도 많이 지치더군요.



A급과 B급의 차이, 복장만 봐도 다르다

뭐 어쨌든 이번 자전거 국토순례를 하면서 나름 로드가이드 데뷔를 한 셈입니다. 아직은 여전히 B급 로드가이드이지만 말입니다. A급과 B급이 뭐가 다르냐구요. 앞서 소개한 김홍빈 대장 같은 분은 AA급 입니다. 이 분들은 지치지 않는 체력으로 대열의 선두와 후미를 하루 종일 질주하면서 교차로마다 차량을 통제하는 분들입니다.

그 외에 평소에 자전거를 꾸준히 탔던 YMCA 실무자들은 A급 로드가이드 입니다. 그리고 저는 B급입니다. A급과 B급은 한 눈에 알아 볼 수 있습니다. 우선 복장과 자전거가 다릅니다. 자전거를 늘 타던 분들은 자전거 탈 때 입는 옷과 헬멧, 장갑 그리고 무엇보다 자전거가 다릅니다. 

B급인 저는 이번에 겨우 입문형 산악자전거(엘파마 600D)를 구입하여 길들이기도 되지 않은 자전거를 타고 있고 유니폼과 헬멧은 모두 인터넷 최저가 제품입니다. 물론 외형에서만 차이가 나는 것은 아닙니다. 자전거 주행과 가이드 능력에서는 더 큰 차이가 납니다. 


 

A급 로드가이드들은 한 손으로 자전거를 타면서 앞 뒤를 돌아보고 대열을 독려하면서도 핸들이 전혀 흔들리지 않습니다. 저는 앞을 보고 달릴 때는 두 손다 놓고 갈 수 있지만, 뒤를 돌아보며 달릴 때는 한 손으로만 주행하면 핸들이 흔들립니다.
어쩔 땐 심하게 흔들려 넘어질 뻔한 일도 있습니다. 짧은 오르막 길을 만나면 뒤쳐지는 참가자들을 뒤에서 밀어주면서 올라갈 수 있지만, 긴 오르막 길을 만나면 겨우 제 몫을 해내는 정도입니다.
저 한 몸 잘 건사해서 무사히 임진각까지 갈 수 있을 정도의 능력을 가진 사람이 능력을 넘는 과도한 역할을 맡은 것이지요. 그래도 4년 전에 대열의 맨 후미에 유유자적하면서 달릴 때보나는 몸은 힘들고 긴장은 높았지만 훨씬 흥미있는 시간이었습니다.

자전거 국토순례? 이게 해보면 마약같은 중독성이 있는 것 같습니다. 벌써 올 겨울이 기다려집니다. 이번 겨울에 또 한 번 장거리 자전거 달리기 프로그램 진행 계획을 세우는 중 입니다.



<관련 포스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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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민남매 2011.08.20 08:27 address edit & del reply

    글을 읽으니 아..이런 힘든 점도 있겠구나..현실감 팍팍 느껴집니다..ㅋㅋ
    민주아빠에게 이 글을 보여주니 고개를 살래살래 흔드네요..민남매가 좀 더 자라면 같이 참가하겠노라던 아빠의 모습은 온데간데 없네요..ㅋㅋ

물건 잃어버려도 절대 안 찾아가는 아이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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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전거 국토순례 이야기 이어갑니다. 초등5학년부터 고등학생들까지 청소년들과 함께 7박 8일을 지내면서 가장 안타까웠던 것은 바로 자기 물건을 챙기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자전거 국토순례의 특성상 매일 매일 숙박장소가 바뀌는데, 하루밤 자고나면 수 많은 '분실물'이 생긴다는 겁니다. 숙박 장소가 아니어도 아이들이 머물렀던 장소에는 반드시 두고가는 물건이 생깁니다. 그런데 더 안타까운 것은 아무리 찾아도 물건 주인이 나타나지 않는 경우가 부지기수라는 것입니다.

아이들이 숙소를 빠져나오면 진행팀 실무자들이 커다란 비닐봉투를 들고 숙소 구석구석을 둘러보며 아이들이 흘리고 간 물건을 담아 나옵니다. 양말, 수건 같은 것은 기본이고 팬티, 티셔츠, 바지, 샴푸 같은 생활용품은 수 없이 버리고 가더군요. 

어떤 날은 매일매일 자전거 탈 때 입는 단체복을 버리고 가는 경우도 있었습니다. 아침마다 국토순례 출발을 앞두고 아이들이 모두 모이면 분실물을 꺼내놓고 '주인찾기'를 하는데 신기하게도 잃어버린 물건은 잔뜩인데 주인은 나타나지 않는다는 겁니다.

아이들이 스스로 분실물을 찾아나서거나 금새 주인이 나타나는 품목은 딱 세가지 뿐입니다. 바로 휴대전화, 자전거 헬멧 그리고 장갑입니다. 다른 물건은 잃어버려도 찾아다니지 않는 아이들이 휴대전화를 잃어버리면 진행실무자들에게 분실 사실을 알리고 스스로 찾아다닙니다.

또 자전거 탈 때 없어서는 안 되는 헬멧과 장갑을 아무곳에나 두고 다니는 아이들이 적지 않았는데, 다행히 출발을 앞두고 주인을 찾으면 어김없이 나타나서 챙겨갑니다. 헬멧과 장갑이 없으면 자전거를 탈 수 없으니 아무리 귀찮아도 두 가지는 챙기지 않을 수 없었던 것 같습니다.

 

아이들에게 소중한 물건은 휴대전화 뿐?

그러고보면 아이들이 정말 애착을 가지고 소중히 여기는 물건은 '휴대전화' 밖에는 없는 셈입니다. 가만히 생각해보니 아이들이 국토순례에 가지고 온 물건들 중에 여분이 없고 동료들에게 빌릴 수도 없는 물건은 바로 휴대전화와 헬멧, 장갑 뿐이더군요.


그 외 대부분은 자기 물건을 챙기지 않아도 별로 불편할 일이 없어보였습니다. 수건, 양말, 속옷, 티셔츠 같은 물건들은 여유분을 충분히 챙겨왔기 때문에 한 번 잃어버리고 나면 실무자들이 들고와서 주인을 애타게 불러도 찾아갈 생각을 하지 않습니다.

또 아이들 대부분은 스스로 자기 짐을 챙겨오지 않았기 때문에 세면도구 같은 것들은 한 번 잃어버리고 나면 자기물건인지 아닌지 구분도 할 줄 몰랐습니다. 잃어버려도 별로 아쉬울 것도 없습니다. 다른 아이들이 가지고 온 샴푸, 치약 같은 것들이 넉넉하니 빌려쓰면 그만입니다.

그러다보니 아이들이 자기 물건이라고 애착을 가지는 것은 휴대전화가 유일할 수 밖에 없었던 것이지요. 휴대전화를 제외한 어떤 물건도 아이들에게는 애착관계가 형성되지도 않았고 잃어버리지 않고 챙겨야 할 만큼 소중한 물건도 아이었던 것입니다.



유치원에서부터 단체 활동을 할 때는 자기물건에 이름을 써라고 가르치고, 국토순례를 시작하는 첫날 네임펜과 매직펜을 나눠주며 이름을 써라고 그렇게 일렀건만 아이들이 버리고 간 물건에는 대부분 이름이 씌어있지 않았습니다. 그러니 주인이라고 나서지 않으면 찾아줄 수 없는 것이지요. 국토순례를 마치고나니 이렇게 아이들이 버리고 간 물건이 커다란 상자에 한 박스가 넘더군요.

의식주 생활 교육도 한심한 수준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셋째 날 아이들이 샤워를 하고 그날 입었던 유니폼을 세탁하여 탈수를 시키도록 생활지도를 하였습니다. 아이들 샤워가 끝나갈 무렵 탈수를 할 수 있는 세탁기가 설치된 곳으로 갔더니 줄을 길게 늘어서서 기다리는 아이들이 수두룩 하였습니다.

빡빡한 일정 때문에 숙소에 도착하면 밥 먹고, 씻고, 세탁하고 휴식을 취하는 시간이 빠듯한데 길게 줄을 서서 기다리는 것이 안타까워 세탁기가 설치된 곳으로 가서 어찌된 일인지 살펴보았습니다.

가까이 가보니 참으로 어이없는 광경이 벌어지고 있었습니다. 아이들은 자전거 타면서 입었던 상, 하의 한 번을 놓고 탈수 버튼을 눌러놓고 저절로 세탁기가 멈출 때까지 기다리고 있는 것입니다. 자동세탁기에 탈수 버튼을 누르고 저절로 멈출 때까지 기다리면 대략 8분 정도가 걸립니다. 



댁의 아이는 세탁기 돌릴 줄 알까요?

자전거 국토순례 참가자가 160여명인데 한 사람당 8분씩 탈수를 하면 하룻 밤을 꼬박 새워도 모두 탈수를 시킬 수 없는 시간입니다. 그런데 줄을 서서 기다리는 아이들 중 아무도 이 상황이 잘못되었다는 것을 알지 못하더군요. 그냥 줄을 서서 기다리기만 할 뿐이었습니다.

어른들이야 다 아시겠지만, 자전거 탈 때 입는 유니폼은 쿨맥스 소재로 되어있기 때문에 탈수기에서는 1분 정도만 돌려도 수분이 대부분 빠져나갑니다. 따라서 1분씩만 돌려도 충분할 뿐만 아니라 용량이 큰 세탁기였기 때문에 한꺼번에 10명, 20명 분을 넣고 돌려도 탈수하는데 아무런 문제가 없습니다.

40분 동안 세탁기 앞에서서 줄을 서서 기다리는 아이들 세탁물을 남, 여로 구분하여 한 번에 20여명씩 넣고 2분씩 탈수를 시켜서 보냈습니다. 다음 날부터는 아예 조별로 모아서만 탈수를 하도록 시켰지요. 옷 한 벌씩 넣고 8분씩 탈수하는 아이들을 보며 한심한 일이라고 생각했는데 저희 아들도 별로 다르지 않더군요.

나중에 중학교 2학년인 저희 아이와 이야기를 해 보았는데 녀석도 세탁기 사용법을 모르더군요. 집에서 밥 하고 라면 끓이고 주말마다 청소는 해봤지만 빨래는 한 번도 해 본일이 없다는 겁니다. 밥도 안 해보고 청소기도 사용해 본일이 없는 아이들이 더 많을거라고 하더군요.

아이들이 쓴 소감문을 읽어봐도 이런 문제의식을 가진 아이들은 없습니다. 어려운 국토순례를 마친 아이들 대부분은 힘든 일을 이겨 낸 경험을 바탕으로 공부를 열심히 하겠다거나 자기의 꿈을 이루겠다는 이야기들이 대부분이었지요. 뿐만 아니라 배가 고픈 경험도, 목이 마른데 물을 실컷 먹을 수 없는 경험도 이번이 난생 처음이라는 아이들도 수두룩 하였습니다.

일주일이라는 짧은 기간 동안 아이들의 몸에 베인 삶의 습관을 바꿀 수는 없다는 현실적인 한계를 알고 있으면서도 자기 물건도 못 챙기고, 세탁기 조차 사용할 줄 모르는 아이들을 보면서 느끼는 안타까움을 쉽게 지울 수는 없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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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latte 2011.08.12 11:36 address edit & del reply

    요즘 아이들은 아닌거 같습니다. 제가 초등학교 다닐적에도 분실물 나오면 '어, 내꺼네....' 하고선 안들고 가는 아이들이 몇몇 있었거든요. 공짜로 얻는 듯한 물건은 원래 그렇게 애착이 없어지는가 봅니다.
    공짜는 아니지만 말입니다. 아직 아이들 눈에는 공짜로 보이거든요. 공짜가 아니라는걸 사람들이 알아야 할텐데 공짜라고 착각을 하니 참 큰일입니다 그쵸?

    • 이윤기 2011.08.13 10:54 신고 address edit & del

      오랜만입니다. 휴가는 다녀오셨나요? 전 국토순례를 휴가 삼아 다녀왔습니다.

      우리가 소비에 있어서 지나치게 풍요로운 것은 아니가하는 생각을 할 때가 많습니다.

  2. 121 2011.08.12 15:05 address edit & del reply

    남 얘기가 아니고 바로 당신의 가정! 자식 이야기지요... 보세요,,한국부모들이 자식을 얼마나 바보같이 무식하게 키우는지요???

    • 이윤기 2011.08.13 10:55 신고 address edit & del

      네 아이들에게 고기 잡는 법을 가르쳐야 한다는 생각을 하곤합니다.

  3. 저녁노을 2011.08.12 16:14 address edit & del reply

    학교현장에서도 마차가지 입니다.
    풍족한 세상을 살다보니..잃어버리면 또 ㅅㅏ 주니 무슨 아쉬움 있겠습니까.
    정말...큰일입니다.

    • 이윤기 2011.08.13 10:56 신고 address edit & del

      아이들이 부족함, 모자람을 경험해 봐야 하는 거군요.

  4. 이종윤 2011.08.12 17:55 address edit & del reply

    저희마산팀은 항상 팀끼리모아서 다같이 세탁하고 다같이 탈수했는데ㅎ 우리마산팀이 최고네요!

    • 이윤기 2011.08.13 10:56 신고 address edit & del

      그래 니들은 잘 했어 ^^ 멋져 부렀어 ^^

도로를 주행하는 자전거는 차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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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전거 국토순례, 자동차 운전자 배려 꼭 필요

지난 7월 27일부터 8월 3일까지 7박 8일 일정으로 전남 강진에서 출발하여 임진각까지 620km를 달리는 자전거 국토순례에 참여하였습니다.

오늘은 자전거 국토순례에 참가하면서 느낀 자동차 운전자들의 태도에 관하여 함께 생각해보겠습니다.

이번 자전거 국토순례에는 전국에서 초등 5학년에서부터 60대까지 143명의 참가자와 20여명의 진행팀이 함께하였습니다.

워낙 많은 사람들이 함께 자전거를 타고 국토순례를 하다 보니 경찰의 협조를 받았지만 교통 소통에 적지 않은 영향을 주었습니다.

왕복 4차선 이상 도시외곽 국도를 따라 자전거를 달릴 때는 하위차선 1차로를 자전거 국토순례단이 차지하고 달려도 교통소통에 큰 영향을 주지는 않았습니다.

그러나 왕복 2차선 국도의 경우나 불가피하게 도심지역을 통과해야 하는 경우에는 어쩔 수 없이 다소간 교통정체를 일으킬 수밖에 없었습니다.


차량소통에 영향을 최소화하기 위하여 교통경찰 외에도 5대의 행사 진행 차량과 20여명의 진행요원들이 안전한 자전거 주행과 차량 소통을 위하여 배치되었지만 복잡한 도심 구간에서 교통정체를 완전히 피할 수는 없었지요.

그런데 이런 도심 구간을 지나면서 적지 않은 운전자들의 난폭한 대응을 경험하면서 정말 자전거에 대한 배려와 인식이 부족하다는 것을 절실하게 느낄 수 있었습니다. 우선 많은 운전자들은 자전거를 ‘차’라고 인식하지 않았습니다.

심지어 "자전거를 끌고 왜 도로에 들어와서 X랄이야 " 하고 소리를 지르거나 "자전거 도로도 없는데 왜 여기(시내) 들어와서 차량 정체를 일으키냐?"고 화를 내는 운전자들을 많이 만났습니다.

자전거는 도로교통법상 명백히 ‘차’로 분류되어 있습니다만, 대부분의 운전자들은 도로를 주행하는 자전거를 차로 인정해주지 않았습니다. 차가 막히면 당연히 앞차가 빠질 때까지 기다리는 운전자들이(간혹 얌체 짓을 하는 운전자들이 있지만) 자전거가 느린 속도로 도로를 주행하거나 혹은 도로에 정차해 있으면 조금도 망설이지 않고 옆으로 끼어 들어 앞쪽으로 나가려 합니다.

버스 운전기사들도 위험하게 운전하는 것은 마찬가지입니다. 자전거가 도로 가장자리 차선으로 대열을 지어 주행하고 있는데도 그 사이를 비집고 버스정류장 진입을 시도하더군요. 이런 위험천만한 상황은 한 두 번이 아니었습니다. 진행요원들이 자전거와 몸을 던져 버스를 막아야하는 일이 여러 번 있었답니다.

                              



또 아찔한 상황이 자주 발생하는 곳은 우회전하는 차량들과 마주칠 때입니다. 자동차보다 느린 자전거를 앞질러 1차선으로 들어온 운전자들이 자전거 대열을 끊고 우회전을 시도하는 위험한 상황도 겪었습니다.

진행요원들이 사전에 우회전을 시도하는 차량 앞을 막고 인사를 하고 협조를 당부하여도 자동차로 밀고 들어오거나 욕을 퍼붓는 경우도 여러번 겪었습니다.

물론 자전거가 대열이 다 지나갈 때까지 기다려주고 박수를 쳐 주거나 경적을 울리며 격려해주는 운전자들도 많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다수는 아니지만 도로를 주행하는 느린 자전거를 용납 못하는 운전자들이 많이 있었습니다.

이분들은 시속 60km로 달리는 자동차의 빠른 속도가 도심 도로를 주행하는 '정상'(?) 속도라고 생각하는 분들이었습니다. 이런 분들은 시속 10~20km로 도심 도로를 달리는 자전거의 느린 속도를 받아들이지 못하시더군요.

자전거가 자동차를 대신할 수 있는 친환경 미래 교통수단으로 정착되려면 자전거가 자동차와 함께 도로를 주행할 수 있는 도로교통법상의 ‘차’라는 인식이 폭넓게 확산되어야 할 것 같습니다.

도로에서 자전거는 자동차에 비하면 정말 힘없는 약자입니다. 자동차가 가까이 다가오면 생명의 위협을 느낄 수 밖에 없습니다. 좋은 도시는 보행자가 걷기 좋은 도시, 안전하게 자전거를 탈 수 있는 도시라는 사실 잊지 말았으면 좋겠습니다.

운전자 여러분 도로는 자동차의 전유물이 아니라 자동차와 자전거가 같이 사용하는 곳이라는 점 꼭 기억해주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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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아니그럼 2015.04.21 13:00 address edit & del reply

    아니 그럼 버스는.. 정류장에 손님 내려주지도 못하고 멍때리고 서있어야하나요. 그것도 문제인듯..

    • 이윤기 2016.09.12 10:10 신고 address edit & del

      자전거 대열을 끊지 않고 서행하면서 정류장으로 들어가면 서로 안전하게 비켜갈 수 있을겁니다.

  2. 그들만의 축제 2016.05.17 13:50 address edit & del reply

    누구를 위한 축제입니까. 자전거 한 대만으로도 운전자 입장에선 아찔한데 저렇게 다니면 참... 덕분에 업무에 차질을 빚는 사람들은 저런 행사를 위해서 희생하는건 당연한 건가요? 굳이 자전거 도로도 잘 구획되지 않는 나라에서 저런 행사를 하다니 취지는 좋을 지 몰라도 그에 따른 피해나 불편 또한 생각해 보시길.

    • 이윤기 2016.09.12 10:08 신고 address edit & del

      이렇게라도 자전거를 타고 다녀야 자전거 도로가 만들어지겠지요.

      왜 도로 주행의 우선권이 항상 자동차에 있어야 하는 걸까요?

  3. 로드타는자 2016.09.07 00:26 address edit & del reply

    권리만 말하고 있네요.
    자전거가 차로 인정되는.부분은!
    마지막 차선의 1/3을 넘지 않는 일렬주행뿐입니다.
    저위의 사진은 단체로 불법을 자행한
    셈이죠

    • 이윤기 2016.09.12 10:09 신고 address edit & del

      불법?
      혹시 법이 잘못된건 아닌가요?

      법을 고쳐서 불법을 저지르지 않게 해주면 좋겠네요.

5학년 초딩들도 강진 -임진각 620km 달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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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YMCA 자전거 국토순례에는 전국에서 143명이 참가하였습니다. 그중 전국 최연소 참가자 3명은 모두 마산에서 참가한 초등학교 5학년 아이들입니다.

세 명은 모두 YMCA 유치원인 아기스포츠단 출신들이고 부모님이 모두 YMCA 생활협동운동 모임인 등대 촛불로 참가하는 공통점이 있습니다.

오늘은 전국 최연소 참가자인 초등 5학년 세 명의 국토순례 이야기를 전해드리겠습니다. 소연이, 건모, 승재는 모두 초등 5학년인데 여자 아이인 소연이 이야기부터 들려 드리겠습니다.


묵언 수행 하듯 자전거를 탄 소연이

소연이는 국토순례 둘째 날부터 우리팀의 마스코트로 등장하기 시작하였습니다. 애초부터 소연이 체력으로 자전거 국토순례를 해낼 수 있을까 하는 걱정이 좀 있었는데 첫날부터 자꾸만 뒤쳐지기 시작하더군요. 그래서 둘째 체력이 뒤쳐지는 소연이는 둘째 날부터 전체 대열의 맨 선두에서 진행대장과 함께 자전거를 탔습니다. 

가끔씩 가파른 오르막길이 나타나면 선두 대열에서 뒤쳐져 후미로 밀려날 때도 있었지만, 웬만해서는 포기하지 않고 계속 자전거를 탔습니다. 전체 대열의 맨뒤로 쳐졌을 때도 "버스 타고 갈래?" 하고 물으면 말없이 고개만 옆으로 살레살레 흔들곤 하였습니다. 



늘 전체 대열의 선두에 있었기 때문에 소연이는 사진에 많이 찍혀습니다. 진행대장을 포함하여 자전거 국토순례단 전체를 찍은 사진에는 어김없이 소연이 모습이 들어있기 때문입니다. 자전거 타는 것이 익숙하지 않고, 체력이 모자라는 아이들을 선두에 새워두고 집중 관리한 덕분에 소연이는 사나흘이 지나면서부터 경사에 맞춰기어조작도 익숙하게 해내더군요.

작은 키에 몸집 보다 큰 자전거를 타고 웬만해서는 포기하지 않는 소연이 모습은 모든 참가자들에게 깊은 인상을 심어주었습니다. 언니, 오빠들, 어른들, 선생님들 모두가 소연이를 볼 때마다 "소연아 힘내 !", "소연이 화이팅!" 하고 응원해주었습니다. 



사흘 째 되는 날 아침에 만났더니 새까맣게 탄 얼굴, 콧잔등에 허물이 벗겨지고 있더군요. 그래도 힘들다고 징징거리는 일은 한 번도 없었습니다. 소연이는 마치 묵언 수행하는 수행자처럼 말 대꾸도 하지 않고 자전거를 탔습니다. 누가 물어도 말로 대답하지 않더군요. 꼭 필요한 말만 빼고 모든 의사표시는 고개를 끄덕이거나 좌우로 흔드는 것이 전부였습니다. 

말할 기운도 아껴서 자전거를 타는데 온 힘을 쏟아붓고 있는 것 같더군요. 그렇다고 끝까지 자전거를 타겠다고 고집을 피우지도 않습니다. 자신의 모든 것을 쏟아붓고 나면 미련없이 '버스'를 타기도 하였습니다. 군산에서 공주로 가던 날 저와 함께 대열 맨 후미로 쳐졌습니다. 쏟아지는 폭우를 맞으며 1시간 넘게 자전거를 탔습니다.



목적지 공주 한옥 마을을 10여km 남겨 두었을 때 버스를 타겠다고 하더군요. 더 이상 다른 말을 할 수 없었습니다. 이미 자신이 가진 모든 에너지를 온전히 자전거를 타면서 소진해 버린 아이가 이젠 '버스'를 타야겠다고 하는데 10km 밖에 안 남았으니 끝까지 가보자는 말을 할 수가 없었습니다.

소연이는 마치 자전거로 수행을 하는 사람처럼 보였습니다. 어떨 때는 '한비야'씨가 연상되기도 하였습니다. 딱히 어떤 점이 닮았다고 표현할 수는 없는데, 초등 5학년 밖에 안 된 녀석이 힘들다는 말 한 번 하지 않고 묵묵히 패달을 밟는 모습을 보며 여러 번 '한비야'씨를 떠 올렸습니다.

소연이가 미소를 보여주고 입을 열기 시작한 것은 임진각을 하루 남겨 둔 부천YMCA에 도착하였을 때입니다. 다음날 오전에 55km만 달리면 자전거 국토순례가 끝나는 날 이었지지요. 저녁 식사를 하러 식당에 온 소연이는 언니와 이야기를 나누고 웃음을 날리기 시작하더군요. 초등 5학년 여자 아이의 모습을 조금씩 되찾아가기 시작하였습니다.       



누구라도 1분 안에 친구를 만드는 말라깽이 건모

또 다른 초등 5학년 1명은 건모입니다. 건모는 겉 보기에 말라깽이 입니다. 눈으로만 보면 저 몸으로 과연 임진각까지 갈 수 있을까 싶은 생각을 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실제 건모는 2월생으로 일찍 입학하여 5학년이 되었기 때문에 나이로만 따지면 4학년들과 동갑입니다.

초등 5학년 3인방 중에서도 그야말로 최연소 참가자입니다. 건모는 힘들면 힘들다, 지치면 지친다고 자기 감정을 솔직하게 드러내는 아이입니다. 넘치는 에너지를 가진 아이입니다. 자전거를 타고 가파른 언덕길을 넘어가면 힘이 닿는 만큼 자전거를 타고 올라갑니다. 그러다가 힘이 부치면 그냥 내려서 자전거를 끌고 갑니다.



가파른 언덕길에서는 자전거를 타고 올라가는 속도도 별로 빠르지 않습니다. 그렇지만 내려서 자전거를 끌고 가는 것보다는 그래도 타고 가는 것이 빠릅니다. 건모는 자전거를 끌고 오르막길을 오르다가도 힘이 좀 모아졌다 싶으면 다시 자전거를 타고 올라갑니다. 힘들다는 이야기를 수 없이 하고 몇 킬로 남았냐는 질문도 수백 번 하였지만 '버스'를 타겠다는 이야기는 한 번도 하지 않았습니다.
 

건모는 에너자이저입니다. 자전거 탈 때는 힘들어 죽겠다고 했다가도 휴식 시간이 되면 가만히 앉아 있지 못합니다. 조장이나 당번을 따라 생수나 음료, 간식을 받으러 함께 다니고, 다른 참가자들과도 허물없이 어울리는 아이입니다. 마치 다람쥐처럼 가벼운 모습으로 여기저기 뛰어다니며 사람들과 어울리더군요. 건모는 처음 만난 사람과도 금새 친해지는 특별한 능력을 가지고 있습니다.



평택에서 찜질방을 숙소로 사용하던 날, 사우나 냉탕에서 중, 고등학생 형들이랑 어울려 물장난하고 노는 초딩은 건모 밖에 없었습니다. 구김살 없는 건모는 먹을 것이 있는 곳을 잘 찾아다니고 남는 간식이 있으면 재빠르게 하나라도 더 챙겨먹는 생존 능력이 탁월한 아이입니다. 늘 에너지가 넘치기 때문에 힘들어 지쳐있는 사람들에게 웃음과 에너지를 나눠주는 역할도 많이 하였습니다.

중학생 같은 초딩 5학년 승재

성재는 키가 좀 작은 것만 빼고나면 중학생 형들과 비교해도 체격이나 체력으로는 조금도 뒤쳐지지 않았습니다. 힘으로도 중학생들에게 별로 밀리지 않았습니다. 결국 뭘 해도 중학생 형들에게 뒤쳐지는 일이 없었습니다.

광주시내를 지나 518국립묘지로 가던 날 빗길에 미끄러져 넘어져는데 헬멧이 깨져버렸습니다. 헬멧을 쓴 덕분에 다친 곳은 없었지만 초등 5학년이면 놀랄만도 한데 이 녀석은 어른처럼 툴툴 털고 일어나서 그냥 자전거를 타고 달리는 겁니다. 휴식 시간에 넘어질 때 부딪힌 곳이 아프다는 이야기는 했지만 그 때문에 힘들다는 이야기는 젼혀 하지 않았습니다. 




승재는 강진을 출발하여 임진각까지 가는 동안 한 번도 버스에 타지 않았습니다. 가파른 오르막길이 나타나도 한 번도 대열에서 뒤쳐지는 일도 없었습니다. 중학생 형들도 한 두번씩은 대열에서 밀려나 후미로 쳐지는 일이 있었는데 승재는 늘 자기자리를 지키면서 자전거를 탔습니다.

워낙 자전거를 잘 타다보니 소연이나 건모 만큼 다른 사람들 눈에 띄지는 않았습니다. 건모나 소연이는 함께 국토순례에 참가한 어른 참가자들에게 "대견하다" "대단하다" 하는 칭찬을 많이 들었는데, 승재는 그러말을 들을 기회가 없었습니다. 어른들 누구도 승재가  초등 5학년 밖에 안된다는 생각을 할 수 없을 만큼 자전거를 잘 탔기 때문입니다. 



전국 143명 자전거 국토순례 참가자 중에서 최연소 참가자였던 초딩 5학년 소연, 건모, 승재는 모두 전남 강진에서 임진각까지 620km를 완주하였습니다. 너무너무 힘들 때는 잠깐씩 버스를 타기도 하였고, 자전거가 고장나서 할 수 없이 버스에 타기도 했습니다. 그렇다고 하여 완주가 아니라고 할 수 있을까요? 아무도 그런 말을 할 수 없는 것은 아이들이 자신이 할 수 있는 한 최선을 다했기 때문일 것입니다.

초등 5학년 밖에 안 된 이 아이들은 세상에 태어나서 가장 힘들고 어려운 일주일을 보냈을 것입니다.  그 힘들었던 순간은 다 잊어버렸는지, 임진각에서 해산식을 마치고 기차를 타고 마산으로 내려오면서 내년에도 자전거 국토순례에 다시 참가하겠다고 약속하는 아이들이 참 대견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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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파비 2011.08.08 12:06 address edit & del reply

    내년에도 가나요?

    • 이윤기 2011.08.08 12:56 신고 address edit & del

      네, 내년에도 진행할 계획입니다.
      아들이랑 한 번 함께 가보시지요?

  2. 강산 나비 2011.08.08 18:09 address edit & del reply

    넘 자랑으런 한국의 인 의 긍지 국토순례에 참가한 모두에게 찬사를 보냄니다..윤 토끼

  3. hana 2011.08.09 10:12 address edit & del reply

    성재가 아니라 승재 아닌가요?
    모두 수고 하셨습니다.

    • 이윤기 2011.08.09 13:12 신고 address edit & del

      그러네요.....^^*

      승재로 고쳤습니다.

  4. 민남매 2011.08.17 10:35 address edit & del reply

    글을 읽고 나니 가슴이 너무 벅찹니다..^^ 와이 유치원을 통해 이런 프로그램도 있다는 것을 알고 갑니다.그리고 꼭 저희 아이들도 느끼게 해 주고 싶습니다..^^

    • 이윤기 2011.08.17 17:16 신고 address edit & del

      내년부터는 중학생 이상만 참가시키려고 합니다.

      YMCA 아기스포츠단이나 유치원을 졸업한 아이들은 예외적으로 초등 5학년부터 참가신청을 받을거구요.

  5. 김경환 2011.08.20 10:52 address edit & del reply

    우리 조카 승재 자랑스럽다 - 베트남에서 삼촌이

    • 이윤기 2011.08.22 08:14 신고 address edit & del

      멋진 조카를 두셨습니다. 승재 삼촌 ^^*

  6. 정찬양선생님 2015.01.10 19:21 address edit & del reply

    멋진조카를두셨습니다..승재삼촌^^*

강진에서 임진각까지 父子 620km 함께 달리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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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월 28일부터 8월 3일까지 6박 7일 동안 제 7회 한국YMCA 자전거 국토순례에 참가하였습니다. 전남 강진에서 출발하여 임진각까지 620km를 달리는 이번 자전거 국토순례에는 전국에서 143명이 참가하였습니다. 

이번 행사에 남다른 의미가 있었던 것은 중학교 2학년인 둘째 아이와 함께 참여하였다는 것입니다. 개인적으로 자전거 국토순례에 참가한 것은 세번 째 입니다.

2007년 8월에 지금 고3인 첫째 아들과 마산을 출발하여 부산, 경주, 대구, 구미, 김천, 대전, 천안, 평택, 부천을 거쳐 임진각까지 가는 제 3회 YMCA 자전거 국토순례(620km)에 참가하였습니다.   

2008년 1월에는 당시 초등학교 5학년이었던 아들과 함께 마산YMCA가 주최한 청소년 제주도 자전거 국토순례(240km)에 참가하였구요. 중학교 2학년이된 둘째 아들과 함께 제 7회 자전거 국토순례에 함께 참여하게 되었습니다.

둘째 아이는 제주도 자전거 국토순례에 참여하였을 때, 고3~대학생 형들과 함께 참여하여 많이 힘들어 하였던 기억이 있는데, 예상외로 이번에 스스로 국토순례 참가를 결정하였습니다. 



마산 참가자는 저희 둘째 아이를 포함해서 모두 12명이었고 저를 포함하여 실무자 2명이 아이들을 인솔하여 국토순례를 다녀왔습니다.  제가 늘 순수한 참가자가 아니라 진행자로 이런 행사에 참여하기 때문에 저희 아이들은 대체로 "아버지를 아버지라고 부르지 못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4년 전에 첫째 아이와 자전거 국토순례를 갔을 때는 제가 아이들 생활지도를 맡지 않았기 때문에 아이와 제가 서로 어색하게 '조우' 할 일이 별로 없었습니다. 독립심이 강한 탓인지 첫째 아이는 국토순례 일주일 동안 한 번도 저를 찾아 온 일이 없습니다. 

가끔 제가 걱정이 되어서 아들 녀석을 보러가도 친구들과 어울려 외면하기 일쑤였습니다. 사진을 함께 찍자는 것도 하도 마다하여 출발 할 때 마산역에서 한 번, 임진각에 도착해서 한 번 더 찍은 것이 전부입니다. 첫째 아이는 YMCA 유치원(아기스포츠단)에 3년을 다니는 동안 한 번도 아빠가 일하는 사무실에 온 일이 없었지요. YMCA에서 만나면 "선생님"이라고 부르거나 아예 외면해버리는 녀석이었답니다.



막내 티 팍팍내는 둘째 아이과 국토순례에 나서다

그런데 둘째는 좀 다릅니다. 막내 티를 팍팍내는 녀석입니다. 이 녀석은 아빠와 함께 국토순례를 간다는 것 때문에 주저하지 않고 참가를 결정했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이 녀석은 쫄쫄이(졸졸 따라다니는) 기질이 다분합니다. 첫째와 달리 친구들이 있는 곳에서도 선생님 '아빠"라고 부르고 대화를 할 때도 "예"라고 하지 않고 "응"이라고 하는 녀석입니다.

YMCA 유치원에 다닐 때도 첫째와 달리 자주 친구들을 데리고 제가 일하는 사무실에 나타났습니다. "야 ! 봐라 우리 아빠 여기 있다" 하고는 빙긋이 웃으며 자랑하던 일이 여러 번입니다. 두 녀석이 확실히 다른 특성을 보여주더군요. 

이런 둘째 아이와 이번 자전거 국토순례에 함께 참가하였습니다. 공교롭게도 이번에는 제가 남자 아이들 생활지도도 맡았습니다. 아이들을 혼낼 일이 있으면 예외없이 혼내야 하고 아이들을 칭찬하고 격려해 줄 때는 내 아이를 맨 나중에 챙길 수 밖에 없는 상황이었습니다. 아마 둘째 녀석은 제가 있어서 위안이 될 줄 알았을텐데 별로 그런 역할을 해줄 수가 없었지요.



전남 강진을 출발하여 첫째 날은 나주청소년수련관까지 둘째 날은 정읍  청소년수련관까지 이동하였습니다. 애써 아들녀석과 마주치지 않으려고 노력하면서 저는 저대로 나는 나대로 각자 자기 일과 역할을 하려고 마음먹고 있었지요.

하루 종일 아이들과 자전거를 타고 저녁을 먹이고 씻기고 빨래하는 것을 돌봐주고 나면 밤 10시가 훌쩍 넘어야 진행팀 회의를 합니다.  하루 활동을 평가하고 다음날 라이딩 계획을 점검하다보면 12시를 훌쩍 넘기기 일쑤입니다. 새벽이 되어서야 자러 들어갔더니 둘째 녀석이 매일 저녁 제 잠자리를 챙겨놓고 자더군요.

이 녀석은 첫째 아이에 비하여 사람을 배려하는 마음이 많은 녀석인데, 문제는 자신도 그렇게 배려 받고 싶어하고 그런 배려를 받지 못하면 상처를 받는다는 것입니다. 다른 아이들에게 선생님 아들이라서 특별한 대우를 해준다는 소리를 듣지 않아야 한다는 부담과 아들을 위해서 뭘 어떻게 배려해주어야 할까 하는 고민을 하지 않을 수 없었지요.

첫날은 다른 아이들에 비하여 조금도 뒤쳐지지 않고 무난하게 자전거 국토순례를 해내던 아들이 둘째 날부터 힘들어하기 시작하였습니다. 아이는 좀 예민한 편이라 집을 떠나면 화장실 가는 것을 힘들어 하고 상대적으로 두려움이 많은 아이입니다.

 


포기하더라도 끝까지 최선을 다해주길 바라는 아비 마음

둘째날 내장산으로 들어가는 추월산 고개(해발 약 530m)를 넘기 전에 진행자들이 "3km가 넘는 고갯길을 넘어야 한다", "국토순례 전구간 중에서 가장 힘든 코스다" 뭐 이런 이야기를 하더군요. 이런 이야기를 들었기 때문인지 아니면 진짜 견딜 수 없을 만큼 배가 아팠는지는 알수 없지만 아들 녀석은 "배가 아파 더는 자전거를 못 타겠다"  하더군요. 이마에 땀을 삐질삐질 흘리면서 어지럽기도 하여 자전거를 더 이상 못타겠다고 하는 겁니다.

아비 입장에서는 솔직히 화가 나더군요. 시작도 해보기 전에 포기하는 것이 영 마뜩치 않았기 때문입니다. 물론 추월산 고개 아래까지 가는 길도 가파르지는 않았지만 길고 긴 오르막이 이어졌기 때문에 많이 지치기는 하여습니다만, 그래도 시작도 해보기 전에 포기할 일은 아니라고 생각하였기 때문입니다.

두려운 일, 어려운 일을 만나면 시작도 해보기 전에 포기하는 것이 싫기도 하였고, 이 코스를 포기하고 나면 스스로 느끼는 좌절감도 마음에 남을 것이라고 생각하였기 때문입니다. 결국 아들 녀석은 '버스'를 잠깐 탓다가 걸어서 고갯마루까지 올라왔습니다. 힘들게 자전거 타고 올라가는 친구들이 있는데 편하게 차 타고 고개를 넘어가게 할 수는 없다고 판단한 진행자들이 걸어서 고개를 넘어가라고 하였다더군요.



워낙 가파르고 긴 고갯길이라 절반이 넘는 참가자들이 자전거를 타고 오르지 못하고 내려서 자전거를 끌고 올라왔기 때문에 그냥 맨 몸으로 걸어 간 것이나 자전거를 끌고 간 것이나 별차이도 없었습니다. 그렇지만 자전거를 끌고라도 올라간 아이들은 어쨌든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해냈다는 자부심(?)을 얻었지요. 

이날 아들 녀석의 컨디션은 최악이었습니다. 저녁에 아들을 만나서 "시작도 해보기 전에 지레 포기하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이야기를 하였습니다. "할 수 있는데 까지 최선을 다하면 도움을 받을 기회가 있지만 중도에 포기하고 차를 타면 아무도 도와줄 수가 없다"는 이야기를 해주었습니다.



실제로 몸무게가 많이 나가는 참가자들 중에는 늘 대열 맨 후미까지 뒤쳐지거나 심지어 2~3km까지 뒤쳐지면서도 절대로 포기하지 않고 자전거를 타는 아이들이 적지 않았습니다. 안전상의 문제 때문에 '버스'에 타라고 해도 끝까지 자전거를 타고 가겠다고 고집을 꺽지 않는 아이들이 있었거든요.

제 아들도 그래줬으면 좋겠다는 바람이 있었는데, 시작도 해보기 전에 포기하는 것이 안타깝고 못마땅하더군요. 추월산 고갯길에서 라이딩을 포기한 아들 녀석은 그날 저녁내내 저와 눈을 잘 못 맞추더군요. 저도 화가 좀 남아 있어서 아들 녀석을 따뜻하게 대하기가 어려웠구요.



힘들었는데도 내년에 또 가겠다는 아들 녀석 대견


다행히 셋째 날은 무난하게 지나갔습니다. 국토순례 7일 기간 중에서 가장 긴 코스로 하루 102.7km를 달리는 날이었는데 아들 녀석은 힘들어 하면서도 포기하지 않고 하루를 잘 지냈습니다. 이날 코스는 33km 새만금 구간이 포함된 날이어서 오르막 길이 많지 않았고 지역별로 자율적으로 라이딩을 하였기 때문에 훨씬 재미있게 자전거를 탔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 

아들 녀석이 쓴 소감문을 읽어 봤더니 이날 자전거 타기가 가장 즐거웠다고 하더군요. 자동차가 다니지 않은 새만금 길에서 긴장을 늦추고 친구들과 이야기도 하고 가벼운 장난도 치면서 편안하게 자전거를 탔던 시간이 가장 좋았던 모양입니다.

 


넷째 날은 군산에서 공주까지 86.5km를 달리는 날이었습니다. 70km를 훌쩍 넘기고 목적지인 공주 한옥마을을 불과 10여km를 남겨놓고 소나기가 쏟아지기 시작하였습니다. 한시간 가까이 비를 맞으며 자전거를 타던 아들 녀석은 다리도 너무 아프고 힘도 없고 추워서 자전거를 못타겠다고 하더군요. 

그때 저는 아들 녀석과 함께 뒤쳐져 있던 초등학생 여자아이를 돌보고 있는 중이었습니다. 뒤쳐지면 밀어서 앞으로 보내고 다시 뒤쳐지면 밀어서 앞으로 보내면서 아들 녀석에게 끝까지 "아빠랑 함께 가보자"고 "포기하지 말라"고 당부를 하였지요. 

그런데 초등 여자 아이를 겨우 본 대열에 붙여 놓고보니 아들 녀석이 보이지 않는 겁니다. 대열 맨 후미가 지날 때까지 기다렸다가 버스가 도착하였을 때 확인해보니 아들 녀석이 이미 차에 타고 있더군요. 추월산 고갯길을 포기하고 차를 탈 때보다 조금 더 실망이 컸습니다. 비가 쏟아지는 길을 맨 꼴찌라도 포기하지 않고 아들녀석과 함께 목적지까지 도착하는 상상을 하였었기 때문이겠지요.



아무튼 이날 저녁에도 아들 녀석은 저와 눈 맞춤을 잘 못하더군요. 아이들이 짐을 찾으러 간 동안 아들 녀석에게 다시 한 번 이야기를 하였습니다. 힘들면, 정말 힘들면 아빠가 도와줄테니 일단 포기하지 말고 끝까지 해보자고...그러다가 도저히 안 되겠으면 그때 가서 포기하자고...말해주었습니다.

아들 녀석에게 자판기에서 음료수도 하나 뽑아주고 화장실 가서 용변을 볼 수 있도록 약도 챙겨 먹인 탓인지, 다음날 가장 힘든 코스 중 한 곳이었던 마곡사 고갯 길 구간을 포기하지 않고 완주하였습니다. 고갯 마루를 20여m 앞두고 자전거가 고장 났을 때는 제가 타던 자전거를 주고 고장난 자전거를 정비차로 옮겨주는 등 아빠 노릇(?)을 좀 해주었기 때문인지 이날은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목적지에 도착하였습니다.



여섯 째 날도 오전에 화옹방조제를 지날 때 힘들어 하였지만 평지구간이 많은 탓인지 비교적 어렵지 않게 완주를 해냈습니다. 이날 아침부터 임진각까지 완주 할 수 있겠다는 자신감이 붙기 시작하는 것 같았습니다. 임진각까지 가는 일곱 째날은 불과 55.9km를 달리는 오전 라이딩이었기 때문에 무난하게 완주를 해냈지요.

힘든 경험을 한 둘째 아이가 다시는 자전거 국토순례에 가지 않겠다고 할 줄 알았는데, 집에 돌아와 하룻 밤을 지낸 아들 녀석은 나 말고 다른 선생님께 문자를 보냈더군요. "내년에도 국토순례 함께 참여하자"고 말입니다.

父子가 함께 참가한 다른 참가자들 처럼 대놓고 아들을 챙겨줄 수 없는 미안한 마음이 있었습니다. 아무튼 거뜬하게 620km 자전거 국토순례를 해낸 아들 녀석이 대견하고 자랑스럽운 것은 팔불출이라는 소리를 들어도 어쩔 수 없는 아비 마음인 모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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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chamstory 2011.08.06 12:55 address edit & del reply

    아들이 이렇게 컸네요.
    대견스럽겠습니다. 좋은 경험시켰네요. 이런 여행보다 더 좋은 교육이 없을 것 같습니다.

    • 이윤기 2011.08.07 07:54 신고 address edit & del

      네 아이가 다시는 자전거를 타지 않겠다고 할까봐 걱정했는데....다행히 내년에도 가고...주말마다 함께 자전거를 타자고 하네요.

믿을 수 없어? 내 힘으로 620km를 달렸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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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YMCA 자전거 국토 순례 일곱 째날 이야기 이어갑니다. 전남 강진을 출발하지 7일 만에 드디어 임진각에 도착하였습니다.

과연 내가 할 수 있을까? 정말 자전거 타고 일주일 만에 임진각까지 갈 수 있을까? 일주일 내내 그런 생각을 하며 자전거 패달을 밟던 참가자 모두가 임진각에 도착하였습니다.

임진각에 도착하던 그 기쁘고 감격스러운 장면을 글로 어찌 다 표현할 수 있을까요?

자전거 국토 순례 마지막 날 일정은 부천YMCA를 출발하여 행주대교를 건너 고양, 파주를 거쳐 임진각에 도착하는 56km 구간이었습니다.

임진각을 향해 가는 마지막 날은 평소보다 기상 시간이 1시간이나 당겨졌지만 아이들 모두 기분좋게 일어나 출발준비를 서둘렀습니다. 광주, 마산 등 지역으로 가야하는 참가자들 때문에 낮 12시 임진각에 도착하는 것을 목표로 출발 준비를 서둘렀습니다.

오전 7시 30분 부천YMCA를 출발한 국토순례 참가자들은 평소 보다 더 힘차게 패달을 밟고 구호를 외치는 목소리에도 점점 힘이 들어가기 시작하였습니다. 내 힘으로 해냈다는 자부심 때문이겠지요. 힘찬 구호를 외치자고 진행자들이 그렇게 독려해도 이렇게 큰 목소리가 나온 적이 없었습니다.

 

 

 


함께 달리자, 내 힘으로 달리자 !

임진각으로 이어지는 1번 국도에 들어서자 군데군데 응원을 나온 가족들이 눈에 띄기 시작하더군요. 작은 피켓과 현수막을 들고 응원나온 분들이 박수와 함성으로 격려해주었습니다.

임진각 도착을 앞두고 '통일동산'에서 마지막 휴식을 취하면서 대열을 정비하고 약 7km 남은 마지막 구간을 달렸습니다. 임진각에 도착 할즈음 국토순례단을 환영(?)하는 비가 내리기 시작하였습니다. 처음엔 소나기인줄 알았는데 나중에 보니 폭우가 쏟아지더군요.

지난 일주일 동안 큰비가 내려 나라 곳곳에 수해피해가 생겼지만, 자전거 국토순례단은 큰 비를 용케 잘 피해다녔습니다. 그런데 임진각에 도착하는 마지막 날 폭우를 만난 것 입니다. 국토순례 완주의 기쁨 때문인지 폭우쯤은 문제도 아니었습니다. 시원한 비를 맞으여 기분 좋게 임진각에 도착하였지요.



통일의 문을 지나서 임진각으로 들어가기 전에 아이들에게 더 이상 달릴 수 없는 분단 현실을 설명해주고, 통일이 되는 그날, 우리가 함께 백두산까지, 압록강까지 함께 달려가자는 다짐도 함께 하였습니다.

임진각 도착 행사장에는 수도권 참가자들 가족들이 많이 나와 국토순례 참자가들을 환영해주었으며 자동차로 대열을 따로가며 촬영을 하고 함성으로 응원해주시는 분들도 있었습니다. 가족들 중에는 아이들이 임진각에 도착하는 모습을 보며 감격해서 눈물을 흘리고 소리를 지르는 분들도 있더군요.

"으악 ~ 애들이 해냈어. 너무너무 감동적이야. 어쩌면 좋아. 정말 믿을 수가 없어."


발을 동동 구르며 감격해서 소리를 지르던 이 어머니께 해단식 때 학부모 소감 발표를 시켰는데, 막상 마이크를 잡았을 때는 감격이 많이 누그러지셨더군요.

원래는 참가자들이 함께 걸개 그림을 그리고 지구온난화 캠페인을 함께 하기로 하였지만 폭우로 많은 프로그램을 취소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한국YMCA 남부원 사무총장과 전성환 자전거 국토순례 단장이 참가자들을 격려한 후 완주증 수여하고, 참가자 대표들이 소감을 들었습니다. 



자전거 국토순례에 참가한 참가자들도 그리고 국토순례에 아이들을 보낸 부모님들도 내가 해낼 수 있을까? 내 아이가 해낼 수 있을까 하는 불안한 마음을 떨쳐낼 수 없었던 모양입니다.

"처음 강진을 출발 할 때, 내 힘으로 임진각까지 갈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을 많이 하였습니다. 그런데 매일 매일 자전거를 타다보니 이렇게 임진각까지 올 수 있었습니다."

"내가 과연 해낼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을 많이 하였습니다. 그런데 막상 해보니까, 힘들었지만 해낼 수 있어서 너무 기분이 좋습니다."


힘들다고, 죽겠다고, 더 이상 못가겠다고 하던 아이들 대부분이 내년에 다시 만나자는 약속을 하더군요. 국토순례가 은근히 중독성이 있는 것 같습니다. 힘 든 일을 해낸 아이들 얼굴에는 기쁨과 자부심이 새겨져있더군요.



환영나온 가족들과 전체 참가자들이 기념촬영을 마치고 모든 참가자들이 비를 맞으려 서로 축하하고 격려하며 뜨거운 포옹을 나누며 윤회 악수를 하는 것으로 국토순례 대장정을 마무리 하였습니다.


2011년 한국YMCA 자전거 국토순례 구호는 "함께 달리자, 내 힘으로 달리자" 입니다. 아이들은 함께 달리는 친구들과 선생님들이 있어서 포기하지 않고 임진각까지 달렸습니다. 아이들은 온전히 자신들의 힘으로 임진각까지 달려온 그 승리의 기쁨을 오랫 동안 기억하게 될 것입니다.

 




<관련 포스팅>
2011/08/03 - [여행 연수/두 바퀴 여행] - 내 힘으로도 하루 100km는 가뿐합니다
2011/08/02 - [여행 연수/두 바퀴 여행] - 선생님 이제 진짜로 몇 킬로미터 남았어요?
2011/08/01 - [여행 연수/두 바퀴 여행] - 목마른데 물도 못 먹는 건 처음이다
2011/07/31 - [여행 연수/두 바퀴 여행] - 자전거 국토순례 3일, 환경 이슈의 현장을 찾아
2011/07/30 - [여행 연수/두 바퀴 여행] - 자전거 국토순례, 530미터 밀재 넘어 정읍까지 96km
2011/07/29 - [여행 연수/두 바퀴 여행] - 자전거 국토순례, 전남 강진 - 나주까지 80.6km
2011/07/28 - [여행 연수/두 바퀴 여행] - 강진에서 임진각까지 620km를 달린다


제 7회 한국YMCA 자잔거 국토순례 '생명평화의 발구름' 행사를 위하여 경상남도, 공주시, 강진군, 에너지시민연대, 광동제약에서 후원해주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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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lotus 2011.08.05 11:22 address edit & del reply

    라이딩에 직접 참여하시어 피곤함도 마다않고 매일매일 아이들의 상황을 글로써 알려주신 선생님의 노고에 감사드립니다.

내 힘으로도 하루 100km는 가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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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YMCA (청소년) 자전거 국토순례 여섯 째날 이야기 이어갑니다.

평택 중원스파랜드를 출발하여 매향리, 화옹방조제, 제부도길입구, 시화방조제, 오이도입구, 소래포구를 거쳐 부천YMCA까지 이어지는 100여 km를 주행하였습니다.


다섯 째날 경기도로 들어온 후부터 임진각까지는 '고개'라는 이름이 붙은 가파른 언덕길은 더 이상 없습니다. 이름만 들어도 가슴 한켠이 뭉클한 매향리를 지나 화옹방조제와 시화방조제를 건넜습니다.

오르막이 없는 길을 달릴 수 있어서 편하기도 하였지만 두 곳의 방조제를 지나는 길은 참 많이 단조롭고 지루하더군요.

화옹방조제와 시화방조제를 합한 길이가 약 20km나 되었습니다. 전체 구간의 20%가 밋밋한 방조제 길이었습니다. 

옛날에는 바다와 갯벌이었던 곳이 한 때는 죽음의 호수라고 불리더니 이제는 생태계가 다시 살아나고 있는 모습이었습니다. 



하루하루 갈수록 청소년 참가자들의 자전거 타는 기술을 일취월장하고 있습니다. 여섯 째날은 점심을 먹기 전에만 65km를 주파하였습니다. 물론 점심시간이 많이 늦기는 하였지만 이제는 오르막 내리막길에 맞추어 기어변속을 자유자재로 할 수 있게 되었기 때문일 것입니다.

사실 첫날 전국에서 모인 참자자 중에는 키높이에 맞춰 안장을 조절해주면 발이 땅에 닿지 않아 출발도 제대로 못하는 아이들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일주일 동안 밥 먹고 잠 자고 씻는 시간과 휴식 시간을 빼고는 하루 종일 자전거를 탔더니 불과 며칠 사이에 하루 100km는 가뿐하게 달릴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뿐만이 아니었습니다. 자전거국토순례는 혼자서 자전거를 타는 것과는 또 다릅니다. 140명이 넘는 인원이 라이딩하는 기본 대형은 두 줄입니다. 처음엔 줄을 제대로 맞춰내지도 못했고 앞뒤 간격을 맞추는 것도 힘들었습니다.

일주일이 지난 지금은 멋진 대열을 갖추고 자전거를 탈 수 있게 되었습니다.
도심 한 복판을 지나가도 대열이 끊기지 않고 신속하게 이동할 수 있게 되었지요. 도로에 장애물이나 패인 곳이 있으면 신속하게 뒷 사람에게 알려주는 것도 가능해졌습니다.



참가자 중에는 초등학교 5학년인 남녀 아이가 세 명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처음에는 출발 할 때마다 중심도 잘 못잡는 저 실력으로 어떻게 국토종주를 할 수 있을까 하고 걱정을 하였습니다만 이제는 자전거와 몸이 하나가 되어 움직이게 되었습니다. 발이 땅에 닿지 않아도 자전거를 옆으로 살짝 눕혀 발로 땅을 밀면서 가볍게 출발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원래부터 자전거 타기를 좋아하는 아이들도 있었지만 대부분은 평소에 자전거를 잘 타지 않던 아이들이었습다. 또래 청소년들에 비하여 조금도 유별 날 것 없는 아이들이 불과 일주일만에 하루에 100km 달릴 수 있는 체력을 가진 아이들이 된 것입니다.

늘 자전거를 타고  라이딩을 즐기는 사람들에게 하루 100km는 대단한 거리가 아닐 수 있습니다만, 어른이건 아이건 간에 온전히 내 힘으로 하루 100km를 이동해본 경험을 가진 사람들이 얼마나 될까요? 온전히 내 힘은 아니네요. 자전거의 힘을 빌리기는 하였네요.  



아이들의 자전거 국토순례 참가 경험은 결코 잊어버릴 수 없는 소중한 추억이 될 것입니다. 
마지막 남은 일정은 부천YMCA에서 임진각까지 가는 일정인데, 일주일 동안 발전한 자전거 실력이면 한 나절 정도면 가뿐하게 소화해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대부분 에너자이저인 아이들의 강철 체력을 어른들이 감당할 수가 없습니다.
 
7시가 다 되어 부천YMCA에 도착하여 밥먹고 샤워를 마친 후에는 밤 11시가 넘도록 체육관에서 농구를 하더군요. 이렇게 에너지와 생명력이  넘치는 아이들을 교실에 가둬 두고 공부만 해야한다고 강요하는 교육당국과 학교를 생각하면 참 무지하다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임진각을 56km 앞두고 아이들은 마음이 설레고 있습니다. 벅찬 감동의 시간에 조금씩 가까워지기 때문이겠지요. 이젠 '화이팅'하라고 소리치지 않아도 아이들이 큰 목소리로 화이팅을 외칩니다. 스스로 해낸 620km 자전거 국토대장정이 너무나 대견하고 자랑스럽기 때문이겠지요. 임진각에 도착한 아이들의 기뻐하는 모습이 기대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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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저녁노을 2011.08.03 07:57 address edit & del reply

    건강해 보여 좋습니다.
    서로 보듬어 안으며...홧팅^^

    • 이윤기 2011.08.07 07:59 신고 address edit & del

      첨엔 서먹서먹하였던 아이들이 힘든 경험을 함께 한 후 참 끈끈한 정을 나누며 헤어졌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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